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링 엔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1
윌리엄 요르츠버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글에서 쓸데없는 수식어를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단, 작가가 글을 아주 잘 쓸 경우에는 다르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리 쓸데없는 수식어를 남발하고 있을까? 어쩌면 내가 일목요연하게 정곡만 찌르는 사람이기 보다는, 요점과 상관없는 얘기까지 주절대버리는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호화찬란한 수식어보다도, 정직하고 직선적인 단어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살짝 모호하게 흐려놓되, 직선적인 단어들이 거침없이 이어지는 소설이 바로 이 소설, <폴링 엔젤>이었다.
나는 이름만 들어봤던 미키루크 주연의 영화 "엔젤 하트"의 원작이라고 하는데, 영화를 보지 않았으니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리가 없었지만, 책장을 거듭할수록 속속들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너무 뜬금없어서 당황스럽고,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라 더더욱 흥미로웠다.
감히 누가 하드보일드와 오컬트를 합칠 생각까지나 하겠는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일단 이야기는 사립탐정 해리엔젤에서부터 시작한다. 흔히 상상할수 있는 영화나 소설속의 사립탐정의 이미지 그대로, 적당히 세속적이고, 다소 속물이며, 그리고 호기심이 충만하다. 그리고 이 호기심이 그를 기묘한 사건으로 이끈다.
잊혀진 왕년의 스타 자니 페이버릿을 찾아달라는 의뢰에 해리 엔젤은 잊혀진 사람을 찾으려다가 오히려 잊혀진 사건들을 찾게 된다. 자니 페이버릿이 빠져있었다던 부두교, 알면 알수록 이상한 부두교 의식들, 그리고 점점 밝혀지는 사람들과 사건들. 누구의 말처럼, 전형적인 느와르 무비에 등장하는 뉴욕을 헤메이다가 갑자기 엑소시스트를 만나는 기분이랄까. (사실은 엑소시스트보다 "로즈메리의 아기"같은 느낌을 더 느끼긴 했지만 말이다.)
해리 엔젤이 뉴욕을 헤메이며 사람을 찾고, 사건을 찾는 부분에서는 전형적인 탐정 소설같고, 그가 밝혀낸 사실속에 존재하는 부두교와 그 의식들을 보고 있노라면, 흡사 클라이브 바커의 암울한 피갑칠 도시 뉴욕이 여기서부터 먼저 존재했나 싶다.

장르의 조합은 절묘하고 기발하다. 1978년에 지어진 이 소설이 아직도 이렇게 신선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후에 밝혀지는 비밀들과 반전 역시 지금봐도 어색하거나 구닥다리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런 소설을 읽다보면, 역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 기발하고, 더 재밌는 소설이 많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된다. 그만큼 세상에 많은 레파토리들이 돌고 돌았다는 사실의 반증일수도 있겠지만.
왜 제목이 <폴링 엔젤>일까.
제목의 이유를 정확히 알수는 없겠지만, 막판 반전을 생각해보면 제목이 사실 스포일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이름들 또한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해리 엔젤, 자니 페이버릿, 이피퍼니 프라우드 풋, (주인공 해리엔젤이 어떻게 읽어야할지 모르겠는 철자를 가진) 루이 사이퍼...
소설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그 사람의 이미지를 대변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궁합이 있으랴 싶다.

뭐, 더이상의 이야기가 필요없을 정도로, 직선적이면서도 격조있고, 쿨하면서도 박력만점이고, 더할 나위 없이 흥미진진하다.
지루한 일상을 휙휙 넘겨주는 페이지터너같은 느낌으로도, 다시금 발견하는 추리소설의 고전을 발견하는 느낌으로도 손색없는 작품이고, 올해 읽은 가장 재밌는 소설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올해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작년보다 재밌는 소설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미키루크 주연의 영화도 기회닿는대로 봐야겠고, 리메이크작이 곧 나온다니 그것도 챙겨보고 싶어지는구나.
오컬트 소설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오랜만에 오컬트 소설을 발견하니 어쩐지 기분이 신나기도 했고....
하드보일드와 오컬트가 대체 어떻게 합체할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이 책에서 하드보일드 거리를 걷다가 부두교 의식을 발견하게 되는 기묘한 기분을 느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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