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크레이그 실비 지음, 문세원 옮김 / 양철북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앵무새 죽이기'를 읽은 것은 열여섯 살 때였다. 여름 방학 때 정독 도서관에 놀러갔다가 그 책을 읽었다. 3시간 동안 1/4을 읽었고, 그렇게 매주 금요일에 도서관을 방문해서 3시간씩, 모두 12시간에 걸쳐서 읽었던 소설. 무척 감동적이었고 무척 슬펐었다. 주인공 꼬마 여자아이처럼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명백히 무죄이고, 명명백백 유죄였던 인물들에 대해 왜 배심원들은 엇갈린 판결을 내리는지... 왜 사람들은 진실을 알면서도 외면하는지... 오래된 소설이었고, 내가 읽은 뒤로도 또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렇게 이성으로도 감성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앵무새 죽이기에 대놓고 헌사를 바치는 이 책의 인물들에게도. 

작품의 배경은 오스트레일리아. 베트남 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60년대 말 '코리건'이라는 이름을 가진 탄광 마을이 무대다. 책을 많이 읽고 작가도 되고 싶은 생각 많은 소년의 창문에 '재스퍼 존스'가 등장한다. 원주민과의 혼혈로 태어나서 마을의 문제아로 일찌감치 낙인 찍혔던 그 아이가 주인공 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꼭 도와줘야 할 일이 있다며...  

그렇게 우연히, 재스퍼에게 이끌려 그만의 아지트인 숲 속 공터에 도착한 찰리는 주지사의 딸 로라가 목이 매인 채 죽어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살면서 그보다 끔찍한 순간에 노출된 적은 결단코 없었을 것이다. 재스퍼의 설명은 이렇다. 자신과 연인 관계에 있던 로라가 얼굴이 멍이 든 채 저렇게 매달려 있다고. 분명 누군가 로라를 죽이고 매달았을 거라고. 로라가 발견된다면 자기는 당장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갈 것이라고. 그러니, 진짜 범인을 찾을 때까지 로라의 시체를 숨겨야 한다며 도움을 구한다. 갑작스럽게 이리 무섭고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려 버린 찰리는 그렇게 본의 아니게 시체 은닉의 동조자가 되어버린다. 게다가 로라는 찰리가 좋아하는 일라이저의 언니다.  

자, 이러니 안 그래도 생각 많고 속이 복잡한 이 소년의 마음이 얼마나 뒤죽박죽이 되었겠는가. 게다가 혼자서 서재에 틀어박혀 소설을 쓰고 있다고 의심이 되는 아빠와, 부유하게 자란 탓에 작은 탄광촌의 주부로 세월을 맞아가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성질 사나운 엄마와 살고 있으니 더 그렇다. 이웃 집에는 베트남에서 이민 온 일가족이 살고 있는데 크리켓을 잘 하는 제프리 루는 찰리의 단짝 친구다. 하지만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또 베트남에 파병을 한 나라로서 희생자 군인을 가족으로 둔 이들의 집단 왕따를 당하고 있다. 분명히 부당한 짓임에도 누구도 그들을 위해서 변명해 주지 않고 위로해 주지 않는 모습에 찰리가 의문을 품는 건 당연하다. 뭐든 척척 설명해주던 아빠조차도 그 순간만큼은 시원한 답을 주시지 않는다.  찰리는 답답하다. 하지만 어린 찰리조차도 이것이 자신의 가까운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이만큼의 관심을 쏟고 있음을 깨닫는다. 

최근 들어 내게 일어난 끔찍스러운 일련의 사건들 중에 폭탄 투하 사건이 그나마 가장 덜 폭력적인 사건으로 느껴지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사실상 가장 끔찍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사건에 용의자 사진이나 피 묻은 장갑 따위는 없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확실히 규정짓기 어렵다. 거리감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일수록 무신경해지고 무책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뉴스에서는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는데 말이다. -208쪽 

부모를 죽이고 아이들을 고아로 만든 후 크리켓 공 날리듯 내던지고는 얄팍한 거짓말이나 해 대는 세상. 남들보다 가난하고, 피부색이 어둡고, 또 부모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멀쩡한 사람이 평생 스스로를 쓰레기로 여기도록 만드는 세상. 삼십억이나 되는 사람을 초청해 놓고 전부 외롭게 만드는 세상. 사분의 삼이 물로 이루어졌다면서 아무도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할 수 없는 세상. -209쪽 

심각한 사건을 시작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버겁도록 무겁고 힘든 소설인 것은 아니다. 특히나 찰리와 제프리가 말싸움이 붙으면 이들의 재치가 사랑스러워 다음 반박을 기대하게 된다. 아이들의 영웅론도 흥미진진 그 자체! 

