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추리 소설을 잘 모르지만 그래도 좋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서 내 책장에 꽂힌 지 몇 해는 지난 책이었다. 순정만화의 표지 같은 그림과 서정적인 제목이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에 어울리지 않다고 느꼈었다. 사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게다가 기막힌 반전이 있다는 소문도 들었기 때문에 어떤 마음의 준비까지 하고 읽었건만 당연하다는 듯 최대 반전에 걸리고 말았다. 세상에... 작가가 천재 아닐까?  

사실 무엇이 함정인지 알고 읽는다면 아주 평이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게 또 함정이다. 대단치 않은 반전인데도 불구하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과 선입관이 무섭고 부끄러웠다. 이건 흡사 2058제너시스를 읽을 때의 충격과 흡사하지 않은가! 

주인공 나루세는 경비 일과 컴퓨터 강사, 그리고 액스트라 배우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프리터다. 어느날 우연히 지하철에서 자살을 시도한 사쿠라라는 여자를 도와주면서 기막힌 인연이 시작된다. 고등학교 졸업 직전 잠깐 몸담았던 탐정 일이 사실은 천직이었던 듯, 그는 고등학교 후배가 좋아하는 여자 집안의 뺑소니 사고 원인을 파헤치는 일을 맡게 된다.  

교통사고로 위장 당해 죽은 할아버지는 호라이 클럽이라는 악덕 회사에 속아 가짜 건강상품을 5천만 엔 이상을 구입했다. 게다가 여기에는 보험 사기까지 연루되어 있어서 무척 복잡한 사건이 되어버렸는데 집안에 먹칠을 할까 봐 경찰 의뢰도 하지 못하고 탐정 일을 해봤다는 나루세에게 일이 맡겨진 것이다. 이후로 나루세는 자기의 일을 하면서, 호라이 클럽의 정체를 파헤치는 일에 전력을 다한다. 그러면서 그가 꿈결에 자꾸 마주치는 한 장면이 발목을 잡는다. 땅을 파고 있는 모습. 입김을 쏟아내지만 땀을 비오듯 흘리며 땅을 파는 인물은 누구일까. 그는 무엇을 묻고 있었던 것일까? 

또 한편으로 호라이 클럽에 속아 인생을 완전히 망쳐버린 후루야 세쓰코라는 여인이 나온다. 분위기에 휩쓸려 물건을 사길 좋아하는 그녀는 호라이 클럽의 아주 손쉬운 봉이 되어버렸다. 결국 어마어마한 빚더미에 앉은 그녀는 또 다른 호라이의 봉을 꼬이기 위한 미끼 역할을 한다. 그녀 자신도 이용 당하기는 했지만 그녀로 인해 누군가가 죽음의 덫을 밟고 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의 철면피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게 문제였다. 헤어나지도 못하고, 책임지지도 못하는 진공의 상태라는 것. 

작품은 여러 개의 시간 축이 흘러간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루세와 사쿠라의 이야기, 나루세가 한때 몸담았던 야쿠자의 세계, 컴퓨터 강사를 하면서 알게 된 노인 안도 시로,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되어버린 후루야 세쓰코까지. 그 모든 이야기들이 교차되어 진행될 때 과연 어디서 이야기 축이 만날 것인지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마침내 반전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모든 씨실과 날실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럴 수가!! 

작가는 교묘하게 함정을 파놓고 독자를 기다렸다. 간혹 이런 오지랖이 먹히는 것은 일본 사회의 특수성인가? 하며 의아하게 여긴 구석들이 있긴 했지만 크게 의심하지 않고 지나갔다. 그런데 그렇게 어색하게 느꼈던 것들이 다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우호적인지, 쉽게 입을 열었는지도 함께... 

왜 좋고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특정 계층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을까. 딱히 인식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그렇게 믿고 있었으니 당연하게 속아 넘어가는 거였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을 때에도, 단풍이 지고 있을 때에도 벚꽃은 벚꽃 그대로인 것을... 

아주 당연하고 간단한 진리를 작가는 먼 길을 돌아 독자들에게 일러준다.  

이 책은, 결코 영화로는 그 맛을 살려낼 수 없는 비밀을 담고 있다. 종이 매체의 글이 주는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트릭이었다. 

멋드러지게 속아 넘어갔지만 그 기분이 싫지 않다. 기분 좋은 한 방이었다.  

작가의 이름을 깊이 새기게 되는 책을 만났다. 더 찾아 읽고 싶은 그의 작품이 더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누구에게든 이 책을 내밀고 당신도 한 번 당해봐... 라며 회심의 미소를 지어도 좋겠다. 나처럼 당할 그 사람도, 아마 기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반전이 주는 효과가 제일 크긴 했지만, 이야기의 힘도 무시 못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았다. 그것이 이 사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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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1-06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뒤통수 제대로 때리지요? 으으... 머라 할 수 없는 그 한방.

마노아 2011-01-06 15:22   좋아요 0 | URL
작가님 글 쓰면서 엄청 키득거렸을 것 같아요.
니들 다 나한테 속고 있어!! 이러면서요.^^;;

레와 2011-01-06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첫 문장부터 혹! 했어요. ^^;

마노아 2011-01-06 17:54   좋아요 0 | URL
첫문장 엄청 셌어요!ㅋㅋㅋ 그 장면 때문에 청소년한테 추천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던 걸요. ㅎㅎㅎ

같은하늘 2011-01-07 01:09   좋아요 0 | URL
첫 문장이 뭐였을까요? 궁금~~~

마노아 2011-01-07 01:18   좋아요 0 | URL
아하핫, 공개 댓글로 달기엔 살짝 거시기 합니다.
미리 보기 기능이 되어 있으니 책 정보에서 확인해 보세요. 한 페이지만 읽어보시면 되어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