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제보자(임순례, 2014)
2005년 12월에 경주로 향했다. 이승환 연말공연은 12월 31일이었고, 송구영신 예배 때문에 참석을 못하게 된 나는 애가 탔다. 그래서 대구 공연을 가기로 결정했다. 공연만 보고 오기엔 교통비가 아까워서 답사를 겸하기로 했다. 그래서 간 곳이 경주. 눈이 엄청 오던 날이었다. 찜질방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 시간에 한 대 오는 버스...ㅡ.ㅡ;;;; 그 눈을 다 맞고 오들오들 떨다가, 찜질방에 가서 땀 푹 내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세상은 황우석 뉴스로 온통 도배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빅뉴스. 월화수목금금금 일하고 있다며 화려한 언변을 자랑했던 그의 언론 플레이는 그렇게 끝이 났다. 뭐, 지금도 그 신화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제목은 '제보자'가 주인공일 것 같지만, 제보를 받고 그것을 파헤치는 기자가 핵심 인물이다. 이런 역할에 박해일은 무척 잘 어울린다. 아주 잘 빼입는 것보다 노숙도 감행할 것 같은 옷차림에 수염도 듬성듬성 났어도, 눈빛만은 형형한 그런 역할 말이다.
요새 틀면 나오는, 무조건 나오는, 일단 나오는 이경영이 이 영화에서 황우석에 해당하는 역할을 맡았다. 언론을 등에 업으면 환자 가족뿐 아니라 온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걸, 사실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정의로운 결말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뒤끝은 개운하지 않다. 그때 그렇게 투쟁했던 분들, 지금은 모두 방송국에서 나와 계시니까.
박해일이 이경영과 서 있는 투샷을 보면 박해일이 기럭지에서 우월해 보이지만, 유연석과 나란히 서 있는 걸 보면 이게 또 뒤집어짐..ㅎㅎㅎ
방송국 사장의 차를 막으며 방송윤리강령을 외치는 장면은, 설정상 무척 감동스러울 타이밍이지만, 실제로도 당시 정연주 사장이 오케이 사인을 내리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여전히 착잡했다. 야성이 살아있는 언론이 너무 간절하다. 그런 바람으로 대안 언론을 후원하고 열심히 챙겨듣지만, 공중파 방송의 위력 앞에서는 너무 작은 촛불이다. 그 작은 촛불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엔 커다란 횃불이 되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었으면...... 국익이 아닌 진실이 우선이고 더 큰 힘을 가졌으면......
★★★★
67. 슬로우 비디오(김영탁, 2014)
차태현이 나오는 따뜻한 영화일 거라고 짐작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지만 그리 재밌지는 않았다는 게 함정!
남들과 다른 능력을 가진 여장부. 그는 동체시력을 갖고 있는데, 남들보다 훨씬 속도를 늦게 체감한다. 아주 빠르게 던져진 공도 그에게 날아올 때는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 능력을 각별하게 이용하면 범죄 소탕에도 크게 쓰일 수 있고, 어쩌면 연애를 하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남들과 다르게 속도를 인식하니, 서둘러야 할 때 서두를 수 없다. 빨리 움직이려 하면 그 속도가 감당이 안 되어서 어지럽고 쓰러지게 된다. 이게 과해지면 시력을 잃을 수도...
한국의 로맨스 영화에는 빠지지 않는 첫사랑 코드도 등장한다. 이런 드라마와 영화만 보면 모든 연인은 첫사랑하고만 맺어져야 할 판이다.(버럭!)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면서도 아빠가 남겨주신 집을 팔지 않고 꿋꿋이 버티는 남상미. 아니, 이자가 얼만데 그걸 버텨! 게다가 본인은 아르바이트 전전하고 있는데 뮤지컬 배우고 되고 싶다는 꿈은 굳게 지키고 있다.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꿈을 포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집을 지키느라고 무리수를 두는 것이...;;;;;
여러 재미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소소한 웃음도 주지만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 같지는 않다. 남상미가 대학로 횡단보도 중간에서 전화기에 대고 노래를 부르며 오디션 치르는 장면이 고왔고, 은행잎을 팔에 한가득 담아놓은 것도 예쁜 색감을 자랑했지만 크게 남는 것은 없었다.
근데, 동체시력이라는 게 정말 있기는 한 거야???
