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루퍼
시간 여행이 가능한 세상은 몹시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위험하다. 누군가의 자의대로 움직여지고 변형될 수 있는 시간, 그 속의 역사라니. 위험하고 또 위험하고, 그렇지만 궁금한 세상이다.
암흑의 도시로 변해버린 2074년 캔사스. 시간 여행은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거대 범죄 조직들 사이에서 비밀리에 이용되고 있다. 완벽한 증거 소멸과 시체 처리를 위해 미래의 조직들은 제거 대상들을 2044년에 활동하고 있는 '루퍼'라는 킬러들에게 보낸다. 루퍼들은 계약직이다. 그들은 일을 하다가 결국엔 미래에서 보내진 '자신'을 제거해야 하고, 그 대가로 30년 동안 보장된 삶을 산다. 만약 마음이 약해져서 자신을 제거하지 못했다면? 그렇다면 조직의 제거 대상이 될 뿐 아니라, 미래에서 온 자신도 시간의 어그러짐 속에서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이래도 저래도 암흑인 세상에서 보장된 30년이라도 충분히 살자는 마음으로 킬러 '조(조셉 고든 레빗)'도 은괘를 모으며 살았다. 그런 그에게 미래의 그(브루스 윌리스)가 온다. 영화는 미래의 자신을 무사히 제거하고 30년을 더 살아낸 브루스 윌리스의 궤적을 보여주다가, 그가 30년 계약이 끝나고 난 뒤 조직으로부터 버려져 과거로 돌려보내지는 장면에서 극적 전환을 이룬다. 30년 세월 동안 더 노련해지고 더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브루스를 그보다 미숙하고 불안한 조셉이 따라가질 못한다. 둘 모두 목적이 있고,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 그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희생이 따른다. 영화를 보면서 오이디푸스 왕을 떠올렸다. 나는 그가 겪은 모든 비극의 원천에는 신탁이 있다고 믿는다. 신탁을 받지 않았더라면, 아니 믿지 않았더라면, 아니 믿었다고 해도 아들을 버리지 않고 끌어안고 살았더라면... 그 모든 악순환의 고리를 잘라낼 수 있지 않았을까. 조는 고리를 끊어낼 줄 알았다. 다행이다. 무척 매끄럽고 마음에 드는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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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이 브루스로 변해가는 과정이 재밌었다. 단지 이마를 넓히고 머리 숱을 없게 했을 뿐인데 놀라우리만치 똑같은 한사람이 되는 게 아닌가!
★★★★
64. 우리도 사랑일까
설레임이 익숙함으로 변할 때, 사랑이 무뎌지고 더 이상 흥분되지도 긴장되지도 않을 때, 그럴 때에 새롭게 나타난 사랑이라니... 아침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소재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영화는 무척 섬세했고 그래서 무척 깊은 울림을 주었다. 마고와 남편 루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루는 좋은 남편이었고, 마고는 그런 루를 사랑했다. 그런데 모든 게 무료해진 찰나, 여행에서 마주친 설렘을 주는 마자가 바로 옆집에 사는 게 아닌가. 게다가 이 남자, 마음에 품은 여자가 유부녀이기 때문에 절대로 선을 넘지 않는다. 심지어 30년 뒤에 키스를 하자고 약속을 하는 로맨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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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로맨틱하고 섹시한 장면은 섹스 씬이 아니라 바로 저 마티니 씬이다.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지만 남자는 말로 여자를 애무하고 절정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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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뒤 등대 앞에서 키스하자는 그 엽서를 등장했을 때, 영화가 이대로 끝나기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시점에서 영화가 시간을 뛰어넘어 30년 뒤 해후하게 된다면 로맨스는 완성이 될지도 모르겠지만(여자가 30년 뒤라면 남편에게 덜 미안할 거라고 말했다. 대충 그런 대사였는데 기억이 잘...;;;) 너무 영화같은 얘기 아닌가. 영화는 그런 뻔한 결말을 뒤집는다. 이렇게 마음을 뒤흔들어버린 남자하고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첫 남편 때와 마찬가지로 권태가 오고 지루함이 스며든다. 그걸 대사 없이도 영화는 영리하게 표현한다. 첫 시작이 머핀 굽는 장면이었는데, 마지막도 머핀으로 끝난다. 그 사이에 흐른 시간과 여자의 변화, 그럼에도 제자리인 것만 같은 마음의 추까지.
