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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704 호/201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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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해서 슬픈 백호 탄생의 비밀

예로부터 백호는 청룡(靑龍)과 주작(朱雀), 현무(玄武)와 함께 우리나라의 사방을 지키는 사신(四神)이었다. 그중에서도 백호는 흰털 동물을 성스럽게 생각하는 우리 민족에게 더욱 특별한 존재로 여겨진다. 백호의 해였던 지난 2010년 출산 합계율은 1.23명으로, 평균 1.15명을 유지하던 당시와 비교해 급증했을 정도다. 

동물원에서도 백호는 단연 인기 있는 동물이다. 새하얀 털을 가진 백호를 보고 어른 아이 없이 신기함에 탄성을 지른다. 그러나 오늘날 동물원의 백호는 신기한 외모와 달리 여러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자연적인 교배가 아닌 근친교배로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 백호는 알비노가 아닌 루시즘 돌연변이 

흔히 백호는 알비노 동물과 혼동되기 쉽다. 정확히는 알비노증이 아닌 ‘루시즘’이라는 증상에 의해 태어나는 동물이다. 알비노와 루시즘은 둘 다 돌연변이지만 발생하는 원리와 증상은 확연하게 다르다. 

동물의 유전자 중에서 털색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는 5가지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이 유전자를 각각 A, B, C, D, E로 명명하고 구분했다. 그중에서도 알비노는 ‘C’유전자가 고장 났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C유전자가 고장이 나면 모든 색소를 만들지 못한다. 그럼 피부나 털은 흰색을 띠고, 멜라닌 색소가 없는 홍채에는 망막의 혈관이 그대로 비쳐 붉은 빛을 띤다. 알비노 동물의 일종인 실험실용 흰 쥐를 보면 털은 물론 온 몸이 하얗고 눈은 빨간 이유가 이 때문이다. 

반면 루시즘은 발생과정에서 피부나 털, 깃털의 피부 세포가 색소 세포로 제대로 분화되지 못해 발생하는 증상이다. 색소를 아예 만들지 못하는 알비노와 달리 색소가 부분적으로 부족해 몸의 일부 털이 흰색으로 변하거나 원래의 색이 희미해질 정도로만 변할 수도 있다. 

백호를 관찰해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보통의 호랑이라면 황토색이었을 부분의 털이 흰색으로 바뀌어 있다. 호랑이 특유의 검은색 줄무늬는 그대로 나 있고, 눈 색도 검정색이다. 말 그대로 황토색 털만 흰색 털로 바뀐 것이다. 물론 몇몇 호랑이는 털이 완전한 흰색이 아닌 살짝 노란 빛을 띠기도 한다. 

■ 인간의 이기심으로 태어나는 흰 동물들 

백호는 유전적 돌연변이로 태어나는 동물인 만큼 태어날 확률도 매우 낮다. 야생에서 백호가 태어날 확률은 벵갈 호랑이는 1만분의 1, 시베리아 호랑이의 경우는 10만분의 1로 매우 희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생에서보다 동물원에서는 백호를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다. 확률적으로 매우 희귀한 동물이 동시대에 여러 마리가 살고 있으니 우리는 매우 운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인간 이기심의 자화상을 보는 것이다. 

백호의 탄생은 멘델의 유전법칙 중 ‘우열의 법칙’을 따른다. 부모 호랑이 모두에게 백호를 발현하는 열성 유전자(a)가 적어도 하나씩 있어야 백호가 탄생할 수 있다. 열성 유전자를 하나씩 가진 황호(Aa) 두 마리가 교배했을 때 백호(aa)가 태어날 확률은 25%다. A형과 B형인 부모가 만났을 때 O형인 자식이 탄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황호(Aa)가 백호(aa)와 교배를 하면 백호가 태어날 확률은 75%로 늘어나고, 백호끼리 교배를 할 경우엔 확률이 100%가 돼 무조건 백호만 태어난다.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백호를 많이 태어나게 하기 위해 백호끼리 교배하는 근친교배를 시행한 것. 그러다보니 최근의 백호는 다양한 유전병을 갖고 태어나게 됐다. 우리가 ‘언청이’라고 부르는 구개파열을 가진 채 태어나거나 사람처럼 지체장애를 앓기도 한다. 내반족과 척추측만증(척추 옆굽음증), 내장기관의 결함과 같은 질환이 대물림됐고 동시에 수명은 짧아졌다. 

