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크코트 - Jesus Hospital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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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순은 우유배달을 하며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여자입니다. 친정 식구들은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로 교회 건축 헌금에 동참하라고 재촉하지만, 가난한 현순은 제 이름은 빼라며 자신은 다른 개척 교회를 다니고 있노라고 이야기를 종료시킵니다. 늙은 어머니는 어서 빨리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시더니, 정말 두달 뒤 쓰러지셔서 벌써 6개월째 병원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병원비는 전혀 보태지 못하지만 어머니의 침상을 지키며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현순에게 언니와 남동생이 존엄사를 제안합니다. 의사 역시 생존 확률이 1%도 되지 않는다며 이 또한 환자를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현순은 불같이 화를 내며 가족들과 의사를 병실에서 쫓아내고 그 곁을 철저히 지킵니다. 현순은 기도 중에 분명히 어머니가 살아나신다는 메시지를 받았고, 그것을 철저히 믿고 있었습니다. 이런 현순을 가족들은 불편하게 바라봅니다. 병원비를 내고 있는 것은 자신들인데, 한 푼 보태지 않는 현순이 홀로 효녀인 척 행세한다고 여기기도 하지요. 또한 그녀가 보여주는 행태들이 혹여 이단 종교에 빠진 것은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현순은 이런 형제들에게 더 세게 나갑니다. 언니에게는 그렇게 돈돈돈 하다가 형부 불덩이 받을거라며 조심하라고 했고, 남동생에게는 네가 무슨 짓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으니 원래대로 돌려놓으라고 큰소리를 칩니다. 언니와 남동생은 내색은 하지 않지만 뭔가 섬뜩한 느낌을 받고 맙니다. 현순이, 정말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이제 오늘이 지나면 의사 선생님은 해외에 세미나 나가시고 한 달 뒤에나 돌아온다고 합니다. 병원비를 부담하고 있는 언니와 며느리는 애가 탑니다. 남편 눈치도 보이고 애들 과외비도 이만 저만 걱정이 아니거든요. 하여, 이들은 현순을 어머니 곁에서 떼어낼 방법을 모색합니다. 좀 더 지켜보기로 결정했다고 안심시킨 뒤, 현순의 딸 수진을 불러내어 엄마를 집에 몇 시간 붙들어 두게 하는 게 이들의 계획이었지요.

 

현순의 딸 수진은 현재 만삭입니다. 두어달 뒤면 아이가 세상에 나올 것입니다. 수진은 날카롭고 냉소적인 여자였습니다. 남편은 그런 수진 앞에서 쩔쩔 매었지요. 수진은 삼촌의 계획에 동참하는 것이 껄끄러웠지만, 엄마의 확신처럼 할머니가 살아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고,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지 혼란스럽습니다. 일단 엄마를 붙잡아두고 있던 수진은, 엄마의 옷장에서 할머니가 주신 밍크 코트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밍크코트는 이모가 할머니에게 사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우유배달을 하며 가난하게 살고 있는 딸 현순에게 밍크코트를 내주었고, 현순은 미용실을 차리면서 급전이 필요했던 딸 수진을 위해서 코트를 팔았습니다. 자신이 언제 밍크 코트 팔아 그 돈 해달랐냐며 수진은 오열을 합니다. 결국엔 자기가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치미는 화는 이성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엄마가 원망스럽고, 종국엔 자신이 원망스럽고 용서하기가 힘듭니다. 수진은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이대로 할머니를 돌아가시게 할 수는 없었던 겁니다. 밤중에 급하게 병원으로 불려와 존엄사를 추진하려던 의사는 오전에는 현순에 의해,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는 그녀의 딸 수진에 의해 일을 방해받고 화딱지가 나서 돌아가 버립니다.

 

하룻동안에 벌어진 이 소동으로 가족들은 격렬한 싸움에 돌입합니다. 그동안 가슴 속에 쌓였던 원망과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합니다. 그리고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자부하고 살았지만, 자신 안에 있는 위선과 탐욕과 추잡한 욕망과 마주하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밍크코트'가 은유하는 바는 매우 날카롭습니다. 큰딸이 노모에게 선물한 효도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형편이 어려운 딸을 위해 할머니가 기꺼이 내준 사랑의 선물이기도 했고, 현순이 딸을 위해 안타깝게 팔아버린 애증의 물건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가질 수 있지만 사실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밍크코트는 그렇게 한 가족 안에서 사랑의 상징이자 부의 상징, 또 욕망을 대변합니다. 큰 딸 명순과 며느리가 시종일관 입고 나온 이 밍크코트는 자식의 과외비를 걱정하며 어머니의 존엄사를 요구하고, 또 그를 위해 계략을 꾸미는 이 시대 비틀어진 어머니들의 세태를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또 그 밍크코트를 만들기 위해서 희생된 동물의 목숨값도 당연히 생각하게 되겠지요.

