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집에는 원목 접이식 식탁이 있다. 양쪽 날개를 다 접으면 직사각형 작은 테이블이 되고, 날개를 다 펴면 기다란 타원이 된다. 2층에서 쓸 때는 한쪽을 접어서 벽에 붙이고 썼고, 3층으로 올라오면서 양쪽을 다 펴고 쓰게 되었다. 그치만 기둥에 해당하는 직사각형 부근은 다리를 집어넣을 수가 없어서 앉기가 무척 망했다. 명절이라 가족들이 모처럼 다 모였는데, 모두가 함께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꼭 나중에 먹어야지 아니면 불편해서 영 마뜩치 않은 상황. 식탁을 살 것인가 검색질을 마구 하다가, 옥상에 올려놓은 평상이 생각났다. 냉큼 올라가서 평상을 들고 내려왔다. 평상용 짧은 다리를 떼어내고, 식탁용 다리를 붙였다.(때마침 식탁용 다리만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역시 옥상 위에 올려 놓은 책장을 개조해서 쓰던 신발장의 선반 경첩을 떼어내 식탁 제작에 사용했다. 아해들이 잔뜩 낙서해 놓은 평상을 열심히 사포질을 하고, 하얀색 수성 페인트를 칠했다. 여섯겹인가, 일곱 겹인가. 그리고 코팅을 하기 위해서 언니가 영풍문고를 갔는데, 구경하던 다현양이 니스를 엎었단다. 그게 언니가 사려던 게 아니라 그보다 점성이 좀 약한 거였나 어쨌다나. 엎었으니 어째. 결국 그걸 사와서 발랐다. 제법 그럴싸 했다. 다리도 흰색이고, 흰색으로 평상도 칠했고, 코팅도 입혔고! 그리고 며칠 말린 뒤 드디어 식탁 앞에 앉았다. 정성스럽게 상을 차리고 밥을 먹었는데 아뿔싸! 뜨거운 냄비 놓았던 자리의 페인트가 떨어져 나갔다. 역시 코팅액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ㅜ.ㅜ 그래서, 부랴부랴 유리를 맞췄다. 이제야 뜨거운 것 상관 없이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겨울 다 되어서 하얀색이 추워보인다. 이제 식탁보를 고를 차례인가. 하아....;;;;;
2. 개천절 날에는 납골당을 다녀왔다. 사연인즉슨! 아부지 돌아가셨을 때 처음 간게 벽제였는데, 도착 2시간 전에 꽉 찼다고 한다. 해서 용미리로 길을 돌렸다. 그리고 몇 해 지나 가족 납골당을 만들어서 수원 큰댁 쪽으로 옮겼다. 그런데 거기에 올해 도로가 났다네. 해서, 용인 공원으로 다시 전체 이장을 했는데, 그게 얼마 전 일이었다. 해서 이번 명절 연휴 때 우리 가족 모두가 아부지 만나러 간 것이다. 이곳은 정말 넓었다. 관리 사무실에 도착하고도 납골당 찾아 다시 차를 타고 한참 가야 했으니까.
종이를 두장 받았다. 하나는 지도고 다른 하나는 위가 표시되어 있는 도표였는데 둘다 보자마자 머리가 팽그르르... 지도를 잡고 형부가 먼저 차를 출발시켰다. 뒤따라 갔는데, 대충 위치는 맞은 것 같은데도 비석을 못 찾겠는거다. 이날은 정말 날씨가 좋았고, 아주 더웠다. 무덤들이 어찌나 양지 바른 곳에 있던지, 여름 내내 멀쩡했던 피부가 다 타서 왔다. 나중에 점심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가니 양말의 발가락 부근이 땀으로 모두 젖어 있을 정도. 양말이 다 젖도록 헤맸으니 얼마나 헤맸겠는가. 정확히 한 시간을 땡볕에서 헤맸다. 결국 위치를 찾아낸 것은 둘째 언니. 도표를 거꾸로 보고서 적용시켜야 찾을 수 있는 자리였다. 어휴, 길 못찾는 유전자는 나만 가진 건 아닌가 보다. 아부지 비석 옆에 수빈이 다빈이 원빈이 무덤이 있었다. 이름이 너무 요즘스럽고, 생몰년도가 없어서 의아했는데 뒤쪽에 어른들 날짜는 적혀 있다. 사망 날짜가 올해 5월이다. 일가족이 한꺼번에 죽다니, 교통사고나 비행기 사고, 뭐 그런 건가... 일면식 없지만 그래도 수빈이 다빈이 원빈이가 안타까웠다. 한참 어렸을 것 같은데... 그에 비해서 우리 가족 납골당은 19세기 초까지 올라가는 조상들이 적혀 있다. 지금이 21세기인데 아득한 시간이다.
