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에는 안산 합동 분향소에 다녀왔다. 처음 집을 나설 때는 시청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영정사진은 안산에 있으니까, 게다가 쉬는 날이니까 좀 멀리 가도 좋겠다고 여겼다. 고잔 역에서 내려서 셔틀 버스로 갈아타고 눈을 감았다. 몇 분이 지나고 갑자기 온 몸의 힘이 쫙 빠지면서 가위에 눌리는 것처럼 심장에 압박이 느껴져서 눈을 떴다. 그리고 차가 곧 멈췄다. 아마도 심리적인 탓이었겠지만, 정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버렸다. 


쉬는 날이어서 사람들이 무척 많았는데, 한번에 워낙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꽃을 올리고 묵념을 하니 생각만큼 많이 기다린 것 같지는 않다. 앞에 줄이 이동을 하면 한걸음씩 앞쪽으로 이동을 하는데, 그때마다 더 크게 보이는 영정사진이 무겁게 다가왔다. 마치 여고괴담에서 마지막에 최강희 얼굴이 턱턱턱 다가오는 것처럼.


한줄에 한 80개 정도의 영정 사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무려 4층에 걸쳐 펼쳐져 있는 영정 사진. 

가운데에는 제일 먼저 희생자로 발견되었던 정차웅 군이 보였다. 그렇게 몇 번 뉴스를 타느라고 얼굴을 알고 있던 사진들이 더러 있었다. 마치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죽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뒤쪽으로 어린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아마도 엄마가 언니 오빠들 하늘나라 갔다고 말한 것 같았다. 천진한 아이는 이렇게 질문했다.

"하늘 나라 뭐 타고 갔어??"


아아, 아이야... 하늘나라 세월호 타고 갔단다..ㅜ.ㅜ 


아이들이 저 학생증 사진을 찍었을 때 얼마나 멋도 부리고 화장도 좀 하고 예쁘게 찍었을까. 누구라도 그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거라고 예상 못했겠지. 


꽃을 바치고, 두번의 묵념을 하고, 그리고 한바퀴 돌아서 나올 때, 마지막에 교감 선생님 사진이 보였다. 이렇게 끄트머리에서 이 자리를 지키고 계시구나. 너무 아픈 목숨들이다. 하나도 빠짐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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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2학년 3반 교실이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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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빨간 책방 오프닝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다. 이 계절의 꽃들이 흰색이 많은 것은 푸른 잎들 사이에서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그런데 지금 보이는 하얀 꽃들은 모두 조화같다고... 내 기분도 꼭 그렇다. 


어버이날을 기념하여 창체 선생님이 학생들과 함께 팝업 카네이션을 만들었다. 가위질 5분 만에 남학생들은 한숨과 함께 못해먹겠다고 두손을 들어버리는 사례 속출. 한 반에 완성시킨 아이가 한 명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직접 만들어 보니 힘들긴 하더라...;;;;


집에 있던 색지를 사용했는데, 종이가 얇아서 내가 원한 만큼의 효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그럴듯한 팝업 카드가 되었다. 흰색 꽃은 카네이션처럼도 보이고 장미로도 보이고 연꽃으로도 보이지만, 어쨌든 한송이 조화로서 펴놓았다.


혹시 누군가 만들어 보고 싶을지 모르니까 도안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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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웃을 일이 없는 요즘이다. 웃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웃을 일이 당최 없기도 하다. 

오늘 유일하게 나를 빵터지게 한 건 이거였다.


https://twitter.com/ifkorea/status/464991882842370048/photo/1


참 tv조선스럽구나.

그러고 보니 엄마가 입원해 계실 때 병원 로비에 내내 틀어져 있던 게 이 방송이었지.

며칠 전에 엄니가 tv조선 보고 계시길래 얼른 다른 채널로 돌려놨는데, 오늘도 이 방송을 보고 계시길래 버럭했다. 

이런 막장 방송은 보지 마시라고. 제발, 제발 보지 마시라고!


그리고 오늘 가장 진지하게 본 것은 이거였다.


