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그래봤자 10년전 쯤일까. 가깝게 지내는 분이 한분 계셨다.
이분은 메피스토와는 좀 질이 다른 사람으로써 최고의 인텔리의 길을 걷고 있던 양반이였다.
우리쪽 분야에서는 그래도 탑 클래스라고 부를 수 있는 H대를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 했으며,
그 꼬장꼬장하다는 H교수진의 추천장을 다수 들고 미국의 Y대 대학원에 진학을 했을 정도로 우리쪽
분야에서는 최고 정점의 엘리트 코스를 거쳤고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으로는 미국 굴지의 건축설계
회사에 취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양반이 어쩌다 자신과는 여러모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나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는지 그건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까지도 수수께끼가 아닐 수가 없었다. 난 그가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티를 내지 않는 솔직하고 담백한 성격이 많이 끌렸으며, 아마 그는 자기와는 다르게 좌충우돌 핀볼기계의
공마냥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면서 사는 내 모습에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자주 만나면서 수다도 많이 떨고 가끔 약속장소로 강남역에 있었던 타워레코드(지금은 없어졌음)
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거리낌 없이 매장에서 헤드뱅을 해대면서 사람을 기다라면서 나름대로의 정신적인
교감을 많이 나누었던 기억도 난다.
그러다 우연히 음반을 사면서 뒷주머니에서 꺼내는 그의 지갑에 시선이 꽂혔다.
깔끔하고 젠틀한 이미지와는 전혀 상반되는 누덕누덕한 장지갑.. 이름 몇자 대면 알만한 그래도 명품이라고
불리우는 상표이기는 하나 낡아도 너무 낡았다. 매장을 빠져나오면서 궁금하면 못참는 성격상 다짜고짜
질문을 퍼부었다.
지갑이 참 오래된 것 같다면서 질문을 툭툭 던졌고, 그는 그의 이미지와 걸맞게 환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지갑은 아버지가 대학입학때 물려주신 것이라고 하셨다. 그분의 아버지도 그분의 집에 놀러갔다가 한번 뵌적이 있던 기억이 난다. 약간의 반지하 서재에 빼곡히 차있는 서적과 창틀에 하나하나 정성들여 가꿔놓은 난의 향기가 진동하며, 아들의 손님에게도 화사한 미소로 즐거운 대화를 나누시던 분....
분명 그분의 한시절을 같이 겪었을 지갑이 때가 되었을 때 아들에게 물려줬고, 그 아들 역시 그 지갑을 대학시절내내 지니고 유학준비를 하는 중에도 함께 있는 것이다. 지금이야 그 양반 유학가고 연락도 소식도 딱 끊어졌지만 아마 나중에 태어날 자식을 위해 어딘가에 고이고이 그 지갑을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영양가 없이 뚱뚱하기만 한 내 지갑
뱀꼬리 : 그나저나 나는 주니어에게 뭔가를 물려 줄것이 있나..?? 집에 가서 찬찬히 살펴보고 뒤져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