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의 라스트 댄서 - Mao’s Last Danc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처음엔 제목이 '마오의 라스트 댄스'인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나는 주인공 이름이 마오인가 했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 마오의 라스트 댄서. 여기서 마오는 중국의 마오쩌둥을 가리킨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주인공 리춘신의 자서전이 원작이 되었고, 작품의 캐스팅에 리춘신 자신이 관여했다고 한다. 

영화는 리춘신이 미국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때는 1981년. 리춘신은 휴스톤 발레단의 벤 스티븐스의 눈에 들어 3개월 간 교환 유학생으로 미국 땅을 밟은 것이다. 당에서는 자본주의의 사악한 기운에 물들지 말고 현혹되지 말라며 갓 미국에 도착한 그를 단속하기 바쁘다. 리춘신 역시 절대 그럴 일 없다고 다짐을 해본다. 촌스런 양복과 촌스런 넥타이가 그의 다짐을 증명하듯 부조화스럽다. 

 

 리는 벤의 집에서 머물었는데 백화점에서 벤이 사준 옷이며 신발 등등이 부담스럽다. 자신의 아버지는 일년 내내 열심히 일해서 50불을 벌어들이는데, 벤이 그를 위해서 그날 하루 쓴 돈은 500불이 넘었다. 벤이 어떻게 대처할까 궁금했는데 그는 나이만큼 연륜 있고 지혜롭게 대처했다. 여기 있는 동안만 쓰고 집으로 돌아갈 때 다시 돌려달라고.  

영화는 이렇게 현재를 보여주면서 그가 어떻게 발레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는지 과거로 재차 점프한다. 

열한 살 어린 나이였을 때 그의 고향 산둥에 당에서 보낸 사람들이 도착한다. 발레 학생에 적합한 아이들을 고르는 자리였다. 눈에 띄지 못한 그는 잊혀질 뻔했지만, 어떤 마음이었는지 선생님은 그를 데려가보라고 추천한다. 몸이 유연했던 리춘신은 그대로 베이징 예술 학교에 입학해서 발레를 배우게 된다. 하지만 체격도 작고 체력도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평발이었던 그의 하루하루는 순탄치 않았다.

 

 위의 선생님은 리춘신 역을 맡은 배우의 친 아버지라고 어느 기사에서 본 것 같은데 정확히 모르겠다. 암튼, 감정을 배제한 채 당이 원하는 이념을 충실히 재연하기를 원하는 무대 위에서 선생님은 발레가 갖춰야 할 것들에 대해서 홀로 항변하다가 학교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선생님을 통해서 춘신은 자신이 뛰는 정도가 아니라 날아오를 수도 있다는 꿈과 희망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근성과 끈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와중에 중국을 방문한 휴스톤 발레단 벤의 눈에 들었던 것이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즐거웠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자유에 눈을 뜨게 되었으니 그로서는 경천동지할 세상을 만난 것일 터. 뿐아니라 사랑도 찾아왔다. 연습하고 있던 발레리나에게 조언을 해주다가 그녀가 부상으로 다리 길이가 어긋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실제 리의 첫 연인이 그런 부상을 입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리보다 발레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고, 그것이 두 사람의 앞날에 그림자를 지울 거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 리는 영어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실수들이 많았다. 본의 아니게 그의 엉터리 영화는 언어 유희가 되어서 관객을 즐겁게 만들었다. 엘리자베스 역의 배우는 낯이 익은데 어디서 보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외국인이어서 그렇게 보였던 것일까...

 

 리가 휴스톤에서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발레 공연 당일 돈키호테에서 배역을 맡은 이가 어깨 부상을 입은 탓이었다. 모두가 무모하다고 말했지만 벤은 단 3시간 만에 리를 완벽한 주역으로 만들었다. 뜨거운 환호와 갈채, 자신의 가능성까지 알아버린 리는 더더욱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당에서는 그의 체류 연장 신청을 거절했고, 그는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찾았고, 변호사는 그에게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정치적 망명이 가능하지만 권하고 싶지 않고,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하는 방법도 있지만 사랑하지 않는데 체류를 위해서 결혼하는 것도 역시 말리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리에게는 엘리자베스가 있지 않은가. 

 

변호사 찰스 포스터는 누군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위기의 주부들에 나왔던 인물이 아닌가. 괜히 반가웠다.^^ 

리는 엘리자베스와 전격 결혼을 하고, 이것은 벤을 노엽게 만들었다. 리에 이어서 자신의 발레단이 베이징을 방문해 보다 폭넓은 교류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리가 남음으로 정치적 이슈로 변하고 거기에 대한 제재를 받을 테니 말이다. 벤의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 리의 선택은 그의 가족뿐 아니라 그를 스타로 만들어준 휴스톤 발레단에게도 지독히 이기적인 선택이니까.  

하지만 또 리의 입장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몰랐다면 모르되, 알았다면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돌아간다 한들 억압된 체제 하에서 그가 보여줄 수 있는 발레는 감정을 버린 메마른 춤사위가 될 것이다. 모두에게 나쁜 사람도 되지 않고 자신의 꿈도 이룰 수 있는 길이란 당장은 보이지 않는다. 많은 예술가들이 정치적 난관 앞에서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들여다봐도 그렇고, 영화 '타인의 삶'을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리는 남기로 결심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그는 날마다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운 가족을 만날 수도 없고 소식을 전할 수도 없다. 나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는 건 아닌지 늘 전전긍긍해야 했다.  

