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 저승편 - 상 신과 함께 시리즈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구판절판


2009년 겨울에, 한 노총각이 죽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꽃에 둘러싸여 있고 자신을 조문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어 그를 마중나온 저승차사와 마주친다. 이제 그는 저승길로 떠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의 여정길에 작가는 독자들을 초청했다. 때로 웃긴, 때로 슬픈, 때로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을 잘 버무린 잔치 자리로...

'만화'라는 매체는 접근을 용이하게 하면서 어려운 내용도 쉽게 배우고 익힌다는 느낌을 곧잘 주곤 한다. 이 책도 그런 장점을 살려 우리의 전통 신화와 풍속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준다.

일직차사 해원맥과 월직차사 이덕춘, 그리고 강림도령이 저승삼차사다.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떠올리는 저승사자는 검은 갓에 두루마기 복장인데 신화에서의 저승차사는 화려한 복색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이들 저승삼차사도 근대화(!) 되어 평소에는 양복차림으로 다닌다. 이런 설정들은 이후로도 계속 독자에게 소소한 재미를 준다. 저승의 서천꽃밭을 지키고 관리하는 할락궁이도 저승근대화로 '서천식물원장'이 되어 있다.

다섯 방위를 나타내는 오방색은 절의 단청뿐 아니라 색동저고리, 국수의 고명, 비빔밥 등 우리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방위와 나무, 불, 흙, 쇠, 물과 같은 오행과의 관계는 알고 있었는데 자주 접하면서도 색동저고리와 국수의 고명까지는 오방색을 떠올리지 못했다. 오호라, 공부가 되는 걸!

김자홍이 저승에서 재판받는 과정이 주된 내용이지만 현실의 이야기도 같이 진행된다. 이승 열차와 부딪치지 않게 하려고 저승 열차는 새벽 2시부터 새벽 5시까지 운행한다는 설정, 그 열차 안에서도 잡상인이 있고, 노약자석에는 노인들이 가득하다.(노인들이 아무래도 많이 돌아가시니까)

저승길 노잣돈 삼으라고 관에 끼워준 돈이 정말 그의 노잣돈이 되어버린다. 하루라도 사람이 안 죽는 날이 없으니 저승도 교통 체증이 장난이 아니고 그럴 때에 유용한 교통수단은 자전거! 그렇지만 김자홍 눈에는 '구려!'일 수밖에...^^

'죄가 쏙! 비트'는 또 어떻던가. 죄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정성들여 옷을 세탁한다. 우리의 죄의 무게를 그렇게 세탁으로 던다는 것은 몹시 상징적으로 들린다. 자칫 무거워질 법하면 저렇게 유머를 앞세우고, 가벼워질 법하면 심각한 반성을 따라오게 만든다. 처음 만난 작가 분인데 막 존경스러워진다.

삼도천은 원래 윗냇물, 중냇물, 아랫물이 있는데 윗냇물은 비교적 잔잔하여 죄가 가벼운 자들이 건너고, 아랫물은 독사가 들끓는 급류로 중죄인들이 건너고, 중냇물은 금과 은, 칠보로 된 다리가 놓여 있다고 한다. 그러나 중냇물은 죄가 없는 선인들만 다닐 수 있어 인간은 갈 수 없다고 한다. 저 다리 위에 서 있는 사내를 보라. 익숙한 얼굴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짝 웃고 끝낼 수가 없다. 삼도천 정비사업으로 물줄기가 바뀌어 냇물의 구분이 사라진 것이다. 이거, 남의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저승에 도착했을 때 와글와글 자신의 의뢰인을 찾는 변호사들이 가득했다.
일산에서 온 김자홍 씨에게 배속된 국선 변호사는 진기한. 이 사건이 첫 사건인 초짜 변호사이다. 생전에 남에게 많이 베푼 사람이 유능한 변호사를 배속 받는다고 하는데, 이도저도 없이 중간 정도였던 김자홍은 초짜 변호사를 만났다. 초짜에다가 긴장하면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보이지만 이 양반 보통 유능한 게 아니다.

저승은 근대화 정도가 아니라 초현대화 되어 있었다. 하이패스 설치 덕분에 요금납부 정체도 패쓰하고, 컴퓨터로 내 납골함 찾기 기능도 쓸 수 있다. 살아서는 내 집 한 번 갖지 못하고 전전긍긍 인생이었는데 죽어 로열층 납골함이라니, 인생이 아니러니 그 자체다. 자신의 인생을 단순히 A4 용지 세장으로 요약한 김자홍. 이렇다 할 범죄도 없지만 이렇다 할 선행도 없는 그를 데리고 무려 7회의 재판을 통과하고 49재까지 마칠 수 있을까? 진 변호사, 고생 좀 하겠다.

첫번째로 통과해야 할 지옥은 도산지옥이다. 그야말로 칼산. 여기서 유죄 판결 나면 저 칼날 위를 걸어야 한다. 게다가 이 다리는 뫼비우스의 띠 모양이니, 이 형벌을 받은 자의 지옥은 끝이 없다. 그야말로 무간지옥. 이 책을 읽고 난 뒤 사람들이 대부분 착하게 살자고 입맞추어 얘기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정말 식욕이 확 달아나는 공포감이 아닌가!

