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문직 드라마'의 한계.."'CSI'처럼 안되겠니?"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이규창 기자]

패션피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한번씩 테이블 위에 오르는 주제가 있다. 바로 미국의 TV 시리즈물이다. 국내 케이블 TV에서 '프렌즈'가 한창 방영될 때 이들은 '섹스 앤 더 시티'에 열광했고, 올해 'CSI'가 절정의 인기를 누릴 때에도 이젠 식상하다며 '프리즌 브레이크'를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돌려봤다.

굳이 패션피플들과 유학파 학생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주말 심야에 '위기의 주부들'과 'CSI'를 놓고 채널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부부들의 모습이 더이상 낯설지 않다는 것만 보더라도 이미 미국의 TV 시리즈물에 우리는 익숙해져있다.

미국 TV 시리즈물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한번쯤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왜 한국에는 이런 드라마가 없을까?" 그리고 그 질문에 내포된 의미 중 가장 크게 와닿는 부분은 한국에서 '전문직 드라마'를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韓 "어떤 직업이든 목적은 사랑" vs 美 "직업에 '충실' 로맨스는 '양념'"
일반적으로 16~20부로 구성되는 한국의 미니시리즈는 스타 캐스팅에 기댄 로맨스물이 주류다. 이 때문에 캐스팅 비용이 제작비에 부담을 주고 시청률에 따라 드라마의 전개에 변화를 주는 등 시간의 제약도 크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소재가 한정된다.

특별한 장치나 기법 없이 가장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얘기는 남녀간의 사랑이고, 극중 다양하고 트렌디한 주인공들의 직업은 단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치일 뿐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굳이 '전문직 드라마'라고 구분해야 할 만큼, 기존 드라마에서 등장 인물들의 직업이란 매회 바꿔 입는 의상 정도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반면 'CSI' '앨리 맥빌' '섹스 앤 더 시티' 등 미국 TV 시리즈물의 경우를 보자. '섹스 앤 더 시티'는 제목 그대로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싱글 여성들이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살아가며 겪는 사랑과 연애, 결혼 등에 대한 이야기다. 따라서 직업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최소한 각자의 직업이 캐릭터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거나 때로는 에피소드의 단서를 제공하며 사실감을 준다.

'앨리 맥빌'은 일과 연애가 적당히 균형을 이루고 있다.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는 30대 여성 앨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드라마의 내용은 변호사라는 직업이 갖는 전문성에 더해 직장 동료들간의 관계, 이것과 반쯤 중첩돼 전개되는 로맨스 등이 버무려져 있다. 말 그대로 실제 우리들이 겪는 '일과 사랑'이 현실감있게 구성된 것이다.

'CSI'는 철저히 일과 전문성에 집중한 드라마다. 의학 드라마, 범죄수사극, '맥가이버' 식의 과학드라마가 혼합된 듯한 'CSI'는 전문직 드라마의 완성형을 보여주는 듯 싶을 만큼 장점이 확실하고 다루는 소재 또한 심플하다. 등장 인물들의 직장 내에서 혹은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이나 감정들 만으로도 공감과 인간미를 주기엔 충분하지만, 간혹 보일 듯 말듯한 로맨스로 팬서비스를 해주기도 한다.

'CSI' '앨리 맥빌' 따라잡기는 안될까?.. 시장상황이 관건
이제 논의는 다시 한국 드라마로 돌아가자. 그렇다면 무엇이 한국에서 '전문직 드라마' 제작에 걸림돌이 되는 걸까? 첫째는 시청률과 소비시장이다.

이미 젊은 세대에게 TV는 '올드 매체'가 된 지 오래다. '주몽' '돌아와요 순애씨' 등 젊은 시청자들도 즐겨 본다는 그 프로그램들을 막상 제 방송 시간에 맞춰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터넷 VOD 다시보기 서비스나 지상파 방송사들이 운영하는 케이블 채널에서 재방송을 시청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직 드라마'를 선호하는 젊은 층은 드라마 방송 시간대의 메인 시청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어떤 드라마든 시청자 연령대를 비교하면 '여성 50대 이상'이 가장 높게 나온다.

아직 콘텐츠를 통한 수익이 1차 방송의 시청률에 근거한 광고 매출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2차 판매 등은 큰 수익이 되지는 못한다. 오후11시 이후 심야 시간대에 방송되는 'CSI'의 최고 시청률이 10%를 벗어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 시간대나 시청자들을 겨냥한 드라마 제작은 수익성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반면 시청자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전문직 드라마'를 만들려면 상당한 노력(시간과 돈)이 든다. 2007년 잇따라 선보일 메디컬 드라마들은 대표적인 전문직 드라마로 꼽히지만, 이미 'CSI' 등 정밀한 특수효과 화면과 긴 시간의 리서치를 통해 특수 직업의 세계를 잘 묘사한 블록버스터급 시리즈물에 익숙한 시청자들의 '높은 눈'이 부담스럽다.

'외과의사 봉달희'를 기획중인 SBS 김형식 PD는 "심장병이 있는 환자를 다룰 때 심장이 뛰고 혈관 어디가 막혀있는 것을 특수효과 화면으로 보여주면 내용을 가장 쉽고 간편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들어 드라마 제작 여건상 불가능하다"며 "따라서 상황과 대사 등으로 긴박감과 전문지식을 녹여내는 것이 국내 메디컬 드라마의 숙제"라고 꼬집었다.