캐나다의 국민배우로 사랑받은 감독은, 4살에 데뷔해서 30년 동안 배우 커리어를 쌓은 여성이다. 여성 특유의 그 섬세한 연출이 제대로 빛을 냈다. 듣기로, 앞의 저 마티니 씬은 일부러 긴장감을 위해 리허설 없이 바로 찍었고, 동네를 거니는 장면은 진짜 동네 주민처럼 보이기 위해서 익숙해질 때까지 리허설을 많이 했다고 한다.
수영장 씬처럼 곳곳에서 웃음도 터져 주었고, 마티니 씬에서는 에로틱한 감동을, 엽서에서도 소녀지심을 제대로 폭발해 주었다.
어찌 보면, 영화의 결말은 조금 씁쓸하다. 우리도 사랑일까...하고 물었다. 그럼에도, 사랑이라고, 그래도 사랑이라고 답해 주고 싶다. 내게 묻는다면.
참, 음악도 아주 좋았다. 오감이 만족스런 영화였다.
에미와 레오도 시간이 더 지나면, 혹시 마고처럼 될까?
그건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
65. 회사원
하하핫, 이 영화는... 그냥 소지섭을 위한, 소지섭에 의한, 소지섭의 영화다. 간지 소지섭을 보기 위한 것 이상의 어떤 의도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볼 만했다.
살인 청부 회사 영업 2부 과장 지형도가 부장으로 승진했다. 직장에서 무리 없이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지형도는 슬슬 이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어디 조직이 그걸 허용하겠는가. 형도의 마음을 흔들리게 한 것은 역시 여자였다. 알바생 훈이의 엄마 미연 역은 같은 이름의 이미연이 맡았다. 십대 시절에 데뷔했던 가수 출신의 유미연(본명 육미연...ㅋㅋㅋ)은 현재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엄마이며 봉제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형도와 미연이 서로에게 끌리는 과정은 그닥 설득력이 없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진행됐다고 하고, 이제 회사로부터 버림 받은 형도가 그 회사에 복수하는 일만 남게 된다. 무지막지한 총격전이 벌어지고, 내용이야 어떻든 우리의 지섭 씨는 멋진 액션을 선사하고, 뭐 그런 영화였다. 내용은 좀 그래도 지섭 씨는 멋진 주인공이었는데, 이미연은 이 영화에 왜 출연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제작진 측에서는 십대 시절 풋풋한 모습을 간직한 그녀의 옛 사진이 필요했던 것일까? 요런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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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의 시선 집중에서 인터뷰한 것을 들으니 무척 오랜만에 고른 영화였는데, 심사숙고 끝에 악수를 둔 게 아닌가 싶다. 비중도 너무 없고, 역도 좀 별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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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20년도 더 전의 저 사진보다 이 사진이 더 근사한 걸!
이경영은 스캔들도 한몫을 했겠지만, 어째 나이들수록 더 기름지고 혼탁한 느낌이 들어서 악역에 점점 더 잘 어울리고 있다. 그래서 요즘엔 '활'처럼 좋은 역할은 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버림. 어쨌든 꾸준히 영화에 나오고 있다. 유령에서 호흡을 맞췄던 곽도원과는 사실 이 작품에서 먼저 만났다고 한다. 유령과는 차별된 연기를 보여주었다.