"그러고 보니 스파이더맨은 뉴욕을 벗어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단 말이지."
"왜?"
"어, 그러니까, 예르르르르를 들자면 말이지, 스파이더맨이 코리건에 와서 범죄를 소탕한다 치자. 그럼 영락없이 힘을 못 쓸 거야. 날아다닐 건물이 없잖아. 스파이더맨에게 필요한 건......"
"도시적인 환경이라고?"
"바로 그거요, 선생. 그러니까 내 말은, 스파이더맨이 고비 사막이나 남극에서 뭘 할 수 있겠느냐는 거야. 주어진 환경이 땅바닥밖에 없다면 말이야."  88-89쪽 

생각해보지 못했던 건데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다. 스파이더맨에게 도시적 환경은 영웅의 조건이었다. 슈퍼맨과 배트맨을 둘러싼 이들의 공방도 지켜보자.  

"그러니까 그건 용기가 아니란 거지. 슈퍼맨은 강철 인간이잖아, 이이 멍청아. 천하무적이라고. 그러니 용감해질 필요가 없는 거야. 다치지 않는 걸 알고 총알에 맞서는 게 용감한 거냐? (...) 내 말의 핵심은 이거야. 잃을 것이 많을수록 용기가 더 많이 필요한 법이거든. 그렇기 때문에 배트맨이 슈퍼맨보다 우월하고 내가 너보다 무한정 똑똑하단 말씀."  -94쪽 

이렇게 똑부러진 말로 재간둥이 제프리를 (가끔) 눌러버리기도 하는 찰리지만 좋아하는 여자 아이 일라이저 앞에서는 실력 발휘를 하기 어렵다. 어디 숨이나 제대로 쉴 수 있겠는가. 좋아하는 그 여자애의 달콤한 향기에 취해 있으니 말이다. 이럴 때면 마음 속으로 '내 재치꾸러미는 어디로 간 거지? 위트가 나를 배신하다니. 항상 꼭 필요한 순간에 내게 등을 돌린다.'라고 말을 하는 사랑스러운 찰리.  

괴퍅하고 변덕스러운, 불만 많고 난폭하기까지 한 엄마와 살면서도 찰리가 다른 사람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공으로 보인다. 비록 그가 아내에게 좋은 남편은 못 되었을지 몰라도, 좋은 아버지로서의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자.  

"잘 들어라, 찰리. 엄마는 존중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네가 다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잖아. 엄마는 네가 잘되기를 바라. 여전히 불만이 있겠지만 좀 더 현명한 방법으로 해결하길 바란다. 좀 더 영리하게 굴거라. 알겠니? 좀 더 외교적으로 행동하고. 내 아들은 분명 엄마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기보다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리라 믿는다. 알겠니?" -178쪽 

 이쯤 되면 앵무새 죽이기의 멋진 변호사 아빠 애티커스 핀치 못지 않아 보인다. 찰리는 은근히 아빠를 닮았다.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차분한 성품도 그렇다. 게다가 글쓰는 아빠에게서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모습은 귀여우면서도 치열해 보인다.  

패터슨의 저주. 제목 밑에 아빠 이름이 쓰여 있다. 나는 못된 아이처럼 입술을 실룩거린다. 벅틴의 질투. 견딜 수 없다. 당장 갈기갈기 찢어서 방에 흩뿌리고 싶다. 아빠의 친절하고 다정한 얼굴에 도로 던져 주고 싶다. 아빠의 비밀을 공유하면 멋질 거라고 생각해 왔지만 실제로 닥치고 보니 그저 배신감만 들 뿐이다. 내 가슴속에서 뭔가 대단히 소중한 것을 빼앗긴 기분이다. 마음씨가 비뚤어지고 속 좁은 놈이 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작품이 훌륭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내가 먼저 아빠의 서재로 찾아가 그간 힘들게 쓴 원고뭉치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 원고에 내 도장을 찍어서 말이다. 제목 밑에 쓰인 내 이름을 보며 짜릿한 성취감을 맛보는 상상을 하곤 했다. -373쪽 

찰리라는 캐릭터가 비교적 평면적이라고 한다면 제프리는 좀 더 입체적인 느낌이었고 재스퍼는 그보다 훨씬 야성적인 느낌이었다. 각자가 처한 입장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제프리는 유쾌하고 재능도 많고 활발한 소년이지만 이민자로서, 또 유색인종으로서의 소수자의 자각을 사실은 갖고 있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무심히 넘어가는 모습으로 상처를 감추었던 제프리도, 아버지가 거의 테러 수준으로 린치를 당했을 때는 폭발하고 만다. 고국이지만 바다 너머 먼 곳에서 벌어진 전쟁의 파장이 그렇게 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었다. 또 다시 이웃들이 침묵하고 방관만 했더라면 독자는 분노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의로운 이웃들도 있었다. 아이에게 마땅히 필요한 위로와 격려를 해줄 수 있는 이들이 그들 곁에 있었다. 낮 시간 동안에는 크리켓 경기를 역전 시켜 챔피언 취급을 받았던 제프리였다. 무려 43점의 득점이었다. 그 제프리에게 이웃집 로이 아저씨가 얘기해준다. 

