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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맛있게 잘 쉬었습니다 - 일본의 숨겨진 맛과 온천 그리고 사람 이야기
허영만.이호준 지음 / 가디언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워낙에 여행 좋아하고 산 좋아하는 허영만 화백. 이번엔 일본의 온천에 푹 빠졌다. 2년 동안 발과 혀로 찾아내고 탐구한 일본의 기막히게 쉬기 좋은 온천들을 두루 담아냈다. 글은 식객에서 자주 등장한 이호준 팀장이 썼고, 선생님은 캐리커쳐와 모델(?)로 등장하신다. 목차를 살펴보니 이들 일행의 자취가 담긴 곳은 이렇다.
1장 번잡한 마음을 씻어보내는 치유온천 - 아키타
2장 옛것 그대로 시간이 멈춘 료칸에서의 하룻밤 - 시즈오카
3장 불편도 즐기게 되는 곳 - 아오모리
4장 자연의 거대하고 신비로운 힘이 펼쳐지는 곳 - 가고시마
5장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지옥 순례 - 오이타·기타큐슈
6장 음과 양의 조화 속에서 - 이바라키
7장 이슬과 하늘, 바람과 음률이 한데 어울린 노천온천 - 나가사키
8장 창문을 열면 낭만과 운치가 가득한 곳 - 오카야마·시마네·돗토리
9장 봇짱과 센과 치히로와 함께 순례길에 오르다 - 에히메
10장 마음으로 먹고 온몸으로 고독을 즐기다 - 와카야마
11장 이방인들을 설레게 하는 미소라멘과 삿포로 맥주 - 훗카이도
온천을 주제어로 묶다 보니 내게 익숙한 지명은 손에 꼽고, 대개는 낯선 곳이다. 그 쪽이 설렘과 기대를 더 주기는 했다.
우리 말로는 여관으로 번역될 '료칸'이 일본에서는 호텔보다 더 큰 명성을 얻고 있다는 것, 실제로 료칸에 간다고 하면 자랑까지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심지어 어떤 료칸은 건물이 국가유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기까지. 건물의 가치를 먼저 따져야 하는데 우리는 용도 혹은 편견을 먼저 심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했다.
산업구조도 내수비율이 높은 일본 답게 온천 관광객도 자국민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특히 가족 단위로 온천을 찾는 것이 특징. 휴식과 보양의 장소라는 인식이 자리잡혀 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주까지 3대가 함께 온천을 즐기는 풍경은 무척 개인주의 성향이 높은 일본의 스타일과 달리 훈훈함을 느끼게 한다.
가와유 온천에서는 식사 시간에 요리가 놓일 때마다 해당 요리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해준다고 한다. 외국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전통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물론 아주아주 배가 고프다면 수업종이 치기를 기다리는 점심시간 직전의 마음과 닮아 있을 테지만... 문득, 한복을 입고 호텔 식당에 들어갔다가 입장을 저지당했던 어떤 분의 일화가 떠오른다. 해외 토픽감이었지...;;;;
사쿠라지마의 심수관 가마는 정유재란 당시 포로로 잡혀 온 조선 도공 심당일이 자리를 잡은 가마터라고 한다. 그후 무려 400여 년 동안 명맥을 이어와 일본 도자기를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았다. 애석하게도 그 기술은 우리나라에서는 맥이 끊겼다. 그때 전쟁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역사에 '만약'은 의미가 없으니 이같은 가정은 허무하기만 하지만, 그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이 조선의 혼을 일본에 심게 되었다고 애석해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기술자를 대접해주는 문화가 조선에서는 없었으니. 그들은 일본 땅에서 오히려 새출발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라도 기술이 전수된 것은 다행인 일이다. 씁쓸함은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섬나라에다가 지진과 화산 활동까지 활발한 일본이다 보니 온천도 발달하였고 그것을 이용하는 일본인들의 마음가짐도 우리와는 남다르겠지만, 그래도 부러운 부분들 혹은 대견한 부분들이 있었다. 저자도 지적했듯이 만약 같은 경우 우리나라였다면 개발의 삽질 아래 무너졌을 것들이 그대로 유지되고 보호되고 있다는 점에서 부럽고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홋카이도의 하얀 눈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러브레터의 추억에 젖어서 부러운 부분으로 같이 묶어버렸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매년 인구가 증가하는 곳이 홋카이도라니, 저 새하얀 설경을 로망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주 많은가보다.
