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강탈자 - 당신의 심장은 나의 것
딘 R. 쿤츠 지음, 김진석 옮김 / 제우미디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젊은 나이에 대부호가 된 라이언 페리는 모든 것을 가진 남자이다.
34살 나이에 인터넷관련 사업으로 대박을 쳐서 엄청난 부를 가졌음은 물론이고,남을 밟고 올라서지도 않았던 "착한 부자"이며 잘생겼고, 미모와 지성을 갖춘 여자친구까지 있다. 호화롭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심장이 이상하다는 점을 알게되고, 병원을 찾게 된다.
그리고 심근증이라는 심장이 비대해지는 병을 갑자기 얻게 되었고, 그에게 남은 삶이 1년 내외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34살의 건강한 남자, 적당히 운동하고, 잔병치레도 없던 남자가 갑자기 심장병을 얻게된 것이다. 죽음이 두려워진 라이언 페리는 점점 소심해지고, 의심이 많아져 간다.
얼핏, 의사에게 주워들은 심근증의 원인중에 독극물 중독이 있을수도 있다는 말에 주위 사람들을 의심하게 되고, 끔찍히도 사랑하던 여자친구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고, 급기야 아무도 몰래 여자친구 사만다와 그녀의 가족의 뒷조사까지 하게되면서, 어쩌면 그녀가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는 부에대한 열망을 가진 그녀의 어머니가 배후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까지 의심해보게 된다.
자신에게 병을 진단해준 의사를 믿지 못해 관련업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의사를 찾아가게 되고, 뜻밖에도 그는 생각보다 빨리 심장이식수술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게 끝일까.
심장 이식 수술을 받고, 28가지 약을 먹으면서 살아야하고,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장소를 꺼리게 되었고, 죽을 날을 받아놓았을 때도 헌신적이던 여자친구는 알수 없는 이유로 떠나가 버렸는데, 급기야 어느 날 그의침실에 심장을 꼭 닮은 하트모양 사탕 꾸러미가 얹어져있다.
Be mine. 나의 것이 되어줘.
이런 악랄한 장난을 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가 얻게 된 삶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딘 쿤츠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소설을 읽어본 적은 처음이다. 스티븐킹과 비견되는 만큼 편안한 진행과 안정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이런 류의 스릴러 소설가들이 대게 그렇듯, 읽는데 거리낄 것 없이 스피디하고, 가독성이 좋다.
스릴러 소설중에는 뻔하디 뻔하게 정석대로 진행되어가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들어간 데와 나오는 데가 다른 소설이 있는데, 딘쿤츠의 <심장강탈자>는 후자의 느낌이다. 초반과 중반, 그리고 소설 말미의 느낌이 모두 다르고, 독자의 예측을 불허하 듯 뜻밖의 사건으로 퍼져나가는 소설이다.