사실 근친 교배는 인간이 원하는 동물을 얻기 위해 오래전부터 여러 동물에게 행해져왔다. 대표 적인 예가 흰털이 특징인 몰티즈다. 원래 몰티즈는 흰색과 갈색 검은색 등 다양한 색의 털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19세기 초반 사람들은 흰털을 가진 동물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었고, 흰색 몰티즈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흰색 몰티즈가 많이 태어나도록 흰색 몰티즈끼리 교배시켰고, 현재의 몰티즈는 흰색 털을 가진 단일 품종이 됐다. 이외에도 흰쥐와 백사자 등 인간은 흰 동물을 더 많이 보고 싶다며 근친 교배를 시키고 있다. 

■ 종 보존은 개체수가 아니라 다양성이어야 

최근 근친 교배로 태어난 백호의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지만, 일부에선 백호라는 종을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종 보존’은 단순히 개체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본성과 다양성을 이해하고, 그 습성을 그대로 지켜 주려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노력은 선진국에서 먼저 실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1년 6월, 미국 동물원수족관협회(Association of Zoos and Aquariums, AZA)는 백호나 흰 사자와 같은 희귀동물의 번식을 금지했다. 그 이유에 대해 희귀한 형질을 내기 위한 인위적인 교배는 자연 생태계 전체를 봤을 때 비정상적인 행위이며, 동물들의 육체적,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동물원에서 백호를 번식해온 행위가 ‘종보존’이 아닌 사람들의 눈을 충족시키는 ‘오락’을 위한 것이었다고 본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호주에 있는 대부분의 동물원이 동물복지를 우선해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동물을 좁은 공간에 가둬 두는 방법이 아니라 동물의 습성에 맞는 환경을 제공해 최대한 야생 동물 그대로의 모습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동물복지규정을 정하고, 이를 지키는 동물원을 인증하는 제도를 시행중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이 인증을 받은 적도 자체적으로 만든 제도도 없는 실정이다. 

이항 교수는 “인간에게는 신비한 존재로 여겨지지만 백호는 실제로 야생에서 살기 불리한 동물이다. 백호와 같은 돌연변이 동물은 포식자의 눈에 띄기 쉽고, 무리와 다른 외모와 기형 때문에 무리로부터 도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단순히 오락을 위해 돌연변이종을 억지로 교배하는 것을 막고 동물원이 동물의 복지를 우선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 : 이윤선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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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2 1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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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3 1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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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85 호/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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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존이 무엇이길래, 마스크로도 막지 못하나

이만하면 가히 ‘주의보 전성시대’라 할 수 있겠다. ‘미세먼지주의보’와 ‘황사주의보’ 때문에 외출을 자제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오존주의보’까지 가세해 외출하려는 우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런데 납득이 가지를 않는다. 오존(ozone)을 주의하라니. 미세먼지나 황사는 건강에 좋지 않은 유해 물질이기 때문에 이를 주의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오존의 경우는 살균제 원료로 사용되거나 자외선을 막아 주는 유익한 물질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주의하라고 하는 것일까?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는데, 휴가를 떠나기 전에 앞서 오존의 정체에 대해 분명하게 알아봐야겠다. 그래야 휴가를 안심하고 야외에서 보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오존이 더울수록 증가하는 이유는 이산화질소 때문 

3개의 산소원자로 구성된 오존(O3)은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를 가진 기체다. 자극적인 냄새는 강한 산화력 때문인데, 이 같은 산화력은 살균 및 악취제거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 오존은 사람에게 유익함과 해로움을 동시에 제공하는 두 얼굴을 가진 기체다. 우선 성층권에 존재하는 오존은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해로운 자외선을 대부분 흡수해 지구상의 생명체를 보호하는 방호막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유익한 존재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지표면에서 생성되는 오존은 인체에 해로운 존재다. 흡입했을 경우 맥박과 혈압이 감소하고,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정도가 심할 경우 폐 손상을 유발시킬 수 있고, 눈에 노출되면 염증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이 오존에 장기간 노출되게 되면 호흡곤란과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심하면 천식과 호흡기 만성 질환을 일으킬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일기예보의 진행자가 오존에 주의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실제로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 1991년에서 1997년까지 8년 동안 전국 7대 도시의 사망률을 분석한 결과, 서울의 경우 오존 농도가 10ppm 높아질 때마다 사망률도 0.9%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존농도(ppm)노출시간영향
0.1~0.31시간호흡기 자극증상 증가, 기침, 눈자극
0.3~0.52시간운동 중 폐기능 감소
0.5 이상6시간마른기침, 흉부 불안
표1. 시간별 오존의 인체영향(자료: 환경부)


