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70322
≪가끔은 제정신≫ 도서관 대출
p20 이처럼 과학적 지식이 착각으로 드러나는 예들은 무수히 많다.
나는 객관성과 주관성의 논란이 있을 때, 주로 천동설과 지동설을 언급한다. 경우에 따라 진화론과 (종교의) 창조론을 비유하기도 한다. 나는 과학을 믿지만 종교도 믿는다. (수학과에 재학 중인) 나의 지인은 창조론에 부정적 감정이 없다. 수학적 엄밀성에 비춰보면, 물리학도 확률적 지식이요, 생물학의 진화론도 확률적 지식이다.
나는 이 상황을 그 분야에 맞는 신뢰성으로 해석한다. 수학은 수학에 맞는 엄밀성이 있고, 진화론에는 진화론에 맞는 엄밀성이 있다. 마찬가지로 진화심리학은 진화심리학에 맞는 엄밀성이 있다.
지동설, 진화론 ; ≪정희진처럼 읽기≫ p202 객관성은 권력자의 주관성이라는 사실을 모르는가? 익명성은 가장 무서운 서명이고 객관성은 가장 강력한 편파성이다.
cyrus 님의 글 중에서] 1) 역사뿐만 아니라 기초과학을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성공적인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과거의 낡은 사고를 깨치고 나아가는 용기 있는 결단과 도전이 필요하다. /과학은 원인과 결과가 있는 학문이다. 또 여러 사람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수십 년 만에 혹은 수백 년 만에 새로운 이론이 탄생한다.
2) 앞에서 설명한 이론들은 ‘과학적 지식에 입각한 추측’, 즉 과학적 가설일 뿐이다.
궁금증]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 진화론을 비판하는 창조론과 진화심리학을 비판하는 페미니즘이 같은 구조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진화론을 지지하면서 창조론을 비판하고, 진화심리학을 비판하면서 (진화심리학을 비판하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다음에 읽을 책이다. 차이가 차별로 이행하기 때문에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야 말로, 차이가 차별로 이행하지 않는 중요한 고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이 ‘과학이 성차별에 오용되는 사례’이길 기대하지만, ≪페미니즘과 과학≫처럼 과학을 엉뚱하게 해석-판단했다는 우려도 가지고 있다.
‘가끔은 제정신?’ 내가 틀렸다면, 나는 가끔이라도 제 정신을 가지고 산 적이 없는 것이다.
≪가끔은 제정신≫
p23 우리는 착각을 할 때 모르는 상태에서 한다. 만일 빤히 착각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진실이라 말하고 행동한다면, 그건 착각이 아니라 거짓말이다. 그러므로 부인할 수 없는 증거에 직면해 그 믿음이 틀렸음을 거부할 수 없는 순간까지는, 우리 모두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 여긴다.
p24 그리고 그 믿음들은, 진실과 착각 여부에 상관없이 상당한 확신을 선사한다.
p24 우리가 아무리 진실이라고 열심히 믿어도, 그 믿음이 결코 진실이 되지 않는다는 애기다.
≪맹신자들≫
사람은 자신의 우월함을 뒷받침할 근거가 빈약할수록 자신의 국가나 종교, 인종 혹은 자기가 지지하는 대의가 우월하다고 주장하기 쉽다.
≪다윈 이후≫
예언자적인 광인은 적어도 재미있기라도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고루한 인간은 오직 가엾을 뿐이다.
뱀발) 인간성( 또는 남녀 차이)에는 선천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이 모두 존재한다. 이 문장의 의미가 ‘인간성( 또는 남녀차이)에는 선천적 요인만 존재한다’를 의미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