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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7 - 순조실록 - 가문이 당파를 삼키다 ㅣ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7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출간 속도는 균일하게 유지되었건만, 비교적 정조실록을 읽은지 오래되지 않아서 순조실록은 아주 금방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앞서 경종/영조실록을 미용실에서 퍼머하면서 읽었는데 오늘도 그렇게 되었다. 미용실에서 뼈다귀 말고서 기다리는 동안 순조실록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었다. 사장님이 만화로 공부하시나봐요? 하기에 네!했는데, 웬지 좀 찝찝. 나 만화로 공부하는 것 좋아하는데도 말이다.
1800년 6월에 정조가 승하했을 때 그의 뒤를 이은 임금은 11세의 어린 순조였다. 임금이 어리니 왕실의 가장 큰 어른이 수렴청정을 해야 했다. 그가 정순왕후다. 이제껏 파다한 소문 속의 정순왕후는 권력의 화신이었다. 정조를 영웅으로 드높이면 드높일수록 안티의 눈총은 모두 그녀의 몫으로 결집했다. 저자는 그 시각의 부당함을 꽤 공들여 설명했다. 어린 나이에 시집온 정순왕후는 왕실의 온갖 풍파를 다 지켜본 노장이 되어 있었다. 카리스마와 존재감을 두루 갖춘 여장부였지만 권력을 틀어쥔 권력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명분에 따른 순리를 지키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자신의 가문을 좀 더 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왕이 스무살까지 수렴청정한 예가 없던 것도 아닌데 순조가 열 다섯을 앞두고 있자 바로 권력을 내려놓는 모습은 보기 드문 귀감이었다. 그녀처럼 내려놓을 때를 미리 알았더라면 흥선대원군도 덜 비극적이었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정순왕후 김씨만큼이나 입방아에 많이 오른 이 시기의 대표 인물 김조순에 대한 설명도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흔히 세도정치의 대표인물로 손 꼽히지만 뜻밖에도 그는 생전이나 죽은 뒤 모두 세간에서 평가가 좋았다. 내려지는 모든 관직을 마다했고, 국구로서 마땅히 갖는 관직 하나만 유지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처신은 그의 가치를 더 높여주기만 했다. 그러나 본인의 행실만 잘 단속했을 뿐 친족의 행패는 내버려둔 것이 문제였다. 처신을 잘했다고 해서 그가 권력욕이 없었다고도 말 못하겠다. 이 시기 세도정치의 폐단은 몇몇 인물의 도덕성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500년 묵은 왕조가 쇠락한 나머지 무너져 가는 한 과정이라고 보여진다.
시대는 이미 옛날 같지 않았다. 이앙법 보급 등에 따른 농업 생산력의 발전과 화폐경제, 상품경제의 발달은 조선 사회의 근간인 신분제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과거에는 소수의 지배층에 다수의 피지배층이었다면 이제는 양반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훨씬 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영농 중심의 농촌 사회는 급격히 양극화의 길로 나아갔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자영농에서 부농으로 성장한 평민들은 양반으로 신분상승 시키기 바빴다. 방법은 여러가지였다. 국가에서 파는 공명첩을 사들이거나 곡식을 바치는 납속 등의 방법으로 합법적인 양반이 되거나 몰락한 양반으로부터 족보를 사는 편법까지 동원하였다. 초기 비용이 많이 들지만 각종 면역, 면세, 혜택을 떠올린다면 남는 장사였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반대편에 더더더 바닥으로 몰락하는 백성들이 생겨버렸다. 그들이 취할 수 있는 다음 길이란 뻔한 것이다. 홍경래의 난 때 반군 세력이 이미 끝장난 것이 보인 싸움에도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자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죽하면 그런 마음가짐으로 무기를 들고 일어섰을까.
세상은 바뀌어 갔다. 그러나 중세적 질서에 지나치게 길들여져 있었던 조선의 시스템은 달라진 세상을 바로 보지 못했다. 여전히 양반을 위한, 양반에 의한, 양반의 나라였다. 그들은 지은 죄에 비해 지나치게 가볍게 처벌받았고, 누릴 수 있는 권한은 무한했다. 오늘날 이 나라 경제를 쥐고 흔드는 부자들의 입장과 통한다고 할까. 이 시기 천주교와 동학 등 백성들이 종교와 신앙에 매달리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어려서 왕이 되어 대비의 수렴청정을 받았지만 초기의 순조는 제법 싹수가 보이는 임금이었다. 그의 뒤를 이어야 마땅했던 효명세자도 그랬다. 허나 효명세자는 명이 짧았고, 순조는 부지런했던 것과 달리 비전 제시가 부족했다. 더구나 효명세자와 사랑하는 딸들을 연이어 잃은 뒤로는 더욱 의지가 꺾였고 건강도 좋지 못했던 임금은 정사를 비변사에 맡겨놓은 채 그저 버티기만 하였다. 온 세상이 들끓고 있던 19세기에 조선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으니 닥쳐오는 쓰나미에 대항할 힘이 있을 리 없었다. 인간적으로는 가엾고 연민을 느끼지만 그래도 그가 임금된 자이니 책임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부분에서는 프랑스의 루이 16세가 떠올랐다. 그처럼 비극적인 죽음은 아니었다지만....
그래도 조선의 훌륭한 점은 이런 부분이다. 이리 답답한 임금을 향해 영의정이 직격으로 충언을 날린다. 이런 직언을 기꺼이 바치는 신하들이 왕조의 역사 내내 있어 왔다. 경우에 따라 목이 달아나기도 했지만, 그것을 새겨 듣는 임금도 있어 왔다.
오른쪽은 효명세자가 대리청정 중에 스물 둘, 젊은 나이로 사망했을 때 순조가 직접 지은 제문이다. 아들을 잃은 아비의 끓는 정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번 편에서는 배꼽 잡고 웃을 만큼의 탁월한 패러디는 그닥 눈에 띄지 않았다. 시대적 특수성일 수도 있고, 저자가 힘에 부쳤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몇몇 장면은 피식 웃게 했다. 벽파 김달순의 자살골이나 홍경래 듣보잡, 그리고 졸지에 인간 백정과 동격이 되어버린 가엾은 순조까지... 그나저나 28만원이 아니라 29만원 아니던가?? 무려 전 재산의 1/29인데 틀리게 표기하면 안 되지, 암....;;;;;
마른 수건도 비틀어 짜서 물을 나오게 하는 수령들과 탐학은 웃자니 슬프다.
순조실록은 앞서의 실록보다 기록이 부실한 편이었다. 뒷편은 더 심하다. 조선왕조실록은 철종까지의 기록만 담고 있는데 다음 18편에서 헌종과 철종을 함께 다룰 예정이지만 기록이 부실한 탓에 고민이 큰 저자의 입장도 끄트머리에 담겨 있다. 이 시리즈가 원래 20권 예정으로 알고 있는데 실록이 편찬되지 못한 고종과 순종실록은 그냥 지나치는 것인지, 아니면 승정원일기나 일성록 등을 바탕으로 마무리를 지을지 궁금하다. 제목을 생각하면 헌종과 철종실록이 끝인데 그렇다면 완결이 한 권 남았다는 얘기가 되지 않는가. 그건 너무 섭섭하고 안타까우니, 20권 다 채웠으면 좋겠다. 저자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이양선은 출몰하고, 열강은 조선을 탐내고, 이제 곧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몰려올 차례. 500년 묵은 늙은 왕조가 쇠락해 가는 모습은 쓸쓸하기만 하다. 그래도 끝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겠다. 애정과 관심을 갖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