3. 10월 6일과 7일은 제 12회 '차카게 살자' 공연이 있었다. 부제는 '21세기 선행 영웅', 드레스 코드는 '영웅과 악당'
* Host : 이승환
* 사전 야외공연 : 박아셀, 블루앤블루, 사운드박스, 웨일, 제이래빗
* 본 공연 6일 : 가리온, 아이유, 브로콜리너마저, 소란, 가리온, 어반자카파, 장미여관, 이승환
* 본 공연 7일 : 김완선, 넬, 소란, 옥상달빛, 울랄라세션, 윤하, The KOXX, 이승환
* 본 공연 이틀간의 오프닝 및 경품 MC : 소란, 허일후 아나운서
난 일요일 공연을 예매했다. 아이유보다 김완선이 더 궁금했고, 울랄라세션도 보고 싶었으니까.
매번 혼자 가는 공연이고, 그래도 잘 놀고 돌아왔지만, 점점 그게 참 적적하다. 이렇게 드레스코드라도 있을 때는 철판 깔고 같이 놀아줄 친구가 있어야 모처럼 일탈도 해보는 건데 말이다. 기껏해야 원자력발전소 건설 반대 서명하고 그린피스 팔찌 하나 받아온 게 다다. 그렇게 좋은 일에 참여할 수 있는 부스가 7개 더 있었는데 아쉽다. 출연자가 바뀔 때마다 단체들 홍보 영상을 보여줬는데 마지막에 등장한 그린피스 홍보 영상은 거의 영화 수준이었다. 보는 순간 지구를 위해 두주먹 불끈 쥐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1층은 몸부림석으로 스탠딩이었고, 2층음 몸사림석으로 좌석이었다. 2층이 더 비쌌고, 난 스탠딩을 하고 싶어서 1층을 예매했는데 아뿔싸! 내 앞에 나보다 머리 하나 큰 남자가 서 있고, 그 앞에 그보다 더 큰 여자가 서 있었고(키도 엄청 큰데 힐까지 신은 게 아닌가 의심 든다!), 그 여자 앞에 그 여자만큼이나 큰 남자가 또 있었다. 아아아, 까치발을 해야 무대가 겨우 보일락 말락. 그리고 내 뒤에는 나보다 많이 작은 여자 둘이 거의 울부짖고 있었다. 소리밖에 안 들인다고. 이사 후유증으로 아직도 무릎이 안 좋은 나는 납작한 운동화를 신었는데 키높이 운동화라도 신고 올 걸 살짝 후회가 들었다.
첫번째 출연자는 소란. 담백한 음악이었다. 무엇보다 위트가 가득한 멘트가 훌륭했다. 이 공연에 초대되어서 음악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고, 어제 오늘 이틀 출연했는데, 어제 공연 마치고 대기실로 가보니 아이유가 있어서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나 뭐라나. 하하핫, 대세가 아이유였나보다. 저 시크한 넬의 종완씨 조차도 아이유는 토요일에 출연했는데 왜 자기는 일요일에 초대했냐고 투덜거릴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누구보다 나를 열광시킨 것은 완선 언니였다. 아아아, 그녀의 섹시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니까 뭐랄까. 섹시계의 원조. 섹시계의 단군 할아버지, 섹시계의 시조새!!! 노출도 없는 옷을 입었지만 온 몸에서 섹시한 에너지가 흐른다. 언니는 걸칠 것 다 걸쳤지만 백댄서가 상의 탈의를 했고, 그 근육을 훑으면서 완선 언니가 노래를 부른다. 춤추면서 노래도 잘해. 그리소 30여 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섹시해! 세곡 부르는 내내 까치발로 버티느라고 무지 힘들었다. 내 뒤의 두 여자가 더 비명을 지른다. 나까지 까치발을 드니 그들은 볼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
