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아르고
1979년 테헤란에 있는 미 대사관이 성난 시위대에게 점령당하자 6명의 직원들은 캐나다 대사 관저로 은밀히 피신한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CIA의 구출전문요원 토니 멘데즈(벤 애플렉)가 투입된다. 토니는 '아르고'라는 제목의 가짜 SF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사를 세워 인질을 구출하는 작전을 세운다. 헐리우드 제작자들과 협력해 가짜 시나리오를 만들고 배우를 캐스팅해 기자 회견까지 열었다. 그리고 장소 헌팅이라는 명목으로 테헤란에 잠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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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개란의 줄거리를 다시 조금 줄였다. 이 사건은 실화였으며, 이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전의 배경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역시 영화사 소개를 좀 더 옮겨 보자면
1950년 이란 국민들이 선출한 모사데크 민주총리가 미국과 영국 소유의 정유시설을 국유화해 국민에게 돌려주자, 미국과 영국은 쿠데타를 음모해 모사데크를 축출하고 리자 팔레비를 그 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이 젊은 통치자는 국민들의 굶주림은 아랑곳 하지 않고 파리에서 점심을 공수해 올 정도로 사치를 일삼았으며 그의 아내는 우유로 목욕을 했다. 1979년 분노한 국민들은 기어코 그를 몰아냈다. 그가 미국으로 망명하자 성난 시민들은 미국대사관으로 몰려갔다.
영화 도입부에 이 영화의 배경, 그러니까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미리 설명을 하는데,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와 비슷한 설정의 역사적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대체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얼마나 많은 범죄를 저지른 것인가. 그 죄값은 과연 치를 수 있는 것인가. 뭐 그런 생각들.
뭐, 그건 그렇고, 그렇다 해도 대사관 직원들을 목숨 걸고 구출해 낸 토니 멘데즈의 활약은 충분히 감탄할 만하다. 성공한 작전이라는 것을 알고서 영화를 봤는데도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영화는 조지 클루니가 제작했고, 주인공 벤 애플렉이 연출도 맡았다. 아, 다재다능하여라!
저 멀끔한 배우가 저렇게 수염으로 덮어버리니 인상이 확 바뀐다.
이 작품에서 미국이 폐기한 문서들을 양탄자 만들던 솜씨로 조각조각 모두 이어서 복원했다는 내용을 보았는데, 정말 영화 속에서 그런 장면이 나왔다. 분쇄해버린 대사관 직원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맞추며 대조하는 모습. 어린 아이들의 고사리 손을 빌리긴 했지만 아무튼 놀라웠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을 사놓고 못 봤구나.... 뭔가 좀 겹치지 않을까 기대가 되는데 아님 말고!
영화 속에서 무사히 구출된 대사관 직원들이다. 영화 말미에 실제로 구출된 진짜 직원들의 장면들이 나왔는데 어찌나 똑같이 분장을 시켰던지, 이 사람들이 진짜 그 사람들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역시 영화를 핑계로 댈 만해!
★★★★
72. 내가 살인범이다.
15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쇄살인사건은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한 채 공소시효가 끝났다. 사건 담당 형사 최형구는 자책감과 분노로 15년간 단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한다. 그리고 다시 2년 후, 자신을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밝힌 이두석이 '내가 살인범이다'라는 자서전을 출간한다.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이두석은 참회 퍼포먼스를 하면서 일약 스타로 자리매김한다. 최형구는 마지막에 발견되지 않은 실종자를 미끼로 던져 이두석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공소시효는 끝났지만, 유가족의 고통은 당연히 멈추지 않았고, 특히나 마지막 희생자는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사적 복수를 꿈꾸고 있다. 어찌 보면 '친절한 금자씨'와 비슷하게 보이는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이어지는 반전들에 금자씨와 다른 설정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배우들도 연기를 잘했고, 특히나 초반의 액션씬과 차 위에서의 추격전은 무척 강렬해서 긴장감이 가득했다. 물론, 관성이나 중력 같은 물리학적 법칙들은 간단히 무시해 주지만 영화는 원래 그런 데에는 너그러워야 하는 법!
이두석으로 분한 박시후의 수영장 씬이다. 아, 옷을 입혀도 벗겨도 훌륭해요!