생선시장의 바닥에서조차 물기 하나 없다는 것에서 저자는 큰 충격을 받았는데 독자 역시 놀랍다. 하긴, 상해의 오빠 아파트에는 욕실 바닥에도 보일러가 설치되어 있어서 물기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헉 소리가 났더랬지. 그래도 생선시장의 물기 없는 바닥이 더 대단하다!

책은 글과 사진, 그리고 그림이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데, 정보를 알려주는 소정의 목적과 유머 감각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어부이지만 고기를 너무 못 잡아서 방송에 소개되기까지 한 인물의 못 잡는 것도 실력이라는 태평한 소리에 피식 웃고 말았다. 두번째 그림은 사진을 묶다 보니 윗부분이 잘렸는데 피부를 좋게 해주는 것으로 유명한 온천인데도 피부과 병원이 있길래 지나면서 허허~하는 장면이다. 뭐,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가 진리이니까.^^
세번째 그림은 호오~ 하게 된 장면. 만화가로서 뼈를 묻으신 분인 건 알았지만 무려 44년이란 대단하다. 이제 해 넘기면 45년. 반 세기 이상은 거뜬히 현역으로 뛰실 분이니 이 역시 가슴이 벅찬 부분이다. 한 분야에서 이 정도로 열정을 불태우는 건 장인 정신의 나라 일본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뭐, 전체 양으로 따지면 할 말이 없지만....
마지막 그림은 오바마의 당선을 오매불망 원했던 일본의 한 어촌 이야기가 배경이었다. 알고 보니 그곳 마을 이름이 '오바마'였던 것이다. 온천욕을 마치고 오바마 얼굴이 인쇄된 수건으로 젖은 발을 씻고 나온다고 한다. 하하하... 우리나라엔 각하 이름을 딴 온천 어디 없을까? 그분께 헌신하는 마음으로 발을 닦아드릴 수 있는데 말이다.
고야산의 본당은 1200년 전부터 짓기 시작했다는데, 80년 걸려 지은 건물이 50년 지나서 벼락으로 소실되었고, 다시 짓는데 100년이 걸렸는데 50년 후 또 벼락을 맞았다고 한다. 그렇게 재건에 재건을 7번 거듭.... 세상에... 허영만 샘 반응처럼 정말 신앙심이 부족했나???
마쓰야마 성은 17세기 초에 세워졌는데, 천수각을 비롯한 21채의 건물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단 한 번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 보존 상태가 전국에서 으뜸인데, 안타깝게도 천수각은 낙뢰로 소실됐다가 1854년에 재건됐다고... 이래저래 불이 무섭다. 끙!

호기심 충만한 허영만 선생님은 직접 앞치마도 두르셨는데, 식객호의 선장 답게 태가 멋지다. 아래쪽 사진은 돈까스처럼 보이지만 속에 든 것은 참치다. 사진이 광택이 없어서 대체로 미감을 자극하진 않지만 이 녀석만큼은 무척 군침이 돌았다. 그리고 오른쪽 기다란 그림은 삼나무를 그린 것인데 그림에서 빛이 났다! 유머 감각을 동원한 그림이 아니라 화가처럼 그렸다. 삼나무가 얼마나 곧고 큰 나무인지 실감이 났다. 만화가 신일숙의 '정령을 믿으십니까?'도 살짝 떠올랐다. 수령 7200년을 자랑하는 삼나무도 있다고 하니 정령이 살고 있다고 해도 그럴싸 하지 않을까.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고 회를 먹지 않는 나로서는 초밥도 즐기는 편이 아니다. 게 중에 먹는 거라면 날치알초밥 정도? 그래서 초밥을 먹는 고수의 방법 따위는 그닥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재밌어서 한 컷 찍어봤다. 초밥의 달인 등장이요!
남녀혼탕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각별하다. 잘못 알려진 사실도 많고, 일본 내에서도 변화가 있었기에 혼란은 더 컸을 것이다. 친절한 안내문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실내 온천에 자연석을 두어서 마치 야외에 나가 있는 느낌을 준 게 좋아보였다. 난데없이 안압지가 떠오르지 뭔가.
