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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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이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는 도덕 수행평가 때문이었다. 자서전을 쓰라는 게 수행평가의 과제인데 가족을 중심으로 쓰라는 게 힌트였고, 대상에게는 장학금도 수여하겠다고 하셨다. 원성이 자자한 가운데 여울이는 자신의 가족을 돌아본다. 가족이라는 단어 두 글자가 벌써부터 한숨을 물어내게 할 만큼 여울이네 가족은 상태 불량이다. 오죽하면 제목이 불량 가족 레시피일까. 

여울이네 집은 보기 드물게 대가족이다. 그렇지만 권장할 만한 가족 구성은 절대 아니다. 일단 가장 큰 어른으로 집안일을 도맡아 하시는 여든 셋의 할머니가 계시고, 채권 추심 일을 하고 있는 아빠가 있다. 그리고 서로 엄마가 다른 세 아이가 있고 뇌경색에 걸려 몸이 불편한 삼촌까지 있다. 오빠와 언니의 엄마들은 호적에라도 올라 있지만 혼외 자식인 막내 여울이는 그마저도 되어 있지 않다. 나이트 댄서라는 직업만 알고 있을 뿐, 여울이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아무 것도 없다. 전문대에 다니는 큰오빠는 다발경화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어서 기저귀를 차고 생활해야 하고, 고3인 언니는 심각한 비만인데 만날 욕을 달고 살며 여울이와 으르렁거리기 바쁘다. 언니와 반대로 빼빼 마른 여울이는 집을 떠나 가출이 아닌 '출가'를 하는 게 지상 최대의 목표다. 이런 여울이에게 유일하게 기쁨을 주는 일은 현재로서는 코스플레 뿐이다. 옷을 장만하려면 돈이 꽤 드는 관계로 아빠의 주머니를 슬쩍슬쩍 손대는 것도 여울이를 바쁘게 하는 일 중 하나다. 

이런 조건을 갖고 있는 여울이네 집이다 보니 사연이 없을 수가 없고 사건이 없을 수도 없다. 식구가 많아서 4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보증금 2천 만원에 월100만원의 세를 겨우겨우 내고 있는 가난한 살림. 할머니는 황천 길이 멀지 않은 시점까지 손주 손녀에 병든 아들 뒤치닥꺼리를 하느라 허리를 펼 세가 없다고, 양로원에 들어가 편히 사는 사람 팔자를 노상 부러워하고 계시다. 며느리가 들어오면 허리 좀 펼까 싶었지만, 며느리들마다 자식 새끼만 안겨주고 떠나버리니 신세 한탄이 아니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불곰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아빠는 가족을 모두 채권 추심의 무임금 알바로 쓰기만 하고, 심지어 아이들은 그 일로 학교를 결석하기까지 한다. 아무 것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여울이가 자신의 가출을 '출가'로 명명하며 그 날만을 꿈꾸는 것이 백 번 이해가 간다. 물론, 그 가출은 여울이만 원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가족들은 잦은 불화와 충돌로 서로를 할퀴다가 하나 둘 가출을 감행한다. 첫 스타트는 언니였다. 미술 공부를 하고 싶었던 언니는 아빠와 크게 싸우고는 손찌검을 당하자 다음 날 새벽에 짐을 싸들고 집을 나갔다. 재능이란 이 집에서 '불필요한 개인기'라고 명명한 여울이의 표현이 안타깝게도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다.  

언니에 이어 삼촌과 큰오빠가 같은 날 집을 떠나버렸다. 모두 아빠와 싸운 뒤다. 아빠 역시 유일하게 돈 버는 사람으로서 무거운 짐을 얹고 휘청거리는 중이었다. 서로 따뜻한 대화와 격려가 오고 가는 집이 아니었고, 그런 것이 가능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어쩌면 서로의 노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기대하는 것조차 무리수인 집이 분명 있다고 여긴다. 가난하고 궁핍한 살림살이와 엄마의 부재, 복잡한 가계도와 병마까지... 그런 집에서 따뜻한 우애와 서로에 대한 헌신과 희생을 기대하는 것은 지극히 비현실적인 드라마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여울이는 코스플레 행사장에서 천사 복장을 한 40대 아줌마와 알게 된다. 워낙 평균 연령대가 어린 행사장인지라 눈에 튀기도 했지만, 하필 '천사'인지라 더 부각되었을 것이다. 톨스토이를 유난히 사랑하는 이 아줌마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미하일 천사를 다음 코스플레 대상으로 이미 정해 놓았다. 그 덕분에 여울이는 톨스토이의 책을 접하게 되는데, 이 열일곱 학생이 판단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결론이 서글프다. 

