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는 체육대회가 있었다. 아이들은 잔뜩 고무되어 있었고 의욕에 가득차 있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나 때부터 체육대회를 3년에 한 번 개최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그 덕분에 규모가 아주 컸었다. 워낙 운동장이 큰 것을 큰 자랑거리로 삼던 학교였던지라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는 체육대회를 일주일 가까이 하기도 했었다. 월요일에 1학년, 화요일에 2학년, 수요일에 3학년, 목요일에 전체 종합 결승 이런 식으로... 우리 중학교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대회 개최 한달 전부터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에 4시간씩 응원연습을 했었다. 뭐, 우리도 만만치 않았구나. 

암튼, 그 정도 열기는 아니었지만 이 학교도 아이들의 응원전이 볼만 했다. 일단 학교가 워낙 작아서 숫자로는 장대함을 보여주지 못하지만 차려입은 옷들과 응원 구호가 무척 재치 있었다. 오전에는 너무 추워서 구경을 하다가 잠시 교무실로 대피를 했고, 점심 먹고 나서 다시 나와서 피구 시합을 구경했다. 시합은 무척 금방 끝났다. 아이들이 워낙 운동신경이 없어서 눈에 띄게 잘 하는 아이는 많지 않았다. 오호라, 이게 남자 고등학생과의 차이점이구나. 남학생들은 평소에 몹시 찌질하게 굴지라도 운동을 시켜놓으면 울끈불끈 근육을 자랑하며 펄펄 날아다녔다.  

다시 옛 생각이 난다. 나 중학교 때는 남학생과 합동 피구를 시킨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남자 애들이 힘이 좋으니까 공을 던질 때 양손으로 공을 잡고 던지게 했다. 그 정도 룰이면 남녀 한 팀에 넣어도 게임이 볼 만했다. 또 한 번은 우리반과 옆반이 피구를 했는데(둘 다 여자반) 공 2개를 가지고 진행했다. 엄청 살벌했다. 공이 휙휙 날아다니니까 금세 공에 맞고 밖으로 나가야 했다. 어느 순간 사각 툴 안에 나만 남았다. 양쪽에서 공을 던졌고, 나는 피하면서 하나의 공을 잡아버렸다. 아, 내가 생각해도 멋있었다. 하나는 피하고 하나는 잡고! 그렇다고 우리 반이 이기진 못했다. 상대는 더 많은 학생들이 남아 있었고, 그 다음 번에 내가 죽었으니까. 음... 결말이 슬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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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1-05-1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육대회를 1주일간 하면 울학교 애들은 좋아서 미치고 말거에요 ㅎㅎㅎ
사실 남학교 체육대회는 하루만 하기로는 너무 빈약하고, 몇몇 대표선수들의 잔치만 되어버려요.

마노아 2011-05-14 22:33   좋아요 0 | URL
인문계 고등학교인데도 체육대회 1주일씩 해서 막 놀라고 그랬었어요.
정말, 그렇게 열어주면 남학생들은 펄펄 날 거예요.
그 중에서 운동 싫어하는 애들도 있지만, 운동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잘 하는 애들도 있잖아요.^^

버벌 2011-05-15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체육대회. 체육대회 버벌 -> (중,고등학교,대학) 체육부장, 오락부장, 기획부 출신. 체육을 지지리 못했는데 남들보다 등치 크다고 무조껀 시켜서리. 푸핫! 피구(우승) 발야구(우승) 배구(준우승) 짠~~~ 그래도 꽤 했는데.. ㅎㅎㅎㅎㅎㅎ 그립네요.

저도 인사동 가고 싶어요.