촬영 도중 화장 손보는 장면일까. 공주 거울과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는 손가락이 넘흐 잘 어울려주신다. 예뽀라~
박시후의 머리 스타일이 멋져부러~ 하고 사진을 가져왔는데 지금 보니 옆얼굴 라인도 예술이다. 눈이 호강하네~
도가니 이후 무척 잘 나가주시는 장광 배우님.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닥 좀재감이 없었다. 이분의 확실한 자취는 영화 26년에서 두둥!!!
영화 보고 돌아온 언니가 박시후 팬클럽에 가입을 하겠다는 둥 며칠을 설레발을 쳤다. 물론, 말뿐이긴 했지만 동감할 만큼 예쁘게 잘 나왔다. 다만, 그걸 너무 강조하다 보니 연쇄살인범 팬클럽 역할을 하는 중고생과 대변인 역을 했던 여변호사 등의 과장된 연기는 다소 불편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알겠는데 이건 좀 촌스럽잖아!
이 영화 보고 나서 청담동 앨리스를 무척 기대했던 언니는 거기서 박시후가 찌질하게 나온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안 봐서 모르겠지만, 그런 캐릭터라고 하니 오히려 더 궁금해진다.
★★★☆
73. 브레이킹 던 part 2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회다. 파트 1에 해당했던 작년 개봉작에서 벨라는 딸을 낳으면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고, 에드워드의 노력으로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나면서 끝이 났다. 그리고 이번 완결편에서는 그렇게 뱀파이어로 제2의 삶을 살게 된 벨라와 그녀의 가족, 친구들이 볼투리 군대와 최후의 일전을 벌이는 내용이 전개된다.
사실 원작을 다 읽긴 했는데, 매해 개봉을 기다리는 사이 벌써 수년이 지나서 영화의 일정 부분이 원작을 그대로 옮긴 것인지 아니면 영화에서 바꾼 것인지 확신이 가질 않는다. 친구에게 물어보려고 했는데 만났을 때는 홀랑 까먹어서 물어보질 못했다. 아쉽아쉽.... 그러니까 그 부분이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총체적 부정? 이런 설정은 영화 '그리스도 최후의 선택'에서도 보았고, 강풀의 '타이밍'에서도 이미 만났지만, 극적 효과는 여전히 꽤 컸다.
볼투리가와의 전투는 기대보다 박진감 있었다. 중간에 저렇게 바뀌었어? 라고 비명을 지를 만큼! 아로 역의 마이클 쉰은 왜 그리 귀엽던지... ㅎㅎㅎ 테이큰에서 딸 역할을 했던 배우가 뱀파이어로 나왔는데 비중이 무척 작았다. 이 영화 출연할 당시에는 그닥 유명하지 않았던 것일까?
소설이나 영화니까 가능한 설정이긴 하지만, 뱀파이어의 삶은 무척 매력적이다. 늙지도 않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죽지도 않는다. 아주 강하고 빠르며, 독특한 자신만의 능력도 갖고 있다. 늑대로 변신하는 늑대소년에 비할 수가 없다. 게다가 외모는 또 얼마나 출중해 지던지... 그렇지만 피를 보면 갈증을 느끼는 삶이라니, 그건 끔찍하다. 나름의 '채식'으로 연명하긴 하지만 먹는 즐거움이 고작 그거라니 그것 또한 비극이다. 아무튼, 뱀파이어로 거듭난 벨라는 몹시 예뻤다. 깡말랐지만 그게 흉해 보이지 않고 아주 예뻤다. 어휴 부러워... 딸로 나온 르네즈미도 인형같이 예뻤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저 단아한 이마라니! 옆에 르네즈미 역의 배우는 눈이 참 예쁘다. 똘망똘망~
얼마 전에 로버트 패틴슨과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결혼한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이미 했다는 건가 할 거라는 건가. 둘 다 나이가 많지 않은데 헐리우드에선 결혼도 일찍 하고, 헤어지기도 잘 하고, 다시 합치기도 잘 하고... 그야말로 연애 천국인가???
(아마존 스타일이지만 '아바타' 스타일로 보인다. ㅎㅎㅎ)
하여간 영화는 끝났다. 그리고 이제 호빗이 3부작 중 1부를 개봉했다. 시리즈 영화를 시작하는 건 몹시 피곤한 일이지만 커다란 스케일은 보는 즐거움이 있다. 다음 편 나올 때는 앞의 이야기를 까먹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
74. 26년
영화 26년은 제작이 여러 차례 무산되면서 시민들의 참여로 제작비를 모아 드디어 개봉하게 되었다. 이때 후원금을 보낸 사람들을 시사회에 초대해 주었는데, 그 자리를 언니와 함께 다녀왔다.
