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차는 아이들
김훈 글, 안웅철 사진 / 생각의나무 / 2006년 8월
절판


안웅철 작가가 사진을 찍고 김훈이 글을 썼다.
껍데기를 벗기면 책 속 표지와 좌우가 반전된 것을 알 수 있다.
저리 붙여 놓으니 꼭 그 노래가 떠오른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표지 뒷면으로 가서 떡하니 마주칠 것 같은 표지 속 인물들이다.

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2006년에 김훈은 크레타 섬을 여행 중이었다고 한다.
사진 속 돌 무더기 앞의 김훈 작가가 엄청 부럽다. 그 어디서나 그의 포스는 남다른 빛을 발휘한다.

책의 앞머리와 뒷머리를 장식한 문장이다.
저렇게 보니 축구가 인생 그 자체다.

아이는 인간과 세상 전체를 끌어안고 있다. 아이의 머리도 둥글도 눈도 둥글고 공도 둥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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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힘으로 차올린 공이 풍경 위에 떠 있다.
허공 속에서 공은 많은 천체들과 함께 운행하는 인간의 별처럼 보인다.
높이 뜬 공이 풍경 전체를 사람의 것으로 바꾸어놓는다.
공을 향해 벌린 인간의 두 팔은
비바람 속에서 자족한 나무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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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해맑은 눈망울이 정말 둥글다. 보는 것만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두 팔 버린 인간의 모습도, 그늘진 사진 속에서 경이롭기만 하다.
인간이 있기에 완성되어 보이는 사진들이다.

아이들은 주변의 모든 공간을 놀이터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
노는 아이들을 들여다보면 놀이야말로 인간의 본능임을 알 수 있다.
놀이는 개인의 내면을 드러내기도 하고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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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얼굴에 천진한 웃음이 가득하다. 오로지 공밖에 보이지 않는, 놀이에 집중한 모습이 보기 좋다. 저렇게 뛰어놀아야 하는 아이들인데, 저런 모습 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발바닥의 굳은살이나 닳아진 구두의 뒤축에는 체중이 시간을 통과해나간 무늬가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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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이 살이 익을 것 같이 뜨거운 날에는 안면 몰수하고 저렇게 물 속에 뛰어들어가 놀고 싶다. 그 안에 공까지 있으면 옷이 젖는 것도 아랑곳 않고 실컷 놀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돌아오는 길이 난처하겠지만...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감이 느껴져서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래 사진의 오른쪽 구석의 두 아이가 엄청 예쁘다. 두 팔을 뒤로 젖히고 힘껏 발을 차보지만 공을 빗나간 듯 보인다. 그 앞의 쬐만한 여자아이도 공을 향해 제 몸을 움직이고 있다. 조준은 잘하지 못해도 그 자체로 충분히 신나고 근사해 보이는 아이들이다. 짧은 팔다리이기 때문에 더 예쁜 모습도 분명히 있다.

이 풍경 속에서 공을 차는 인간들은 타워크레인에 짓물려 있지 않다. 크레인 아래서, 사람들은 강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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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차기는 속박과 비상 사이의 떨림이다.
그래서 공을 차는 인간은 때때로 하늘을 날아가는 새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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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크레인의 철골 구조를 보면 가슴이 묵직해진다. 입가에 맴도는 말들을 다 뱉을 수가 없다.

아래 사진은 아마도 족구? 족구할 때 쓰는 공은 무얼까? 축구공은 아닐 것 같은데 배구공? 아니면 족구용 공이 따로 있나?
군인들은 족구나 축구 하는 시간이 각별한 여가일 것 같은데, 그것도 취미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잠시 안쓰러웠다.

공을 찬 아이의 동작이 문득 멈추어 있고, 공은 갈 곳이 없는데
공을 찬 아이의 그림자와 돌아서서 가는 아이의 그림자가
같은 시간의 햇살에 길게 빗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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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어쩐지 사연이 있어 보였다. 같이 놀았을 아이 중 하나가 돌아서 가고 있다. 뒤에 공차던 아이가 놀렸던 것일까? 그래서 토라져 돌아가는 것일까? 그림자는 같은 방향이지만 아이의 마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아서 어쩐지 몹시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분명히 다음 날은 다시 공을 차며 씩씩하게 놀았을 것만 같다.
공의 힘을 빌려, 놀이의 힘을 빌려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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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7-18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이 책 참 좋게 보았던 기억이 나요.^^
다시 들춰봐야겠어요.

마노아 2011-07-18 22:58   좋아요 0 | URL
김훈 작가의 육성이 들리는 것 같았어요. 사진도 좋고 글도 좋구요.
괜찮은 사진집을 보고 나니 기분이 참 좋아요.^^

양철나무꾼 2011-07-19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읽으면서...김훈은 소설보다 이런 글들이 더 좋다고 느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사진...님의 해석도 좀 좋아요.

외롭고 쓸쓸하시다지만, 덕분에 전 한껏 훈훈해지는걸요~^^

마노아 2011-07-19 11:10   좋아요 0 | URL
듣고 보니 그러네요. 김훈은 순수 창작 소설보다 어딘가 기대어서 얘기할 때 더 빛나던 작가였어요.
그러니까 모델이 있는 소설(이를테면 칼의 노래처럼...) 말이죠.
누군가는 그게 서사가 약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럴지도 몰라요.^^;;
아무튼, 이렇게 짧고 굵게 마주치는 그의 글들이 참 좋습니다.^^

꿈꾸는섬 2011-07-20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 책 너무 좋은데요. 전 몰랐던 책이에요. 찾아보고 싶어요. 근데 품절이네요. 도서관에 가서 찾아봐야겠어요.

마노아 2011-07-20 02:19   좋아요 0 | URL
좋은 책이 품절되면 너무 안타까워요. 도서관에는 이 책이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