문제는 지표면의 오존이 해가 갈수록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증가의 원인은 자동차 배기가스나 공장 매연에 포함된 이산화질소(NO2)의 증가 때문인데, 이 물질이 가진 산소원자 2개와 공기 중의 산소가 광화학 반응을 일으켜 오존을 만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온이 높아지면 오존도 따라서 증가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오존을 만드는 광화학 반응이 일어나려면 강한 태양광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한 태양광선이 지표까지 내려오게 되는 여름철, 즉 6월에서 8월까지 기간에 오존도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존에 대비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마스크를 쓰면 될까? 안타깝게도 오존은 가스 형태의 기체이기 때문에 아무리 초미세 먼지까지 걸러주는 마스크를 쓴다 해도 소용이 없다. 현재로서는 그저 바깥 활동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현대인들이 바깥 활동을 갑자기 줄일 수도 없는 일인데, 이런 상황을 대비해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오존주의보’다. 오존 농도가 올라갈 것을 대비해 사람들에게 미리 주의하라고 알려주는 제도인 것이다. 

■ 3단계로 이루어진 오존주의보 

오존주의보란 오존 농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 시민들이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을 때 발령하는 예보를 말한다. 대기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지난 1995년에 도입된 제도로서, 발령 단계는 총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낮은 단계인 ‘오존주의보’는 1시간 평균 오존농도가 0.12ppm일 때 발령되고, ‘오존 경보’는 1시간 평균 오존 농도가 0.3ppm일 때, 그리고 가장 높은 ‘오존 중대경보’는 1시간 평균 오존 농도가 0.5ppm일 때 발령된다. 


구분시민차량운전자(소유자)관계기관사업장
주의보·노천소각금지 요청
·대중교통이용 권고
·주민 실외활동 및 과격운동 자제 요청
·노약자, 어린이, 호흡기 환자, 심장질환자의 실외활동 자제 권고
·경보지역 내 차량운행 자제 권고(Carpool제 시행)
·대중교통이용 권고
·자동차 사용 자제 요청
·주의보 상황 통보
·대중홍보매체에 의한 대국민 홍보요청
·대기오염도 변화분석 및 기상관측자료 검토 요청
경보·소각시설 사용제한 요청
·주민 실외활동 및 과격운동 제한 요청
·유치원, 학교 등 실외 학습 제한 권고
·노약자, 어린이, 호흡기 환자, 심장 질환자 실외 활동 제한 권고
·경보지역 내 자동차 사용제한 명령·경보상황 통보
·대기오염 측정 및 기상관측 활동강화 요청
·경보상황에 대한 대국민 홍보강화 요청
·연료 사용량 감축권고
중대경보·소각시설 사용중지 요청
·주민 실외활동 및 과격운동 금지 요청
·유치원, 학교 등 실외 학습 중지 및 휴교권고
·노약자, 어린이, 호흡기 환자, 심장 질환자 실외 활동 중지 권고
·경보지역 내 자동차 통행금지·중대경보상황 통보
·대기오염측정 및 기상 관측활동강화 요청
·위험사항에 대한 국민 홍보강화 요청
·경찰에 교통규제 협조 요청
·조업단축 명령
표2. 오존경보 발령시 조치사항(자료: 환경부)


일단 오존주의보가 발령되면 천식과 같은 호흡기 장애 환자는 물론, 어린이나 노약자 등은 야외 활동이 금지해야 하고,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야외 활동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특히 오후 2~5시 사이는 한낮 기온 상승과 함께 오존의 농도도 증가하므로 교통량이 많은 구간에서의 야외 활동은 더더욱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불가피하게 야외 활동을 해야 한다면, 수시로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서 피부를 보호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오존은 호흡기 외에도 피부에 강한 자극을 주면서 각종 피부 트러블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해외 선진 국가들은 오존 농도가 증가하게 되면 어떻게 대처할까? 발령기준 및 단계별 조치사항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은 이미 70년대부터 오존경보제를 시행하고 있어서 시스템 자체가 상당히 안정돼 있다. 현재로서는 아무리 선진 국가라도 오존 증가에 따른 뚜렷한 대책이 없기 때문에 일단 피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피하는 것만으로는 오존으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없다. 공기 중의 오존을 줄이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뒤따라야만 한다. 

