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 저승편 - 하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발설 지옥에서 염라대왕의 호감을 사며 후한 대접을 받은 우리의 소심한 자홍 씨와 능력자 변호사 진기한 씨. 이제 다음 지옥을 무사히 지나가게 해줄 강철 트랙터도 갖고 있다. 하지만 강철구슬들이 굴러다니는 강 '철환소'는 역시 만만치 않다. 본의 아니게 재판도 받기 전에 지옥으로 떨어졌으니 말이다. 게다가 여섯 번째 지옥에 갇혀 있는 이들은 생전에 살인, 강도, 강간 등 중범죄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겉만 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그들의 무섭고 추한 속내들. 그렇지만 착하디 착한 자홍 씨는 여기 있을 인물이 아니고, 임기응변에 유독 강한 진 변호사도 그를 여기서 내버려둘 위인이 아니다. 독사지옥의 변성대왕은 무척 착해 보이는 인상의 여자. 여기서는 본인의 죄만 보는 것이 아니라 피붙이와 친구들의 죄도 본다고 한다. 이른바 '연좌제!' 

역사 속에서 연좌제는 그야말로 무섭고 비합리적인 법이건만, 지옥에서의 연좌제는 조금 다르다. 그들이 착하게 살았으면 나의 죄가 덜어지고, 그렇지 않으면 무거워 진다고 한다. 혼자만 착하게 사는 것도 정도가 아니었다. 더불어 함께 착하게 살아야 했던 것. 그리고, 지금 착하게 살았던 과거를 갖고 이곳에 온 김자홍 씨는 훗날 그들이 심판 받을 때 공덕으로 다가갈 것이다. 그렇게 서로서로 생전의 연이 죽어서까지 닿는 것. 뭔가 합리적으로 보인다. 좋은 연은 죽어서도 좋게 연결되고, 나쁜 연은 죽어서도 나쁘게 작용한다. 그러니 우린 또또! 착하게 살아야 한다. 더불어서 같이... 

연이어 무죄 판결을 받은 자홍씨. 이제 저승에서 49재 안에 7번 받는 재판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그 전에 저승의 시스템에 대해서 좀 더 알고 가는 시간. 두 사람은 커피 타임을 갖는다. 

 

스타벅스를 무릎 꿇린 지옥 커피숍! 더 지독한 49일 이후를 티오피와 비교하는 건 대구가 좀 안 맞긴 하지만, 아무튼 자홍 씨 쫄았다. 허나 걱정은 금물! 지금까지의 성적으로 보건대 댁은 분명 극락행이거나 아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할 테니.... 

이번엔 저승삼차사가 공들이고 있는 원귀 얘기를 해보자. 원귀로 둔갑하긴 했어도 사실은 자홍 씨보다 더 순둥이였던 유성연 병장. 그의 한풀이를 위해서 같이 뛰어준 고마운 저승삼차사. 수명이 남아 있는데 임의로 데려올 수는 없고, 대신 죽어서도 내내 후회할 낙인을 찍어준다. 어떤 변호사도 선임할 수 없고, 지옥의 모든 벌을 갑절로 받게 될 중죄인의 표시. 당연히 환생은 꿈도 꿀 수 없다. 이런 낙인을 찍어 마땅한 인물들이 뇌리를 마구 스쳐 지나간다. 온 얼굴을 덮어서 마구 도장을 찍어주고 싶다. 일종의 대리 만족이지만, 아주 쪼금은... 위안이 된다. 

어머니께 작별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꿈속을 방문하는 저승차사와 유성연 씨. 엄마의 마음밭은 춥기만 하다. 마음 속이 춥기 때문에 꿈속에서도 황량하고 춥다. 애잔하기만 하다. 자식 놈이 천상에서 훌륭한 장군이 되어 있다고 뻐겨도, 어미 눈을 속일 수가 있을까. 훌륭한 갑주를 착용하고 있어도 그 눈의 일렁임을 못 알아차릴 리가 없다. 대통령이든 장군이든, 세상의 그 어떤 높고 영예로운 자리여도 아들의 목숨과 바꿀 수 없다. 어머니 마음이 너무 아파 같이 울고 말았다. 어쩌랴, 어쩌랴... 

자, 이제 마지막 지옥 관문을 가보자. 거해지옥의 태산대왕은 남을 속여 이득을 취한 일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기둥에 묶여 있는 자홍 씨에게 전기톱이 다가온다. 남을 속인 일이 있으면 5cm씩 가까워 오고, 남에게 속아 피해를 본 일이 있으면 3cm씩 멀어진다. 내가 지은 죄가 더 성큼성큼 다가오는 게 보다 정직한 계산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의 산업 속성상, 회사 생활하고 지냈던 자홍 씨도 본의 아니게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더 힘없는 자를 착취하는 일에 동원되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서 바로 진기한 변호사가 있는 게 아닌가! 

