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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리야, 목욕은 이제 그만!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126
존 버닝햄 글 그림, 최리을 옮김 / 비룡소 / 2004년 5월
평점 :
존 버닝햄의 책들을 살펴보면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만의 순수한 세계가 자주 그려지곤 했다. 지각대장 존에서 선생님은 존의 지각 이유를 매번 믿지 않았지만 존에게는 지각 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사연들이 있었다. 존 버닝햄의 세계에선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도 못된 아이가 아닐 수 있고, 소외된 이도 소외되지 않은 주체로 그려질 수 있었다. 이 책은 '셜리야, 물가에 가지 마!'와 짝을 이루는데, 역시나 엄마의 잔소리와는 별개의 세상에서 나름의 세계를 구축해 둔 셜리의 목욕 이야기가 진행된다.
표지의 그림부터 심상치 않다. 꽃밭 위를 춤추듯 달려나가는 저 기사는 혹시 돈키호테?
표지를 열면 나오는 첫 그림이다. 하수관 주변의 풍경이 남다르다. 트럼프 카드가 깃발처럼 걸려 있고, 모험이 이루어질 성이 보인다. 하수관 끝에는 말타고 달려가는 기사도 보인다. 저 기사는 토끼? 어른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거나 쉽게 찾을 수 없는 세상이 이제 펼쳐질 차례다.
목욕 준비를 해주고 있는 엄마의 잔소리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있다. 그림 속 캐릭터의 표정이 대체로 무표정하다는 것이 존 버닝햄 그림의 특징이기도 한데, 엄마도 셜리도 모두 인형같은 얼굴이다. 표정은 말이 없지만, 정황이 모든 걸 대변해 준다. 아이가 지나치게 커 보인다는 게 다소 흠. 사실, 존 버닝햄 그림은 '예쁜' 맛으로 즐기는 게 아니므로...^^
엄마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는 못하지만 어떤 어조일지 상상이 간다. 고저 없이 잔잔할 것이고, 아이가 듣는지 마는지는 확인도 않은 채 해야 할 리스트를 줄줄이 뽑고 있는 느낌이다. 체중계의 저울이 지난 번 체크했을 때보다도 더 오른쪽으로 기울었다면 표정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목소리 톤도 좀 더 높아질 것이다. 아직까지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분명 기분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엄마의 잔소리 포문이 얼마나 과격한가와 상관 없이 셜리는 이미 쏜살같이 배관을 통해서 자신만의 세계로 달려 나가는 중이다. 두고 온 빗과 주사위(?)와 비누 등은 중요치 않다. 새로운 세계가 셜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장난감 오리 배는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 낙원으로 인도했다. 푸르른 나무와 풀 뜯는 젖소 등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인다.
그렇지만 평화로운 세계에도 위기는 닥치는 법!
나름 '폭포'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고, 들판의 기사들이 위협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셜리에게 이 정도 위기는 그저 모험 수준!
가여운 건 엄마 입장이다. 아이의 세계를 존중해 주고, 이해해 주고, 함께 해 주기에 어른의 세계는 너무 복잡하고 갑갑하다.
엄마의 고백대로 아이를 따라다니며 어질러 놓은 걸 치우는 것 말고도 엄마의 일은 지나치게 많다.
같이 놀아주고, 그 지저분한 상태를 참아낼 수 있는 엄마는 차라리 대인배랄까.
비록 내가 엄마가 되어보진 못했지만, 저 셜리가 자라서 엄마가 된다면 셜리의 엄마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래도 다행히 셜리가 스트레스 꽉 채운 아이가 되지 않고 저렇게 동화같은 세상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참 다행이다. 아이의 저 모험을 엄마가 이해해 준다면 더 좋을 텐데... 권정생 선생님의 '랑랑별 때때롱'에서는 그런 부모님이 나온다. 아이들이 겪고 온 신비한 세상에 대해서 부정도 하지 않고 허튼 소리라고 면박도 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부모님. 정말로 믿는지 안 믿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의 세계를 무참히 짓밟지는 않는 멋진 부모님이셨다.
아이의 모험이 신날수록 욕조 주변은 어지러웠을 것이다. 그래도 셜리의 엄마는 화내는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서로 다른 세상을 다녀왔기에 교차점도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한 타협(?)이다.
다음 번 목욕할 때에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세계가 또 다시 평행선을 긋지 않고 좀 만났으면 좋겠다. 셜리야, 목욕은 얼마든지! 라고 말해도 좋다면, 그것이 서로에게 인상 찌푸릴 일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