마지막 그림은 허걱 했던 장면이다. 저 한 칸에 무려 4명이 앉는다니, 내 보기엔 혼자 앉으면 딱 좋을 크기구만! 무릎 꿇고 앉아야만 넷이 앉을 수 있겠다. 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무릎 꿇고 앉는 것에 익숙한 일본 사람들의 다리 체형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없을까? 혹시 안짱다리가 그래서 생기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돛을 활짝 펴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배가 근사해 보였다. 주름이 가득한 것이 여인의 치마 자락같기도 했다.
일본인의 성이 메이지유신 이후에 생겼다는 것은 꽤 충격이었다.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이기에 우리처럼 오래 되었을 거라고 여겼는데 말이다.
몇몇 정보들도 신선했다.
낫토는 스님들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절의 부엌인 낫쇼(納所)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따고 한다. -123쪽
카스텔라는 16세기에 나가사키에서 활동하던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먹던 스펀지케이크의 일본식 변형이다. -141쪽
도미는 참치와 장어를 제치고 일본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생선이다. 에도 시대에는 도미의 붉은색을 귀족색으로 여겨 귀족이나 사무라이 등이 즐겨 먹었던 것에 영향을 받은 탓이다. -179쪽
우리와 달리 일본인들에게 일 년이 시작되는 달은 4월이다. 이는 국가와 회사들의 새 회계연도와 함께 대학교 신입생들의 학기가 시작되는 달이기 때문이다. -189쪽
1950년대에는 본토에서 삿포로로 발령받은 직장인들이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단신으로 홋카이도에 왔는데, 혼자 생활하다보니 늘 식사가 부실했다. 식당에서는 혼자 온 손님들이 많아져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주문이 점차 늘었다. 아지노산페에서는 미소 국물이 먹고 싶다는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홋카이도 원주민들이 먹던 돼지뼈 국물에 미소를 넣어 대접했는데, 어느 날 한 손님이 그 국물에 면을 넣어달라고 한 것이 미소라멘의 시초다. -220쪽
일본이 온천의 나라이긴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 앞에 버틸 장사란 없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동력을 끌어들였고, 그 바람에 원천수의 질은 떨어지고 온도마저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게 된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과학향기에서 보니 댐과 채굴로 인한 지진이 무척 많다고 했는데, 가뜩이나 지진이 잦은 일본이니 그런 것들이 곧 화가 될 수 있으리라.
추운 겨울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예년 기온에 비해 지나치게 따뜻한 요즘 날씨가 걱정스럽다. 올 여름에도 내내 덥지 않다가 갑자기 폭염이 몰려왔고, 전력대란을 겪지 않았던가. 이렇게 춥지 않다가 갑자기 오지게 추울 것만 같다. 지구가 그만큼 신음하고 있다는 의미일 테지.
일본여행은 꼭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였다. 올 2월에 그 마음이 최고조였는데 가지 못했고 3월엔 후쿠시마 사태가... 그래서 당장에 일본 여행은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간다고 해도 료칸은 너무 비싸서 역시 침도 못 흘리겠지만, 책을 통해 대리 만족이라는 것으로 허기를 좀 채워본다.
책은 즐겁게 읽을 수 있었는데 옥의 티는 역시나 잦은 오타들이었다.
62쪽 미국 선교사 의해 일본 최초로
66쪽에는 오마치 게이게쓰로 나오고 67쪽에는 오오마치라고 나온다.
70쪽 각종 각종 부재료와
71쪽 맑은 호수와 파란 하늘이 연중 내내-연중에 '내내'의 의미가 들어 있다.
191쪽 역사의 흔적은 거의 없다. 온천이라곳도...
그렇지만 반면, 아주 예쁜 우리말도 나와서 달달할 때도 있었다. 223쪽에 등장한 '달보드레한'이란 단어다. 약간 달큼하다-란 뜻인데, '달보드레'라니! 달샤베트 같이 달콤함이 뚝뚝 떨어지는 예쁜 말이 아닌가.
작품 속에는 선생님의 신작 대박나라며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인 친구가 등장했다. 기도의 효과가 떨어질까 봐 여행길에서 마주쳤을 때에도 목적을 말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 정성이 대단하다. 이런 친구가 있으니 허영만 샘이 승승장구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신작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커진다. 사람이 힘든 일을 했으면 좀 쉬어갈 필요가 있으니, 샘의 신작이 마무리 되고 나면 다음 여행지에서의 맛 기행이 또 이뤄지지 않을까. 일본도 좋고 다른 나라도 좋다. 어디든 즐겁게 기다리리라. 그 사이 나도 일본 한 차례 정도는 다녀왔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