 

그의 인생 여정에 속아서 손해본 경우는 너무 많았다. 그 덕분에 멀리 저멀리 후퇴해버린 전기톱. 이거... 기뻐해야 하나? 모르고 지났다면 차라리 다행인데, 나중에라도 속은 걸 알았다면... 이렇게 사후 심판대에서 조금은 덕이 된다고... 역시 자기 합리화 겸 위안을 삼아야겠다. 거해지옥 도감에까지 실린 평화의 댐 사건... 눈물이 앞을 가린다.  

호기심 많고 호탕했던 염라대왕은 은밀히 진기한 변호사의 뒷조사를 시켰다. 이 양반,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든 죄인을 구제하기 전까지는 성불하지 않겠다 작정하신 지장보살님. 혼자 힘으론 역부족이라 여기시고 저승 최초의 변호사 양성기관을 세우셨다. 이름하여 '지장 법률 대학원' 아아, 저승 근대화 최고다. 그곳의 유례 없는 훌륭한 학생이 바로 진기한. 그런 그가 수석 졸업의 영예를 버리고 변호사의 길로 뛰어들었다. 더 좋은 대우, 나은 환경, 연봉(?) 등등 모두 걷어차고서. 그렇게 유능한 변호사에 대비할 상대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쁜 놈까지 쉽게 지옥을 통과하면 곤란하지 않은가. 변호사에 대응할 사람은 누구???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참 착한 사람 김자홍 씨. 그의 재판 결과는 당연히 무죄 통과다. 그는 극락행을 결정할까,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까? 그렇게 태어나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는 누군가도... 있지 않을까? 자식을 잃은 젊은 부부라든지... 

 

그리고 이제 막 저승에 도착한 유성연 씨. 많은 변호사들이 자신의 의뢰인을 찾고 있다. 아, '최규석' 이름이 눈에 쾅쾅 들어오는구나. 유성연 병장의 가슴팍 하트가 따뜻해 보인다. 억울하게 죽은 이 착하디 착한 사람에게는 최고의 변호사가 따라와야 마땅한 게 아닐까? 그가 억울한 취급을 당하지 않게 좋은 변호사를 만났으면 한다.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다.

책은 이렇게 세 권으로 저승 편이 끝난다. 다음 편은 이승, 그리고 그 다음 편은 '신화' 편이라고 한다. 이승 편은 이미 연재 시작한 것 같은데 이제 나는 웹연재로 갈아타야겠다. 도저히 책으로 묶여 나올 때까지 못 기다리겠다. 단행본의 맛은 그때 다시 맛보기로 하고, 일단은 이승 편에 취해 보자.  

내 인생의 좌우명은 '세상에 공짜란 없다'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세상의 좌우명은 '사필귀정'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모든 일이 반드시 바른 방향으로 되돌아가는 것. 혹시 잠시 길을 잃었더라도 꼭 제자리로 돌아갈 것. 그렇지 못한 세상이니 더더욱 그런 세상을 꿈꾸고 기다려본다. 그리고 그런 세상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자리엔 나의 가족, 이웃, 친구가 함께 하고 심지어 '신과 함께' 가는 길이 될 것이다. 따뜻하고 다정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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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紫霞) 2011-01-23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헬벅스 커피와 빨간 비디오...이런...^^;
웹연재도 하는 건가요?

마노아 2011-01-23 18:00   좋아요 0 | URL
리뷰 쓰고 나서 가보니까 금요일 코너에 있었어요. 4회까지 이승편 연재되어 있네요. 베리베리 님은 저승 편부터 일독하셔요. 무장 재밌어요.^^

2011-01-23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3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4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1-01-24 15:40   좋아요 0 | URL
서평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편이 판매에 도움이 되겠지만, 이번 작품은 워낙 유명해서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되겠어요. 저야말로 너무 늦게 수작을 알아봤어요.^^

이매지 2011-01-23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과 함께 이승편 연재는 월요일 금요일이욧 ㅎㅎ
아, 마노아님도 신과 함께의 매력에 푸욱~
정말 따뜻하면서도 깨알 같은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예요!

마노아 2011-01-23 22:06   좋아요 0 | URL
오 1월 10일하고 17일도 올라와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주2회 연재군요.
그러니까 내일도 올라오네요. 오예~!
말씀하신 대로 따뜻하고 깨알 같은 재미가 쏠쏠해요.
너무 기뻐요. ^^

무스탕 2011-01-24 11:10   좋아요 0 | URL
아.. 주2회군요. 전 월요일만 업되는줄 알았더니.. 오늘도 올라와 있겠네요. 가서 봐야징~~~ ^^

마노아 2011-01-24 15:36   좋아요 0 | URL
저랑 반대였네요. 저는 금요일만 업뎃 되는 줄 알았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