★★☆
68. 초콜렛 도넛(트래비스 파인, 2012)
게이 바에서 립싱크를 하며 춤을 추는 루디는 옆방에 사는 마르코가 늘 눈에 밟힌다. 애 엄마는 애를 방치한 채 늘 약에 쩔어 있고, 툭하면 집을 비우기 일쑤다. 여자 인형을 갖고 놀기 좋아하는 소년 마르코는 다운증후군이다. 버려지고 방치되는 아이를 못견뎌하는 루디는 제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데도 불구하고 마르코를 책임지고 싶어한다. 이때 그에게 힘이 되어준 존재는 얼마 전 연인이 된 검사 폴.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하고 약물 적발로 감옥에 간 마르코의 엄마 대신 마르코의 가족이 되어 아이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며 안락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은 35년 전이다.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사회적 편견에 싸여 있을 때다. 폴은 검사직에서 잘렸고, 두 사람은 마르코에 대한 양육권마저도 잃게 된다. 법정의 판사도 마르코의 친모보다 이들 두 사람이 마르코에게 더 안정적인 가정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가슴으로 이해한 그 사실을 게이 커플이라는 머리의 판단이 인정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이들이 마지막에 찾아간 변호사가 흑인 변호사였을까. 당신만은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줄 거라는 간절함이 불러낸 결과였다.
초콜렛 도넛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이 마르코. 해피엔딩 이야기를 밤마다 들려달라고 조르는 해맑은 아이 마르코. 따뜻한 가족의 품이 필요했던 소년 마르코. 그리고 그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지켜내고 싶었던 연인 한쌍. 그러나 이들이 마냥 행복해지게 세상은 내버려두지 않는다.
두 사람 중 오른쪽의 알란 커밍은 실제로 커밍 아웃한 배우인데, 그래서일까.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볼 때, 폴은 연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루디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보인다.
실제 다운증후군이기도 한 아이작 레이바는 이 영화가 첫 영화인가 보다. 다른 정보가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마르코의 연기도 연기가 아닌 실제 모습으로 보였다. 뭉클하고, 먹먹하고, 그리고 많이 슬픈 이야기였다.
★★★★★
69. 나를 찾아줘(데이빗 핀처, 2014)
처음으로 시네토크로 본 영화다. 두시간 반동안 영화를 보고, 다시 한 시간 동안 영화 해설을 듣는 시간이었다.
이동진 평론가와 배상훈 프로파일러가 호흡을 맞췄는데, 둘의 호흡이 안 맞아...;;;;
프로파일러 분은 많이 긴장한 것 같았다. 그냥 이동진 얘기만 한 시간 듣는 게 나한테는 더 좋았을 것이다.
그 다음 주에는 표창원과 함께 했다는데 그 둘은 잘 맞았다는 후문....;;;;
영화는 역시 데이빗 핀처다웠다. 세븐보다 더 스릴감 넘쳤다고 기억한다. 원작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반전을 알지 못했으므로 영화 중반에 크게 한 번 놀라고, 몇 번이나 엎치락 뒷치락 하면서 몰입하여 볼 수 있었다.
어리숙하고 맹하며, 어눌한 남편 역에 벤 애플렉은 무척 잘 어울렸다.
하지만 이 영화의 최대 수혜자는 아마도 로자먼드 파이크이지 싶다.
와, 이건 뭐 살벌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렇게 무서운 와이프라니!
이동진은 영화를 보면서 그녀의 연기에서 니콜 키드먼과 샤론 스톤이 보였다고 했는데, 실제로 로자먼드 파이크는 그 두 배우를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와우!
영화 중간에 마구마구 먹을 것을 쑤셔 넣는 장면에서 유난히 배가 나와 보이길래 임신 중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도 체격이 좀 있는 편인가 보다. 벤 애플렉이 192cm의 거구인 것을 감안하면.
영화는 무척 재미 있었다. 너무 재미 있었기 때문에 원작 소설을 보고 싶지 않다. 원작도 무척 훌륭할 테지만, 그냥 영화로도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불만이 있다면 제목이다. '나를 찾아줘'라는 제목은 이 작품의 내용과 너무 안 어울린다. 원제처럼 'gone girl'이 더 낫다. '사라진 그녀'가 직접적이긴 하지만 적어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향으로 상상하진 않게 하니까.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이던가?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꾸뻬 씨의 부인인지 연인인지로 나오던데, 이 작품에서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그 찰나의 순간에도 어색해 보였다. 하하핫, 캐릭터가 지나치게 강했어. ㅎㅎㅎ
★★★★★
70. 우리는 형제입니다(장진, 2014)
이승환 팬 중에 cgv 부점장이 하나 있다. 어느 지점이었더라? 지방 어드메였는데... 암튼 이분의 소망은 극장 하나 빌려서 이승환 뮤직비디오를 상영하는 것이었지만 그건 이뤄지지 않았고, 대신 드팩민과 백혈병 어린이 재단 관계자들을 초청해서 영화 상영을 했다. 그게 이 영화였다. 본인은 cgv 직원이지만 정작 빌린 것은 롯데시네마 장안점. 이 영화관은 이름이 계속 바꼈는데 워낙 외져서 장사가 좀 안 됐던 게 아닐까 싶다. 비가 많이 오던 날이어서 날이 궂었지만 영화 보는 데는 아무 문제 없었다. 드팩민들의 간식거리 찬조도 있었다. 영화 상영 전에 이승환 뮤직비디오 '화영연화'를 함께 감상하고 영화 시작~
장진 감독을 좋아한다. 이제는 좀 식상해진 유머 패턴이긴 한데 그래도 여전히 웃음 끝에 감동이 있다.