원작이 2006에 연재되었기 때문에 80년 광주로부터 26년이 지난 시점을 의미한다. 연재 당시 있었던 에피소드들은 강풀 북콘서트 후기를 참조하시라~
지금은 이미 2012년이니 80년부터 따지면 32년이 맞겠지만, 영화는 26년이라는 제목을 고수했다. 그러니 사실상 이 사건도 과거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고, '현재'의 이야기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대체한다.
광주의 학살범은 여전히 통장 잔고 29만원으로도 호의호식하며 얼굴 빳빳이 들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영화 속 김갑세처럼 용서를 빌라는 말이, 이제는 무의미하게 들린다. 심미진의 대사처럼 우린 그 사람한테 사과할 기회, 충분히 주었으니까. 자그마치 26년, 그리고 또 6년이 흘러버렸으니 말이다. 혹시라도 대선 결과가 좋았다면 뭔가 변화가 있었을까? 추징금 기한이 내년이면 끝나는데, 그는 또 다시 그렇게 자유를 찾는 것일까? 다시 또, 한없이 한숨이 솟는다. 이런 파렴치한 사람들에게는 '명예'란 애당초 아웃 오브 안중.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돈을 빼앗기는 것일 텐데, 이거 법이 좀 바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후우....
초반 광주의 장면은 애니메이션으로 대체했다. 감독 인터뷰를 보니 제작비 때문이라고 했다. 실사로 찍으면 어마어마한 물량이 투입되어야 했을 것이다. 애니는 무척 잘 빠졌고(심지어 배우들도 똑같이 생겼고!) 시각적 효과도 컸다. 영화 초반부터 어찌나 놀랐던지...ㅜ.ㅜ
이전 캐스팅 류승범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서 진구에 대한 기대가 그다지 없었는데, 그는 200% 연기로 답을 주었다. 배역도 잘 소화해 내었고, 울림도 컸다. 심미진 역의 한혜진도 다시 보였다. 소속사에서는 CF도 끊길 거라며 말렸다던데, 한혜진은 그래도 괜찮다며 출연을 결정했다. 개념 배우다.
장광 씨는 '그 사람' 역에 아주 잘 어울렸다. 이전에도 드라마에서 동 배역을 맡았던 적이 있다고 하신다. 흐음, 처음이 아니었구나.
이 영화의 탄생에는 강풀 작가뿐 아니라 이상호 기자의 활약도 큰몫을 했다. 그가 취재해서 고발한 많은 것들이 이 작품의 소재가 되었으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나한테 감정이 좋질 않아.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서... 껄껄껄~
이 장면이 그가 실제로 방송에서 말한 거라는 걸 알아차리고 뒤늦게 충격을 받았다. 영화 속 대사라고 해도 섬뜩한데 실제로 이런 말을 뱉었다니. 당시 그 방송을 본 광주의 유족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다시 또 대선으로 돌아가서, 이번에 전라도, 특히 광주 분들께 많이 미안하다. 그분들의 상처는 언제 보듬어지려나.... 깝깝하다.
영화가 끝나면 헨델의 '울게 하소서'가 울려퍼지고, 제작 두레에 참여한 깨시민들의 이름이 자막으로 올라간다. 저거 다 보는 데 대략 10분 정도 걸린다. 느긋이 음악 감상하며 이름 보는 재미가 컸다. 누군가 '미안합니다'라는 이름으로 입금을 했던데 마음이 짜안했다. 근데 저 이름들은 후원금 5만원 이상만 올라간 것이다. 2만원 후원금 보낸 사람들 이름은 지못미였다.ㅜ.ㅜ
영화의 1호 투자자이면서 ost '꽃'의 뮤직비디오를 담당한 울 공장장님의 귀여운 V자가 눈에 띈다.(라고 썼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ㅜ.ㅜ) 임슬옹 군은 교통사고를 당했던가. 하여간 아파서 휠체어 투혼!을 보여줌.
울 보스의 A8 이어폰이 갖고 싶다. 비싸서 엄두가 안 난다. 보스는 저 이어폰을 노래할 때 '모니터링' 용으로 쓴다.