 

2011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개 부분에서 수상하고, 2011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차지한 이 웰메이드 영화는 어려운 주제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솜씨 좋게 녹여놓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고 하면서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가장 거슬리며 사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신의 뜻을 제멋대로 해석한 채 원망만 앞세우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도 고발합니다. 또한 가족은 어떻습니까? 가장 가까이에 있고, 가장 의지할 대상이지만 사실은 가장 시험에 들게 하고, 나를 핍박하는 애증의 대상입니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또 고약하게도, 그리고 다행히도, 가족은 바로 그 가족의 이름으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주기도 합니다.

 

 

연극배우 출신의 황정민의 연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현순 역에 몰입시켰습니다. 노메이크업으로 출연해서 영화의 맨 얼굴도 낱낱이 공개합니다. 종교와 신의 뜻, 그리고 용서라는 부분에서 영화 '밀양'을 떠올리지만, 그보다 더 완성된, 그리고 더 겸손한 결말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존엄사의 문제라고 한다면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영화 '청원'도 함께 본다면 더 좋겠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트위터 멘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이것입니다. '인간이 신에게 온전히 나약함을 드러내는 순간.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이다.'

 

밍크코트, 따뜻하지만 잔인한 이름이지요. 가족 또한 그렇습니다. 종교 역시 그렇습니다. 그 이름들을 '잔인함' 대신 '따뜻함'으로 취하게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으로 보입니다. 내가 인정하지 못했던 나의 속얼굴을 직면한 순간, 부끄러움이 온 얼굴을 덮고 내 가슴을 덮쳐 분노와 설움과 당혹스러움에 몸둘 바를 모를 때, 기꺼이 무릎 꿇고 내 자신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신 앞에 겸손해지는 것이 나약한 것은 아닐 겁니다. 당신 안에 신이 없다면, 진심 앞에 두 손을 드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당신의 마음에 자유를 줄 테니까요.

 

 

덧)영화의 촬영 장소가 우리 집 근처입니다. 심지어 등장하는 아파트 두 개 중에 하나는 울 언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라지요. 하하하, 자막 올라갈 때 웃었습니다.

 

토요일 밤, 영화관 안에 홀로 앉아서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영화관의 그날 마지막 손님이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손님 때문에 필름을 돌리고 퇴근하지 못하고 문앞을 지킨 직원과, 문을 닫지 못해서 역시 마무리를 하지 못한 관리실 기사님까지 모두, 참 송구했습니다. 그래도 이런 좋은 영화를 찾아주는 관객이 있고, 상영해주는 영화관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마운 일입니다. 웰메이드 독립영화, 포레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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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1-24 0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영화군요.
그러잖아도 찜해두고 있는데 마노아님 리뷰로 어서 보고 싶어져요^^

마노아 2012-01-24 00:49   좋아요 1 | URL
아직 1월이지만 '올해의 영화'로 손색이 없는 영화였어요.
좋은 영화가 많아서 참 좋아요.^^

차트랑 2012-01-25 0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이끌려 방문하게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영화 문외한이지만 상징성을 읽어내도록 장치한 영화인 듯 합니다.
독립영화는 영.화.만이 가지는 그 특성들을
잘 살리려 노력하는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소재, 캐릭터, 언어 그리고 영상과 음악,
그 모두를 아직은 잘 활용하고 살려내려 노력하는 그 흔적들 말입니다.

어쩌면 기존의 영화 관련자들이 초심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페이퍼에 감사드립니다

마노아 2012-01-25 13:58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차트랑공님.
영화 제목은 예고편을 보다가 따왔어요. 밍크코트도 그렇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준 많은 상징들이 제목에 모두 포함된다고 생각되어서요.
실력있고 감 좋고 메시지까지 있는 좋은 독립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그 영화들이 무사히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소망해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