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쇠의 생활백서 #29
-화 내지말고 내 말 좀 들어바바
그러니까 일주일 전 나는 마님의 전화를 받고 꽤나 혈압이 상승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마님은 지방공연을 끝마치고 올라오는 중이였고 전화가 온 시각은 거의 서울에 도착할 즈음이였다.
"자기야 화 내지말고 일단 내 말 좀 들어바바.."
이런 전재가 깔린 전화 통화는 분명 말미에 엄청난 메가톤급 핵폭탄이 존재한다. 지그시 감정을 누르고 뭔데? 라고 말을 했고 이어서 마님이 밝힌 사연은 이러했다.
지방공연을 마치고 올라오는 상행길에 들린 휴게소에서 지갑을 흘리고 왔다는 것. 하지만 다행히도 그 휴게소 직원이 지갑을 습득하여 마님께 전화를 했다는 것. 아울러 이걸 받아가실려면 휴게실로 다시 방문을 하시던가 택배로 보내드리겠다는 것. 하지만 그 휴게소가 서울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금산 인삼랜드 상행성이라는 것. 고로 내가 달려가서 받아와야 한다는 것. 하지만 난 그 길을 모른다는 것. 아울러 상행선이기에 길 모르는 나는 금산까지 갔다가 다시 톨게이트를 지나 되돌아오면서 그 휴게소에 들려야 한다는 것.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근조근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길치는 아니지만 처음가는 길은 아무리 고속도로라하더라도 분명 헤매고 다닐 것임에 틀림없을 것. 거기다가 우회도로 없는 고속도로이기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부산까지 달려가는 불상사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것. 네비게이션이 있다면 손쉽게 해결되겠지만 사무실 소장마마 네비게이션은 자체내장이라 빌릴 수도 없다는 것. 그렇다고 차를 빌리면 그 어마어마한 대형차의 기름값이 제법 부담이 된다는 것.
다행히 때마침 사무실로 들어오신 P소장님이 눈에 띄었기에 재빨리 사정을 설명했다 그 분은 착탈가능 네비를 얼마전에 장만하셨기에 사정을 설명하니 흔쾌히 빌려주신다. 부랴부랴 네비 설명 간단하게 듣고 오후 2시쯤 조퇴를 하여 마님과 함류하여 고속도를 타고 휴게소로 달리기 시작했다.
마님의 설명을 빌리자면 지방공연에서 자그마한 사고가 생겨 단원들 모두 제정신이 아니였다고 한다. 가깝게 지내는 언니(마님이 어디가서 뭐 흘리면 뒷수습하면서 챙겨오는 언니)는 지방공연 직전 연습도중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이번 공연에 참가하지 못했기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조금은 억지스런 변명도 언급하신다.
간만에 주객이 전도된 입장을 즐기며 (평소 : 마님>머슴, 그날 : 마님<머슴) 부랴부랴 휴게소로 달렸고 최신형 내비는 기가막히게 우회도로를 찾아내 최단거리 구불구불한 국도를 통해 그곳으로 안내해주었다. 허겁지겁 안내데스크에 갔더니 뽀얗고 이쁘장한 데스크 언니가 친절하게 지갑을 건네준다. 다행히 안에 내용물은 어느것 하나 분실물없이 완벽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님의 지갑은 내가 마님과 연애를 하며 맞이한 마님의 첫번째 생일날 나름 의미를 가지고 거금을 들여 사 준 지갑이며 이런 것에 돈 잘 안쓰는 머슴을 잘 아는 마님은 애지중지 지금까지 잘 써주고 있었기에 그 의미가 더 소중했을지도 모른다.
안도감이 몰려오고 분실한 지갑을 손에 쥔 마님은 그제서야 하행선에서 몰린 수세를 역전하기 위해 상행선에서는 그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마님<머슴까지는 아니더라도 마님=머슴의 수위까지 맞추기 위하여...
하지만....
지갑...이란 단어를 언급하면 언제나 마님의 역전찬스는 무의미하게 돌아갈 뿐.으흐흐
일주일 전의 이 사건으로 인해 아직까지는 머슴의 7일 천하가 유지되고 있다.
그렇지만..... 왠지 모를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이 느낌은 뭘까???...
난 너무 길들여졌나 보다..
뱀꼬리 : 인삼랜드 상행선 직원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땐 경황이 없어 특별히 어떤 표현도 못했으나 다시금 생각해 보면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이런 양심적인 행동을 보여주신 것에 깊게 감동했고 아울러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나랏님들 잘난 척에 요즘 도통 꼴도 보기 싫은 추태가 연일 터지고 있지만서도 여러분처럼 묵묵히 곧은 길을 가시는 분들 때문에 아직은 살만하지 않나 싶습니다.
고맙고 감사해요 인삼랜드 상행선 여러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