예를 들면 대기 중의 이산화질소를 줄이기 위해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거나, 화석연료 대신에 친환경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노력이 함께 병행돼야 조금이라도 대기 중의 오존 농도를 줄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오존도 기후온난화의 주범으로 몰려있는 이산화탄소처럼 억울하기 짝이 없는 존재다. 자연 상태의 오존은 지구 생태계에 적합하도록 알맞은 양만 생성됐지만, 산업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이들을 포화 상태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이라도 우리는 오존의 농도를 원래의 자연적 상태로 존재했던 수준으로 되돌려 놓을 의무가 있다. 이들에게 ‘병’을 준 것이 우리 인간이라면, 그동안의 억울한 누명을 벗고 소중한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약’을 주는 것도 우리 인간의 몫이 아닐까. 

글 :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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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79 호/201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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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된 성형수술로 완성된 지금의 장미!

붉은색 장미는 정열적인 사랑의 상징과도 같다. 그런데 피처럼 붉고 탐스러운 장미꽃 속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식물의 중매쟁이인 벌은 꽃의 색깔이 붉을수록 잘 보지 못한다. 벌의 눈은 파장이 짧은 가시광선(파랑이나 보라색 빛)과 자외선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장미의 풍성한 꽃잎은 아름다움을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다른 부분의 생육이 부실해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꽃가루를 만드는 수술이 없어지기도 한다. 속씨식물의 생식기관인 꽃이 더 꽃을 피우기 위해 생식능력을 포기하는 이런 이율배반이 또 어디에 있을까. 

■ 꽃잎 5개의 수수한 꽃에서 오늘날 ‘꽃의 여왕’ 장미가 되기까지 

오늘날 꽃집에서 볼 수 있는 장미의 모습은 사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성형수술’을 해 온 결과다. 꽃의 성형수술은 18세기 영국 왕실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람들은 정원을 예쁜 꽃으로 채우기 위해 ‘교배육종’ 방식을 통해 꽃의 빛깔과 모습을 입맛대로 개량하기 시작했다. 가령 붉은색이 짙은 장미끼리 계속 교배해 더욱 짙은 꽃잎의 장미를 만드는 방법이 바로 교배육종이다. 꽃잎수가 100장이 넘는 탐스런 장미도 꽃잎이 많은 품종끼리 교배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가시가 적은 품종끼리 교배해 장미의 상징과도 같던 가시를 거의 없앤 품종도 나왔다. 

오늘날까지 개발된 장미 품종은 약 2만5000여 종. 그런데 이토록 다양한 품종을 만드는데 사용된 야생장미의 품종 수가 전 세계에 분포한 150여 종 중 20여 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사진. 야생장미, 흔히 알고 있는 장미와는 다른 모습이다.
(출처: fir0002/flagstaffotos.com.au)



교배육종법은 이제 장미의 외모를 가꾸는 것뿐 아니라 내실을 키우는 데도 쓰이고 있다. 불안정한 꽃 모양을 안정화시키거나 병충해에 강한 품종을 만들기도 한다. 오늘날 절화용 장미는 사계절 내내 꽃이 핀다. 시장에 내놓기 위해 꽃을 자르면 계절도 망각한 채 60일 후 새로운 꽃이 올라오는데, 이것도 교배육종법이 쓰인 경우다. 사계절 꽃이 피는 중국의 야생장미종(Rosa Chinensis)과 교배해 얻은 것이다. 

하지만 ‘등가교환의 법칙’일까. 교배육종의 부작용도 있다. 김원희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관은 “향기 없는 장미가 늘어나고 있다”며 "원하고자 하는 형질을 획득하려다 뜻밖에 다른 형질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교배육종이라는 방법 자체가 유전자를 뒤섞는 과정을 자연에 완전히 맡기는 것인 만큼 불확실성도 크다. 