어느 한 강남 좌파의 생각


다시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2번 찍어주겠다고 굳게 약속해놓고 막상 투표장에 가서는 1번 찍고 오셨던 엄니의 배신이 떠올라서 잠깐 또 울컥했다. 박근혜가 당선되면 엄마 딸들은 이땅에서 밥벌어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고, 지금보다 더 힘들어진다고 얘기했는데도 기어이 거기 찍는 이유가 대체 뭘까. 실제로 내 친구 중에 이명박이 되어야 세금 덜 내기 때문에 mb찍었다고 말한 친구가 있었다. 갸야 내야 할 세금이라도 많았다지만 가진 것 암 것도 없는 우리 엄마는 대체 왜! 이런 게 우리 엄마만의 이야기는 물론 아니지만...ㅠㅠ


노무현 대통령의 어버이날 편지를 읽었다. 그분이 가신 그날도 다가오고 있다. 여러모로, 4월과 마찬가지로 잔인한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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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저에게는 큰 절을 두번 하는 날입니다. 한 번은 저를 낳고 길러 주신 저의 부모님께 감사 드리는 절입니다. 또 한번은 저를 대통령으로 낳고 길러 주시는 국민 여러분께 감사 드리는 절입니다. 

저는 경남 김해 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판자 석자를 쓰시는 아버지와 성산이씨셨던 어머니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세속적으로 보면 저도 크게 성공한 사람이지만 돌이켜 보면 부모님이 많은 것을 주셨기 때문에 오늘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난을 물려주셨지만 남을 돕는 따뜻한 마음도 함께 물려 주신 아버지셨습니다.
매사에 호랑이 같았던 분이지만 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신념도 함께 가르쳐 주신 어머니셨습니다. 

'내가 아프면 나보다 더 아픈 사람, 
내가 슬프면 나보다 더 슬픈 사람, 
내가 기쁘면 나보다 더 기쁜 사람,' 

오늘 그 두 분에게 하얀 카네이션을 바칩니다. 

국민 여러분! 대통령의 어버이는 국민입니다. 국회의원의 어버이도 국민입니다. 
한 인간을 대통령으로 국회의원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정치개혁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먹기에 달린 일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이 나라의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군말없이 따라야 하는 지상명령입니다.

여러분의 관심 하나에 이 나라 정치인이 바뀌고 여러분의 결심 하나에 이 나라의 정치는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 관심과 결심 또한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어버이의 마음을 가지시면 됩니다. 
어버이는 자식을 낳아 놓고 '나 몰라라'하지 않습니다. 잘 하면 칭찬과 격력를 해주고 잘못하면 회초리를 듭니다. 

농부의 마음을 가지시면 됩니다. 농부는 김매기 때가 되면 밭에서 잡초를 뽑아 냅니다. 농부의 뜻에 따르지 않고 선량한 곡식에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라는 국민의 뜻은 무시하고 사리사욕과 잘못된 집단이기주의에 빠지는 일부 정치인. 

개혁하라는 국민 대다수의 뜻은 무시하고 개혁의 발목을 잡고 나라의 앞날을 막으려 하는 일부 정치인. 

나라야 찢어지든 말든 지역감정으로 득을 보려는 일부 정치인. 

전쟁이야 나든 말든 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정치인. 

이렇게 국민을 바보로 알고 어린애로 아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국민여러분과 제가 할 일이 있습니다. 

