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3월이 되었다. 1, 2월을 훌쩍 점프해서 바로 3월이 된 기분마저 든다.

가장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대략 일주일 전쯤에 있었던 나의 원피스 소동이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꼬박꼬박 만나고 있는 내 친구와 있었던 일이다. 친구는 그 일주일 전에 나와 함께 용산 아이파크에 가서 디지털 피아노를 샀고, 일주일이 채 못되어 배송을 받았다. 친구를 위해 나는 악보를 주섬주섬 챙겨놓았고 우리는 따뜻한 어느 날에 만나기로 했다.

 

당시 친구는 내게 '작정하고' 칼질을 하자고 했다. 자신이 스테이크 집을 예약해 놓겠다고. 외출하기 위해서 꽃단장을 하면서 드레스 코드를 고민했다. '작정하고' 칼질을 하는 스테이크집이란 어떤 집이지? 아웃백 같은 분위기를 염두에 둔 나는 올 겨울에 두 번 밖에 입지 못한 모직 원피스를 꺼냈다. 모직이어서 3월이 되면 입기 힘들어지겠지 싶어서 한 번 더 입자 생각했던 것이다. 이 옷은 모직이긴 한데 민소매 원피스여서 보통 때는 외투 안에 자켓을 하나 더 입었지만, 이날은 날이 몹시 따뜻했기 때문에 자켓을 더 입는 건 좀 오버였다. 그래서 난 과감히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 코트를 입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종로의 어느 스테이크 집이었는데, 친구가 얼마 전에 발견한 무척 '저렴한' 스테이크집이라고 한다. 앗! 여기서 나는 잠깐 불안해졌다. 이 집은 와인도 팔고 제법 비싼 메뉴도 있는 것 같은데, 우리가 고른 '오늘의 메뉴'는 스프, 샐러드, 파스타와 스테이크가 결합된 메인 요리와 후식으로 커피 혹은 녹차가 준비된다. 이렇게 세트로 구성되었지만 가격은 만원! 세금이 붙으니까 정확히는 11,000원! 무척 훌륭한 조합이다. 맛도 제법 괜찮았다. 그 부분에서는 만족한다. 문제는... 이곳의 분위기!

 

뭐에 비교할 수 있을까. 내가 어릴 적엔 돈까스 집이 꽤 인기였는데, 스프가 나오고 밥을 먹을 것이냐 빵으로 할 것이냐 묻는 게 신기한 문화충격이었더랬다. 그때 그 경양식 집 분위기의 인테리어. 그러니까 이런 레스토랑에서 당당하게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식사를 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처음엔 일단 답답해서 외투를 잠시 벗었는데, 그때 스친 친구의 당황한 얼굴 표정을 잊지 못한다. 이건 완전 '뭥미!' 표정이었는데, 내가 당장 옷을 입지 않으면 날 버리고 나갈 분위기였다. 그리고 나도 민망함과 더불어 더 못 버티겠는게 민소매로 있기엔 추웠다는 것이다. 아, 실내인데 왜 춥지... 그렇게 나는 외투까지 입고서 묵묵히 식사를.... 아, 외투를 입고 밥을 먹자니 너무 더워, 정말 더워. 얼굴이 벌겋게 익으면서 스팀이... 벗을 수도 없고, 버티기엔 힘들고... 아, 민소매 원피스 테러였다. 정말, 슬픈 삽질이었다.

 

오래 전에 보았던 남자셋 여자셋이라는 시트콤이 생각났다. 신동엽과 파트너로 나왔던 우희진이 한번은 '가든 파티'에 초대받았다. 우희진은 민소매 블랙 원피스가 팔뚝까지 오는 검은 장갑을 끼고 망사 모자까지 쓰고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그 집은 돼지 갈비집이었다. 이름에 '가든' 자가 붙는. 그 불편한 옷을 입고 망사를 걷어내가며 열심히 고기쌈을 먹던 그녀가 나와 오버랩 되었다.

 

때와 장소, 상황에 걸맞는 적당한 옷차림! 아주 중요하다.

 

2월에는 저녁에 시사회도 참석하고 강연회도 가고 약속도 잡고... 뭐 그런 마음으로 수영 오전반을 끊었는데, 시사회 당첨 한 개도 안 되었고, 강연회도 똑 떨어졌고, 약속은 모조리 낮 약속이었다. 하하핫, 인생은 늘 그런 법이지..;;;; 이제 다시 수영은 저녁반으로 옮겼다. 한 달 동안 에이스 대접을 받았는데, 다시 겸손한 수강생으로 돌아가야지. 오리발 챙기는 것 잊지 말아야지. 이곳에서도 T,P,O는 소중하니까. 비가 와서 가기 귀찮지만... 지난 금요일에 빠졌으니 오늘은 반드시 출석!

 

덧글) 오페라스타 시즌2 재밌게 보고 있다. 지난 2회 스페셜 게스트로 백두산의 김도균이 테너 류정필과 함께 '생명의 양식'을 불렀다. 아주 좋은 하모니였는데 유튜브에서 관련 동영상을 못 찾았다. 나만 좋았나? 왜 아무도 안 올렸지? 다시 듣고 싶은데...

 

 

아쉬운 대로 테너 박종호와 박완규가 부른 버전으로 가져왔다. 박완규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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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3-05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꺽꺽..저도 남셋여셋 그거 봣더랬어요. 그거 보면서 아주 뒤집어졌었는데..
아아..마노아님의 삽질은 너무 재밌어요. 이런 삽질은 매일매일 해줘도 신나고 좋은데..마노아님 너무 더우셨을까봐 살짝 걱정이..

그나저나 민소매 원피스는 여자들의 로망이잖아요. 얼마나 날씬해야 그거 입을 수 있어염!! 부러워욧!! ^^

마노아 2012-03-05 23:40   좋아요 0 | URL
그 장면 기억하시는군요. 아아, 그때는 그렇게 우스운 광경이 내 이야기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ㅜ.ㅜ

민소매 원피스는, 조금만 철판 깔면 입을 수 있어요. 그치만 철판 잘 까는 저도 저기선 감당이 안 되었더이다...;;;;;

무스탕 2012-03-05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물론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비타민같은 삽질이었어요. ㅎㅎㅎ

마노아 2012-03-05 23:41   좋아요 0 | URL
비타민같은 삽질이라니, 조금 위로가 됩니다. 나의 삽질이 누군가에겐 비타민같은 휴식이 되어주다니..ㅎㅎㅎ

같은하늘 2012-03-06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물론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비타민같은 삽질이었어요. ㅎㅎㅎ (2)

마노아 2012-03-06 22:46   좋아요 0 | URL
아하하핫, 앞으로는 기왕이면 비타민이 되는 삽질을 추구하겠어요.ㅎㅎㅎ

진/우맘 2012-03-06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상황에 적절한 옷입기를 떠나서, 내 몸...내 팔뚝에 적절한 옷입기가 아니죠...민소매는...^^;;

마노아 2012-03-06 22:48   좋아요 0 | URL
진우맘님, 오랜만이어요.^^ 아무도 안 입는 겨울철에 민소매 원피스라니, 제가 생각해도 엉뚱하긴 했어요. 여름이 올 때까지 요요 없이 버텨야 할 텐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