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오스카와는 인연이 없는 배우가 있습니다.
시대가 흘러 주름살도 늘고, 작은 키는 웬지 모르게 더욱 구부정하게 줄어든 듯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언제나 그 카리스마만큼은 젊었을 때의 그 강렬한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는 배우.

알 파치노 (Alfredo James Pacino 1940~)
감히 이 배우의 수많은 영화들을 이야기하고 주절거리고자 한다면 2가지로 나누고
싶습니다. 그가 오스카를 받기 전과 그가 오스카를 받고 나서......
오스카를 받기 전...
비교적 작은 키에 백인의 것이라고 말하기 힘든 부리부리하지만 외롭고 고독한 눈매
와 시커먼 눈동자. 알게 모르게 가파른 코 그리고 앙 다문 입술. 요즘 말하는 잘생긴
혹은 몸이 좋은 배우라는 개념과는 객관적으로 거리가 먼 알 파치노를 처음 본 것은
대부분의 분들이 그렇듯이 `대부'라는 영화에서 였습니다.

마피아와는 거리감이 있으나 피의 대물림은 어쩔 수 없는 속박으로 나타나는 이중적
인 마피아 대부의 아들을 양면적인 모습으로 연기하면서 그의 눈빛으로 보여주는
연기는 시작이 되었다고 보고 싶습니다.

원치 않는 마피아 보스의 길을 아버지의 복수로 시작해서 결국은 마지막 부분 자기
자식의 세례식 때 피의 숙청을 감행하면서도 눈하나 꿈쩍하지 않는 냉혈한 모습이
인상적이였습니다. 이 영화로 처음 오스카에 도전했으나 실패하고 맙니다.
`형사 서피코'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알 파치노의 영화 5손가락안에
들어가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알 파치노는
부패한 경찰조직을 폭로하는 과정의 심적인 갈등 상황을 멋지게 연기해 오스카 후보에
오르나 결국 수상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대중매체를 통해 조직의 비리를 폭로 후 애견과 함께 조용히 호수수면을 바라보는 고독
한 그의 눈빛은 오래전에 봤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인상깊습니다.
`뜨거운 오후' 혹은 `개같은 날의 오후'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알 파치노의
넘버 원을 줘도 아쉽지 않을 명연기를 펼친 그의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이것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동성애인의 성전환 수술비를 위해 은행을 털
다 덜미가 잡힌 `써니'라는 은행강도를 연기했습니다. 결국 은행에 있는 사람들을 인질로
잡은 후 이들과 경찰관의 대립...그리고 이들에게 동조(스톡홀롬 신드롬)하는 인질들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 부분 그렇게 서슬퍼런 그가 동료의 사살과 경찰의 총구앞에서 한없
이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장면까지.. 어느것 하나 빼먹을 수 없는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
됩니다. 그러나 이 영화로 오스카 후보에 올랐으나..역시 수상을 못하게 됩니다.

그후 그는 대부2편과 딕트레이시, 저스티스(용감한 변호사)에서의 열연으로 계속되는 오스
카 도전이 있었으나...계속해서 실패하게 됩니다.
오스카를 받은 후.....
이렇게 6번의 쓴물을 마신 그가 드디어 7번째 수상에 성공한 영화는 너무나도 유명한
`여인의 향기' 입니다.

시력을 잃고 단단히 모가 났지만, 내면은 유약하고 연약한 퇴역군인의 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그에게 오스카도 두손 두발을 다 들었습니다. 자신이 정한 생의 마지막의 여행에서 그는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을 분출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페라리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는가 하면,
여자를 품에 안고, 그리고 멋들어진 탱고......

결과적으로 그는 이 영화를 통해 그동안 한으로 자리잡았을 오스카의 영광을 그 해 골든글러브
와 함께 거머쥐는 열매를 수확합니다.
칼리토 라는 영화에서 범죄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을 치나 결국 더 깊은 수렁에 빠져
비극을 맞는 갱스터를 연기했고...

히트에서는 강력반 형사로 갱들과 맞서는 강인한 모습을 보이면서

데블스 에드버킷에선 악의 화신으로

인썸니아에선 불면증에 걸린 신경쇠약 형사로 열연을 합니다.

하지만 그가 오스카를 수상하고 난 후, 개인적으로는 불만입니다. 그의 영화는 오스카의
수상 후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스카를 수상하기 전의 영화들에서 보여준
그 광기와 우수와 고독은 오스카 수상이라는 마지노선을 기점삼아 더이상 그때만큼의 모습이
영화에서 보이지 않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인 심통맞은 생각으로는 차라리 오스카 남우 주연상을 좀 더 늦게 받았다면 그의 영화
에서는 더욱 더 건질 것이 많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렵고 힘든 유년시기를 거쳐(부모의 이혼), 거친 환경(브룩클린 출신)과 지지리도 없는 상복.
이러한 모든 악조건이 그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고스란히 연기로 모든 것을 보여주었던 배우.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 되지만,아직도 이 배우의 사진을 보면 그의 고독이 잔뜩
묻어 나오는 이유는 아마도 살아온 굴곡 자체를 거짓없이 영화에 쏟아 붓는 그의 열정 때문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뱀꼬리 : 히트(Heat : 1995) 라는 영화는 홈 시어터와 5.2채널 스피커를 소유하신 분들에겐 필수
타이틀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시가전에서의 그 리얼한 사운드 때문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