"그럼, 스스로가 정말 대견스럽겠구나! 당당하게 고개를 들거라, 알았지? 아저씨 말 알겠지? 오늘 넌 정말 위대한 일을 한 거야. 그것만은 아무도 빼앗지 못하는 거다. 알겠니?" -347쪽 

그리고 제프리의 아버지가 습격받는 것을 제일 먼저 발견하고 아빠를 불렀던 찰리에게, 제일 먼저 달려가서 루 아저씨를 도와주었던 그 아빠의 사과도 먹먹하다.  

"찰리, 네가 그런 장면을 보게 되다니 아빠가 미안하구나. 괜찮니?"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눈길을 피한다.
"그래, 아빠도 그렇다고 말하면 네 기분이 좀 나아질지 모르겠다. 참 찝찝하고 불쾌한 기분이다."  -348쪽 

자신의 책임이 아니지만 어른들의 부조리한 세상을 노출시켜서, 그리하여 실망시켜서, 해답을 줄 수 없어서 미안해하는 아버지. 그리고 자신도 마찬가지 기분이라며 허세 따위는 부리지 않는 아버지. 진정 신뢰가 간다.

제목에 당당히 이름이 박힌 재스퍼 이야기를 해보자. 앞서 이야기 했듯이 재스퍼는 원주민 엄마와의 혼혈로 태어난 아이다. 술주정뱅이 아빠는 술과 도박에 쩔어 있고, 재스퍼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본인의 생계를 스스로 해결해가며 거칠게 성장했다. 그렇지만 야성미 넘치는 기질을 가졌을 뿐 무례한 범죄자가 되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나서도 억울한 누명을 쓸까 걱정부터 해야 하는 그의 입장은 처절하고 서럽다. 그가 로라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한 '잭 라이어넬'은 숲에 자리한 폐가 같은 집에서 사는 이 마을의 이방인이었다. 그를 따라다니는 무섭고 더러운 소문들은 재스퍼의 소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종류다. 재스퍼는 그가 로라를 살해한 진범이라고 확신하고 있지만 '앵무새 죽이기'를 떠올리는 독자는 그가 '부' 아저씨 역할을 해줄 거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를 찾아가서 범행을 자백받고 담판을 지으려고 하는 재스퍼. 찰리는 무섭고 두렵고 피하고만 싶다. 재스퍼의 각오는 단호하고 단단하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 그 일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는 건 아니잖아. 세상이 정해진 규칙대로만 돌아간다면 아무것도 되는 게 없을 거야. 하지만 확실한 진리는 말이지, 우리가 해야 한다는 거야. 해야만 한다고."  -383쪽 

전체 분량이 5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400페이지를 넘어가면서 가파르게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아이들은 사건의 진실을 향해 더 깊이 다가가고,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아야 할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모두 경험한다. 그들이 맞닥뜨린 세상은 장정일 씨의 표현대로 지나친 '배타주의'로 인해 오히려 '근친상간'에 다가간 왜곡된 구조물이다. 이때의 근친상간은 문자 그대로의 뜻 이상을 포함한다. 아이들은 고통스러워 하고, 절망하고, 그리고 성장한다. 그들은 비밀을 공유했고, 상처를 나눴고, 그리고 위로를 건넸다. 충분히 분노해야 할 대상을 향해 분노를 느끼지만, 그 분노가 뻗어나가야 할 방향이 어긋났을 때는 제지할 줄도 알게 되었다.  

"재스퍼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잖아. 그리고 넌 내가 아는 만큼도 재스퍼를 모르잖아. 로라가 아는 것만큼 말이야. (...) 넌 재스퍼에게 벌을 주고, 짐을 지우고, 또 로라가 바랐듯이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리고 너 자신에게도 똑같은 벌을 주고 싶어 하는 것 같고. 하지만 너나 재스퍼의 잘못이 아니란 것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458쪽 

이런 올바른 충고를 내어줄 수 있는 싹을 찰리의 아버지가, 그리고 제프리의 이웃 아저씨가 심어주셨다. 그런 어른들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바른 방향으로 자랄 양분을 얻었다. 제목에서는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라고 당당히 얘기했지만, 어느 것도 재스퍼 존스의 탓은 없었다. 그가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단지 지나칠 정도로, 그리고 잔인할 만큼 운이 없었을 뿐이다. 단지 운이 없는 것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이 책에는 대단히 독특한 장치가 하나 있는데 사건의 진실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문장이 있다. "사건의전말은이랬다."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다. 처음엔 편집 실수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챕터에서만 무려 10번이나 띄어쓰기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이 문장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렇다면 그건 작가의 의도라고 파악할 수밖에 없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떠올리게 했다. 단지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을 뿐인데 '반복'이라는 효과와 함께 무섭게 강조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작은 시도로 큰 효과를 보았으니 작가의 대단한 수확! 

