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10여년 가까이 하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생겨난다.
그 중에 윗선.. 그러니까 오너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힌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때가 한참 국내굴지의 모기업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S모그룹에서는 조기출근제라는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9시에 출근하는 대부분의 직장보다 1시간 더 일찍 출근하고 1시간 더 먼저 퇴근하여 그만큼의 여유시간을 자기개발에 쓰자는 취지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게 풀 뜯어먹고 있는 소리다.)
문제는 그때당시 다니고 있던 사무실 회의시간에 소장이라는 작자가-가끔 페이퍼에 부정적인 오너의 모습으로 종종 등장했던 그 양반.. 일 많다고 여름휴가 강제 반납시킨 후 추석 때 혹은 연말에 두둑한 상여금과 함께 몰아서 주겠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했던- 우리 사무실도 대한민국 최고 기업의 그 출근방식에 맞춰 출퇴근 시간을 바꿔보자는 제안을 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설계사무실이라는 직업군이 어떤 직종인가...
TV나 서적을 통해 나오는 건축가마냥 근사한 직업이 절대 아니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 야근 철야 밥 먹듯 하고, 초과수당은 어림도 없고, 그나마 받는 월급도 제때 안주는 악덕 오너들이 진을 치고 있는 -요즘은 많이 좋아졌다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내가 돈까지 주면서 니들 일 가르친다는 전근대적 비민주적 파쇼성격의 오너들이 꽤 많았다. 물론 이런 설계사무실들은 IMF이후 정해진 수순에 따라 폐업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열악한 근무환경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이지만 내막이 잘 알려지지 않는 전형적인 3D업종 중에 하나였었다.
다시 말해 출근시간은 정해졌어도 퇴근시간은 정해지지 않는 직종 이였다.
이런 직종에서 조기출근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말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아침 1시간만큼 더 일을 시키겠다는 속셈이라는 사실은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하는 초등학생들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순둥이 실장과 하도 비벼 손의 지문이 손실된 차장은 소장의 의견에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고, 말도 안 되고 어이없는 상황 속에 막내였던 내가 겁도 없이 한마디 던져버렸고, 좌중의 싸늘한 분위기와 함께 그 직장을 다니는 동안 단단히 찍혀버리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돼 버렸었다.
“우리가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나요 소장님? 소장님 말씀은 아침에 한 시간 더 일하자는 말씀으로 밖에는 안 들리는데요?”
뱀꼬리: 뉴스에 나온 은행창구업무 한 시간 단축이라는 안건을 준비 중인 금융노조의 제안이 시작도 하기 전에 뭇매를 맞고 있다고 한다. 야근을 밥 먹듯 한다면 창구업무 한 시간 줄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어차피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 앞당겨지지 않는다면 하나마나한 안건이 아닐런지... 조삼모사가 생각나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