■ 파란색 장미의 꽃말은 ‘불가능’ 

2만5000여 종에 이르는 다양한 장미를 만들어낸 교배육종이지만 만들지 못하는 장미가 있다. 바로 ‘파란 장미’다. 그래서인지 ‘파란 장미’의 꽃말은 ‘불가능’이다. 오늘날 꽃집에서 비교적 싼 가격에 만날 수 있는 푸른 장미는 보통 흰 장미를 푸른색으로 물들인 것이다. 교배 육종을 통해 파란 장미를 만들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파란 색소를 만들 수 있는 유전자가 전 세계 장미를 통틀어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4년 일본 산토리가 마침내 ‘파란 장미’를 개발했다. 산토리는 푸른색 색소인 ‘델피니딘’을 만드는 유전자를 팬지꽃에서 발견해 이 유전자를 장미의 유전자 틈새에 끼워 넣었다. 하지만 정말 ‘불가능’이란 꽃말 때문일까. 산토리가 만든 푸른 장미의 색깔은 사실 진정한 파란색이라기 보단 연보라색에 가깝다. 푸른색 색소인 델피니딘이 충분히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데도 말이다. 결국 꽃잎의 빛깔은 색소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진정한 파란색의 장미는 여전히 도전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 꽃의 변신은 어디까지인가 

크기가 큰 꽃을 만들고 싶다면 계속해서 더 큰 꽃을 가진 품종끼리 교배를 하면 된다. 하지만 자연의 법칙을 넘어설 정도로 큰 꽃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이럴 때는 ‘콜히친’이라는 화학물질의 도움을 받는다. 

콜히친을 솜에 묻혀 식물의 생장점에 흡수시키면 그곳에서 더 크고 두꺼운 잎이나 더 큰 꽃이 난다. 콜히친이 식물의 세포가 분열할 때 유전자가 분리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콜히친 처리된 식물은 유전자분리가 되지 않아 같은 유전자를 몇 배나 갖는 4배체, 8배체 식물이 된다.설계도 역할을 하는 유전자를 중복해서 갖고 있다는 것은 같은 부품(세포)을 중복해서 만들게 된다는 뜻이므로 꽃이나 잎이 커지게 된다. 

반대로 작고 아담한 꽃을 만들고 싶다면 왜화제를 쓰면 된다. 왜화제는 식물의 호르몬을 교란시켜 식물이 전체적으로 크게 자라지 못하도록 한다. 

오늘날에는 꽃의 기능성이 각광 받고 있다. 특히 실내공기를 정화하거나 토양 속 중금속을 정화하는 기능성 식물이 주목 받는다. 이수영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사는 대기오염 물질 중 하나인 아황산가스를 흡수하는 페튜니아를 만들기 위한 시작점으로 아황산가스에 강한 페튜니아를 만들었다. 특정 화학물질을 잘 흡수하려면 우선 그 화학물질에 내성이 있어야 한다. 이 연구사는 특허를 낸 새 페튜니아가 "기능성 식물체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설명했다. 

글 : 이우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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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1 1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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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2 14: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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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70 호/201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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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에 대한 이해와 오해 아홉가지

“혈액 부족 문자가 또 왔네. 요즘 혈액이 정말 부족한가봐. 이번 주에 헌혈하러 가야겠다.” 
“정말? 헌혈하면 빨리 늙는다는 얘기 못 들어봤어? 헌혈하면 우리 몸이 무리해서 피를 만들어 내느라 골다공증에 걸리고 키도 안 자란대.” 
“이 친구야. 몸 속 혈액량의 15%는 여유분인데, 1회 헌혈량인 400~500ml 정도는 거기 미치지 못하는 양이야. 우리 몸은 매일 50ml 정도의 새로운 피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또 헌혈로 몸에서 빠져나가는 성분은 주로 철분인데, 칼슘 부족으로 골다공증에 걸린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음, 그런가?” 

헌혈하면 뼈가 약해진다는 둥, 헌혈 주사 바늘에 병이 옮는다는 둥의 ‘헌혈괴담’에게 귀가 솔깃해진 적이 있는지. 마침 6월 14일은 국제적십자사연맹이 정한 세계 헌혈인의 날. 헌혈에 대한 오해를 풀고 제대로 알아보자. 

