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안이 벙벙한 기분을 잔뜩 머금고 영화리뷰를 쓰기는 참으로 간만이다.
대부분 이런 느낌은 예상 외로 영화가 충격적이고 쇼킹했을 때 혹은 영화가 기가 막히게 어이가 없을 때의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할 것이며 이번엔 분명 전자였다. 아직 어린 나이에 명보극장에서 봤던 "지옥의 묵시록"을 보고 극장을 빠져나왔을 때 그 표정 보다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The Devils (1971) - The Devils Of Loudon
감독
켄 러셀 Ken Russell
주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Vanessa Redgrave
올리버 리드 Oliver Reed
이리도 오래된 영화를 마주치게 된 이유는 역시나 EBS 덕분이었고, 분명 여름 한철 호러와 스릴러가 편성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영화는 음산하며 다분히 신성모독적이기까지했으니까. 종교의 이름으로 행하여진 악행이 하나 가득 완전한 종합선물셋트를 이루고 있었다.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서 종교인의 탈을 쓰고 악행을 저지르는 리슐리외 추기경의 시대.
강력하고 견고한 성을 기반으로 자체적인 무력을 보유하는 도시국가들을 자신의 권력욕에 편입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을 파괴한 후 중앙정부로 흡수하던 리슐리외는 루덩이라는 도시에서 난관에 부딪친다. 같은 종교인으로 이 도시의 신부로 있는 그랑디에 신부는 이러한 리슐리외의 야망에 도시민들을 선동하고 교화시키며 저항하기에 이른다. 같은 종교인으로써 리슐리외는 권력과 금권에 눈이 멀었다지만 그랑디에 신부 역시 교과서적인 사제의 모습을 가지고 있진 않다. 성직자의 결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이성과의 육체적 사랑 또한 신의 내린 선물이라는 생각을 실천에 까지 옮기는 세속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신부에게 연정을 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집착의 모습으로 광기에 휩싸이는 잔느수녀는 결국 정치적인 종교재판을 거치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산산히 부서져나간다.
이단이라 불려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이러한 행동이 결국 리슐리외에게 덜미를 잡혀 안티크리스트라는 오명으로 종교재판에 회부된다. 정치적 야욕을 교묘하게 신성한 종교로 포장하여 결국 화형으로 생을 마감하는 그랑디에 신부의 마지막 절규를 뒤로 성은 폭파되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올리버 리드 라는 배우의 모습을 본 순간..옛날 올리버 라는 뮤지컬영화에서 악독한 빌 사이크스의 모습을 찾았다. 아울러 글라디에이터에서 러셀크로우가 처음 주인으로 섬기는 얼굴도 찾게 된다.
화형을 당하는 그 순간...살이 타들어가는 그 순간에도 도시민들에게 노예가 되지 말고 자유를 찾으라고 절규하는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 온다. 배경시대는 틀리지만 이러한 이상론을 가진 인물이 살아가기에는 지금도 역시나 각박한 세상이다 보니..
영화는 제법 지독하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음욕과 탐욕 등을 진한 살 냄새를 풍기면서 여과 없이 보여준다. 물욕과 탐욕의 절정에 올라선 종교의 최고 지도자 추기경의 모습도 역겨웠으며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를 안았다는데 격분하는 수녀원장의 모습도 참으로 처절하다. 이러한 수녀원장의 욕정이 표면화 된 환상과 허상이 발목이 잡혀 마녀사냥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난교의 모습과 퇴마를 이용해 음욕을 채우는 신부까지... 그랑디에 신부가 신의 이름으로 도시의 여인과 살을 섞고 신의 재단 앞에 결혼을 하는 모습은 이들에 비해 경건하고 신성해보이기까지 한다.
영화 등장인물 중 시대적인 배경과 가장 동떨어진 퇴마신부. 그의 사제복은 민소매이며 행색은 영락없는 히피다. 영혼의 구원과 악마의 섬멸..신에 대한 복종을 빌미로 자신의 욕망과 육욕을 채우는 어찌보면 영화제목에서 말하는 진정한 "데빌"같은 존재다. 하긴 뒤에서 조종하는 추기경은 더 악독한 놈이겠지만서도.
영화의 또 다른 제목 "The Devils Of Loudon"은 종교재판을 강요당한 그랑디에 신부가 아닌 그를 심판한 집단과 이를 방관한 도시민들을 뜻하는 듯하다.
영화는 결코 허구가 아니리라 보인다. 암흑기라고 불리는 중세와 그 후 세대의 유럽은 절대적인 종교의 사상과 이념에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러한 강력한 종교는 때로는 권력화라는 변종의 과정을 겪은 후,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인명을 신의 이름을 빌려 제거하고 숙청했었다. 이교도척결이라는 구실로 땅따먹기와 경제적 독점을 위해 수차례의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고, 왕의 권력을 농락하고 민중을 탄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었다.
그랑디에 신부에 대한 고귀한 사랑과 집착적이며 편집증적인 사랑을 극과 극으로 보여주는 두 여자. 결국 왼쪽의 진정한 사랑의 대상은 도시를 떠나고 오른쪽의 집착적인 사랑은 반미치광이가 되버린다.
신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그리고 사후 신의 잣대로 내려지는 천국과 지옥행도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종교의 이름으로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인간과 그와 반대로 종교와 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육욕과 물욕을 채우는 인간 중 누가 천국에 갈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죄를 짓는 것도 모자라 신과 종교를 팔아 악행을 일삼는다면 아마도 지옥의 가장 밑바닥을 기어 다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중세도 아니요 18세기도 아닌데도 그때의 종교인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종교인들이 종종 눈에 보인다.
뱀꼬리1 : 군데군데 뿌옇게 변하는 화면과 순간적으로 어색해 보이는 장면 전환 등을 보아 무삭제판은 더더욱 노골적이며 직설적이라는 확신이 든다.
뱀꼬리2 : 영화의 특성상 세트는 종교적인 공간이 대부분이었다지만..사방을 새하얀 타일로 도배 돼 버린 공간은 종교적인 신성함보다는 마치 정신병원을 보는 듯 했다. 물론 그 안에서 생활하는 등장인물들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러한 공간에서 고문과 윤간이 이루어지며 음모가 진행되었으니까.
뱀꼬리3 : EBS 오늘 영화의 안목은 대단했으며 최고조의 만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