조진웅, 김성균, 김영애 등 모두 연기파 배우들이라 연기도 흠잡을 데 없다.
30년 동안 헤어져서 사는 동안 서로가 알지 못했던 처절한 시간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피붙이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을 수 있었던 사연들이 있었다. 게다가 얄궂게도 둘은 목사와 박수무당으로 직업적 장벽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걸 넘어서게 한 물보다 진한 피가 있었다. 단순 신파나 가족애만 강조하는 그런 영화는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것이 다로 느껴지게 한 홍보가 좀 문제이지 않을까. 그 이상의 것이 있는데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않게 만들어서 말이다.
★★★☆
70-1. 사라의 열쇠(질스 파겟-브레너, 2010)
몇 해 전에 극장 개봉했을 때 봤는데 늦게 도착해서 앞부분을 보지 못했다. 뒤늦게 다시 한번 보니 더 인상 깊었다. 홀로코스트를 표현하면서 가해자-피해자의 이분법이 아니라, 피해자였던 이들도 가해자였던 역사를 되돌아 보게 한 것이 좋았다. 우리 역시 일제 강점기의 피해자이지만, 제주에서, 한국전쟁 와중에, 또 베트남 전쟁에서 얼마든지 가해자가 되었던 역사가 있지 않던가. 마지막에 특히 '이름'에 의미를 둔 게 유난히 좋았다. 이름이 곧 역사가 되고 삶이 되는 과정이 모두 보여서......
★★★★★
71. 다이빙 벨(이상호, 안해룡, 2014)
다이빙 벨을 본 날은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입장해서 울며 울며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도착한 메시지는 신해철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다. 온 세상에 죽음이 가득했다. 무겁고 또 무거웠지만 피할 수 없고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마땅한 다큐멘터리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영활르 봐야 할 사람은 보지 않고, 이미 공감하고 숙지하고 두 주먹 불끈 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온다는 게 문제였다.
지난 주 파파이스에는 단원고 생존자 학생이 출연한다고 했는데 내가 본 분량에는 나오지 않았다. 이번 주 분량에 나오지 싶은데, 짐작하고 있는 어떤 내용이 나올까 봐 두렵다. 막연히 상상하는 것들이 정말 현실이었을까 봐. 장기 없는 토막 살해 사건보다도 더 엽기적인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 아닐까....
참, 어제 미생 6편을 보는데 배경음악에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이 나왔다. 방송 날짜를 보니 그의 죽음 이후였다. 의도된 BGM이었나 보다. 참으로 아까운 목숨이고 아픈 죽음들이다.
★★★★
72. 나의 독재자(이해준, 2014)
이해준 감독의 전작 천하장사 마돈나와 김씨 표류기를 참 좋아했다. 휴머니티가 보이는 감독이랄까.
이번 작품이 앞의 작품들보다 더 좋지는 않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는 늘 보장해주는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의 수확이라면 설경구의 재발견이다. 설경구가 연기 잘하는 거야 누구나 아는 일이고, 그래서 그의 열연은 늘 당연하게 여겨져서 큰 감동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달랐다.
남북정상회담에 대비하기 위해 김일성 역에 몰입하다 못해 아예 스스로를 독재자로 여기는 주인공처럼 그 자신 설경구가 보이지 않고 극중 인물만 뚜렷하게 보인 것이다. 완벽한 매소드 연기.
박해일 역시 연기 못하는 배우가 결코 아닌데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어쩌면 그의 연애의 결말이 너무 뻔해서였을지도...
박해일의 아역 연기를 한 꼬마가 참 예뻤다. 모처럼 통닭을 사온 아빠 덕분에 화기애애한 저녁 식사 시간. 서로 다리를 뜯어주며 먹으라고 내미는 진심 어린 손길이 뜨거울 만큼 따스했다. 정말 가식 없이 순수하게 가족을 위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저 예쁜 배우의 이름은 박민수. 2007년 생이다. 뮤지컬에 출연한 적 없나? 왜 이리 얼굴이 낯설지가 않지?
영화 속에서 기어이 이뤄진 가상 남북정상회담. 독재자에 분해서 주인공이 내뱉는 말들 중에는 귀담아 들을 부분이 있었다. 통일을 정말 원한다면 결코 흘려듣지 말아야 할 메시지들 말이다.
그러고 보니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떠오른다. 김일성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그 날에 무엇하고 있었냐는 물음... 그러게... 한 시대를 같이 살았다는 것은, 이렇게 공동의 기억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김일성이 죽었을 때, 노무현이, 그리고 신해철이 죽었을 때...와 같은 그런 기억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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