제가 할 일은 어떤 저항과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대통령의 의무인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지키는 것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헌법이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하실 일은 어버이의 마음을 가지시고 농부의 마음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에게도 어버이의 회초리를 드십시오. 국민여러분의 회초리는 언제든지 기꺼이 맞겠습니다. 아무리 힘없는 국민이 드는 회초리라도 그것이 국익의 회초리라면 기쁜 마음으로 맞고 온 힘을 다해 잘못을 고치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 있는 국민이 드는 회초리라도 개인이나 집단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드는 회초리라면 매를 든 그 또한 국민이기에 맞지 않을 방법은 없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너 내 편이 안되면 맞는다'라는 뜻의 회초리라면 아무리 아파도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큰 뜻을 위배하라는 회초리라면 결코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굴복하면 저에게 기대를 걸었던 많은 국민들은 기댈 데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굴복하면 저에게 희망을 걸었던 많은 국민들은 희망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민 여러분! 그런데 하나 경계해 주실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집단이기주의입니다. 저는 대통령이 되기 전,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인권변호사로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힘있는 국민의 목소리보다 힘없는 국민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체질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할 때는 그 누구에게 혹은 어느 한 쪽으로 기울 수 없습니다. 중심을 잡고 오직 국익에 의해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중심을 잃는 순간, 이 나라는 집단과 집단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통치는 다릅니다. 비판자와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다른 것입니다. 저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국익이라는 중심을 잡고 흔들림없이 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꼭 이루고 싶은 희망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이익집단은 있지만 집단이기주의가 없는 대한민국입니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국가와 민족 앞에서는 한 발 물러서는 대한민국. 좀 더 가지고 덜 가진 것의 차이는 있지만 서로 돕는 대한민국. 동(東)에 살고 서(西)에 사는 차이는 있지만 서로 사랑하는 대한민국. 바로 화합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입니다. 다른 하나는 세대 차이는 있지만 세대 갈등은 없는 대한민국입니다. 자식은 부모세대가 민주주의를 유보하며 외쳤던 '잘 살아 보세'를 존중하고 부모는 내 아이가 주장하는 '개혁과 사회정의'를 시대의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대한민국. 자식은 부모에게서 경험을 배우고 부모는 자식에게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배우는 대한민국. 자식은 밝게 자라게 해 준 부모에게 감사하고부모는 자식의 밝은 생각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대한민국. 바로 사랑으로 행복한 대한민국입니다. 

국민 여러분!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높은 자리, 많은 돈을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부모님을 한 번 더 찾아뵙지 못한 것, 사랑하는 아이를 한 번 더 안아 주지 못한 것, 사랑하는 가족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답니다. 

저도 IMF 후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전국의 노동자들을 설득하러 다니느라고 어머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일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저의 이 편지가 부모님의 은혜를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 대한민국이라는 가족공동체를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효도 많이 하십시오. 우리 모두의 가슴에 마음으로 빨간 카네이션을 바치며... 


2003년 5월 8일 대한민국 새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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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주기. 알라딘에서 구입할 수 있는 사람 사는 세상 손수건과 티셔츠다.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이 먼저다... 얼마나 뼈에 사무치는 문구던가. 

갈 길이 멀다. 신발끈을 고쳐 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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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5-11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무현의 편지가 유독 다가오네요. 우린 정말 좋은 사람을 잃었어요..

마노아 2014-05-11 07:41   좋아요 0 | URL
국민을 섬길 줄 아는, 국민을 사랑하는 대통령을 잃었지요...ㅠ.ㅠ

blanca 2014-05-11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봐도 울컥하네요. 저 교실. 이게 과연 현실이라니 악몽보다 더 악몽 같아요. 저 아이들을 볼모로 대체 어른들은 뭘 한 건지....

마노아 2014-05-11 12:51   좋아요 0 | URL
정부는, 왜 검찰총장 아들만 찾아준 걸까요... 저런 사진들을 접할 때마다 몇 번이고 마음이 무너져요. 대체 이 나라는 어찌 굴러가는 건지...ㅠ.ㅠ

수퍼남매맘 2014-05-11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텅 빈 교실 보니 또 다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마노아 2014-05-11 21:05   좋아요 0 | URL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입니다. 이 생명들을 다 어찌합니까...ㅜ.ㅜ

paviana 2014-05-12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이 어떤것인지 요즘 조금은 알 거 같아요. 저도 안산 다녀왔습니다. 그 많은 예쁜 아이들. ㅠㅠ 이게 나라냐!!!!

마노아 2014-05-12 13:28   좋아요 0 | URL
오늘 급식지도하면서 애들 식판에 김치를 담아주는데, 그냥 다 내새끼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진짜 자기 자식을, 자기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까요. 정말, 이런 것도 나라냐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