다행히 김자홍의 변호사 진기한은 잔머리를 잘 굴렸다. 일에 치여 퇴근 시간 직전에는 대충대충 넘어가는 도산지옥 진광대왕의 습성을 이용, 거의 거저로 첫번째 위기를 통과한다.

위에서 본 삼도천을 건너는 모습이다. 탈탈거리는 모터 보트를 타고 건너는 자홍 씨는 근사한 크루즈 선이 부럽지만, 오리배를 직접 몰고 가는 생전 조폭 조직원이나 통나무 배를 노저어 가는 중간 보스, 그리고 튜브 타고 건너다가 독뱀에 물리는 보스의 입장에 비하면 신선이 따로 없다.
이런 그림을 보자니 살아 생전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른 나쁜 시키들에게 따라올 심판 때문에 약간의 위안을 얻게 된다.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심판이 살아서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한편, 김자홍을 저승까지 데리고 온 저승삼차사는 도망친 원귀를 찾느라 애쓰고 있다. 그 원귀가 자꾸 북으로 가고 있으니 강림도령은 실향민인가 생각한다. 그게... 참 마음이 아팠다. 원귀는 결국 저승 차사의 도움으로 한부터 풀고 따라가기로 했다. 그의 원이 얼마나 깊은지 새벽에 보다가 같이 울고 말았다. 그런 사인이 그의 이야기 하나뿐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으며 사는 것인지...

두번째 지옥은 화탕지옥. 이곳의 초강대왕은 남의 물건을 훔친 자, 빌리고 돌려주지 않은 자, 주기보다 받기만을 원한 자를 벌한다. 똥물에 튀겨지는 형벌을 받게 된 자홍 씨. 우리의 유능한 변호사 진기한은 과연 그를 똥물 속에 처박히게 둘 것인가! 그의 활약을 기대해봐도 좋다. 웃으면서 울 수 있다. 그림은 화탕지옥의 흑암천녀인데, '차도녀'를 연상시키는 인상이다. 여기서는 차도녀가 아니라 '차지녀'라고 해야 할까.

다시 한 주가 지났다. 세번째 한빙지옥에 가는 길은 남극보다 추워 보였다. 앞의 두 지옥과 함께 세 형제 중 막내 대왕인데 가장 엄하다고 하니 진 변호사도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기댈 데가 있다면 주로 부모님께 불효했는가를 보는 이 지옥은 현재 포화 상태라는 것. 죄인을 더 받기 힘든 실정이다. 하지만 안심은 금물! 게다가 지옥 문을 지키는 도깨비가 통행세를 받는데 손과 발을 잘라간다고 한단다. 죄는 주로 손과 발을 동원해서 짓는 것이니... 한밤에 섬뜩했다. 너무 공감가기 때문이다. 한락궁이가 왜 나올까 등장인물 소개에서 궁금했는데 주호민의 바리 공주(?)를 만날 수 있다.^^

아무래도 많이 많이 뜨끔할 것 같았다. 역시나...
저 못은 부모 마음에 박은 자식의 못이다. 불효의 흔적. 못을 뽑아도 못 자국은 남는다. 부모가 자식 마음에 박은 못은 없겠냐마는, 보통은 자식이 박은 못이 더 많겠지. 그렇게 자신도 제 자식에게 못 박히며 제 부모를 이해하고 떠올리며 미안해하고... 그렇게 되풀이하겠지...

엄혹한 한빙지옥의 재판을 김자홍씨는 과연 통과할 수 있을까? 준비 철저한 진기한 변호사의 활약으로 무사히 넘어갈 것 같긴 하지만 아마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그 다음 이야기는 2권에서 만나보도록 하자.

1권의 뒷쪽 부록에는 저승시왕과 지장보살 이야기가 나온다. 더불어 각각의 저승 대왕들의 사찰 그림들이 나오는데, 다음에 사찰을 방문하게 되면 이런 그림들을 좀 더 눈여겨 볼 수 있겠다.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와 상징, 그리고 이야기까지도 떠올릴 수 있겠지. 무척 기대가 된다.

덧글) 155쪽에 화엄사 '시왕도'의 도산지옥 부분이라고 그림이 나온다. 그런데 그림은 '화탕지옥' 같다. 해당 내용도 화탕 지옥 부분이었고... 오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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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1-22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그랬군요?
화탕지옥이 맞죠?...!^^

마노아 2011-01-22 20:33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 님도 여기서 갸우뚱~ 하셨군요.^^ㅎㅎㅎ

2011-01-22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3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11-01-23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정말 볼만하겠는데요.

마노아 2011-01-23 15:22   좋아요 0 | URL
강추 작품이에요.^^

무스탕 2011-01-24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니북스는 정말 서평단 잘 고른거에요!! 마노아님께 '걸린' 신과함께는 축복이지요 ^^

마노아 2011-01-24 15:37   좋아요 0 | URL
서로 복이야요. 우에헤헤헤헷^^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