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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 소월 탄생 110돌에 새로 읽는 ㅣ 작가세계 시인선 1
김소월 지음, 김선학 엮음 / 작가세계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위대한 탄생이라는 제목의 오디션 프로가 있었다. 2회인가 3회인가까지 하다가 어느 순간 끝나버린 이 프로에서 윤상이 멘토로 나왔는데, 멘티 중에 '소월에게 묻기를'이라는 곡을 부른 전은진이 있었다. 그때 처음 이 노래를 들었는데 시인 김소월을 소재로 이토록 아름다운 곡이 있다는 것에 감탄 또 감탄했다. 개인적으로 윤상은 가수보다 작곡가 쪽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그가 부른 노래로는 이렇게 감동을 받은 적이 없는데, 그가 만든 곡으로는 감동 받은 적이 꽤 많다. 전은진의 곡을 듣고 정훈희의 곡을 들었더니 또 와우! 명불허전!이라고 생각했다. 책 이야기 하기 전에 노래 먼저 듣고 가자.
새삼스럽게 김소월에게 다시 꽂힌 건 이 노래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시절에 김소월의 시를 꽤 좋아했다. 그의 정겨운 시어와 일상에서 유리되지 않은 소재도 좋았고, 충분히 여성스러운 그 감수성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찾아 읽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내 마음을 다시 사로잡았던 시들은 모두 이미 알고 있던, 이전에 접해 보았던 시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불과 백년 조금 전의 시인데, 시어가 지금 쓰는 말과 아주 많이 달랐다. 그러니까 밑에 각주가 꼬박꼬박 붙어야 하는 시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감상에 방해가 되었다. 조금만 현대 입말로 바꿔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만큼. 그래서인지 이미 알고 있던 시들, 그래서 각주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익숙한 시들만이 다시금 내 가슴을 울렸다. 구관이 명관(?) 느낌이기도 하고 익숨함의 힘이 얼마나 센지 새감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내 가슴을 울린 시들을 옮겨 보자.
먼후일
먼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리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리면
「믿기지 않았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훗날 그때에 「잊었노라」-16쪽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은 그해에 처음 교사가 된 새내기 선생님이셨다. 가장 좋아하는 시가 이거라며 아이들의 요청에 따라 시를 읊어주셨는데, 무척이나 쑥스러워하는 성격인지라 시를 그대로 '읽으'셨다. 정말 딱딱하게. 당시에도 이 시의 내용이 참 아련했는데, 좀 더 부드럽게, 좀 더 몰입해서 들려 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그때도 나는 했더랬다. 잊었다고 말하는 그 사람이, 그냥 잊은 것이 아니라 그리다가, 믿기지 않아서 잊었다고 말한다.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는지 먼훗날 잊었다고 말한다. 어떻게 설명하든 다 잊은 것. 결과는 똑같지만 시가 어디 그렇던가. 마음은 또 어디 그렇던가. 먼훗날 잊었다는 이 고백이 나는 위로가 되었다. 단숨에 돌아서서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는 그 사실에, 거기에 남겨진 마음에 아주 조금 덜 서럽게 느끼는 것이다.
초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자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으 산 우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152쪽
어느 한 구절도 버릴 게 없다. 첫 단락부터 마음을 산산이 부서버린다.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일제 강점기 시절의 시들은 아무래도 암울했던 조국의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수많은 '님' 연인이기도 하고 종교적 절대자이기도 하고 국가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소월의 시는, 그저 내가 사랑 하는 '님' 하나라고만 명명해도 하나도 섭섭하지 않을 것 같다. 그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그래도 될 것 같다.
길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까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마소 내 집도
안주 곽산
차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아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전혀) 갈길은 하나 없소. -162쪽
이 시도 노래가 있다! 내가 분명히 아는 노래인데, 그게 어떻게 아는 곡인지 모르겠다. 교과서에 실린 곡이었는지, 혹은 가곡이나 민요처럼 불렀는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하여간 노래가 있다. 노래도 생각난다. 아, 이게 참 신기하다. 소월의 시들은 정말 그 자체로 '노래'다. 곡을 붙이면 덜언래 것 없이 가사가 된다. 진정 천재 시인! 새삼 그의 이른 죽음이 가슴 아프다.
그런데 노래 하면 역시 이 곡(시) 아닐까!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180쪽
반어법으로는 최고가 아닐까. 얼마나 붙잡고 싶은지, 얼마나 매달리고 싶은지 절절하게 와 닿는다.
이 시를 부른 가수는 역시 마야가 떠오른다. 엄청난 락보컬로 불렀는데, 그게 또 이 섬세한 시어와 어울린다는 게 몹시 신기했다.
기왕에 노래 이야기를 했으니 마무리도 노래로 가 보자.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가고 오지 못한다」하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을 나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곰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모심타(무심하다)」고 하는 말이
그 무슨 뜻인줄을 알았으랴.
제석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의
무덤엔 풀이라도 태웠으면!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송골매' 편이었나 보다. 알리가 부른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에 흠뻑 반했었다. 그 전에는 몰랐던 노래였다. 가사가 훌륭해서 빠져들었고, 이 역시 소월의 시라는 걸 알고 또 감탄했다. 아, 좋아 좋아, 너무 좋아!!
그렇지만 소스보기가 안 되어 있어서 이 화면은 콘서트 7080 걸로 가져왔다. 아쉽아쉽!(그나저나 알리는 금발이 참 잘 어울리네. 나도 해보고 싶다. 금발 머리!)
고락에 겨운 입술-이 표현이 참 좋다. 순수 우리말이 주는 매력도 크지만, 때에 따라서는 한자어가 주는 무게감도 참 매력적이다. 소월에게 미안하지만 이 시는 원래 시보다 노래의 가삿말이 더 끌린다. 하하핫, 음악이 더해준 매력 때문일 것이다. 필시.
'만약'은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이런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일제강점기가 아닌 지금같은 세상에 살았어도 장수하지는 못했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며칠 전 을지로3가에 갔었는데 거기에 고당 조만식 기념관이 있었다. 소월의 문재를 알아봐주신 은사님이라 새삼 더 반가웠다. 비록 들르진 못했지만...;;; 암튼 마찬가지 이유로 김억 선생님께도 감사감사!
소월의 시는 좋았지만 읽어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좀 더 편한 우리 말로 다듬어진 시집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 한국 정서에 참으로 걸맞는 소월의 시를, 오늘날의 정서로도 오롯이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