암튼, 무척 별로였던 영화지만, 그럼에도 지섭 씨는 멋진 까닭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출근을 해보니, 직장에서 가장 잘 생긴 미술샘 얼굴이 오징어로 보였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내 휴대폰 배경화면은 이 얼굴이었다.(지금은 다시 이민호...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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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피오릴레
야곱이 뉴이탈리아 영화제 시사회에 가자고 연락을 해왔다. 영화는 91년 작이어서 몹시 옛스런 필름이었지만, 또 갈등 구조도 어느 정도 뻔하긴 했지만 그래도 200년에 걸친 사랑과 저주의 고리를 무척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저주를 믿지 않고 무시한 후손은 비교적 안전하게 살아남았지만, 선조들에게서 전해진 저주를 의식하고 믿고 살아온 후손은 그 덫에 걸려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무척 섬뜩하기까지 했다. 여주인공은 '지중해'의 주인공이라고 나오는데, 지중해를 어릴 때 무척 재밌게 봤던 것은 기억이 나지만 배우 얼굴까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튼, 지중해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개봉이 2005년이던가, 무척 느즈막하게 소개가 되었다. 그리고 뉴이탈리아 영화제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2012년에 나와 만났다.
영화를 마치고 나서 다과회(?) 시간이 이어졌는데, 각종 음료와 와인이, 그리고 약간의 떡과 과일이 제공되었다. 오홋, 맛나라, 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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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나는 와인을 잘 못 마셔서 그냥 포도 쥬스 마셨고, 와인은 모두 야곱이 마셨다. 술 좋아하는 야곱! ㅎㅎㅎ
책도 선물 받았는데 아직 보진 못했다. 영화 관련 책으로 보이는데 어째 제목부터 너무 어려워 보인다...;;;;
★★★★
67. 위험한 관계
워낙 리메이크가 많이 된 작품인지라 특별히 내용 소개는 불필요할 것 같다. 동제목의 헐리우드 영화나 발몽 등은 제목만 섭렵했고,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우리나라 작품 '스캔들, 조선 남녀상열지사'였다. 내 기억에 배용준과 전도연의 사랑이 무척 애틋하고 안타까웠는데, 다시 만들어진 허진호 표 위험한 관계는 그만큼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1930년대 상해를 배경으로 더 화려해지고 볼거리도 많았지만 그게 마음을 울리지는 못했다는 게 나의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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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로 듣는 장동건의 목소리는 여전히 근사했다. 자신의 취향이든 아니든, 어쨌든 장동건은 공식 미남! 이 영화에서도 조각 미남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했다. 그렇지만 내 눈을 더 사로잡은 것은 장백지였다. 나는 그녀가 장쯔이의 역할을 했어도 무척 잘 해냈을 거라고 믿는다. 파이란의 그 청순했던 연기를 떠올려 본다면. 영화의 전개는 장동건이 장쯔이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찾는 걸로 나오지만, 글쎄... 영화를 보니 난 그가 장백지를 더 사랑했다는 생각이 드니 이를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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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쯔이 역시 장백지의 역할을 했어도 아주 잘 해냈을 거라고 믿는다. 빼어난 미모를 가졌다기 보다 천의 얼굴을 가졌다는 느낌이 더 든다. 그녀의 작품들은 대체로 좋았다고 기억한다. 얼라, 그런데 주연 배우 세명이 모두 장씨네!!
허진호 감독의 작품은 8월의 크리스마스가 가장 좋았다. 봄날은 간다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그닥이었고, 외출도 내게는 설득력이 약했다. 오감도도 보긴 했는데 여러 작품 중 어느 걸 만들었지?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나 보다.^^
뭐랄까. 멜로에 올인하는 감독같기는 한데, 그 멜로가 내게 감동까지 주지는 않는다.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
68. 용의자 X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소설을 무척 재밌게 읽었다.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이 영향을 주었겠지만 나는 다소 지루했다. 무엇보다 여주인공을 연기했던 이요원이 캐릭터 설정과 이미지가 좀 안 맞는 것으로 보인다. 업소녀라고 이렇게 청순하지 말란 법 없지만 아무래도 좀 안 어울린다. 그에 비해서 류승범은 너무, 지나치게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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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무대 인사 때의 모습도 캐릭터와 여전히 잘 어울림.ㅎㅎㅎ 뭔가 천재적이고, 음습하고, 위태로운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얼굴이다. 사진은 올리지 않았지만 조진웅 씨도 연기 좋았다. 이분,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방은진 감독의 작품인데 전작이었던 오로라 공주가 더 좋았다. 그런데 이 분 스릴러에 무척 관심이 많으신가 보다. 이번 작품은 그냥 그랬지만, 다음 작품은 여전히 기대가 된다. 그나저나 영화에 나온 그 도시락집 정말 있나? 무척 맛나 보이던데...
