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무실 직원들을 꼬드겨 워낭소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감개가 무량하게도 이 영화의 개봉소식을 접하고 아~ 이걸 보기 위해선 한강을 건너 일부 특정 극장에 기어이 찾아가야 하겠구나. 생각했었지만, 반응이 좋고 입소문이 퍼져 상업적인 영화가 주로 걸리는 멀티플렉스까지 개봉관을 넓혀 잡았다고 한다. (전국 37개 상영관에 걸렸다. 만세!)

사무실 바로 코 앞 극장에 걸렸다. 영화 보자 소문내고 심드렁한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 털어내니 나를 포함한 3명이 퇴근 후 영화를 보기 위해 손을 들었다. 6시 땡 치자 칼처럼 퇴근하고(이런 경험 정말 오래간만이다.) 극장으로 향하기 전에 봉우화로에서 차돌박이 된장찌개에 밥에 비벼 퍼먹고 극장으로 달렸다.

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이기에 극장은 한산하였고 티켓을 사고 좌석을 찾아 앉았을 때도 극장 안은 썰렁했다. 극장 통째로 전세 내는 기분이 들었으나 10여분이 지나자 그래도 제법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화는 시작되었고 할머니의 '아이고 내 팔자야' 메들리와 할아버지의 '아이고 아파라'가 가슴 시리게 들리며 40살 먹은 소의 울음과 낭랑하게 울리는 워낭소리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극장 안에 불청객이 출현한다.

우리들 옆에 앉은 나이가 제법 드신 부부였는데,(추정 40대 후반 50대 초반) 이 아저씨가 소시 적 고향에서 소 좀 키우셨나 보다.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소를 키우는 법에 대해서 축산과 교수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떠들어주시기 시작. 덕분에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감정이 분산되기 시작한다. 그래도 애써 외면하며 힘겹게 영화를 완주하였다.

이런 방해세력에도 영화는 충분히 아름답고 감사하다. 어설프게 할리우드를 흉내 내는 영화나 깡패, 조폭이 나와 설치는 영화들이 거대한 홍보와 엄청난 상영관을 잡고 주연배우들이 TV쇼프로 나와 영화홍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에 질렸다면 가볍게 한국영화의 위치를 환기해주는데 이만한 영화도 없을 것 같다. 

 



뱀꼬리: 영화에 대한 리뷰를 넷에서 찾아보면 마냥 좋았다. 라는 감상만 있는 건 아니다. 그 40이란 나이에 언제 쓰러질지 모를 소에게 할아버지가 그렇게 밭으로 끌고 나가는 모습이 꼭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다는 부분이었다. 물론 그 감상평의 밑으로는 비난성 심지어 악플적 성향까지 가득담은 댓글들로 채워져 있다.  

제 아무리 다수의 사람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영화라도 누군가는 분명 불편하고 고개가 갸웃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근거 없고 개념 없는 평가가 아니라면 그 사람 개인이 느끼는 감상정도는 인정해줘야 한다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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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2-03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극장에서 열심히 얘기하시는 분 공공의 적 맞습니다. ㅠ.ㅠ

Mephistopheles 2009-02-03 10:56   좋아요 0 | URL
거기다가. 목소리도 제법 크셨다죠. 그러니까 뒷자리 앞자리 사람은 안들리더라도.. 바로 옆에 사람은 시끄러워 영화를 못 볼 정도로요..^^ 강철중이 옆에 앉아 있었어도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었을까요...ㅋㅋ
(내가 극장에서 핸드폰 받는다고 패고 시끄럽게 떠든다고 패고 찐한 연애질 한다고 팬 애들이 운동장으로 일열종대다. 그런데 오늘 형이 기분 좋거든 그러니까 그냥 조용히 영화 봐라..응.. 이렇게 나오면..ㅋㅋ)

꿈꾸는섬 2009-02-03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모리님 서재에서 보고 여기서 또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드는 영화인데 비난성 악풀 달릴게 있을까 싶었는데 너무 하네요. 이런 아름다운 영화 보고싶어요.

Mephistopheles 2009-02-03 10:58   좋아요 0 | URL
좋은 영화에도 분명 다른 각도에서 본 감상평이 존재한다고 봐요. 그러니까 그 감상평의 경우 소가 그렇게 힘든 몸을 이끌고 왔다갔다 하는 것이 불쌍하다는 취지에서 쓴 것 같더라고요. 획일적인 감상만이 있는 영화보단 이렇게 다양한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으로도 이 다큐는 물건이라고 보고 싶어요.

