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사하던 날은 다른 일로 더 분주했다. 2년 전부터 고대하던 3층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서 대출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은행 문턱 높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서민들에게 한없이 높은 장대였다. 그무렵 저학력자에겐 더 높은 금리로 대출을 했다는 신한은행 기사는 평소보다 더 큰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여러 사연들이 있었고, 어쨌든 잔금은 치렀다. 저금통까지 탈탈 털고 중고책 팔아서 모아둔 예치금도 모두 환급받아서!
이사 이틀 전은 내 월급날이었다. 평소보다 30만원 정도 적게 입금된 금액에 노여움이 몰려왔다. 교장샘이 평소 자주 하는 말씀이 월급 30씩 깎겠다는 거였는데 정말 실천했나 싶어서! 득달같이 행정실에 전화를 걸어서 알아본 결과, 고용보험료와 국민연금을 3개월 동안 내지 않아서 그게 한꺼번에 나갔다고 한다. 헐! 그러니까 지금까지 월 50씩 적었던 내 월급이 사실은 60씩 적었다는 이야기. 내가 실업급여 받을 때보다 10만원 더 들어 있는 월급 통장이라니, 멘붕 그 자체였다. 제기랄!
열기를 식히기 위해 스타벅스에 갔다. 13주년 기념으로 제조 음료 반값 할인하던 날이었다. 설마하니 그렇게 오래 줄 설줄 몰랐따. 40분 줄 서고, 음료 받기 위해 다시 20분 대기. 멘붕이 피로로 옮겨가던 순간이었다. 여튼, 폭염 속에서 원샷!
이삿짐을 나르기 시작하던 날은 중복이었다. 나는 이날 '영원의 도시 로마전'을 보러 갔다. 8월 중으로 써야 하는 티켓이었는데 시간이 이날밖에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기념관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 옛날 '끝장' 콘서트를 보았던 추억의 장소이지만, 전쟁을 기념한다는 이런 발상의 나라에서는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 로마전은 제법 재밌었지만 입장료는 좀 과했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이날 제일 인상깊었던 것은 로마 시대 옷을 입어볼 수 있는 체험전이었는데, 혼자 간 나는 옷을 챙겨입어도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었다. 셀카라도 찍어볼 요량이었는데 의상 담당 알바생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친절하셔라!
보이진 않지만 월계수 관도 쓴 거다. ㅎㅎㅎ
암튼, 낮에 외출을 한 까닭에 저녁에 더 열심히 짐을 날랐다. 어차피 내 짐은 다 내가 옮기는 거라서 별 차이도 없지만...;;;;
포장 이사는 하지 않았다못했다. 2층 살고 있는 우리가 3층을 추가로 얻은 것이기 때문에 거리도 가까웠고, 이삿짐 옮길 때 제일 기피하는 대상이 책이라고 알고 있기에 책들은 우리가 나르기로 했다. 그게 모든 화근의 시작이었다. 난 이날 하루만 왕복 40회에 걸쳐서 책을 날랐다. 4면이 모두 책이었던 방에서 1/8을 나른 셈이었다. 그래도 첫날이어서 체력이 달리진 않았다. 다음 날 일요일에는 이보다 세갑절은 날랐나 보다. 문제를 알아차린 것은 월요일이었다. 무릎이 아팠다. 상당히! 연골이 닳아 없어진 느낌이었다.
처음엔 장판을 새로 깔지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토요일에 옮긴 책은 모두 방에 들어가 있었는데 중간에 장판을 깔기로 결심을 바꾸면서 짐을 다시 밖으로 내와야 했다. 당연히 삽질+ 이 사진 밖으로 병풍처럼 책이 더 있다. 책 옮기는 데에 아무 도움은 주지 않으셨지만 이 때문에 2주 내내 엄니에게 욕을 먹어야 했다. 아, 나도 징그럽다.
일요일에 직접 장판 사러 방산 시장에 갔는데, 시장 전체 휴일! 결국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제품은 화요일에 배송 예정이고, 그래서 월요일에는 다크나이트를 보러 갔다. 헌데 하필 그 전에 들렀던 은행에서 업무가 막혔다. 때마침 은행은 에어컨이 고장 났고, 찜통 더위 속에 일 보고 부랴부랴 아이맥스로 이동을 하자니 영화를 앞에 놓칠 것 같았다. 해서 예매 취소를 하려고 하니 내 후진 폰은 cgv앱도 깔리지를 않아서 예매취소도 되질 않았고, 나는 용산역으로 부랴부랴 뛰어 갔다. 1층에서 청소 담당하시는 분께 영화관 위치를 물어 보니 잘못 알려주시고, 내가 줄 선 기계는 내 앞에서 고장 나서 먹통 되어주시고! 그래서 결국, 영화는 10분을 놓쳤다. 도둑들에 이어서 이 무슨 악재란 말인가..ㅜ.ㅜ
암튼 영화는 즐겁게 잘 보았다. 이튿날 바닥을 깔고 책장을 옮기고 책을 옮기기 시작했다. 형부는 다음 날부터 직장에서 2박3일 캠핑을 떠나서 집에 남자는 없는 상황. 이런 때에 힘 보태줄 애인 하나 없는 현실을 자학하기 충분했다. 힘쓰는 남자는 없지만 힘쓰는 자매는 있어서 우린 파스 붙이고 노동 모드!
문제는 목요일이었다. 이미 짐 정리 시작한지 거의 일주일 다 되어 가고 있었고, 책장은 모두 책이 들어찬 상태였는데 엄니께서 이 구조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셨다.