★★★☆
69. 007 스카이폴
007을 본 건 무척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에 본 게 007 네버다이였던가? 피어스 브로스넌 주연이었고, 못해도 10년은 훌쩍 넘었을 것이다. 본 시리즈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열광하고 나니, 고전의 고전인 007은 그동안 내 관심 밖의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작품은 어쩐지 보고 싶었다. 50주년 기념판이어서는 아니고, 그냥, 끌렸다. 그리고 내 선택은 꽤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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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007은 최첨단 무기를 달고 다니던 그런 첩보원 아니었던가? 아무튼 이 영화에서 007은 무척 아날로그적이었다. 그가 작전 수행 중에 급하게 탈취해서 탄 오토바이도 구형이었고, 나중에 격전의 장소에서 쓰는 자동차와 총, 칼까지 모두 무척 옛스러웠다. 그런데, 그게 아주 잘 어울린다. 작품에서 그는 이제 늙었고, 체력테스트도 통과하지 못할 만큼 뒤쳐진 요원이 되어버렸지
만, 여전히 뚝심 있었고, 날카롭게 판단해냈고, 무엇보다 임무를 완수해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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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이 터지는 볼펜 따위 만들지 않고도 Q는 멋있었다. 그가 향수에서 그루누이 역이었다니, 분위기가 몹시 다르다. 여기서 비행기도 못 타는 약골처럼 나왔지만, 저 비리비리 사내가 왜 그리 섹시하게 보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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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본드걸! 이번 편에서 본드걸이라 불릴 만한 인물은 이렇게 두 사람이다. 섹시함으로 무장한 첫번째 여자는 사실 별로 섹시해 보이지 않았고 역할도 너무 미미해서 본드걸이라 부르기도 민망했다. 두번째 배우는 첩보원으로서 역할이 좀 미미해서 역시 그닥 본드걸 스럽지 않았다. 이 여자가 가장 섹시했던 건 007의 수염을 면도해줄 때였는데, 사실 그때도 이브보다 007이 더 섹시했다. 그래서 고민의 결과, 본드걸은 주디 덴치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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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 없이 명을 내리고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끌어내려고 하는 냉혹한 책임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무척 키가 작은 배우인데, 저 강인한 눈빛과 입매에선 거인의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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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007의 적은 냉전시대의 인물들이었지만 이제는 내부의 적으로 돌아섰다. 그만큼 소재가 고갈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 내부의 적으로서, 007만큼의 능력을 보유한 악당으로 하비에르 바르뎀은 무척 어울리는 조합이다. 그가 가진 분노도 잘 이해가 되었고 말이다.
본드 역할의 다니엘 크레이그는 인상으로 보면 무척 독일스럽다고 느꼈는데 영국 출신 배우다. 역대 본드가 모두 영국 출신이었나?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찾아보기는 귀찮구나.
초반에 본드가 총맞고 폭포로 떨어졌을 때 나온 아델의 노래가 무척 좋았다. 영화 제목과 똑같은 스카이폴이었다.