이 점은 장점이기도 하나, 또다른 면에서는 단점이기도 했다.
예측하기 힘들기는 하나, 후에 이어지는 사건들과 앞부분의 이야기가 조금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고, 다소 쓸데없다 느껴지는 복선들도 많이 깔려져 있어서, 다 읽고 나니 그 부분은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하는 부분들도 생겼다. 물론 소설의 말미에서 작가는 나름대로 그 불필요해보이는 부분들에 대한 해명을 해놓기는 했지만, 쌩뚱맞게 느껴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왜일지.
갑작스러운 병을 얻게 되면서부터 라이언 페리가 시달리게 되는 여러가지 망상과 의심들은 충분히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심장병을 얻게 되었을 때 보통 사람들이 하는 행동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 부분은 라이언 페리가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랬을수도 있지만...)
다소 쿨해보이는 전형적인 스릴러 남자주인공같은 인물처럼 묘사되는 라이언 페리가 의심을 품게 될수 밖에 없으며 그로인해 소심하고 쪼잔하게 여러가지 뒷배경까지 캐가게되는 결정적인 상황을 만들어놓았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심리묘사 자체는 괜찮지만, 그 심리에 어울리는 상황을 만들지 못했던 것이 실수가 아니었을까.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탐욕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제목의 느낌과 소설의 내용의 불일치함 역시, 소설의 전체적인 어울림을 망치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 더 유한 제목, 이를테면 원제처럼 <당신의 심장은 나의 것>같은 제목을 붙였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따분하지 않게 가볍게 읽기에는 괜찮았는데, 그렇다고 딱히 특별할 점은 못느꼈던 소설이다.
작가의 필력은 무척 안정적이지만, 이런 류의 작가들은 이제 너무나 많으니 조금 더 특별한 부분을 느낄수 있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덧붙여, 일부러 그랬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속에서 라이언 페리가 얼마나 잘난 인물이고, 얼마나 대단한 부를 지녔으며, 얼마나 사치스럽고 고급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소설 내내 간간히 주어지게 되는데, 은근히 거슬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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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뱀파이어 연대기 1
앤 라이스 지음, 김혜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처음 만난 건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로 돌아간다. 새학기를 맞아 잠실에 있는 모 백화점에 친구와 가방을 사러 갔다가, 아무 생각 없이 무슨 영화인지도 모른 채 극장으로 들어갔었다. 이 영화가 내 친구의 선택이었는지, 내 선택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극장에서 나올 때 나는 가슴 벅차오르는 어떤 감정을 느꼈고, 꽤 오랫동안 이 영화에 빠져있었다. 브래드 피트를 좋아하게 된 것, 탑건이나 칵테일같은 영화에 나와서 경솔하고 지혜롭지 못하나, 열정은 불타오르던 젊은이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던 톰 크루즈를 재발견 하게 된 것도 이 때이다. (하긴, 한편으로는 이 영화에서 톰크루즈의 레스타 또한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거의 사랑에 가까웠으며, 나는 이어지지 않고 멈춰버린 마지막 장면 이후의 이야기를 자꾸만 상상해보게 되었다.
그들은 불사의 존재이고,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존재이니 어쩌면 이후의 이야기가 있다면, 클라우디아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환상은 이루어지지 않은 루이스와 클라우디아의 사랑의 완성판이었던 것 같다.
이상형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처음 깨닫게 된 것도 그때 쯤이었다.
나는 언제나 고뇌와 고독에 차있고, 나약하며, 혼자있기 좋아하는 외골수형의 인간을 사랑하고 싶었다. 꼭 루이스같은.
그렇다. 나는 모성애가 가득한 중학생 소녀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만난지 15년이 되었다.
내가 그 영화를 처음 보았던 딱 그 나이 만큼 세월이 흘렀다.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를 서점에서 발견하고 낚아채듯 사서 와 읽은 것은 그보다 훨씬 후 20대의 일이었지만, 책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나는 다시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고, 정신없이 그때까지 나와있던 모든 시리즈의 책을 사들이고, 정신없이 읽었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고, 새로운 뱀파이어 연대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번역되지 않아 미처 읽지 못했던 전 시리즈를 다 볼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터질정도로 흥분된다.
딱 이 정도로만 얘기해도 내가 얼마나 뱀파이어 연대기를 사랑하는지 알수 있으리라.
이제부터 써내려가는 리뷰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스타일의 찬양에 가까운 극찬 리뷰일 것이 뻔하니, 거슬리는 분들은 여기부터 읽지 않으시면 되는 것이다. 으하하하하하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 중 첫번째 편으로, 전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한 기자가 밀랍같은 얼굴을 한 뱀파이어를 만나 인터뷰를 시작한다.
그의 영생의 삶과 고독과 그를 지배하고 있던 생각들을 테잎에 녹음해 가면서.
그 뱀파이어의 이름은 루이스라고 한다. 부유한 농장주 젊은이였던 루이스는 사랑하던 동생을 잃은 후 실의에 빠져있다가 뱀파이어 레스타를 만나게 된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고 도도하며 자신만만한 모습에 빠져 정신을 잃은 것은 잠깐, 자신의 재산과 재정관리 능력을 노리고 접근해 동료로 만들어버린 레스타를 곧 증오하기 시작한다.
수수하고 고독함에서 안정을 찾는 루이스와는 달리, 화려한 세계와 예술을 사랑하고 지극히 사치스러운 레스타.
그리고 이들의 사랑인지 증오인지, 아니면 그저 동료의식인지가 이어지는 가운데, 루이스는 괴로움에 차있던 어느 날 죽은 엄마옆에서 울고 있던 6살 짜리 소녀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물게 된다.
루이스는 어린 아이의 피를 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무슨 생각인지 레스타는 그 아이를 데리고 와 뱀파이어로 만들어버린다.
그 아이가 클라우디아. 6살짜리 소녀이면서, 귀부인이고, 놀랍도록 아름다운 인형 뱀파이어이다.
처음에 레스타를 피해 클라우디아를 보호하려던 루이스는 곧 클라우디아에게 깊이 빠져들게 되고, 그의 삶에 의미있는 것은 단 하나 클라우디아 뿐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아버지와 딸, 또는 연인과도 같은 관계.
25살의 외형을 가지고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루이스와 6살의 외형을 가지고 교활할 정도로 똑똑하며 도발적인 클라우디아.
한결같이 공허하지만 사치스럽고, 비밀스럽지만 끈끈한 이들의 삶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은 클라우디아가 레스타를 죽이기로 결심하면서 부터였다.