영화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작전이 실패로 끝나면서 끝이 난다. 처음 원작을 읽었을 때는 그게 불만이었다. 현실과는 다르지만, 그렇게라도 그 사람이 '심판' 받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니다. 그랬다면 '카타르시스'는 느낄 수 있겠지만 그걸로 끝일 테니까. 거기서 한발자국 더 나가려면 우리는 현실을 돌아봐야 한다. 이 영화의 엔딩에서 청와대가 멀리 보이는 광화문을 정면으로 보여준 것처럼.
★★★★
75. 남영동 1985
이 영화는 보고 싶었던 영화이기보다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보는 게 꽤 힘들 거라고 여겼는데 확실히 힘들었다. 이 영화는 엄마를 모시고 언니와 함께 봤다. 나중에 엄마와 함께 26년도 보았는데, 이 모든 건 나름 투표를 위한 포석이었다. 힘들게 쟁취한 민주주의의 고마움, 그리고 그것을 탄압한 독재 세력에 대한 반감을 보여주기 위해서.
저 두 배우는 영화 26년에도 같이 나온다. 배우 이경영은 26년의 김갑세보다 이 작품에서 맡은 이두한(고문기술자) 역이 더 잘 어울렸다. 미안하게도.
영화는 두시간 내내 김종태가 무참하게 고문받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고 김근태 씨의 삶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고, 반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울 엄니처럼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온 경우도 일부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소화하기에 이 영화의 적나라한 고문들은 그야말로 관람 자체가 고문이 될 것만 같다. 물론 고문 당사자가 겪은 수십 년의 고통에 비하면 두달 동안 고생한 배우와, 두 시간짜리 고통에 참여한 관객으로서 불만을 내놓는 게 미안하기는 하다. 다만 이걸 좀 더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고 소화시킬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근태는 유언으로 2012년을 점령하라고 했는데, 영화를 볼 당시에는 그 첫발자국을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한숨만 푹푹 나온다. 죄송합니다.ㅜ.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얼마 뒤 손석희의 시선 집중 '토요일에 만난 사람'에 방배추(방동규) 씨가 출연했다. 2주에 걸쳐 방송이 나왔는데, 이분 말씀이 당시 김근태 씨가 끌려갔을 때 말 안 들으면 방배추처럼 맞을 수 있다고 협박을 받았더랜다. 방배추가 받은 고문은 이보다 더 가혹했다는 이야기. 그런데도 방배추는 수십 년 뒤 길에서 마주친 이근안이 도망가는 것을 붙잡아서 기어이 고기를 사주셨다고 한다. 근데 염치 없게도 이근안이 너무 많이 먹었다고....;;;; 해서 돈이 모자라서 집사람에게 돈 들고 오라고 연락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 주셨다. 이것 참 웃을 수도 없고....;;;;;
★★★
76. 비지터
광화문 씨네큐브의 주인이 바뀌었을 때 상업영화 일색으로 바뀔까 봐 걱정이었다. 다행히 그후로도 씨네큐브는 비상업적인 좋은 영화들을 많이 소개해 주었다. 이 작품도 그렇게 만났다.