Q. 수혈은 한때 법으로 금지됐었다? 

그렇다. 고대부터 피를 이용한 치료방법이 성행했다. 피를 마시거나 뽑거나 동물의 피를 사람에게 수혈하는 등 여러 방법이 쓰였다. 1628년 윌리엄 하비에 의해 혈액이 심장에서 출발해 동맥, 모세혈관, 정맥을 통해 온몸을 순환한다는 게 밝혀졌고, 이후 피의 순환을 확인하는 여러 실험이 이뤄졌다. 1665년 영국의 리처드 로워가 대롱을 이용해 개의 동맥과 다른 개의 정맥을 연결해 동물 대 동물 수혈 실험에 성공했다. 이후 수년간 수혈 시도가 있었는데 당시까지 수혈은 오늘날과 같은 의미는 아니었다. 피가 그 사람이나 동물의 고유한 특질이 녹아있기 때문에 군인은 용감한 피를, 양은 유순한 피를 갖고 있다고 봤다. 차분한 성격인 사람의 피를 주입하면 다혈질인 사람이 얌전해진다는 식이었다. 이런 논리에 따라 프랑스의 의사 장비티스트 드니는 유순한 송아지의 피를 정신질환자에게 주입하기도 했다. 혈액형의 성질을 고려하지 않은 위험한 치료법이었다. 17세기 말 파리 의사회는 수혈을 금지했고, 교황도 수혈 금지 칙령을 선포했다. 다시 수혈이 시작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다. 진정한 의미의 헌혈이 시작된 것은 1901년 란트슈타이너가 ABO식 혈액형을 발견하고, 이후 1914년 최초의 항응고제 소듐 시트로산이 발견된 뒤의 일이다. 

Q. O형 피가 가장 많이 필요하다?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가장 많은 혈액형은 A형으로 전체 인구의 34%가 해당한다. O형과 B형은 각각 28, 27%를 차지한다. 하지만 가장 쓰임이 많아 귀한 혈액형은 O형이다. 현대 의학에서는 같은 혈액형을 수혈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모든 혈액형에게 수혈할 수 있는 O형이 필요한 때가 있다. 기본 혈액형 검사를 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출혈이 심한 긴급환자가 있을 때나 혈액형이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는 미숙아에게 수혈이 필요할 경우 등이 그런 예다. 그렇기 때문에 O형 혈액이 귀한 대접을 받는다. 

Q. 헌혈한 피는 혈액은행에 두고 계속 쓸 수 있다? 

아니다. 혈액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우리 몸속을 맹렬히 돌고 있는 혈액도 수명이 있다. 우리 몸을 쉬지 않고 돌고 또 도는 건강한 적혈구의 수명은 120일 정도다. 명을 다한 적혈구는 철분과 다른 성분으로 분해되고 골수에서 재활용된다. 하루에 전체 적혈구의 3%가 죽고 새로 만들어진다. 혈소판은 7일, 백혈구는 3~21일 정도다. 우리 몸 밖으로 나가면 혈액의 수명은 급속도로 줄어든다. 다행히 적혈구는 항응고제가 들어 있는 혈액백(blood bag) 속에서도 35일간을 버틴다. 하지만 한 번 헌혈한 혈액을 영구히 보존할 수 없는 만큼 지속적으로 헌혈하지 않으면 혈액은행은 텅 비게 되고 만다. 

Q. 피의 백혈구 성분이 도움이 된다? 

아니다. 백혈구는 인간의 면역 능력을 책임지지만, 다른 사람 몸에서 나온 백혈구는 적으로 여기고 공격하기 일쑤다. 헌혈한 피는 좁은 필터를 통해 백혈구를 분리하고, 걸러낸 백혈구는 폐기 처리 된다. 
우리가 헌혈을 통해 수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적혈구 덕분이다. 성숙한 적혈구에는 조직적합성항원(HLA)이 없다. HLA의 일치율은 형제간이라도 25%, 남이라면 2만분의 1이므로, 적혈구에 HLA가 있다면 수혈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혈액형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적혈구가 항체를 만나 응집하는 성질 덕분이다. 혈액형 항원항체 검사는 육안으로도 판정이 가능하다. 또 적혈구의 수명이 120일에 달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수혈된 뒤에도 적정 기간 동안 환자 몸에 산소를 공급하고, 수명을 다하면 사라져 환자가 스스로 적혈구를 생산할 수 있게 한다. 

Q. 피에서 원하는 성분만 뽑아 헌혈할 수 있다? 

그렇다. 가장 널리 알려진 헌혈 방법은 혈액 전체를 채혈하는 ‘전혈’이지만, 특정 성분만 추출해 채혈하는 것도 가능하다. 성분채혈기를 통해 필요한 혈소판, 혈장 등만 채혈한 뒤 나머지 성분은 헌혈자에게 돌려주게 된다. 혈소판성분헌혈, 혈장성분헌혈, 혈소판과 혈장을 함께 채혈하는 혈소판혈장성분헌혈이 있다. 전혈의 경우 두 달에 한 번 헌혈이 가능한데, 성분 헌혈의 경우는 2주 뒤에 다시 헌혈을 할 수 있다. 성분 헌혈이 시간은 더 오래 걸린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30~40분은 걸린다. 

