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님이 어제 저녁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일은 도시락 못 싸줄 것 같아. 그러니까 내일 하루만 사 먹어.' 아 아쉽다 마님표 도시락을 먹고 열심히 일을 하면 그나마 덜 스트레스 받는데 밥을 사먹어야 하다니. 그리하여 오늘 아침 출근길에 국민 도시락집인 한X도시락에서 5000원을 하나 꺼내며 도시락을 주문했다. 밥 먹으며 따뜻한 국물도 들이키고자 가게 한구석에 장식된 인스턴트 북어국도 집어 들었다.

금액은 4500원+500원. 이황 선생이 새겨진 단풍잎 한 장이면 오늘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주방에서 도시락을 포장해 나오시는 아주머니께 계산을 부탁했다. 떠듬떠듬 계산기를 두드리는 아주머니의 입에선 '손님 혹시 100원 없으세요?' 하신다. 이상하다. 5000원이 맞는데...란 갸웃한 표정을 지으니 아주머니는 독심술을 펼치셨는지 '북어국이 600원이에요.' 란 말씀을 남기신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마침 100원 짜리 하나가 잡혀 나온다. 냉큼 계산하고 나오려고 하는데 그 아주머니가 내 손에 1000원을 쥐어 주신다. 뭔가 착각을 하신 것 같다.

짧은 10여초를 투자에 아주머니께 설명을 드렸다. 내가 주문한 도시락은 4500원이고 북어국이 600원이라면 5100원을 낸 나는 잔돈을 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자 아주머니 아주 잠깐 당황하시더니 정말 그렇군요. 하시며 활짝 웃어 주신다.

사실 살짝 갈등의 순간은 있었다. 1000원이 어디야 냉큼 잔돈 받아들고 도시락 집을 나섰으면 아마 내 수중엔 갑자기 더워진 날씨를 식혀줄 아이스 께끼 2개 혹은 시원한 청량음료 한 병을 마실 공돈이 들어오는 것. 반대로 그 아주머니는 하루 장사를 마치시고 비어버린 1000원에 대해 한숨 좀 쉬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게 웬 오버냐 할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내가 한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요즘 가카가 그렇게 떠들고 계시는 선진국으로 가는 또 다른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국민 소득이 얼마 이상, GNP 몇 이상 등등 숫자로 대표되는 이런 수치들을 가지고 평가하는 선진국의 잣대가 아닌 나처럼 보잘 것 없는 민초들이 조금은 남을 배려하는 마인드가 하나하나 모인다면 아마 지금보다 조금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젠가 우리나라의 도로에서도 독일처럼 이런 모습을 보일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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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03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동영상...정말 대단하군요.
마냥 부럽기만 하네요.

아니요, 메피님 정말 착하십니다.
사먹는 도시락 정말 맛없져?
마님께서 도시락을 다 싸주시다니...그거 쉬운 일 아닌데...
메피님~~복 터지셨다!

Mephistopheles 2010-06-03 23:17   좋아요 0 | URL
독일뿐만 아니라 왠만한 선진국은 비상차량 지나가면 쫙 갈라지더군요. 저도 미국에서 엠블런스 지나가는데 도로 옆 잔디밭으로 일제히 올라가 길 터주는 차들보고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었죠.

야클 2010-06-03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착한 메피아저씨! ^^

Mephistopheles 2010-06-03 23:18   좋아요 0 | URL
착한 사람에게만 착하다지요...므흐흐흐.

무해한모리군 2010-06-03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원이었다면? ㅎㅎㅎ

루체오페르 2010-06-03 16:35   좋아요 0 | URL
아 ㅋㅋ
휘모리님 댓글 보고 빵 터졌습다,이런~^^;

Mephistopheles 2010-06-03 23:18   좋아요 0 | URL
오만원권이었다면 아무래도.....?

무스탕 2010-06-03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슨 공익광고 보는 기분이에요!
다른게 선진국이 아니라까요.

그 식당 아주머니도 일진 좋은 하루 시작하셨을겁니다 ^^

Mephistopheles 2010-06-03 23:19   좋아요 0 | URL
국가의 수준을 높이는 건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우선을 삼아야 한다고봐요. 경제적 이윤은 그 다음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saint236 2010-06-03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오타입니다. 북어국은 6000원이 아니라 600원입니다. 순간 계산착오를 일으키고 뭐지 고민했습니다.

Mephistopheles 2010-06-03 23:19   좋아요 0 | URL
설마...포장 도시락집에서 파는 북어국이..6000원이나 하겠습니까...ㅋㅋ

루체오페르 2010-06-03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답네요. 글도, 메피님의 마음도, 아래 영상도요.^^

Mephistopheles 2010-06-03 23:20   좋아요 0 | URL
근데......저렇게 잘못된 계산 바로잡고 제대로 하면 바보 소리를 듣는게 현실이죠....거 참 거시기한 세상이죠.

쟈니 2010-06-03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더 받은 돈을 돌려주고 나올 때 마음속에서 '나 착해' 이런 말이 올라옵니다. ㅋㅋ

Mephistopheles 2010-06-03 23:21   좋아요 0 | URL
차카고 바르게 사는 사람이 많아야 좋은 나라라고 생각해야죠...하지만 현실은....

노이에자이트 2010-06-04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홍해의 기적이군요.좍 갈라지는...

Mephistopheles 2010-06-06 02:52   좋아요 0 | URL
너나 할 것 없이 승합차건 비싼 BMW건 화물차건..알아서 다 비켜줍니다..

순오기 2010-06-04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닉네임은 사악한 메피스토지만 현실에선 착한 아저씨!^^
추천도 한 방~

Mephistopheles 2010-06-06 02:53   좋아요 0 | URL
므흐흐흐..사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정말 못된 인간은 파우스트라고 봅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어찌보면 불쌍한 악마에요.

하얀마녀 2010-06-11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요즘 1000원으로 아이스께끼 살 수 있나요?

Mephistopheles 2010-06-12 10:57   좋아요 0 | URL
우리동네에선 2개도 사요..요즘 빙과류는 50% 세일중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