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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한 해에 두 번, 6월 말과 12월 말에 읽었던 책 중 가장 좋았던 것들을 모아 리스트를 만든다. 이제 금년 상반기 리스트를 작성할 때가 다가왔다. 6월은 며칠 남지 않았고, 이변이 없는 한 금년 6개월 동안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스릴 넘치는 재미를 선사해 준 것은 이 책이 될 것이다. 새벽 4시까지 읽다 자느라고 지금도 눈이 퀭하지만 그쯤은 조금도 아쉽지 않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영화 때문이다.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겼는데 원작 소설이 있다면 대체로 원작 소설을 읽고 싶어진다. 그래서 책을 구입하고 또 시간이 흘러흘러 영화 보기 전날까지 이른 것이다. 재밌어서 늦도록 읽기도 했지만 영화 보기 전에 다 봐야 하는 나름의 임무를 완수해야 했던 것이다.
앞서 영화를 먼저 보고 온 언니는 별로였다고 했다. 게다가 왜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라는 건지 제목의 이유가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고 투덜댔다. 책을 읽다가 그 의미를 알고는 피식 웃었다. 링컨 차가 어떤 차인지 알았더라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 뻔했다.
요렇게 생겼다. 사진만 봐서는 이게 얼마나 고급 차인지 사실 모르겠다. 암튼 책에는 설명해준다. 주인공 마이클 할러 변호사는 대표적인 속물 변호사인데 한 때 잘 나갈 때 링컨 차를 네 대나 구입해 버렸다. 계기판이 10만을 찍으면 공항 리무진 버스 서비스로 팔아치울 생각이지만 그 전까지는 링컨 차를 타며 잘 나가는 변호사 행색을 할 생각이다. 게다가 수임료를 내지 못한 의뢰인을 전용 운전사로 고용까지 하고 있다. 급여는 거의 아르바이트 수준이었지만.
확실히 미국 법은 우리나라와 많이 다른 것 같다. 우리나라 법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작품 초반에는 마이클의 스케줄을 따라다니며 그의 변호사 일과 그의 외뢰인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을 잡는 일에 할애했다. 어느 날 그는 '대박' 의뢰인을 건지게 되었는데 젊은 부동산 재벌 루이스 룰레가 그였다. 전과 기록도 없고 인상만으로는 순수 그 자체로 정말 '무고한' 의뢰인으로 보였던 이다. 어느 날 한 여자가 끔찍한 폭행을 당했고 강간 살해 위협을 받았다. 극적으로 구조된 현장에서 루이스가 잡혔고 그는 자신이 함정에 빠진 거라고 주장했다. 초반에 자료를 찾다 보니 사건은 무척 쉬워 보였다. 마이클은 대박 수임료가 오히려 너무 쉬우진 나머지 날라가는 것에 안타까워해야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추가 구멍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자와 마찬가지로 루이스도 거짓말을 했고, 그 거짓말의 규모가 자꾸 꺼진다. 그리고 마침내 책의 중반에 이르르면 입이 쩍 벌어지는 실체에 다가서게 된다.
이 첫번째 반전은 사실 싱겁게 알아차렸다. 극장 포스터에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다소 분했지만, 그 반전은 미리 알려주고 시작해도 무리는 없다고 보였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었으니까.
그렇게 작품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서 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이런 장르의 책을 내내 읽은 사람은 평범한 내용의 책이나 드라마 등은 무척 시시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작품이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재판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한 판 붙을 때였다. 상대 검사는 첫 재판이었고, 그러니 애송이라 불릴 만했다. 이런 싸움에서는 아무래도 경험이 중요했다. 마이클은 상대 검사를 거의 KO패 시킨다. 하지만 그 승리가 기쁘기만 할 수는 없다. 그가 지은 죄가 있고, 그가 두려워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속물 변호사'가 주인공인 것은 '정의로운 변호사'가 주인공인 것보다 오히려 매력적일 수 있다. 속물도 인간인지라 그가 맞닥뜨리게 될 진실과, 또 그가 선택해야 마땅한 가치 안에서 분명 번민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이클도 그랬다. 다섯 살에 돌아가신 아버지도 변호사셨는데, 그분의 책을 통해 아버지를 만난 마이클은 '무고한 의뢰인'에 대한 서술을 각인하고 있었다. 가장 무서운 의뢰인이 무고한 변호사라는 것 말이다. 그런 의뢰인을 만나기도 힘들지만, 그의 무고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살아야 하니 말이다.
두 번이나 이혼한 마이클이지만, 그래도 그가 꽤 매력적인 인간임을 보여주는 건 전처들과의 사이에서 나타난다. 첫번째 부인과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딸아이는 마이클의 가장 약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결혼했다가 금세 헤어진 두번째 전처는 마이클의 현재 비서로 사업 파트너가 되어 있다.
세상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책 속에서 묘사되는 미국 사회는 백인과 흑인, 그밖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고 무엇보다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간극이 어마어마하다. 그건 링컨 차를 타고 다니는 백인 변호사 마이클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룰이다. 그런 위선 속에서도 꽤 찡한 장면들은 분명히 연출된다. 그런 게 우리 사는 세상 모습이고, 또 마이클 코넬리의 필력인 듯하다.
책을 다 보고 나니 과연 이런 작품을 영화가 얼마나 옮길 수 있을지 걱정하게 된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니까 더 심심해질 수도 있겠다. 반면, 알고 보니까 저 자의 저 얼굴 뒤에 어떤 속마음이 있는지도 알아차리면서 볼 수 있겠다. 일장일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