미하일은 세몬과 살면서 그 질문의 답을 얻는다.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혜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사랑이며,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산다는 게 그 답이었다. 미하일은 지극히 종교적인 이 세 가지 답을 깨닫고 하늘로 올라간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며,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은 욕심이며,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서 얻은 답이다. 모두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지,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한 명도 없다. – 103쪽 

사람이 사랑 때문에 산다는 명제가 오답이 아님에도, 한참 꿈과 낭만이 많을 법한 이 여고생에게 그것이 허무하게 들릴 정도라면 그 인생은 벌써부터 얼마나 고단한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여든 셋의 할머니에게도 마찬가지다. 자식 손주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할머니는 다시금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양로원을 물색하느라 바쁘셨다. 할머니마저도 가출을 원하고 계신 것이다.  

마침내 아버지의 사업은 종말을 고했다. 집에도 압류 딱지가 붙었고, 아버지는 구속까지 되고 마신다. 아버지마저 집에서 사라지고 할머니는 부산 동생 집으로 옮기도록 결정되었다. 본의 아니게 식구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여울이의 출가가 완성되게 된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소원 성취라니, 울 수 없어서 웃어야만 할 것 같았다. 삐에로 같은 슬픈 웃음을 말이다.  

여울이는 아주 성실하고 착하거나, 또 가족에 헌신적인 그런 아이는 아니다. 또래 아이들만큼 욕심도 많고 가끔 돌출 행동도 하고 반항도 하는 평범한 아이다. 가족 구성이 원만하지도 않고 집안 살림이 편안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일찍 철들어서 안쓰런 아이도 아니었다. 허나 그런 아이도 집이 이렇게까지 해체되어 버리니 철이 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도덕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말씀하신 것처럼 위기에 처한 여울이네 가족은 이제 진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여울이는 마무리 단계에서 그런 결론을 내렸지만, 이미 가출을 감행한 다른 식구들도 똑같은 판단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규정한 언어는 달랐을지라도. 이 정도 불량 가족이라면, 애석하지만 각개격파가 필요하다. 여울이의 경우는 아직 지나치게 어리지만, 그래도 그 곁에 남기로 결심한 할머니가 계시니 완벽한 벼랑 끝은 아닌 거라고 안심해 본다. 쉽지는 않겠지만, 여울이도 언니도 자신의 꿈을 잠시 유예한 채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나갈 것이다. 삼촌 역시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미국에 가 있는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 하루 24시간을 풀가동 시키며 버티고 있다.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오빠 역시 그럴 것이고, 아빠 역시 교도소에서 인생 후반부를 열심히 설계하실 것이다.  

작품은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무리하게 분홍빛 미래를 제시하지 않는다. 현실은 이만큼, 혹은 그보다 더 시궁창일 때도 얼마든지 많이 있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울의 바닥을 치게끔 만들지도 않는다. 진화를 외치는 여울이의 기개를 믿게 만들어 주었으니...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다.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여울이와 비교되는 친구 류은이는 부모의 과도한 기대와 간섭으로 숨막혀 하지만, 그 갑갑증이 잘 묘사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그 바람에 여울이의 서러움을 부각시키지도 못했다. 40대 나이에 코스플레에 나섰던 아줌마가 천사에 집착하는 이유가 잘 설명되지 않았고, 뭔가 사정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만 풍겼을 뿐 연결 고리가 없어서 동 떨어진 느낌을 자아냈다. 여울이의 첫사랑 세바스찬도 등장과 퇴장, 그리고 사이사이의 에피소드도 자연스럽지 않고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다. 뭔가 의욕은 앞섰지만 좋은 재료로 아주 맛깔스런 음식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청소년 소설은 언제나 반갑고 고맙다. 다양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는 것 같아서. 아직은 아이의 목소리는 설익고, 할매의 목소리가 좀 더 자연스럽지만, 작가의 다음 작품에서는 분명 더 현실적이고 실감나는 목소리가 들릴 거라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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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4-25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중학교 도서실에서 빌려왔어요. 리뷰는 책 읽고 나서 읽을게요~ ^^

마노아 2011-04-26 12:52   좋아요 0 | URL
위저드 베이커리가 연상되는 전개였어요. 이런 진행도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루쉰P 2011-04-26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내용이 너무 우울해서...리뷰만 읽었는데도 말이죠. ^^ 그래도 책을 읽고 쓰시는 후반부의 날카로운 평가는 저에게도 많이 도움이 됐네요.

