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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 Choi Min Shik ㅣ 열화당 사진문고 19
최민식 지음 / 열화당 / 2003년 12월
구판절판
1957. 용산역 앞. 집 모퉁이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다.
벗은 발과 집중하고 있는 국수 면발에서 지독한 가난과 굶주림이 읽힌다.
얼마나 흔하고 잦은 모습이었을까. 한 장의 사진으로도 서럽기만 하다.
1959. 부산항 부두의 막노동자의 축 처진 어깨가 안쓰럽다.
일거리를 얻지 못한 하루는 굶주리는 하루가 될 것이다.
집에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찢어진 어깨 죽지와 툭 불거진 손등의 심줄 사이로 가난과 절망이 흐른다.
1963. 부산 서구에 위치한 종교 마을 태극촌.
가까이 들여다보면 지극히 가난한 판자촌이건만,
멀리서 잡은 사진엔 규칙적인 배열로 인한 질서정연한 아름다움이 잡혔다.
역설적인 사진이다.
1964. 부산 광복동.
진열된 서구형 얼굴의 인형을 보고 있는 아이와, 잘 차려 입은 엄마의 모습과 교차된 남루한 옷차림의 소녀가 인상적이다.
아이 엄마의 하이힐과 남루한 소녀의 고무신의 차이라니...
지극히 가난한 몰골이건만 소녀의 눈빛에선 강렬한 의지가 엿보인다. 흩어지지 않는 시선이다.
1965. 부산 거제동.
동네 언덕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어린아이의 땡그런 눈망울.
뺨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하다. '엄마 마중'이 떠오른다. 그 책처럼 엄마와 끝내 만난다면 다행이건만, 아이의 엄마가 오지 않을까 이미 긴 시간이 흘렀건만 사진 너머로 걱정이 앞선다.
사진을 찍은 최민식은 아이에게 고구마와 사이다를 사 먹였는데, 아이는 떠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 어린 아이의 마음 속 장벽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1967. 부산항 부두.
엄마는 돈 벌러 나갔을 것이고, 본인도 아직 어리건만, 누이는 더 어린 동생들을 챙기느라 이미 어깨가 무겁다. 학교에 가서 재잘거리며 수다도 떨고, 눈빛 초롱초롱 빛내며 공부할 나이에 저 어린 아이는 이미 세상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저 시대를 살았던 무수한 누이들의 초상이다.
1974. 부산
무수한 선거 벽보 아래 누더기를 입은 채 잠들어 있는 노인의 모습.
겹치지도 않는 선거 구호가 어지럽다.
독재자가 군림하던 그 시절에 소중한 한 표의 행사가 과연 조국 번영에 이바지 했는지 궁금하다.
1984. 경상북도 선산. 한 달 이상 가뭄이 계속되어 비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농민의 얼굴이다.
지친 눈빛에 비에 대한 갈망과 절망이 동시에 교차하고 있다.
거친 피부에 새겨진 깊은 주름 마디마디에 생의 탄식이 맺혀 있다.
과연 비는 언제쯤 왔을까. 비만 오면, 과연 해갈은 되었던가...
어렵던 시절의 인간 군상을 찍은 까닭에 사진들이 많이 어둡다. 그렇지만, 90년대와 2000년대의 사진이라고 해서 가난한 이들의 삶이 달라졌을까 의문을 갖게 된다. 컬러사진에서는 만나기 힘든 흑백 사진만의 강렬한 대조와 조화가 인상 깊었다. 작은 크기의 사진집이 주는 울림은 그러나 작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