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살 먹은 딸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아빠 저 임신했어요"라고 폭탄선언을 해버리면 아마도 아버지는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허옇게 뽀샤시해질 것이다. 곧이어 터지는 연쇄반응은 "어떤 놈이야 이놈을 그냥!", "아니 이놈의 지지배가 행실을 어떻게 했기에..!!", "대체 애 교육을 어떻게 한거야 당신은..!!" 등으로 발전한다면 조금 지나친 비약 곁들여 가정의 붕괴로 이어질지도 모를 것이다.

주노 (Juno, 2007)
사회적인 문제라 해도 전혀 손색과 거리낌이 없는 미성년자의 임신이라는 이 어마어마한 주제는 코미디라는 장르를 가진 영화 "주노"에서 무게를 잃지 않는 가벼움을 선사해준다. 그것도 주연, 조연 배우들의 열연과 더불어서 말이다.
애늙은이 주노를 연기한 엘렌 페이지는 영화 시작과 더불어 화려한 말빨과 특유의 시니컬을 주 무기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난 이 영화의 완벽한 주연이다."를 확실하게 각인시켜준다.
거리의 부랑자처럼 오렌지주스 한 통을 벌컥벌컥 마시며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구멍가게에서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한 후 십자가를 저주하는 모습이나, 낙태를 결심하다 이미 손톱까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낙태반대론자 급우의 말에 죄책감을 느끼는 장면, 스스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움직이는 모습까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 87년생 작달막한 여배우는 완벽 그 이상의 모습을 연기해준다.
그녀의 주변에 포진한 조연들 역시 주연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연기해준다.
몸이 아닌 말로 풀어주는 코미디가 출중한 연기자들과 어울려 진다면 시간이나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 한 편으로써 관객의 입장에서 보상받는 기분까지 들곤 한다.

마지막 장면은 잔잔하게 감동을 주더라는....
또 다른 시선 :
마냥 웃기엔 영화에 처해진 모든 사회현실은 쉽게 넘겨봐선 안 될 것 같다.미성년자의 임신이라는 문제를 기둥으로 치자면 수많은 곁가지들이 영화 속 두루두루 포진하고 있다. 여성 기구에서 운영하는 단체에서는 낙태를 권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막을 수 없다면 최소한의 예방책이라고 미성년자에게 콘돔사용을 권유하는 모습도 그냥 쉽게 흘려버릴 순 없어 보인다. 또한 낙태를 반대하는 엣뙤 보이는 동양인 여학생의 입에선 " 나 약 끊었어"란 말이 쉽사리 나오고 완벽한 가정을 가졌지만 2세의 존재로 인해 다가올 자신의 모든 불이익을 감수 할 수 없는 여피스럽고 이기적인 남성상까지 영화 전반에 두루두루 깔려 있다.
뱀꼬리 : "제니주노"란 한국영화를 안 봐서 모르겠지만, 소재의 동일성 때문에 이 영화가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표절로 얻어맞았나 보다. 제니주노라는 영화를 안 봐서 표절여부를 판단할 순 없지만 제니주노의 감독이 스스로 표절이 아니다. 라고 밝혔다고 하니 그냥 항간의 해프닝으로 일축해도 별 지장은 없어 보인다. 단지 이런 시시비비 때문에 꽤 재미있고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평가절하 되는 상황은 아쉽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