'대장금' '허준' '김삼순'.. 전문직 드라마의 한국형 모델
그러나 아무리 제작 여건 등 상황이 불리해도 시청자들의 눈을 만족시켜주는 '전문직 드라마'는 있다. 특히 한국이라서 가능한 '전문직 드라마'는 의외로 사극 중에서 많이 발견된다. 사극이라는 틀이 우리에게는 친숙하고 진부한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소재와 내용에 변화를 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형 전문직 드라마'가 된 것이다.

'겨울연가'와 함께 '한류'(韓流)를 이끄는 첨병 노릇을 하고있는 MBC '대장금'의 경우 사극이라는 외투만 벗겨 보면 요리, 한의학 등의 전문 지식이 가득하다. 이영애 지진희 등 주연배우들의 멜로라인이 양념처럼 가미됐을 뿐 한국의 전통 부엌에서 만들어지는 갖가지 요리의 향연과 침과 뜸 등 전통 방식으로 환자에게 시술되는 한의학의 화면들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았다.

이 분야에서 주로 강점을 나타내는 연출자가 최근 옥관문화훈장을 받은 이병훈 PD로, '허준' '상도' '수사반장' 등 작품들을 보면 그가 꾸준히 전문직 드라마의 한국형 모델을 구축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현대극의 경우 MBC '내이름은 김삼순'이 '섹스 앤 더 시티'처럼 극중 직업을 로맨스물의 양념으로 잘 가미시켰다. 비록 분량이 많지 않았지만 꾸준히 화면에서 선보이는 다양한 모양의 빵과 과자들, 그리고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인 파티쉐가 엮어가는 사내연애 등이 전문직 드라마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현빈이 파리바게트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것도 이 드라마가 파티쉐라는 극중 직업(물론 현빈은 사장일 뿐이었다)을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각인시켜, 광고를 통한 시너지 효과가 가능했음을 입증한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익숙한 한국 관객들의 눈을 만족시켰듯이, 드라마 또한 열악한 제작 여건에서 한국형 모델을 찾을 수 있다. 시청자들은 단지 허울 뿐인 직업을 가진 청춘남녀의 엉성한 로맨스가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전문직 드라마를 기대하고 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06-10-26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드라마를 별로 못 봐서 그쪽은 잘 모르겠지만, 국내 드라마가 요새는 '연애' 얘기만 해서는 절대 안 먹히는 것 같다. 예전에 '이브의 모든 것'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는데, 마지막회에 채림은 미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장동건 옆에 남는다. 드라마는 마치 그게 최고의 선택인 것처럼 포장했다. 반대 경우였다면 남자가 포기했을까?
아무튼, 그래서 별순검의 조기 종영은 두고두고 참 아쉽다...;;;;

비로그인 2006-10-26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굳 드라마는 배경만 호텔,변호사,병원이고 늘 사랑타령..전문작가도 없고, 배우들 출연료만 높아지고...직업의 실상을 과대포장하거나 왜곡시키고.. 농담으로 드라마때문에 인기높아진 직업이 건축가,호텔리어 라고 하죠...
CSI1편 만드는데 6백만불 든다고 하는데요,,(내간 백만불을 육백만으로 잘못봤나.이건 좀 아리송하고.)

해리포터7 2006-10-26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앨리맥빌 첨볼때 푹빠져서 아그들 밥도 제때 안챙겨줬답니다..그시간에 퇴근하는 남푠 하고 맨날 충돌하고...전 한번빠지면 느무 집중되는 ....우리나라에도 저런 드라마 나오면 좋겠어요..

이매지 2006-10-26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드라마 중에서 그레이 아나토미는 초반에는 외과 인턴들의 고군분투를 그려서 재미있게 봤는데 계속되면서 완전 인턴 연애담으로 -_-;; 그래서 전 손 뗐어요. (보다가 손 뗀 드라마는 그레이 아나토미가 처음) 별순검은 정말 두고두고 아까워요 ㅠ_ㅠ

2006-10-26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6-10-27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닥이신 님, 제작환경도 빠듯하고, 시청자의 눈높이는 높아지고, 여러모로 문제가 많으니 쇄신이 필요하건만, 오로지 배우들 출연료만 높아져가니 더 속이 터져요. '돈'의 문제를 떠나서 마인드에 문제가 있다 생각되어요. 그래서 안성기는 참 배우같아요. ^^
담뽀뽀님, 호텔리어는 알겠는데 건축가는 어느 드라마 덕을 보았나요? CSI무서울까봐 한번도 못 봤는데 너무 잘 되었다고 하니 참 궁금해요.(제가 엑스파일을 무섭다고 못 봐서 그런 류가 아닐까 미리 겁먹었어요..;;;)
해리포터님, 그 드라마가 그 정도였어요? 전 위기의 주부들을 넘넘 재밌게 보았어요. 2부 끄트머리를 아직 못 보긴 했지만...
이매지님, 오옷, 거기도 연애담만 파고들 때 시청자의 외면을 받을 수 있군요. 별순검은 특집용으로 전락...ㅠ.ㅠ 아, 그리고 택배는 어머니께 얘기해 두었어요. 고마워요^^

비로그인 2006-10-27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축가는 사실..기억은 안나는데 예전에 드라마에 나온적이 있었죠.건축전공자들이 졸업해도 설계로 가는건 얼마 없다고 무척 힘든일인데 드라마 때문에 이미지가 좋아진 직업이라고 쓴걸 봤거든요. 전 엑스파일이나 CSI 무척 좋아하거든요. 앨래맥빌도 좋아하고..법정 드라마 좋아하고..요즘은 프렌즈는 별루던데.

마노아 2006-10-27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내드라마는 볼 시간이 없겠어요. 상대적으로 시시하려나? 프랜즈는 아주 단편적으로 몇편만 보았네요. 그것도 오래 전에... 2000년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