뭐 암튼, 아주 재밌었다. 좋은 일 하고, 님도 보았으니. 해마다 이렇게 차카게 살자 공연을 통해서 소아암 어린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드레스코드 1등 상품이 작년에는 42인치 TV였고, 올해는 42인치 3D TV였다. 작년에 이어 올해 토요일 우승자도 상품을 재기증해서 아주 훈훈했는데, 이분은 영웅 '유관순'으로 분하는 기막힌 분장을 보여주었다. 흰저고리에 검정 치마, 게다가 태극기 휘날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능! 일요일은 '춘리'로 분한 참가자가 아찔한 옆트임 옷을 입고 일등을 거머쥐었는데 상품은 잘 쓰겠다고 했다. 하하핫, 그거 들고 시집가세요~
(공연 끝나고 나올 때 받은 음료수 라씨. 맛났다. 누가 줬는데...ㅎㅎㅎ)
4. 가을 소풍을 다녀왔다. 용문사로. 용문사를 가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내 기억에 분명 수령 500년짜리 은행나무였는데, 이번에 가보니 무려 1100~1500년으로 추정한다지 뭔가. 내 기억이 잘못되었나, 20년 사이 1000년을 더 먹어버렸나..ㅡ.ㅡ;;;;
사실 소풍은 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빈 교무실이나 지키고 싶었는데, 나의 그런 의도를 잘못 이해한 부장님이 '친히' 데려간 것이었다. 그 바람에 신세계를 경험했다. 이 얌전한 아줌마 아저씨들이 버스 안에서 댄스의 귀재로 거듭나시는 게 아닌가. 그것도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나이트클럽 한번 못 가본 이 쑥맥이 억지로 끌려나가서 되도 않는 춤을 추느라고 어찌나 힘들었는지...ㅜ.ㅜ
그동안 내가 근무했던 곳에서는 술을 못 마신다고 하면 누구도 두번 권하지 않았다. 그래서 술 강권하는 분위기를 겪을 일이 없는데, 여기서는 마실 때까지 비키질 않고 버티는 게 참 힘들었다. 덕분에 맥주, 소주, 양주, 동동주에 포도주까지 두루 섭렵했다. 일년치 술을 다 마신 것 같다. 그나마 늦게 도착해서 막걸리는 겨우 피해간 것. 어휴... 취한다!
(요게 바로 그 천년 묵은 은행나무! 냄새가 아주 진동을...ㅎㅎㅎㅎ)
5. 가을이 성큼 오더니 금세 겨울이 코앞이다. 30년인가 40년 된 오래된 건물인지라 집이 많이 추웠고, 게다가 창도 너무 크고 문도 많아서 우풍이 장난 아니다. 이제 여름 커튼을 떼어내고 두꺼운 커튼이 필요한 때! 옥션에서 암막 커튼을 주문했다. 가격은 저렴했고, 품질도 저렴했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은 역시 명언 중의 명언이다. 해서 아울렛으로 엄마와 함께 큰조카를 데리고 구경 나갔다. 나간 김에 가격은 1.5배 정도고, 품질도 역시 그만큼 나오는 제품을 샀다. 그런데 돌아올 때 보니 비가 오는 게 아닌가. 거실 커튼까지 가방이 여섯 개였고, 봉도 네개나 들고 있었다. 형부에게 연락해서 픽업을 부탁했고, 그렇게 돌아오자마자 봉 길이부터 확인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내가 분명 창 크기가 150과 170이라고 했는데, 이 봉은 가장 작을 때 사이즈가 이미 170이다. 그러니 150 사이즈의 창에는 끼울 수가 없는 것. 아아아.... 나 정릉 사는데, 거기 불광이었단 말이다. 제기랄! 게다가 펼쳐 보니 거실 커튼은 오염도 되어 있어서 역시 바꿔야 한다. 하아... 일요일에 다시 갔다. 거실 커튼 교환하고, 봉 두개는 반품하고(옥션에서 주문한 봉으로 대체할 생각) 내방 커튼은 색상을 교환했다. 난 갈색 샀는데 엄니가 너무 어둡다고 하셔서 베이지로 교체. 그렇게 다시 집에 와서 낑낑 대며 커튼을 교체했다. 아아, 이를 어쩌나. 거실 창이 180과 320인데, 320 폭에 530짜리 커튼을 쳤더니 주름이 많이 안 잡혀서 안 예쁘다. 엄니께서 아무래도 한 번 더 다녀와야겠다고 하신다. 아아아....ㅜ.ㅜ
그밖에 옥션에서 반품하는 과정에서 배송비가 꼬이고, 회수 요청했더니 때마침 집에 계시던 엄마와 연락 두절해서 진땀을 뺐다. 어째 요새 뭐가 이렇게 꼬이는지... 훌쩍....