전 개인적으로 아름답고 슬프고 모든 좋은 감정이 다 나오는 다큐였다고 보고 싶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2-03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랑 같은 일을 당하셨군요.
저도 소좀 키워봤는데 제 옆에 아주머님들은 소키우는 얘기, 자기 살아온 얘기 아주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
할아버지 자신도 소도 살려면 오히려 꼼지락거려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신게 아닐까요?

Mephistopheles 2009-02-03 10:59   좋아요 0 | URL
예 저도 그걸 느낀게. 거의 끝나갈 때쯤. 할아버지가 불편한 다리로 그렇게 소에게 먹일 꼴을 베서. 지게에 싣고 소와 나란히 발을 맞춰 천천히 길을 걸어오시잖아요. 그 부분이 얼마나 짠하던지요...

레와 2009-02-0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장안에존재하는공공의적. 공감열배.

우리 영화를 가족들끼리 노부부들끼리 친구들끼리
손잡고 극장으로 향하는것 까진 좋았는데 말입니다.
햄버거를 먹는다거나, 추임새를 넘어 다른 관람객들에게 충분히 피해를 주는
과도한 잡설을 영화 끝날때까지 계속하시던 옆자리 아저씨를 잊을 수가 없는 영화였어요.

지켜야 하는건 좀 지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Mephistopheles 2009-02-03 11:01   좋아요 0 | URL
전 옛날 헤리포터 1편을 볼때. 앞자리 초등학생이 아주 크게 영화의 앞의 이야기를 미리 떠드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여기 사람들 다 책 읽고 온 사람이거든..잘난 척 좀 그만 좀 하시지 엉~'이라고..그 초등학생 가슴에 대못을 쾅쾅 박았던 기억이 납니다..흐흐 그래도 극장에서 그렇게 떠들면 안되죠.

혜덕화 2009-02-0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셨군요.
할머니의 아이고 내팔자야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


Mephistopheles 2009-02-03 11:03   좋아요 0 | URL
영화 속 할머니의 역활이 참 대단했다고 보고 싶어요. 무작정 슬프고 심파적으로도 흐를 수 있는 분위기를 할머니를 통해 평행선을 잡아주니까요. 그래도 소가 마지막 숨을 내쉴 때 할머니 눈에 그러그렁 넘쳐나는 눈물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비로그인 2009-02-03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아저씨도 참.. 그런 얘기는 불로그 같은 공간에 적으면 좋을 것을 굳이 극장에서 티를 내셔야 했는지. 영화평 가지고 싸울 때 보면 어떤 말로 포장하든 결국 "내가 재미있게 본 것을 네가 왜 부정하냐?" 라는 것 같아요. 전 이 영화를 영화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부분부분 봤는데 저도 소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찌보면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시각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Mephistopheles 2009-02-03 21:01   좋아요 0 | URL
제가 정말 피가 끓어 오르는 20대였다면 공공의 적 1편에 나오는 강철중 대사를 뱉어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연식이 좀 오래되다보니...^^

넷상에 올라오는 양분되는 영화평들 밑에 달린 대조적인 댓글들 대부분이 자기 주장들이 강하죠. 한가지 똑같은 무언가를 여러명이 봤을 때 여러가지 감상이 나오는 건 당연한데 획일화를 강변하는 사람들께 묻고 싶더군요. 영화평에도 파쇼즘이 필요한거냐고요.^^

없잖아 그런 면도 있습니만, 할아버지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긴 해도 그 소를 정말 끔찍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다락방 2009-02-04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메피스토님.

저는 [와인 미라클]볼때 자리가 아주 많이 비어있었거든요. 그런데 제 뒤쪽의 아줌마가 신발을 벗고 발을 제 옆옆자리에 뻗어 버리는거예요. 아 정말, 와인농장과 와인의 색깔에 잔뜩 취해서 보고 있는데 발냄새가 너무 나서 정말 돌아버릴 뻔 했어요.

발냄새 나니 발 좀 치워달라고 할까 싶었는데 남자랑 같이 왔더라구요. 괜히 발냄새 난다는 얘기 들으면 같이 온 남자한테 민망하겠지, 그렇지만 정말 냄새가 너무 나, 갈등만 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영화 꿋꿋이 봤답니다.

아아, 또 생각나 또 생각나 ㅠㅠ

Mephistopheles 2009-02-05 21:07   좋아요 0 | URL
다른 것도 아니고 발냄새..라니...그걸 참으신 다락방님도 보통이 아니십니다. 저 같았으면 버럭하면서 화르륵 했을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