작가 앤 라이스는 이 소설을 6살짜리 딸을 읽고 술독에 빠져지내다가 정신차리고 쓰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녀는 소설에서나마 죽은 딸의 영생을 바랬던 것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소설을 차차 써내려가면서 어쩌면 그녀도 이런 삶이 결코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
지독히도 고독하고, 방관자적인 뱀파이어의 삶은 인간의 삶과 너무나 다르다.
그들에게 희열과 열정이 존재하는 것은 식사할 때, 그러니까 인간의 피를 빨 때 뿐.
아무리 고독하고 상념에 자주 잠기고, 지혜롭다 하여도 결국은 식욕이 가장 중요한 짐승이 되어가는 것이 그들의 창백하고 아름다운 얼굴 속의 정체였다.
루이스가 자주 괴로워지는 이유는 인간과 뱀파이어 그 사이에서 오느 괴리감이 너무 크게 때문이다.
인간이었던 루이스는 온정을 바라고, 선을 바라는 착실한 청년인데, 뱀파이어가 된 루이스는 살기 위해 또는 잠깐의 쾌락을 위해 인간을 죽여야하는 짐승이 되어버린 것이다. 평생 가지고 있는 선에 대한 결벅증적인 관념과 피를 원하는 욕구 사이에서 한없이 괴로움과 고독에 젖는 루이스의 모습은 이 소설 이전에는 볼수 없었던 뱀파이어의 모습이었다.
내게 이 소설이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그런 점 때문이다.
한도 끝도 없는 영생의 공허함과 박재된 아름다움, 인간성을 잃어가는 과정의 거인과도 같은 상실감.
결코 가볍지도, 천박하지도 않은 채 더할나위 없이 깊이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들의 짐승같은 행위, 잔학하고 교활한 술수 또한 그 깊이감으로 인해 한없이 우아하고 또 쓸쓸하다.
또 아무리 생각이 깊은 척 하고, 세상의 온갖 철학과 감정을 느껴본 듯 말하지만 결국은 인간의 피를 빨고 사는 한마리 짐승에 가깝다는 점 또한 허망하게도 아름답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그 어떤 멋들어지고 가슴 벅차오르는 씬들 보다도, 루이스가 한없이 고뇌하고 절망에 빠져있는 순간이 내게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 또한, 이런 아이러니한 감정에서 비롯되리라.

나는 뱀파이어를 다루면서, 인간의 감정과 상실감을 이야기하는 이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뱀파이어 연대기 전 시리즈중에서 가장 좋다. 이후의 이야기는 레스타의 모험에 가까운 이야기이고, 그것이 결코 지나치게 가볍고 경박한 것은 아니지만, 그 어느 시리즈보다 더더욱 마음속에 깊이 박히는 것은 이 소설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인간성에 대한 성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이 점은 루이스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려 가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성격이 완전히 다른 레스타가 화자로 등장하면 이야기는 더 화려해진다.)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뱀파이어 이야기. 이전에, 또 이 후에 어떤 뱀파이어 소설이나 영화가 나온다 해도, 내 마음속의 최고봉에 오른 것은 바로 뱀파이어 연대기이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그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앤 라이스의 우아하면서도 공허한 문장들 또한 내게는 피할수 없는 매력이다.
흠모하고 또 흠모하는 뱀파이어 연대기를 오랜 시간 기다린 끝에 이번에는 반드시 그 끝을 확인할수 있기를 기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책장을 다 덮고나서 꼭 매우 슬픈 꿈을 꾸고 일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루이스가 그랬듯, 나는 그 슬픔을 사랑하고, 그 슬픔속에서 안정적이서 슬픈데도 마음이 벅차올랐다.
이제 락스타가된 레스타의 조금더 명랑한 이야기로 넘어갈 차례.
올 가을은 뱀파이어들과 그들의 허망한 영원속에서 헤매일란다.

