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노래하는 나무 바람 그림책 15
이세 히데코 글.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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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감동을 주는 이세 히데코의 책이다.
악기 상자 안에 아기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제목은 첼로가 들어가 있지만, 아기 크기를 고려할 때 바이올린 상자가 맞을까?
첼로 상자로는 보이지 않는데...
아무튼, 나무 냄새 느끼면서 아기가 곤히 잠들었을 것만 같다.
잠도 달콤하고 따뜻할 테지.
아기 산비둘기 지저귀는 소리까지 들린다면 그야말로 천상의 소리일 터!

새옹알이를 알려주신 할아버지는 숲에서 나무 키우는 일을 하셨다.
할아버지를 따라 숲을 걷는 걸 좋아하던 아이...
어려서부터 자연과 교감하며 살았구나. 아름답다!
할아버지는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바이올린과 첼로 만드는 일을 하신다.
10년, 20년 공을 들여 말린 판자가 악기의 재료가 되었다.
그야말로 장인이자 예술가!
그 나무들 중에는 할아버지가 키운 나무도 있을 것이다.

어느 날은 완성된 첼로를 배달하러 아버지를 따라갔다.
첼리스트 파블로 씨의 집은 넓은 숲 속에 있었다.
도심 속 집이 아니라 숲속 집으로 배달을 갔다고 상상해 보니 더 운치가 있다.
첼로를 켤 때마다 새들도 와서 같이 감상을 했을 테지.
미야자와 겐지의 첼로 켜는 고슈가 떠오른다.
파블로 씨는 첼로를 연주해 보더니 숲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소리라고 말을 했다.
아, 이보다 근사한 평이, 칭찬이 어디 있을까.
만든 사람도, 연주하는 사람도, 그리고 구경하는 아이까지 모두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아이는 숲에서 자랐다. 여름 숲과 겨울 숲을 누릴 줄 알았고, 그 빛깔의 차이를 알았고, 숲을 거닐 때면 할아버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세 히데코 특유의 수채화가 독자를 숲의 향연으로, 연주 속으로 끌어당긴다.

파블로 씨를 두번째로 만난 것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리고 일요일에 있을 연주회에 초대 받았다.
아이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갔다.
반주 없이 첼로가 울렸고, 바흐의 곡이 교회 안에 가득 퍼졌다.
경계선이 없이 이세 히데코의 그림이 빛을 더 번지게 만들었고, 그래서 그 안의 소리도 어우러져 퍼지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아름다운 그림의 아름다운 연주다.

가을 숲의 나무 위에서 아이는 자유로워 보였다.
나무 냄새를 맡고, 새의 노래 소리를 듣고, 바람을 온몸으로 마주하는 이 아이가 자라면 또 어떤 울림을 만들어낼지 기대가 된다.
아이가 악기를 만들어도, 연주를 해도 모두 좋을 것 같다.
그저 숲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기만 해도 충분히 좋을 듯하다.
무엇이든, 누구이든 말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계절, 산에도 몇 번이나 눈이 내렸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할 나무 열매를 줍는 아이의 작은 몸이 정겹기만 하다.
나무 그루터기 끝에 걸터앉아 나이테를 세어 보는 아이.
백 개까지 세고는 다 세지 못했다고 한다.
백 년 이상 살다가 베어진 나무였다.
나이테를 가진 나무의 존재를 알지만, 나이테를 직접 세어본 적이 없다.
세어볼 만큼 오랜 시간 들여다본 적도 없다.
문득 그게 미안해지고 또 쓸쓸해졌다.
오래오래 숲을 바라보고 나무를 느끼는 삶을, 이제는 좀 살아보고 싶다.

아버지는 아이를 위해서 어린이용 첼로를 만드셨다.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지만 주문 받은 일이 밀려서 기간 내에 만들지느 못했다.
그래도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 아이의 첼로를 만드는 아버지의 정성은 충분히 느껴졌다.
얼마나 마음을 가득 담았을가. 이 악기가 울려낼 소리를 그려보면서...
참으로 따스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첼로는 5월 생일선물로 완성되었다.
작은 첼로가 바이올린들과 함께 옥상에 빨래처럼 널렸다.
홍차처럼 투명하고 따뜻한 색깔을 가진 첼로.
그림처럼 아름답고 고운, 전설같은 풍경이다.

아버지는 활을 든 아이의 오른손에 자신의 손을 겹쳐서 직접 연주를 해주셨다.
손가락에, 팔꿈치에, 어깨에, 무릎에 소리가 전해졌다.
아버지의 품 안에서 아이는 첼로가 된 것 같았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감동적인 순간이다.

아이는 계속해서 첼로를 켰다.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었고, 첼로를 만들어 주시던 아버지도, 첼로를 연주하던 파블로 씨도 지금은 없다.
하지만 첼로를 켜면 그 두 사람이 연주 속에 이미 들어와 있다.
숲 속에서 듣던 새들의 옹알이와 강물이 흐르는 소리와 함께.

첼로 켜던 아이는 자라서 첼로 선생님이 되었다.
아버지가 만들어 주셨던 작은 첼로는 여전히 색깔도 광택도 잃지 않고 학생들의 품에서 따뜻한 소리를 내고 있다.

할아버지가 키우던 나무가 아버지의 손길을 거쳐서 첼로가 되었고, 그 첼로 연주를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이 음악을 배우고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그렇게 아름답게 가업이 이어지고 있다.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까.

나무와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세 히데코 작가다.
작가 자신이 첼로를 직접 연주하기도 한다.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도 그렇게 탄생한 전작이다.

큰조카는 피아노를 꼬박 6년 동안 배우고 일년을 쉬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피아노를 배우러 다닌다고 한다.
오래 쳤는데 중간에 쉬면 금세 까먹고 마는 것 같아서 아쉬웠는데 잘됐다.
작은 조카도 열심히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9개월을 배웠는데 요새 '사과 같은 내 얼굴'을 열심히 치고 있다.
음악을 가까이 하는 삶이 우리 것이었으면 한다.
모두에게 충만한 음악의 세례가 있었으면 한다.
기왕이면 이 책의 주인공처럼 자연 속의 소리를 낼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나는 오늘 좋은 음악을 들으러 갈 것이다.
사흘 연속 음악이 있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음악은 가장 아름다운 유혹이자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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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31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을 타면서 사랑스레 자라는 나무처럼
손을 타면서 사랑스레 노래를 들려주는 첼로가 되겠지요

마노아 2014-02-01 23:04   좋아요 0 | URL
사랑받은 그 나무에서 나는 소리라면 더 없이 사랑스러울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14-02-0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이야기와 일러스트네요. 마노아님 음악과 함께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마노아 2014-02-01 23:05   좋아요 0 | URL
좋은 책을 보고 나서인지 어제 좋은 음악 듣고 왔어요.
오래오래 곁에 두고 가까이 할 좋은 책이에요.^^

수퍼남매맘 2014-02-01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 님!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
나도 이세 히데코 팬이에요. 이렇게 수채화를 잘 그리는 그림 작가가 있을까 싶어요.
마지막 사진 진짜 멋지네요. 현 위에 있는 아가가 진짜 앙증맞아요.

마노아 2014-02-01 23:06   좋아요 0 | URL
우와, 복을 짓는다는 표현 아주 마음에 들어요.
수퍼남매맘님도 새해 복 많이 지으셔요~
이세 히데코의 그림은 탄성을 자아내게 해요.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에요.
현 위의 아기가 꼭 그네 타는 것처럼 보이네요. 고운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