프로필 사진 바뀌셨어요. 누가 보면 마노아님 남자인 줄 알거에요. ㅋㅋㅋ

마노아 2011-04-26 12:53   좋아요 0 | URL
무척 우울한 내용이지만 그걸 발랄하게 전개시키긴 했어요. 다만 그걸 모두 버무린 힘은 좀 약했고요.^^

아아, 저 사진을 못 알아보면 너무 슬플 거예요. 울 공장장님이 이렇게 찬밥이 되어가다니...ㅜ.ㅜ

버벌 2011-04-26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꼬네집에 놀러올래?" 보셨어요? 전혀 다른 내용의 소설인데. 왜 이 리뷰를 읽고 "머꼬.."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네요. ㅡㅡ;;;;;; (참 이상하다) 오랫만에 서점에 나가봐야겠어요. 요즘 계속 인터넷으로만 구입을 해서. 나가서 불량가족도 찾아보고 올게요 ^^ 관심이 없었는데.리뷰보니 급 보고파져서. 리뷰 읽는 걸 중단해야 할까봐요. 락방님도 그렇고 마노아님도 그렇고. 여기저기 기웃 기웃 리뷰를 읽으면 죄다 보고 싶어져요. 이번달 카드값에 월급은 벌써 바닥을 쳤는데. 더 내려갈 곳도 없는데 어쩌란 말인지 모르겠어요. ㅠㅠ

마노아 2011-04-26 12:54   좋아요 0 | URL
머꼬네집에 놀러올래는 처음 들어본 책이에요. 제목이 무척 재밌어요.
불량 가족하니까 조반니 과레스끼의 까칠한 가족도 떠오르긴 해요. 분위기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요.
알라딘 서재질은 책지름신을 늘 동반하곤 해요.
이건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에요. 훌쩍...ㅜ.ㅜ

버벌 2011-04-26 21:08   좋아요 0 | URL
안 보셨으면 보세요. 처음 직장 들어왔을때니 근 9~10년 된것 같네요. 보험 설계사분이 보험 들라면서 자신의 책 빌려줬었어요. 기대안하고 읽었는데 기억에 많이 남는게... 재미있게 있었어요. ^^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오랫만에 머꼬네도. 까칠한 가족은.. ㅎㅎㅎㅎㅎ 읽다가 웃다가 했는데 지금까지 완독은 못 했어요. 한번 손을 놓으니 이어 읽기가 쉽지 않네요.

마노아 2011-04-27 00:26   좋아요 0 | URL
전 머꼬가 외국 이름인가 했더니 우리나라 작가님 책이었네요.
하핫, 다시 읽어보니 우리말인 것을요.^^ㅎㅎㅎ
추천해 주셨으니 기회 되면 읽어볼게요. 어떤 책인지 저도 궁금해졌어요.
저도 읽다가 중단된 책은 다시 읽기가 힘들더라고요. 결국은 처음부터 읽게 되고요.
그렇게 해서 중단된 저의 로마인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5권까지 읽었는데 1권부터 다시 읽어야 기억날 것 같아요..ㅜ.ㅜ

버벌 2011-04-27 02:11   좋아요 0 | URL
뒷 권이 안나와서 본의아니게 읽기가 중단된 경우도 있잖아요. 얼음과 불의 노래가 그쪽인데... 새로 나올때마다 그 두꺼운 책들을 1부 부터 읽어야 합니다. 5부가 나온다는 소리가 언제부터 들렸는데 아직도인지. 1부부터 읽을 각오를 하고 있으니 제발 좀 나왔으면 좋겠어요. 마노아님. 마틴옹에게 여행좀 그만 다니고 글 좀 써달라 소원을 빌어주세요. 저는 순수함을 잃어버려서 마음이 바르지 못해 기도가 안 먹힐거에요 ㅠㅠ

마노아 2011-04-27 18:08   좋아요 0 | URL
으하하핫, 어제 브론테님 서재였던가, 암튼 스티븐 킹 서문이 생각나요. 어느 80되신 할머니가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결말만 살짝 얘기해달라고....ㅎㅎㅎ
저 이번에 일본에서 지진 났을 때 사랑하는 그 많은 만화가들 생각이 났어요.
결말을 모를 수도 있겠단 생각에 조바심마저..^^;;;

양철나무꾼 2011-04-26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자의 목소리가 실패인가 보네요.
재능이 '불필요한 개인기'라고 하다니, 여울이 어찌보면 맹랑한걸요.
근데 여울이를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죠?^^

마노아 2011-04-26 12:55   좋아요 0 | URL
바른 표현을 쓰려는 의도에 어떤 부분은 뉴스를 보는 느낌이 나고, 반면 욕쟁이 언니를 표현할 때는 욕을 위한 욕처럼 들리고 그 사람의 목소리로 들리지 않았어요. 할머니의 입담은 자연스러웠는데 말이지요.
불필요한 개인기는 참 착잡했어요. 우리 같이 여울이를 응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