마노아 2011-05-15 22:37   좋아요 0 | URL
오오, 체육과 남다른 인연을 가지셨군요! 피구와 발야구는 아주 즐겁게 해보았는데 배구는 해보지 못했어요. 주먹 위에 올려놓고 위로 튕겨서 30개 채우는 그 정도의 시험만 본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배구는 지금도 룰을 잘 모르겠어요.(>_<)
저는 피구랑 배구 등등 무척 좋아했는데 중3 때는 아무도 추천을 안 해주어서 제가 손 들어서 발야구 선수로 뛰었어요.ㅋㅋㅋ

봄날의 인사동은 무척 활달했어요. 이야기가 많은 곳이에요.^^

순오기 2011-05-16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페이퍼는 파란만장은 아니군요~ ^^
책꽂을데 없으면 책장을 사고, 책장을 사들이면 또 채우려고 지름신을 부르고~~ 악순환이에요.ㅋㅋㅋ

마노아 2011-05-16 21:29   좋아요 0 | URL
돌잔치에서 파란만장한 일이 있긴 했지만, 차마 적을 수는 없었어요.ㅜ.ㅜ
책을 바닥에 둘 수 없어 책장 둘 데를 찾아봤는데 다행히 저만한 크기의 책장 두 개는 들어설 자리를 확보했어요. 유난히 더 사진 않겠지만 평상시 사는 속도는 유지하지 싶어요.^^ㅎㅎㅎ

다락방 2011-05-16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나무 책장인 줄 알았는데 '삼나무 스타일'-->여기서 완전 빵터졌어요. ㅎㅎㅎㅎ
두유 딸기 크림 프라프치노에서 크림을 빼도 맛있군요. 흐음, 그럼 저도 지나친 쾌락을 삼가하기 위해서 앞으로는 크림을 뺄까요? 흐음..

날씨가 좋아요, 마노아님. 그래서 이렇게 날씨가 좋은날 피구의 사각틀 안에서 하나의 공을 피하고 하나의 공을 잡는 멋진 마노아님을 상상했어요. 만약 여중을 나오고 여고에 다니면서 그런일을 했다면, 그리고 컷트머리 였다면, 마노아님을 짝사랑하는 여자후배들이 마구 생겼을 거에요. 지나다닐 때마다 여자애들이 꺅꺅 소리를 질렀을거고, 등교하면 책상에는 사탕과 편지들이 수북하게 쌓였을 거에요. 하하하하. 하나의 공을 피하고 하나의 공을 잡다니! 멋져요. 흑흑 ㅠㅠ

마노아 2011-05-16 21:31   좋아요 0 | URL
일년도 더 지나서 알아차렸네요. 그동안 애정을 담뿍 담아 바라봤는데 MDF라는 걸 안 순간 배신감이 확 치솟았어요...;;;;

날씨가 좋아서 점심 먹고 엄청 졸렸어요. 하필 교감샘 바로 앞자리여서 졸 수도 없고 엎드릴 수도 없었어요. ;;;;
저는 남녀공학 중학교와 여고를 나왔어요. 나를 향해 꺅꺅 소리를 지르는 여학생과 사탕과 편지가 담긴 책상 따위는 구경해본 적이 없어요. 크흑, 그런 그림 같은 일을 소망해보긴 했답니다. 하지만 멋지다고 해줘서 고마워요. 아무도 공감 안 해줘서 머쓱했어요.ㅎㅎㅎ

다락방 2011-05-16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터벨트 이야기 궁금해요!! >.<

마노아 2011-05-16 21:31   좋아요 0 | URL
가터벨트 이야기는 다락방님을 만나서 특별히 따로 나누지요.ㅎㅎㅎ

pjy 2011-05-17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조를 사랑하다가 만난 사람들...혹시 포청천의 그 남자이름이 전조맞나요?^^
돌잔치 이벤트 당첨축하드리고, 선물이 뭐였는지 궁금하네요~
생각해보니 저도 샤넬은 없고, 샤넬스타일의 가방은 있습니다 ㅋㅋㅋㅋㅋ

마노아 2011-05-17 21:2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그 전조입니다. 다만 포청천의 전조는 '하가경'인데, 저는 칠협오의의 전조 '초은준'을 좋아해요. 우리 모임에는 두 전조를 다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요.^^
돌잔치에서 당첨된 선물은 문화상품권이었어요. 2만원어치 들어 있어서 같이 간 언니와 반땡 했어요.^^
아, 그러고 보니 명품이 아닌 명품 비스무리한 스타일의 가방과 귀걸이와 시계 등등, 각종 물건들이 제게도 있네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