20년째 같은 시간, 같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단조로운 삶을 살던 월터 베일 교수. 논문 발표를 위해 뉴욕으로 간 그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예상치 못한 불법 이민자 ‘타렉’ 커플과 마주친다. 월터는 갈 곳 없는 그들을 잠시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고, 타렉은 감사의 뜻으로 그에게 젬베를 가르쳐 준다. 밝고 경쾌한 젬베의 리듬은 경직된 그의 삶을 살며시 두드리고, 클래식만 듣던 노교수의 건조한 삶에는 서서히 활기가 찾아온다. 그렇게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두 사람의 서먹한 관계와 경계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던 어느 날, 타렉이 불법 이민자 단속에 걸려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는데…
단조로운 삶에 젬베라는 악기를 통해 변화를 준 것도 월터에게는 큰 일이었다. 그가 자신의 집에 무단거주를 한 이민자들을 머물게 해준 것은 신사적인 매너의 자연스런 발현이었을 테지만, 그가 불법 단속에 걸린 타렉을 위해 동분서주한 것은 그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보다 뜨거운 감정 덕분이었을 것이다. 아닌 척 포장하고 근엄을 떨기도 했지만, 그가 스스로 까발린 자신의 모습, 그리하여 자신이 마주친 제 모습과의 조우가 영화 속에서 참 좋았다. 해피엔딩으로 정리하기 위한 무리수를 두지 않은 잔잔함도 좋았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든 것은 제목이다. 꼭 '비지터'라고 영어 발음 그대로 써야 했을까? 이런 영화 제목은 비단 이 작품뿐 아니라 여러 작품 들에서 보여주는 추세이긴 한데 참 못나 보인다. 우리말로 번역해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것들을 굳이 영어 제목으로 표현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방문객' 혹은 '방문자'라고 해도 중의적으로 여러 의미들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
77. 돈 크라이 마미
사실 이 영화는 26년과 남영동 1985를 보고 난 직후였다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감정적으로 힘든 영화만 연달아 보는 것이 될 테니까. 하지만 다행히 그 사이에 '비지터'를 보면서 감정의 순화 과정이 있었다. 해서 보았는데, 괜히 봤다는 생각이 든다. 줄거리 이상을 보여주지 않은 영화였다. 성폭행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데, 단지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법의 심판을 비켜가는 이야기는 많이 접했다. 만화 속에서, 소설 속에서, 그리고 영화 속에서도... 또 '내가 살인범이다'와 마찬가지로 유가족의 사적 복수에 대한 것도 이미 많이 접했다. 대표적인 게 친절한 금자씨와 세븐 데이즈. 그런데 이 영화는 뭔가 다 어설프다. 당연히 이 작품에 나온 범죄 사실은 공분을 일으키기 충분하지만 그걸 소재로 삼아 영화 속에 녹여내기엔 여러모로 부족해 보였다. 특히나 여기 출연한 동호는 심하게 연기를 못했다. 제목을 치니 연관검색어에 동호 발연기가 뜬다. 누구나 그렇게 보였나 보다. 드라마 로열 패밀리에서도 연기 참 못했는데 여전히 별로네. 남보라가 분한 피해자 학생이 어리기도 했고, 이 사건으로 너무 큰 충격을 받았고 도움의 대상이 마땅히 없기도 했지만, 두번째 사건은 답답해서 많이 화가 났다. 마지막에 유오성은 왜 총을 다리나 팔에 쏘지 않았는지도 좀 납득이 가질 않고... 여러모로 많이 부족했다.
★★☆
11월의 첫째 주에는 항상 정모가 있었다. 그러니까 십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우리가 좋아하는 배우의 생일 주간이기 때문이다. 외국 사람이기 때문에 늘 우리끼리의 모임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이어지는 우리만의 모임이다. 이날도 어김 없이 멀티방을 예약해서 다섯 시간 동안 수다를 떨고, 2차로 떡볶이를 먹고, 3차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이어졌다. 난 3차는 가지 않고 돌아오긴 했지만, 아무튼 몹시 재밌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애정도 10년 이상 훌쩍 지나가면 '빠'가 '까'가 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 우리는 초은준 얘기는 케이크에 촛불 끌 때와 그가 출연한 방송을 볼 때 정도로 대략 1시간이 못 되는 시간만큼만 쏟고, 나머지 네 시간은 오로지 이민호 얘기로 보냈던 것 같다. 때마침 드라마 '신의'가 끝난 시점이었고, 우리는 김희선의 연기 변화와 이민호의 미모 찬양에 열을 올렸다. 당시 우리가 가장 환호했던 사진은 이거다.
드라마 1회의 한컷이다. 현재 내 핸드폰 바탕화면이기도 하다. ㅎㅎㅎ 푸른색이 잘 어울리네~ 신의는 송지나 각본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허술하긴 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재밌게 보았다. 그 덕분에 뒤늦게 '시티헌터'를 챙겨보았는데, 원작 만화 시티헌터와는 너무 무관했지만, 불의를 응징하는 로빈훗이나 임꺽정 같은 캐릭터가 시원한 맛이 있었다. 그 안에서 묘사된 돈과 권력을 쥔 사람들의 나쁜 행태는 피를 끓게 했는데, 아마도 현실에서는 그보다 나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속이 부글부글... 역시나 선거 결과를 떠올리며 부글부글.....;;;;;;;
11월 16일에는 시청 광장에서 있었던 '26년 콘서트'에 다녀왔다. 비가 몹시 많이 오는 날이었고, 그래서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도 온통 다 젖었던 악조건이었지만 몹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당시의 후기는 요것!