p.s 책을 받아들고 뒤늦게 깜짝 놀랐다. 안에 만화가 박희정씨의 일러스트가 권두에 하나씩 들어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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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2 - 두 명의 목격자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3
최혁곤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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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은 여름에, 추리소설은 가을에 보는게 좋다. 그냥 나는 느낌상 그렇더라.
가을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읽은 <한국 추리스릴러 단편선 2>. 1편과 비슷한 컨셉으로 가고 있는 책표지가 일단 마음에 들고 계속 이런 컨셉으로 나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살짝 해본다. (표지만으로 따지면 공포단편선보다 추리 스릴러 단편선이 훨씬 예쁘다고 생각한다.)
1편처럼 10개의 단편이 있고, 단편집의 특성상 재밌는 것도 있었고, 재미없는 것도 있었으며, 단순히 취향에 맞지 않는 것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아쉬웠던 점이 더 많았던 단편집이었다. 전편에 비해서 조금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시리즈 2권만에 정체기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전체적인 작품의 완성도는 1편과 비슷한 느낌이다.
재밌었던 단편을 몇가지 소개해보자.

박지혁 <두명의 목격자>
<나는 지갑이다>라던가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고백>처럼, 인간이 아닌 사물이 화자로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이런 식의 작품들은 어느 정도 귀여움을 느낄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사건 현장을 모두 지켜보았던 택시 미터기와 미키마우스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중고 핸드폰의 입으로 들어보는 두 남녀의 기이한 만남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아주 재밌다고 말하기에는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심심해지는 면이 있긴 하지만 단편집을 시작하면서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한 작품이었다.

강지영 <살인자의 쇼핑 목록>
읽다보니, 전 단편집에서 엄청나게 사랑했던 단편을 지은 작가분의 단편이었다. 딱 마음에 드는 문체, 적당한 속도감, 개성이라고 하면 개성이라고 할수 있을 다소 칙칙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까지 모두 마음에 드는 작가이다.
이번 <살인자의 쇼핑목록>역시 소재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이 탁월하다. 할인마트의 캐셔로 일하면서 남의 일상을 훔쳐보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는 캐셔 아줌마가 어느 날 뉴스에 나오는 살인사건 소식을 듣고 마트에서 종종 보았던 어떤 소설가를 떠올리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이 얽혀있는 과거라던가, 이렇게 오지랖을 부릴수 밖에 없는 이유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와서 남 일에 관심많은 관음증 아줌마의 무모한 모험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마무리가 아쉬운 단편이었다. 초반 중반 까지 이 단편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는데 반전 부분의 이야기들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런 이유였더라면 좀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추리 스릴러 단편선에서 가장 빛나는 발견이다 싶은 작가라서, 이 작가의 작품은 계속 챙겨보고 싶은 욕심이 든다. 작품집을 준비중이라던데, 그것도 꼭 보고싶다.

최혁곤 <순결한 순례자>
이 단편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
최혁곤 작가는 내 취향에 잘 들어맞는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단편은 느낌이 무척 좋다.
이야기 자체는 기자출신의 한 남자가 요양차 절간에 들어가 머물게 되면서 살인사건을 맞딱뜨리게 된다는 이야기로 그다지 정교하다거나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을수는 없는데, 조용한 산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조근조근 이야기해주는 방식과 어떤 형식의 추억이든 추억이 남기는 아련함을 남겨놓은 마무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영화와는 별 게의 느낌으로 "살인의 추억이로구나..."하는 느낌이 드는 단편이었고, 마지막 단락에서는 왠지 쓸쓸함마저 묻어나왔다. 전작들에 비해 글솜씨가 많이 세련되어진 느낌이라 그 점도 마음에 든다.

