그 여자의 살인법
질리언 플린 지음, 문은실 옮김 / 바벨의도서관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여주인공 카밀은 신문기자로 편집장의 추천으로 윈드밀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어린 여자아이들의 치아를 모조리 뽑아간 파렴치한 살인범. 퓰리쳐상을 노리라는 편집장의 말에도 카밀이 이 사건을 조사하기 껄끄러운 이유는 윈드밀이 바로 그녀 자신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독립해나와 시카고에서 살기 전까지 그녀의 모든 세계였던 윈드밀은 그녀에게는 서먹서먹하고 불편한 동네이기 짝이없다.
좁은 동네의 특성상, 건너집 가족의 모든 것이 하루만에 퍼져버리는 곳.
그 좁은 동네의 유서깊은 자신의 가문, 호화찬란하고 상냥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어머니의 냉랭함.
그리고 어린 시절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여동생의 죽음...
술, 마약, 섹스, 음주운전, 가쉽... 도축으로 생을 이어나가는 이 무료한 마을을 견디기 위해 모두 그것에 탐닉해있다. 집같지도 않은 집, 결코 섞일수 없어 겉돌기만했던 카밀은 일부러 자신이 할수 있는 모든 일탈과 반항을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의 몸을 자해하는 충동을 이길수가 없었다.
긋고, 긋고 또 긋고.
끔찍하리만치 무료하고, 견디기 힘든 곳.
카밀은 살인사건의 전말을 밝혀낼수 있을까.

여자라면 누구나, 아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살수 없고 때로는 그것을 욕망한다.
부족한 관심이 독이 되듯이, 지나친 관심 역시 독이 되는 법.
소설속의 주인공 카밀은 그 지나친 관심이 독이 되었던 케이스이다. 마을의 유명한 유지인 어머니, 삐뚤어져만 가는 카밀을 뒤쫓는 시선들, 착하고 말잘듣는 딸이 되지 못해 그녀를 늘 냉랭히 처다보던 어머니. 이 좁은 마을의 작은 관심들은 그녀에게는 너무도 폭팔적이었으리라. 온몸에 칼로 글자를 세겨넣는 자해 강박증, 모든 것을 잊고 쌓여가는 감정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자신의 몸에 고스란히 세겨버린다.
카밀의 배다른 여동생 앰마는 또 어떤가. 고작 13살의 마약중독자이며, 제멋대로이고, 어딜가나 대장노릇을 해야하는 아이. 사람들의 관심이 자기에게 있지 않는다면, 살해당한 아이도 질투하는 철부지 소녀. 지나치게 관심에 집착하는 것은 그녀에게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일에 딱 100% 정확하고 옳은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만은, 또 똑같은 감정의 크기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만은, 똑같은 행동, 똑같은 상황에서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정을 저마다 달라지게 되어버려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옳고 정당한지, 어쩌면 평생 알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관심이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부족하다. 어느 정도가 딱 적정선인지 레시피라도 있으려면 좋으련만.
관심 50%, 무관심 50%-이게 딱 옳다!라고 말할수 있다면 좋으련만.
어느 부분에서 관심을 가져줘야하고, 어느 부분에서 무관심하게 지나쳐줘야하는지, 누군가는 정확히 알고 있을까.
처절할만큼 "관심"이라는 욕망에서 벗어날수 없었던 사람들. 그들이 저질러버린 몹시 바보같고 이기적인 죄들.
마음이 먹먹한건지, 심장이 서늘해지는 건지 알수 없을 기묘한 인과관계들이 이어지고, 다 읽고나면 맥이 풀려버린다.

번역 제목부터 <그 여자의 살인법>이라서, 출판사에서 실수를 저지르는게 아닐까 싶었다. 범인의 정체가 여자임을 알려주고 시작하는 셈이라, 무척 대담하게 스포일러를 뿌려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책을 읽는 중반부까지만 들었다. 꽤나 한참 붙들고 있던 책이라, 작가가 초반부부터 중반부까지의 이야기를 너무 늘어지게 몰고나가는 것이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이런 불만도 딱 중반부까지.
중반부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에는 눈을 뗄수가 없어서 잠들어야하는 시간도 잊고 마지막페이지까지 확인해버렸다.
더디다고 생각되었고, 불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되었던 곳들도 책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모두 필요한 내용들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참 잘쓴 소설이다. 그리고 정말 재밌었다. 섬세한 감정선, 서두르지 않는 침착성, 안타깝고 기묘한 결말. 모두 마음에 든다.

연쇄살인의 가면을 쓴 이 책은 사실은 콩가루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가족에게는 "아픔"이라는 베이스가 깔려있다. 어떤 식의 아픔이든, 모두가 그 아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이 책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관심"이라는 당연하고도 속물적인 인간적 욕망인데, 이것이 책에서 어찌나 가슴아프고 섬뜩하게 그려지던지 충격적인 사건들의 배후에 입안에 씁쓸함이 무한히 맴돌았다.
특히 여자들이라면 무척 공감하며 더더욱 서늘하게 볼 법한 책이고, 곧 이어질 열대야를 이겨낼 책을 누군가에게 딱 한권만 추천하자면 바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