이날 집에 가려고 돌아나오려던 찰나, 누군가 나를 불렀다. 학생 둘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서 나에게 잠시 인터뷰를 해도 되겠냐고 묻는다. 서울대학고 영상제작 동아리 생틀(생각을 담는 틀)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이들은 '제5공화국'에 대한 다큐를 제작 중이라고 했다. 여전히 비가 많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서 인터뷰에 응했다. 내게 던진 질문든 대략 이랬다. 5.18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지, 얼마 전에 있었던 육사 사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런 사건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과,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등등등....
5.18과 전두환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흥분하며 이야기를 했고, 추징금 꼭 받아내야 한다며 역시 광분했고,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선거에서 일단 이기는 거라고 못 박았고...(ㅜ.ㅜ)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바른 사회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 했다. 그러기 위해서 언론이 바로 서야 하고 역사 교육 제대로 시켜야 한다고. 그리고 그를 위한 작은 실천의 일환으로 이 영화가 잘 되어야 한다고(막간을 이용한 홍보!) 강조했다. 질문을 더 던져 주었더라면 이 왜곡된 현대사의 뿌리는 전두환 박정희를 거슬러 올라가 이승만이 제일 문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 친구들이 생각보다 질문을 많이 안 던졌다. 자체 상영하는 작품이라서 내가 볼 기회는 없겠지만, 아무튼 그 학생들의 작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1월에는 뮤지컬을 두편 보았다. 황태자 루돌프와 맨 오브 라만차. 두 작품은 같은 날 예매했다. 같이 보기로 한 언니가 멀리 진주에서 왔는데, 차비가 부담스러운지라 하루에 몰아서 보기로 했다. 먼저 오후 두시에 충무아트홀에서 '황태자 루돌프'를 임태경 버전으로 보았다.
그 자체로 황태자스런 임태경이었지만, 작품은 많이 재미 없었다. 꽤 졸다가 나왔다. 내 돈...ㅜ.ㅜ 어제 만난 내 친구는 안재욱 버전으로 보았다던데 그 친구도 무척 지루했다고 한다. 배우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루돌프의 엄마를 주인공으로 한 '엘리자벳'를 무척 인상 깊게 보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 작품인 이 뮤지컬을 꽤 기대했었다. 그런데 기대에 많이 못 미쳤다. 작품은 '자살'로 루돌프의 죽음을 다뤘지만, 프로그램을 읽어보니 '타살' 쪽으로 더 기운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이어 밥먹을 새도 없이 부랴부랴 잠실로 이동해서 샤롯데 씨어터에서 '맨 오브 라만차'를 보았다. 류정한 주연이었는데, 이 작품은 류정한 팬클럼 '건승정한'의 전관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전체 좌석을 류정한 팬들이 통으로 예약해서 본 것이다. 그 덕분에 40% 할인을 받아서, 루돌프보다 저렴하게 표를 끊고 더 좋은 좌석에서 볼 수 있었다. 가족석이 4자리 있었는데, 류정한은 할인 안 된 가격으로 전액 텔레뱅킹을 했더라. 그것 보고서 괜히 더 좋아함. ㅎㅎㅎㅎ
작품은 세르반테스가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자신의 작품 속 돈키호테를 연기해 내는 액자식 구성이었는데, 내내 괴롭히던 졸음을 단번에 쫓아내는, 강렬하고도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뮤지컬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출연 배우들이 나왔고, 무대 뒷이야기와 작품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내가 저 배우라면 이 시간이 얼마나 벅찰까, 괜히 감정이입이 되어서 더 뜨거웠다.
팬클럽에서 준비한 티켓 봉투와 이벤트 선물이다. 예쁘다!
정말 함께 해서 더 좋았다.
프로그램을 배우 별로 따로 팔았다고 하던데, 나는 사지는 않았다. 지출이 많은 하루였으므로 자제 모드!
라만차 로고가 마음에 든다. 돈키호테스럽다. 자유롭고 당당하다.
그밖에 11월에 있었던 특별한 일이라면 역시 운전 면허증을 딴 일! 비록 자동차가 폐차장으로 직행해서 면허는 바로 장농행이 되었지만, 자가 운전할 어떤 날이 언젠간 오겠지. 그러면 지방으로 공연을 보러 다닐지도 몰라...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