'살인 사건'과 진짜 범인을 밝히는 게 주요 임무이기도 한 소설이었기에, 그 이야기를 피해가며 작품에 대해 말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작품은 성장 소설이면서 사회소설로 읽히고 또 어느 정도 추리소설의 미덕도 갖추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을 적당히 분배하며 감동까지 끌어낸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고 만다. 게다가 그가 몹시 젊은 작가이며,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쓴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지나치게 인용을 많이 해서 조금 난감하지만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을 옮겨 본다. 이 작품은 많은 부분에서 울컥거리게 했는데 이 부분이 단연코 가장 압권이었다. 마음 한 켠이 싸아해지며 묵직한 위로가 차오르는 느낌. 실은 누군가로부터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한껏 기대해 본다.  

미안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내 고통은 물론 상대방의 고통도 같이 느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하는 것은 그 고통을 나누고자 함에 있다. 그렇게 우리를 하나로 묶어 상대방처럼 짓밟히고 물에 흠뻑 젖도록 해 주는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다시 채워진 빈 구멍과도 같다. 빌린 돈을 갚는 것과 같다. 미안하다는 말은 잘못한 행동의 결과물이다. 이는 심하게 상처 입은 결과가 수면 위로 보낸 잔물결일 수도 있다. 미안하다는 말은 슬픔이다. 아는 것이 슬픔인 것처럼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때로 자기연민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로 미안하다는 말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받아들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상대방을 위한 것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내 자신을 연다는 뜻이다. 껴안건 조롱하건 복수하건 간에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용서를 구하는 말이다. 착한 사람의 메트로놈은 모든 일이 제자리로 돌아가거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진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안하다는 말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앞으로 나아가게는 할 수 있다. 틈을 메워 주는 역할을 한다. 미안하다는 말은 성찬식과 같다. 제물이며 선물이다.  -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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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9-11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마노아님.
대단한 리뷰에요. 그리고 저는 이 책을 읽었지만 '사건의전말은이랬다'를 눈치 채지 못했거든요. 마노아님은 엄청 꼼꼼하고 날카롭게 읽었네요. 그리고 '미안해'에 관련된 부분이 마노아님께도 인상적이었다니, 좀 울컥해요. 세상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무척 많죠. 나도, 마노아님도, 그리고 이 책을 쓴 작가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미안해란 부분에 그토록 마음을 쓰고 있는건가봐요.

잘 읽었어요, 마노아님. 책 만큼 아주 마음을 움직이는 그런 리뷰였어요. 참지 못하고 추천을 눌렀어요. 사실 참을 필요도 없는 추천이었죠.

마노아 2010-09-12 00:23   좋아요 0 | URL
'미안해'와 '고마워'라는 두 마디 말만 제 때 쓸줄 안다면 모든 사람의 마음이 참 편안해질 거예요. 듣고 싶은 미안해와 고마워, 하고 싶은 미안해와 고마워를 잘 하는 우리가 되도록 해요~
다락방님의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막 붕붕 떠요. 덕분에 좀 더 기쁜 주말을 보내고 있어요. 헤죽헤죽~ ^^

양철나무꾼 2010-09-12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서재에서도 이 리뷰를 보고 혹 했었는데,이곳에서 또 읽게 되니...정말 제대로 지름신 강림인걸요~
미안해와 고마워는 물론이고 또 하나 번지 수를 정확히 찾아야 할 말,'사랑해'요~^^

리뷰가 참 좋습니다~^^

마노아 2010-09-12 16:53   좋아요 0 | URL
번지수를 제대로 찾는 '사랑해'라는 말을 꼭 쓸줄 아는 사람이 되겠어요. 양철나무꾼님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0-09-12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 책 장바구니에 있는데...
저도 앵무새 죽이기를 워낙 감명깊게 봤었거든요.
마노아 님의 리뷰를 보니, 역시 사야겠어요.

마노아 2010-09-13 10:16   좋아요 0 | URL
양철북은 많은 책을 내는 출판사가 아니지만 꽤 엄선해서 좋은 책을 내는 것 같아요. 저는 무척 좋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