독특하게 배경이 외국인 단편도 2개 있으나, 팩션물이 취향에 맞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즐겁게 읽기에는 부족했고, <보물섬 스트라이크! 볼링게임>은 지난번 1편에서도 보았던 이대환 작가의 단편인데, 가독성만 조금 좋아졌을뿐 산만한 구성과 이해할수 없는 이야기 구조에 여전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단순히 내 추리력이 딸리는 것 뿐일까. 아니 그보다는 이야기 자체의 방향성과 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
<노멀맨>이나 <대리자>같은 작품은 본격적으로 스릴러를 도입한 작품인데, 스릴감은 느낄수 있으나 내용성에서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어쩐지 미드가 떠오르는 <미스 클리너>같은 경우는 묘하게 결말에서 상쾌한 유머같은 것이 느껴지기는 했으나, 역시 이야기자체의 매력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빛의 살인>같은 경우는 전 단편집의 단편과 연작단편이었는데, 초반부의 몰입도에 비해 중반부가 조금 박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무난하게 읽을수 있는 작품이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이해나가는 것은 좋은데, 남성적인 박력이 좀더 가미된다면 훨씬 좋은 작품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느낌이 조금 약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디까지나 개인취향에 기댄 평가라서, 읽는 사람에 따라서 이 단편들의 느낌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래도 계속 지켜보고 싶은 시리즈이고, 꾸준히 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해를 거듭할수록 어떤 작가든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을 <한국 공포단편선>에서도 절실히 느꼈어서, 앞으로도 꾸준히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보니 황금가지에서 내놓는 한국 단편선 시리즈들은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서 매년 계속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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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 엔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1
윌리엄 요르츠버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글에서 쓸데없는 수식어를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단, 작가가 글을 아주 잘 쓸 경우에는 다르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리 쓸데없는 수식어를 남발하고 있을까? 어쩌면 내가 일목요연하게 정곡만 찌르는 사람이기 보다는, 요점과 상관없는 얘기까지 주절대버리는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호화찬란한 수식어보다도, 정직하고 직선적인 단어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살짝 모호하게 흐려놓되, 직선적인 단어들이 거침없이 이어지는 소설이 바로 이 소설, <폴링 엔젤>이었다.
나는 이름만 들어봤던 미키루크 주연의 영화 "엔젤 하트"의 원작이라고 하는데, 영화를 보지 않았으니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리가 없었지만, 책장을 거듭할수록 속속들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너무 뜬금없어서 당황스럽고,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라 더더욱 흥미로웠다.
감히 누가 하드보일드와 오컬트를 합칠 생각까지나 하겠는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일단 이야기는 사립탐정 해리엔젤에서부터 시작한다. 흔히 상상할수 있는 영화나 소설속의 사립탐정의 이미지 그대로, 적당히 세속적이고, 다소 속물이며, 그리고 호기심이 충만하다. 그리고 이 호기심이 그를 기묘한 사건으로 이끈다.
잊혀진 왕년의 스타 자니 페이버릿을 찾아달라는 의뢰에 해리 엔젤은 잊혀진 사람을 찾으려다가 오히려 잊혀진 사건들을 찾게 된다. 자니 페이버릿이 빠져있었다던 부두교, 알면 알수록 이상한 부두교 의식들, 그리고 점점 밝혀지는 사람들과 사건들. 누구의 말처럼, 전형적인 느와르 무비에 등장하는 뉴욕을 헤메이다가 갑자기 엑소시스트를 만나는 기분이랄까. (사실은 엑소시스트보다 "로즈메리의 아기"같은 느낌을 더 느끼긴 했지만 말이다.)
해리 엔젤이 뉴욕을 헤메이며 사람을 찾고, 사건을 찾는 부분에서는 전형적인 탐정 소설같고, 그가 밝혀낸 사실속에 존재하는 부두교와 그 의식들을 보고 있노라면, 흡사 클라이브 바커의 암울한 피갑칠 도시 뉴욕이 여기서부터 먼저 존재했나 싶다.

장르의 조합은 절묘하고 기발하다. 1978년에 지어진 이 소설이 아직도 이렇게 신선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후에 밝혀지는 비밀들과 반전 역시 지금봐도 어색하거나 구닥다리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런 소설을 읽다보면, 역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 기발하고, 더 재밌는 소설이 많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된다. 그만큼 세상에 많은 레파토리들이 돌고 돌았다는 사실의 반증일수도 있겠지만.
왜 제목이 <폴링 엔젤>일까.
제목의 이유를 정확히 알수는 없겠지만, 막판 반전을 생각해보면 제목이 사실 스포일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이름들 또한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해리 엔젤, 자니 페이버릿, 이피퍼니 프라우드 풋, (주인공 해리엔젤이 어떻게 읽어야할지 모르겠는 철자를 가진) 루이 사이퍼...
소설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그 사람의 이미지를 대변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궁합이 있으랴 싶다.

