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여름, 기억하고 싶은 악몽
테아 도른 지음, 장혜경 옮김 / 리버스맵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한 소녀가 버스정류장에서 납치당한다.
납치당한 소녀는 2주후에 풀려났고, 그간 연쇄살인범과 함께 돌아다니며 연쇄살인범의 살인행각에 동참하게 된다.
다행히도 무사히 돌아온 소녀는 어떻게 생존할수 있었느냐는 세상의 의심을 들었고,
결국 자기자신이 납치당한 시점부터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검은 여름, 납치, 생존해 돌아온 아이, 숨겨진 이야기들.
이런 점을 알고 보았기 때문에 기리노 나츠오의 <잔학기>같은 작품을 기대했던 것이 실수 였을까.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소설이었다.

<검은 여름>을 읽다가 내가 프랑스 소설을 읽고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나게 수다스럽고, 불필요한 이야기를 굳이 끼워넣고- 말많은 소녀의 심상을 따라가다보니 그랬다면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딱히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 책의 주인공 율리아는 다소 냉소적이고, 까탈스러운 소녀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하루종일 떠들거나, 누군가와 2시간 통화해놓고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며 끊는 그런 소녀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녀의 괄호안에 갇혀진 주절거림을 듣다보니 그만 닥치고 본론이나 얘기하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차라리 1부 내용 그대로 나아갔다면 그럭저럭 봐줄만도 했을텐데, 2부에서는 도저히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이 가지 않았다.
어째서 그런 식으로 하게되었는지, 혹시 이 소녀의 성장과정에 뭔가 있었는지, 그런 정말 중요한 사항들은 모두 놓치고 쓸데없는 이야기만 줄줄 털어놓고 있어서, 보는데 사실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을 "스톡홀름 신드롬"의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만약 작가가 이런 점을 의도하고 쓰려했더라면 일어난 현상보다는 주인공의 감정이나 생각에 더 귀기울여야하지 않았을까.
마치 납치 로드무비같은 느낌을 풍기고 있고, 주인공이 납치범에게 동화되어가는 과정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으며, 납치범의 생각은 더더욱이 드러나지 않았고, 갈수록 비호감으로 변해가는 주인공에게 도무지 정을 붙일수가 없었다.
이것은 가혹한 상황에 놓여진 소녀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권태로움에 찌든 모범생 소녀의 엄청난 일탈처럼 느껴져버린다.
그 상황에 놓인다면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발휘할수 있는 악마성에 대한 공감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되바라지고 반사회적인 인간의 비겁한 변명처럼 보이더라.
게다가 뭔가 구차한 느낌마저 들었던 마지막 에피소드 같은 경우는 차라리 없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미스테리나 스릴러일수록 사람의 마음에 더더욱 귀기울여야 한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 소설이라서 여러모로 "미숙하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읽을때는 그럭저럭 읽은만 했다.
크게 재미없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재밌지도 않았다.
다만 갈수록 주인공이 비호감으로 변하고, 행동에 공감할수가 없으며, 지나치게 수다스럽다는 점은 책 읽는데 굉장히 큰 장애물이 되었다.

이 책을 읽다가 작년인가 읽은 "나타샤 스토리"라는 논픽션 책이 생각났다.
납치 감금 당했던 소녀가 8년만에 집으로 돌아온 실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납치당했던 나타샤 역시, 사람들의 동정과 함께 비난을 들어야 했다. 8년이나 갖혀지내면서 도망칠 기회가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냐고. 더군다가 납치범과 멀쩡히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 사람들도 꽤 있었으니까.
꽤나 영악하고 자기관리 잘하는 아이가 나타샤였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녀 역시 이 책의 주인공같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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