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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 - Pirates of the Caribbean: On Stranger Tid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어제는 원래 경복궁 야간 개장을 가는 것이 목표였지만, 지나치게 습한 날씨와 좀처럼 지지 않는 해를 원망하다가 방향을 돌려 극장으로 갔다. 시간표를 몰랐기 때문에 도착한 시간에 맞추어 볼 수 있는 영화를 고르기로 결심했다. 내가 원했던 영화는 인사이드 잡이었는데 12시 넘어서만 표가 있었다. 목요일 개봉인데 왜 이렇게 늦게 하냐고 물으니 직원이 말하길, 영화의 내용 아시죠? 그래서 그래요.-한다. 아니, 영화의 내용이 뭐 어떻기에 그 밤중에 하나? 식코 같은 영화도 멀쩡히 낮에 봤는데 말이다.
킁, 아무튼 그리하여서 제일 많이 편성되어 있던 캐리비안의 해적을 보게 되었다. 까마득한 옛날에 1편은 보았는데, 중간에 2.3편은 보질 못해서 무척 오랜만에 만나는 잭 스패로우 선장이었다.
여전히 말썽 많고 재치꾸러기인 잭 선장은 왕궁에서부터 소란을 피우고 도망을 간다. 항간에서는 누군가 자신을 사칭해 선원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자신도 없는 배를 갖고서 제 이름으로 선원을 모으는 그 양반이 누구인지 모른 채 지나갈 수는 없는 노릇!
초반에 잭의 아버지도 잠깐 등장하는데, 전 시리즈에서도 아버지가 등장하는지 모르겠다. 페넬로페 크루즈가 맡은 안젤리카가 잭의 옛 연인으로 나오는데 앞서 2탄과 3판의 줄거리를 살펴보아도 그녀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4편에서 처음 등장하지만 원래부터 있었던 인물이라는 설정인가 보다. 어쩌면 잭의 아버지도 그런 경우일지도.
아버지는 젊음의 샘에 대한 힌트를 주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스페인의 왕도, 영국의 왕도 모두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젊음의 샘. 그러나 정작 잭은 거기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먹기 좋은 떡이지만 그만큼 위험한 미끼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려면 젊음의 샘으로 출발해야 하는 법!
바다 모습이 참 시원하다.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무인도의 바다도 참 예뻤는데, 이 사진 속의 바다도 시원하기만 하다. 온통 낡은 저 돛이 그래도 바람을 잔뜩 품고 씽씽 달린다. 검은 수염이란 캐릭터가 무척 무섭게 그려졌는데 이 인물도 원래 나왔던 인물인지 내내 궁금했다. 검을 빼들어 호령을 하면 배의 밧줄이 저절로 날아가 사람을 옭아매기까지 한다. 원래 이렇게 환타지적 성격이 있었나? 보는 내내 궁금했던 게 무척 많았다. 이 영화를 보게 될 줄 알았더라면 밀린 시리즈를 먼저 챙겨봤을 텐데 불시에 보게 된 거라서 내내 머릿 속에 물음표를 띄워야 했다.
젊음의 샘에 도착해서 그 물을 마시면 되는 게 아니라 의식이 필요했다. 은잔 두 개가 필요했고, 인어의 눈물도 필요했다. 그리하여 등장한 인어가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설정이었다. 처음 인어떼가 등장했을 때 맨 처음 뱃머리에 나타난 인어가 가장 예뻤지만, 주조연급 인어는 다른 인물이었다.
육지에서의 인어 모습과 물 속에서의 인어 모습, 그리고 눈물을 흘릴 때를 구별해내는 인어의 모습이 다 좋았고, 제 눈물의 가치를 아는 모습도 좋았다. 인어와 파트너가 되어준 목사님 캐릭터도 훌륭!
아쉬운 캐릭터는 페넬로페 크루즈가 맡은 안젤리카였다. 잭은 그녀가 몹시 무서운 사람이고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내내 강조했다. 그녀에게는 뭔가 비밀이 많아 보였다. 진실을 거짓말처럼 믿게 해서 뒤통수를 칠 줄 알았던 그녀. 그래서 그녀의 진짜 정체가 무엇일까 내내 궁금했던 나로서는 기대했던 반전이 전혀 나오지 않아서 다소 싱거웠다. 뭐, 끼워 맞추자면 진실을 거짓말처러 믿게 해서 관객도 뒤통수를 맞은 셈이랄까.
제프리 러쉬는 킹스 스피치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시 연기파 배우다.
다른 사람의 살아온 수명과 남은 수명을 빼앗아 나의 젊음을 더 연장한다는 것은 몹시 잔인한 일이지만, 살다보면 저런 사람은 왜 저리 오래 살까 싶은 나쁜 인간도 참 많은 법이니까 그런 사람의 생명을 안타깝게 일찍 죽게 된 사람의 생명에 붙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허망한 상상도 해보았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더더욱 조명을 받는 한 인물이 유독 생각났었다. 희생자들의 생명을 잡아 먹고 오래오래 사는 것은 아닐까 엄한 생각도 들었지 뭔가.
다시 영화 속으로 돌아가자. 아무래도 오락 영화이고, 시리즈를 반복하다 보니까, 대체로 예상했던 것들이 그래도 들어맞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귀엽고 섹시하고 얄밉지만 밉지 않은 잭 스패로우 선장 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조니 뎁이 즐겁고, 소소한 부분에서 킥킥 웃게 만드는 설정들이 즐거웠다.
이렇게 스케일 크고 뭔가 모험이 가득한 신나는 영화는 역시 극장에서 큰 화면과 시원한 사운드 속에서 들어야 하는 거라고 나의 선택에 만족해 했다.
내 자리는 제일 구석이기도 했고, 엔딩까지 노래를 다 들어보고 싶어서 끝까지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진짜 반전은 거기에 있었다.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난 다음에 의미심장한 장면이 한 컷 나오기 때문이다. 하핫, 역시 유머러스해. 다음 편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도 다음 편에도 안젤리카는 또 나오겠지? 조니 뎁이 앞으로도 좀 더 오래 액션 연기를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다음 편은 좀 더 빨리 나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