뭐, 더이상의 이야기가 필요없을 정도로, 직선적이면서도 격조있고, 쿨하면서도 박력만점이고, 더할 나위 없이 흥미진진하다.
지루한 일상을 휙휙 넘겨주는 페이지터너같은 느낌으로도, 다시금 발견하는 추리소설의 고전을 발견하는 느낌으로도 손색없는 작품이고, 올해 읽은 가장 재밌는 소설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올해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작년보다 재밌는 소설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미키루크 주연의 영화도 기회닿는대로 봐야겠고, 리메이크작이 곧 나온다니 그것도 챙겨보고 싶어지는구나.
오컬트 소설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오랜만에 오컬트 소설을 발견하니 어쩐지 기분이 신나기도 했고....
하드보일드와 오컬트가 대체 어떻게 합체할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이 책에서 하드보일드 거리를 걷다가 부두교 의식을 발견하게 되는 기묘한 기분을 느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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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여름, 기억하고 싶은 악몽
테아 도른 지음, 장혜경 옮김 / 리버스맵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한 소녀가 버스정류장에서 납치당한다.
납치당한 소녀는 2주후에 풀려났고, 그간 연쇄살인범과 함께 돌아다니며 연쇄살인범의 살인행각에 동참하게 된다.
다행히도 무사히 돌아온 소녀는 어떻게 생존할수 있었느냐는 세상의 의심을 들었고,
결국 자기자신이 납치당한 시점부터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검은 여름, 납치, 생존해 돌아온 아이, 숨겨진 이야기들.
이런 점을 알고 보았기 때문에 기리노 나츠오의 <잔학기>같은 작품을 기대했던 것이 실수 였을까.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소설이었다.

<검은 여름>을 읽다가 내가 프랑스 소설을 읽고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나게 수다스럽고, 불필요한 이야기를 굳이 끼워넣고- 말많은 소녀의 심상을 따라가다보니 그랬다면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딱히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 책의 주인공 율리아는 다소 냉소적이고, 까탈스러운 소녀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하루종일 떠들거나, 누군가와 2시간 통화해놓고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며 끊는 그런 소녀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녀의 괄호안에 갇혀진 주절거림을 듣다보니 그만 닥치고 본론이나 얘기하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차라리 1부 내용 그대로 나아갔다면 그럭저럭 봐줄만도 했을텐데, 2부에서는 도저히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이 가지 않았다.
어째서 그런 식으로 하게되었는지, 혹시 이 소녀의 성장과정에 뭔가 있었는지, 그런 정말 중요한 사항들은 모두 놓치고 쓸데없는 이야기만 줄줄 털어놓고 있어서, 보는데 사실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을 "스톡홀름 신드롬"의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만약 작가가 이런 점을 의도하고 쓰려했더라면 일어난 현상보다는 주인공의 감정이나 생각에 더 귀기울여야하지 않았을까.
마치 납치 로드무비같은 느낌을 풍기고 있고, 주인공이 납치범에게 동화되어가는 과정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으며, 납치범의 생각은 더더욱이 드러나지 않았고, 갈수록 비호감으로 변해가는 주인공에게 도무지 정을 붙일수가 없었다.
이것은 가혹한 상황에 놓여진 소녀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권태로움에 찌든 모범생 소녀의 엄청난 일탈처럼 느껴져버린다.
그 상황에 놓인다면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발휘할수 있는 악마성에 대한 공감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되바라지고 반사회적인 인간의 비겁한 변명처럼 보이더라.
게다가 뭔가 구차한 느낌마저 들었던 마지막 에피소드 같은 경우는 차라리 없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미스테리나 스릴러일수록 사람의 마음에 더더욱 귀기울여야 한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 소설이라서 여러모로 "미숙하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읽을때는 그럭저럭 읽은만 했다.
크게 재미없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재밌지도 않았다.
다만 갈수록 주인공이 비호감으로 변하고, 행동에 공감할수가 없으며, 지나치게 수다스럽다는 점은 책 읽는데 굉장히 큰 장애물이 되었다.

이 책을 읽다가 작년인가 읽은 "나타샤 스토리"라는 논픽션 책이 생각났다.
납치 감금 당했던 소녀가 8년만에 집으로 돌아온 실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납치당했던 나타샤 역시, 사람들의 동정과 함께 비난을 들어야 했다. 8년이나 갖혀지내면서 도망칠 기회가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냐고. 더군다가 납치범과 멀쩡히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 사람들도 꽤 있었으니까.
꽤나 영악하고 자기관리 잘하는 아이가 나타샤였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녀 역시 이 책의 주인공같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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