발레도 힘들었다. 그와 보조를 맞추지 못한 엘리자베스도 힘들었다. 그녀는 사랑을 위해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 사랑의 결과가 자신은 만족시켜주지 않는다. 그녀도 꿈을 이루기 위해 또 다른 도전을 해야 했다. 두 사람은 끝까지 함께 가기 힘든 운명이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진들은 대개가 실제 발레리나/발레리노들이어서 무대 위에서의 완성도가 훌륭했다. 심지어 군무조차도 최고의 솔리스트들을 기용해서 만든 장면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남주인공보다 저 무대 위의 발레리나의 춤이 더 인상적이었다.

 

발레에 대해선 잘 모른다. 스무 살 때 신문에서 보았던 '해설이 있는 금요 발레'를 보러 국립극장을 찾았지만 선착순에 밀려 입장하지 못하고 뮤지컬 '킹 다비드'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와야 했던 게 첫 출발이었다. 그 후 몇 번을 더 실패하고 결국엔 갈라쇼를 볼 수 있었는데 그때 나왔던 남자 무용수의 역동적인 모습에 흠뻑 빠졌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고 해외에서도 인정받은 실력파였는데 지금은 이름도 잊었다. 내가 알아차린 그때에 이미 유부남이라는 걸 알고서 관심이 급 식었는지도 모른다.  

리춘신 역을 맡은 발레리노는 보는 내내 유오성을 떠올리게 했다. 연기는 처음이었을 텐데 어색하지 않았고 배역에 잘 녹아들었다. 그의 청소년 시절 역을 맡은 이도 유명한 발레리노였고, 어릴 적 소년의 역을 맡은 아이는 체조를 한다고 한다. 모두들 몸으로 예술을 하는 이들이었구나.

영화를 보면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찬양으로 읽히기도 쉬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비교하다 보니 표면에 드러난 것일 뿐, 그게 주요 메시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TV시리즈 '로이스와 클락의 슈퍼맨'에서 '미국적인 것'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이 곧잘 나오게 했다. 미국스러운 것들 중에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도 물론 많겠지만,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미국적인 것들은 그가 누구이든지 그의 자유를 존중하고 그걸 지지해 주는 모습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변호사 찰스가 그랬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자막에 보면 그는 이민법의 최고 권위자가 되었고 리춘신과 같은 이들을 계속해서 도왔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리가 어떻게 그와 만나게 되었는지 그 과정까지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특별한 연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미국 땅에서 자유를 얻고자 하는 한 사람의 인물로서 그를 도왔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그 지역의 유명 인사가 아니었을지라도.

영화의 엔딩이 참 감동적이었다. 화려한 조명이 반짝이는 훌륭한 무대가 아닌 그곳 흙바닥 위에서, 생전 발레라고는 접해보지 못했을 사람들 앞에서, 그렇지만 누구보다 그를 만나고 싶어했고 그의 춤을 기다려온 사람들 앞에서 보여준 아름다운 춤사위. 오래오래 여운이 남는다.  

역시 음악 영화와 춤 영화는 늘 나를 만족시킨다. 아주 가끔 예외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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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ek 2011-04-29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사다 "마오"인줄 알았습니다. 처음엔 영화가 아니라 공연 포스터인줄... 그나저나 카일은 완전히 할아버지가 되었군요... <쇼걸>... 아니 <섹스 앤 더 시티>까지만 하더라도 괜찮았었는데... 세월 앞엔 장사 없군요...
ㅠㅠ

마노아 2011-04-29 23:24   좋아요 0 | URL
아하핫, 때가 때인 만큼 오늘은 그 마오를 많이 떠올릴 거예요.^^ㅎㅎㅎ
카일이 쇼걸과 섹스 앤 더 시티에도 나왔군요. 제가 본 건 위기의 주부들 뿐이네요.
그래도 저 정도면 분위기 있게 나이 든 것 같아요.^^

pjy 2011-04-29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만 제목을 잘못읽은게 아니었군요~ 남주인공 이름이 '마오'인줄 알았는데요^^;
다양한 음악과 비보잉까지 춤에 열정적이신 엄마가 좋아할만한 영화네요~

마노아 2011-04-29 23:24   좋아요 0 | URL
오, 다양한 음악에 비보잉까지라니... 어머니 참 멋지십니다.
추천하고 싶은 영화예요.^^

다락방 2011-05-01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춤영화인가 싶어 볼까 했었는데 중국영화라 좀 망설였거든요. 그런데 볼까 어쩔까 잘 모르겠어요. 마오쩌둥의 사진을 막 찢어버렸던 내용이 나오는 책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이 리뷰를 읽는 내내 겹치네요.

그나저나, '내가 알아차린 그때에 이미 유부남이라는 걸 알고서 관심이 급 식었는지도 모른다' 읽고 뿜었어요, 마노아님. 이건 마치 제가 임태경을 완전 애정하다가 결혼하는 순간 관심이 급 식은것과 마찬가지잖아요. 그들이 유부남이든 결혼을 했든 총각이든 그들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데 말예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마노아 2011-05-01 23:05   좋아요 0 | URL
중국에서 제작했나 찾아보니 오스트레일리아 제작이네요. 영화는 꽤 좋았어요. 저는 추천이에요.^^
으하핫, 유부남 얘기 쓰면서 저도 다락방님과 임태경 생각이 났어요.
다락방님이 임태경에게 차가워질 때 잘 이해가 안 갔는데 저도 전적이 있었던 겁니다.
하하하하하하핫, 우린 늘 이러네요.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