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에 대하여
페이퍼 녹색당의 사용된 ‘비교적 가난의 용어’의 설명
이집트의 유적이 발견되면서 학자들 사이에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피라미드를 세운 강력한 왕권을 갖은 왕이 이런 초라한 궁궐에서 살았던가? (여기서의 ‘초라하다’는 말은 장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생활환경을 말함.) 그러나 그 초라한 궁궐은 실제로 왕족이 살았던 곳입니다. 단지 과학 기술이 지금과 달라 현대 생활을 사는 사람의 눈에 그렇게 비춰진 것입니다. 현재 중류층(?) 생활은 중세시대의 영주가 살던 것 보다 훨씬 풍요롭게 산다고 합니다. 크고 화려한 성城은 장작불을 때워 난방을 하지만 보온이 안 되어 현대 주택보다 춥고, 마차로 이동하는 것은 (모든 가정에 자가용이 있지 않더라 하더라도) 현대 대중교통이 마차보다 낫습니다. 음악을 듣고 싶은 영주는 음악가를 고용했지만 우리는 라디오나 녹음기를 통해 음악을 언제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중세 영주가 현대에 사는 마립간보다 우월한 것은 (경제적) 우월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광고에 관련된 직업을 갖은 친구가 요즘 불경기라고 합니다. IMF때 보다 더 불황이라고 합니다. 저도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라 이야기를 해 보면 어려운 때인 것 같습니다. 한 할아버지(A)가 ‘요즘 어렵다지.’ 다른 할아버지(B)가 ‘어렵기는 어려운가봐, 사람들이 자살도 한다고 그러잖아.’ 할아버지(A) ‘그런데 예전 우리가 겪었던 한국동란 때보다 더 어려운가?’ 할아버지(B) ‘...... 안 그런 것 같은데’ (할아버지들의 대화는 실화임.)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세 시대의 영주와 비교하면서 우리는 부유하게 산다고 생각하면서 살지 않습니다. 옆 사람, 옆 동네에 사는 사람과 비교하면서, 그 사람은 큰 집에 사는데, 비싼 집에 사는데(우리나라 집값은 크기에 꼭 비례하지 않는다.),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데 하면서 경제적 열등감을 갖습니다.
수수께끼님이 ‘가난’보다는 ‘급진적 성장의 거부’라는 표현을 제안하셨지만 저는 ‘저성장’을 가난으로 고집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가난’의 단어가 주는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것이야 말로 곧 상대적인 경제적 열등감을 극복할 마음의 자세가 되었다는 것, 즉 저성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마립간은 생각하니까요.
* woodenbell님의 '에덴은 없다'과 관련하여
예전에 읽은 글에 뉴욕New York 시민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뉴욕 시를 비추는 햇빛을 전량 에너지로 계산했을 때의 6배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어떤 과정이 들어가면 (기계공학에서는 ‘행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함.) 에너지 효율은 100%미만이기 때문에 태양에너지를 모두 가용한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그 에너지의 6배를 소모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정확한 연도, 출전이 기억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