재밌게도, 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집에 돌아와 보니 나는 가수다에서 국카스텐이 한영애의 누구 없소를 편곡하면서 007주제곡을 샘플링해서 부르고 이달의 가수가 되어 가왕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그 노래가 유독 더 좋았던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skyfall은 본드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떠나온 저택의 이름이기도 하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저택의 지하에 숨어 있다가 나온 소년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니라 사내가 되어 있었고, 정체성의 혼돈을 주었던 그 장소는 결전의 장소가 되어 무너지고 말았다. 작품 속에서 본드는 자신의 주특기가 '부활'이라고 했다. 그 말처럼 본드는 다시 부활하고, 007 시리즈 역시 50주년을 다시 기점으로 삼아 새출발하는 게 아닐까. M은 죽었지만 새 인물이 등장했고, 그렇게 이 유서 깊은 시리즈는 제 몫을 다해낼 것이다. 비록 앞서 말한 것처럼 액션으로 따지면 본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만큼의 극적인 재미는 덜해도, 007만의 장점과 특징을 잘 갖춘 작품이었다.
★★★★★
70. 늑대 소년
나야 송중기가 좋아서 본 영화인데, 이 영화가 예매율 1위를 점유하며 이렇게 잘 나갈 거라고 생각 못했다. 모두 나처럼 송중기 보러 온 건가???
뭐 암튼, 영화는 이미 현실을 살고 있는 순이 할머니가 47년 전에 만났던 늑대 소년을 추억하면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폐병을 앓고 있는 순이를 위해서 순이의 엄마는 요양차 시골의 저택으로 이사를 가고, 그곳에서 정체불명의 소년을 만난다. 이름도 없는 이 아이에게 범국민적 이름 '철수'로 명명하고, 순이는 그에게 글자도 가리키고 말도 가리키면서 소통을 해나간다. 이십여 년 간 세상에서 격리되어 살아온 아이가 말을 익힌다는 건 말이 되지 않지만, 뭐 암튼 영화는 판타지 멜로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엄청나게 굶어서 눈에 뵈는 게 없는 짐승의 모습을 송중기는 열연해 주었고, 또 소녀밖에 모르는, 배우자 하나만 쳐다보고 사는 늑대의 본능도 제대로 보여주었다. 늑대 소년이 소녀와 헤어지게 되는 사건들의 전개는 좀 작위적이었지만, 소년과 소녀의 사랑은 동화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절절했다. 카피처럼 '세상에 없던 사랑' 말이다.
47년이면 긴 시간이다. 그 시간동안 소녀는 자신의 삶을 살았다. 그녀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잊고' 살았던 것이 더 큰 배신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까지 보고 나면 참 아련해진다. 말도 안 되는데, 참 슬퍼서 또 말이 나오질 않아...;;;;;
송중기가 여자 한복 입은 장면이 나오는데, 예쁘다! 화장으로 얼굴 망치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CG는 정말 당황스러울만큼 조잡했는데 그냥 우정(?)으로 극복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에 이어 세상에 없는 사랑을 보여준 송중기, 올해는 송중기가 갑인가 보다. 현재 내 핸드폰 바탕화면은 이민호인데, 이번주에 착한남자 끝나면 송중기로 갈아탈지도...ㅎㅎㅎ
★★★
그밖에 10월에는 '차카게 살자' 콘서트를 다녀왔는데, 그 이야기는 했고, 간송미술관 다녀온 이야기도 했던가? 명청 시대 회화전이 주제였는데, 드물게 사람이 적어서 5월 전시회보다 수월하게 관람했다. 그리고 용문사로 소풍 다녀온 이야기도 했으니 패쓰!
지금의 추세를 보건대 올해는 작년보다도 영화를 더 많이 보게 될 것 같다. 70편도 꽤 많지만, 두달 동안 몇 편이라도 더 보게 될 테지. 트와일라잇 시리즈 마지막 편도 곧 개봉을 할 것이다. 대미를 장식해 주었으면 한다. 졸작은 되지 않기를.
어제는 '내가 살인범이다'를 무척 재밌게 보고 왔다. 액션이 남다른 영화였는데 반전도 좋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것도 좋았다. 지난 주에 본 '아르고'도 좋았고. 구국의 강철대오 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모두 내렸나보다. 좀처럼 상영관이 보이질 않는다.
페이퍼 작성하다가 12시가 넘어갔다. 내일은 새벽같이 나가야 하니 이제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