Q. 혈소판은 반드시 냉장 보관해야 한다? 

아니다. 혈소판은 보관이 까다롭다. 냉장 보관을 하면 수혈 후 환자 몸에서 생존력이 떨어지므로 실온에서 보관한다. 그냥 실온에 두는 건 안 된다.응고작용을 하는 혈소판은 평소에서도 늘 뭉치려는 성질이 있고, 한번 뭉치면 다시 떼어낼 수 없기 때문에 응고를 막기 위해 혈소판 부란기라는 장비를 이용해 계속 흔들어주어야 한다. 보관 용기도 특수하다. 표면에 공기가 통하도록 만들어진 특수용기를 사용한다. 게다가 혈소판의 유통기한이 단 5일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중 36시간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검사하는데 쓰인다. 귀하고 귀하신 몸이다. 

Q. 헌혈한 피는 유리 용기에 담아 보관하는 것이 좋다? 

아니다. 헌혈한 피는 모두 플라스틱 백에 담아서 보관한다. 플라스틱의 발명이 헌혈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플라스틱이 발명되기 전에는 유리병에 보관했는데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그 안에 공기가 들어가서 세균이 생기기도 쉬웠다. 반면 플라스틱은 깨지지 않고, 가벼우며, 밀봉되고, 신축성이 있어 유리병보다 훨씬 이점이 많다. 미국의 외과의사이자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 칼 월터가 1947년 플라스틱 혈액용기를 개발했다. 플라스틱 용기는 원심분리를 해도 찢어지지 않아 혈액의 성분 분리가 가능해졌다. 

Q. 헌혈한 피는 모두 수혈에 사용된다? 

아니다. 혈장 성분은 주로 의약품 제조에 쓰인다. 혈장은 알부민, 크라이오, 감마글로불린을 제조하는데 쓰인다. 알부민은 혈액순환기능, 크라이오는 혈우병 치료제, 감마글로불린은 수두, 파상풍 치료제로 쓰인다. 헌혈에 적합지 않아 폐기되는 부적격 혈액은 전체의 4% 정도인데 이중 일부는 연구 개발에 사용되기도 한다. 
헌혈한 피가 곧장 수혈에 사용되는 것도 아니다. 피는 4개의 검체로 나뉘어져 B형 간염, C형 간염, 성인 림프구성 백혈병 바이러스(HTLV), 에이즈, 말라리아와 간기능 검사를 거치고 ABO혈액형과 Rh 혈액형 검사를 마친 뒤에야 적합 판정을 받게 된다. 

Q.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헌혈할 수 없다? 

일부 국가의 경우 그렇다. 광우병 발생 위험국가인 영국에 1~3개월 이상 체류할 경우 헌혈이 제한된다. 혈액 속에서 광우병 바이러스를 식별할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말라리아 발생지에서 일정기간 체류한 경우에도 헌혈 금지한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휴전선 인근과 같이 말라리아 모기가 발견되는 지역에 거주할 경우 헌혈을 금지하고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지카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관련 지역으로 해외여행 다녀온 사람은 1개월 간 헌혈을 금하고 있다. 그 밖에 헌혈 금지 약물을 복용한 경우에도 헌혈할 수 없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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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SION 과학

제 2669 호/20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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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음식 좋아하는 건 중독?!

매운 갈비, 매운 떡볶이, 매운 치킨, 매운 라면…. 요식업계의 트렌드가 매운 음식이 된지도 오래됐다. 하지만 매운 음식의 높은 인기는 떨어질 기미가 없다. 사람들은 오히려 더 맵게, 더 자극적인 맛을 찾는다. 그만큼 매운맛은 놀라운 매력을 가지고 있다. 혀가 얼얼해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어도 다음에 또 찾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덮어놓고 ‘더더’ 매운 음식만 찾다가는 다음날 화장실에서 쓰러진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혀만 아픈 것이 아니라 나의 위장도 아팠던 것이다. 