베란다가 좁은 까닭에 주방말고도 큰 방에서 들어가는 문이 하나 더 있고, 거실로 빠지는 문이 있고, 큰 창이 두개나 있어서 책장을 둘 벽이 부족했다. 해서 책상 공간과 침대 공간을 나누는 의미로 가운데에 책장을 두었는데 엄니는 방 한가운데에 저런 걸 두었다고 노발대발하신 것이다. 아씨, 방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은 나인데 내 마음에 들어야지...ㅜ.ㅜ 그나마도 그림책 꽂았다가 들쑥날쑥한 게 정신 없다고 해서 소설로 다 갈아탄 건데 그러신다. 여튼 난 이대로 밀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날벼락이 떨어졌다. 수원 사는 언니가 수원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온다는 급보! 그것도 엄마 통해서 책상 들어갈 자리 마련하라는 '령'이 내린 것이다. 아아아... 우리가 이사 준비하는 내내 집으로 들어올 거냐는 질문을 끝없이 던졌지만 계속 No라고 하던 언니가 집에 와보고선 마음이 바뀐 것이다. 언니 책상은 내 책상보다 크기 때문에 크기를 알려고 전화를 해보니 자기 책상 들어갈 자리는 자기가 정하겠다고 해서 나는 또 헐크가 될 뻔했지만 참았고, 그래서 이날은 분노로 떨며 밖으로 뛰쳐나가서 친구랑 놀다가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무릎도 발목도 손목도 모두 만신창이, 체력이 바닥인지라 무더위에 외출하는 것 자체도 힘들었다. 하아...ㅜ.ㅜ
주말에 형부가 돌아와서 같이 옷장 다섯 칸을 날랐다. 그 안에 채울 옷을 나르고 나니 손가락도 남아나질 않는다. 옷장이 무거워서 문짝도 모두 분해해서 옮겼는데, 분해한 옷장도 다시 달고, 식탁 밑에 바퀴도 달고, 살다 보니 별 것을 다 해보는구나. 월요일로 넘어간 새벽 3시! 이제 좀 쉴까 했는데 밖에서 쿵 소리가 났다. 어느 미친 또라이가 형부 차 유리창을 깨버린 것이다. 술이 잔뜩 취한 공익 요원이 차 유리를 깨다가 누군가에게 들켜서 신고가 들어간 것이다. 결국 범인은 잡혔지만, 그렇게 또 밤샐 일이 생긴 것! 아아, 참 산 너머 산이다.
8월 6일 월요일에는 불후의 명곡2 이승환 편 녹화 신청했지만 똑! 떨어졌고....ㅠ.ㅠ 방송 날짜도 모르는 난 그저 기다릴 뿐!
알리를 이 방송을 통해서 좋아하게 되었지만 음반은 재녹음한 것이어서 마음에 별로 들지 않는다. 홍경민은 아직 못 들어봤고, 임태경은 곧 구입할 예정! 근데 이것도 재녹한 거라서 멜론에서 먼저 들어보고 살까 살짝 고민 중이다.
다시 이사 모드로 돌아가서, 결국 가운데 책장은 허물게 되었다. 침대 발치 서랍장 위로 올렸는데 엄니가 거기 TV 작은 것 두신다고 해서 다시 옆자리로 재배치, 아아아 나는 뼈마디가 부서지는 것 같았단 말이다. ㅜ.ㅜ
결국 이런 구조가 되고 말았다. 창이 서쪽 방향이라서 햇볕이 많이 들어와 내가 피하고 싶었던 각도다. 오후 늦게까지 해가 가득 들어차서 실내 온도 38도까지 찍었던 무서운 더위가 사무친다.ㅜ.ㅜ
얼추 큰 짐이 대강 정리가 되자 바로 중고샵에 책부터 등록했다. 통장도 탈탈 털어서 이사를 했기 때문에 카드값 메꾸려면 부지런히 팔아야 한다. 100권 이상을 알라딘에 팔기로 등록하고, 또 꽤 많은 책을 회원에게 팔기로 등록했다. 이날은 말복날! 지치고 지쳐서 저녁은 피자를 배달시켰다. 그러고 보니 올 여름엔 초복부터 말복까지 영양 보충은 전혀 하지 못했다. 영양은 늘 과다 상태긴 하지만.
조카들은 신나는 여름 날을 보냈다. 옥상에 커다란 튜브를 갖다 놓았는데 이게 지름이 3m다. 차양막까지 치니 제법 그럴싸하게 피서지가 되었다. 물 받는 데만 무려 3시간..ㅜ.ㅜ 내일 비오면 못 쓰게 될 터, 오늘까지 조카들은 신나게 물놀이를 즐겼다. 나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차마...;;;;
일 한참 하던 무렵의 내 손톱은 저렇게 만신창이였다. 사진이 작아서 잘 안 보이나? 파스의 기운은 그닥 크질 않아서 이틀 전부터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손목 발목 손가락 발가락 모두 아프지만, 일단은 무릎에 집중하고 있다. 버스의 세칸 계단도 부담스러운 통증이다. 노약자들에게 저상 버스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터진 '엄마' 아파트 배달원 엘리베이터 사용 제한 기사는 노여움에 노여움을 더하기 충분했다. 모든 배달은 1층으로 단일화하고, 주문한 사람이 내려와서 찾아가야 마땅하다.(버럭!!)
그렇게, 7월과 8월이 지나갔다. 이제 올림픽에 관심 좀 가져볼까 싶었는데 벌써 폐막식이란다. 그리고 나는 내일, 개학이다. 헐! 광복절도 지나지 않고 개학이라니...ㅜ.ㅜ
원래도 휴가는 모르고 살았지만, 휴식은커녕 골병든 채로 개학이라니, 서글프다. 언니는 옷장 한칸도 비우라는 령을 보내왔다. 하하핫... 올려왔던 옷은 다시 2층으로 내려 보내야 한다. 일찍 좀 얘기해 주지..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