6. 11월부터는 운전면허 시험도 어려워진다고 해서 부랴부랴 10월에 면허를 딸 생각이었다. 지난 20일에 필기시험 책을 백만년 만에 당일배송으로 주문했다. 책은 그 다음주 화요일에 도착했다. 화요일에 필기시험 볼 생각이었는데...ㅡ.ㅡ;;;;; 그리고 소풍이다 커튼이다 내내 바빴고, 이번주 월요일, 그러니까 그저께 학원에 등록했다. 그날 두시간 교육받고, 어제 세시간 교육 받았다. 말이 교육이지 다섯 시간 자습했다. 이렇게 날로 먹다니, 버럭이다! 그리고 오늘 필기시험 보러 강서 면허시험장에 다녀왔다. 내가 이수 받은 교육이 전산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학원 측에서 입력 누락이다. 아아.... 그래서 또 그것 때문에 잠시 혈압이 올라주었고, 필기시험을 무사히 마치고 나오다가 회전문에서 제대로 이마를 박았다. 아아아, 꽃팔려서 빨리 자리를 떠야 하는데 골이 울리고 이빨도 흔들흔들.... 아파, 마이 아파... 마이 챙피해.....ㅠㅠ(오밤중이 된 지금도 이마가 아프다. 혹 났나...;;;;)
7. 시험에 쓰기 위해서 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직장 근처에 사진관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건 어제의 일. 어느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대로 길 따라 쭈우욱, 정말 한참 동안 쭈우욱 갔지만 보이지 않는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쭈우욱 훑고 왔지만 역시 보이지 않는다. 다시 동네 주민에게 물어보니 이미 망해서 없다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200미터 안쪽으로 사진관이 하나 나온다. 하지만 길찾기 앱을 돌려도 나는 못 찾고 빙글빙글...;;;; 기어이 찾긴 찾았다. 처음 사진관 찾기 시작해서 대략 한 시간은 고생했나보다. 추운 날씨에 사진 찍겠다고 치마 입고 나왔는데, 생각해 보니 상반신만 나오는구나. 아아 바부팅이... 사진을 찍고 나니 사장님 친절하게 포샵질 해주신다. 턱을 좀 만져야겠다면서.... 흠흠... 저도 알아요...;;;; 하여, 나온 사진은 거의 사각턱 수술 수준이다. 이거 사기 같은데....ㅎㅎㅎ
8. 울 학교 좀 이상한 게 아니라 많이 이상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젠 정말 별걸 다 시킨다. 책 사재기...;;;; 특정 책 제목을 불러주면서 특정 사이트에서 사고 영수증 제출하란다. 책값은 지불해 주겠노라며. 이야, 이런 식으로 책이 많이 팔린 척을 하는구나. 제목도 아파야 청춘이다 짝퉁스런 청춘과 스펙이 어쩌고 저쩌고....;;;; 냉큼 책을 사줄 수는 없지. 흥!
9. 새벽 5시부터 공사 소리 드드드드에 골이 울려 잠에서 깼다. 아래층 곱창집이 그 옆집 정육점을 인수해서 확장한단다. 지금 곱창 냄새도 힘든데 더 규모가 커질 모양새다. 이 공사는 언제 끝나려는지... 지난 4월부터 매달 쉬지 않고 공사 소리가 울린다. 이러다가 집 무너질까 두렵다.
10. 영화 26년 개봉일이 잡혔다. 때마침 전두환 은닉(?) 재산도 등장해 주시고, 더더더 불을 지펴주는구나. 이승환은 이 영화의 1호 투자자였다. 있는 돈을 투자한 게 아니라 빚내서 투자했다. 영화사도, 투자자도 손해보지 않았으면 하고, 무엇보다 제발, 이 시점에서 환기 좀 시켜줬으면 한다. 선거날 투표만 한다고 민주주의가 절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정의가 살아있기만 하지 말고 제발 힘도 좀 써 주기를!!!
영화 26년, 서울 광장 콘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