매운맛을 내는 성분은 크게 4가지다. 첫 번째가 마늘과 양파에 들어있는 알리신(Allicin)으로 강력한 살균과 항균 작용을 하고 혈액 순환과 소화를 돕는다. 두 번째는 후추에 들어있는 피페린(Piperine)이다. 위액 분비를 촉진시키고 위와 장 속 가스를 제거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피페린은 지방 세포의 형성을 막아주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운맛을 내는 성분에는 시니그린(Sinigrin)이 있는데, 시니그린은 겨자나 고추냉이 등에 많이 들어있고 톡 쏘는 매운맛을 낸다. 마지막은 캡사이신(Capsaicin)이다. 주로 고추에 들어있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한다. 이를 통해 지방을 태우며 열을 발생시키는 갈색 지방세포를 활성화해 지방을 분해하는 효과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캡사이신은 교감신경을 활성화하면서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시킨다. 이것이 사람들이 매운맛을 찾는 이유다.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 분비는 일시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기 때문이다. 

문제는 매운맛이 과할 때 생긴다. 매운맛을 내는 성분은 위장을 자극한다. 자극이 반복되면 위장에 염증이 생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식도, 위 및 십이지장의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이 천만 명을 넘어섰다. 그 중 ‘위염과 십이지장염과 같은 위장 염증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전체 48%로 2011년에 비해 400만 명이 증가했다. 만성 위염의 대표적인 원인은 자극적인 음식으로 장기간 섭취한 짜고 달고 매운맛이다. 이런 맛들이 위에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위식도 역류질환도 마찬가지다. 자극적인 음식은 위산의 역류를 촉진해 속 쓰림이나 이물감과 같은 증상을 악화시킨다. 

더 큰 문제는 매운맛은 중독된다는 점이다. 매운맛을 느낄 때 나오는 엔도르핀은 쾌감을 느끼게 한다. 이 반응이 반복되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매운맛을 찾게 되고 매운맛을 느끼지 못하면 오히려 무기력함을 느끼게 되는 상황이 온다. 당 중독과 상황이 비슷하다. 우리 몸은 당을 섭취하게 되면 일시적으로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는데, 이 짧은 행복감에 중독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당을 찾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매운맛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스트레스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이 혀로 느낄 수 있는 맛은 5가지로 단맛과 신맛, 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이 있다. 매운맛은 사실 미각에 속하지 않고 인간의 점막을 자극할 때 느껴지는 아픈 감각과 타는듯한 열감과 같은 통각 신경이 감지하는 고통의 일종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고통을 찾는 이유는 롤러코스터나 번지점프,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와 비슷하다. 자극을 통해 쾌락을 주는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기 위한 것. 따라서 매운맛의 중독을 끊기 위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어렵다면 스트레스를 푸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또 다른 방법은 감각의 민감성을 높이는 것이다. 인간은 시각과 미각, 촉각, 청각, 후각 등 오감을 가지고 있다. 오감은 인간이 건강하게 생존하는 데 꼭 필요한 감각이다. 그 중 미각은 필요한 영양분과 해로운 독성분을 구별하게 해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게 돕는다. 인간이 오감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미각의 민감도가 떨어지면 맛에 대한 역치가 높아진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간이 세진다는 말을 하는데 이유는 미각을 감지하는 능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미각 능력이 저하되면 음식에 소금과 간장을 아무리 많이 넣어도 짠 맛을 잘 느끼지 못한다. 이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고혈압이나 전해질 불균형과 같은 질환을 앓기도 하고 때로는 상한 음식을 모르고 섭취해 탈이 나기도 한다. 매운맛도 마찬가지다. 민감도가 떨어질수록 더 맵고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되면서 위장 자극이 심한 음식을 반복적으로 섭취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감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과로를 피해야 한다. 지칠 정도로 몸이 힘들면 보고도 무엇인지 모르고 듣고도 무슨 말인지 잘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을 때가 있다. 미각 역시 둔해지기 때문에 맛이나 자극에 대한 민감도가 낮아진다. 스트레스 자체도 줄일 필요가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감정이 격해지면 교감 신경이 활성화 되고 침샘 기능이 저하되면서 미각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매운맛은 죄가 없다. 적당히 즐기면 혈액 순환과 소화에도 좋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을 준다. 다만 몸에서 열감이 느껴지거나 속이 쓰리다면 다음을 기약하고 그만 먹자. 그래야 매운맛도 건강하게 오래 즐길 수 있다.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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