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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는 왕자님 - The Prince & M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남다른 신분을 감춘 채(속인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감춘 것!) 평범한 생활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가 신분이 들통 나 위기를 겪게 되는 이야기는 참으로 많았다. 제목에서 이미 내용의 거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이 뻔할 것 같은 영화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핵심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를 얼마나 더 환상을 심어서 멋지게 로맨스를 보여주는 가에 있었다. 그리고 그 지점을 영화는 센스 있게 잘 지나갔다.
여주인공 모건 페이지는 위스콘신 대학에서 존스 홉킨스 의대로 진학하고자 하는 성실한 고학생이고, 남주인공 에드워드(에디)는 덴마크의 황태자로서 차기 국왕 승계자이다. 늘 스캔들을 몰고 다니는 그가 어느 날 충동적으로 정해버린 미국행. 전통과 의무와 카메라의 세례로부터 잠시 피신한 철없는 황태자의 하루 일과는 재밌었다. 첫눈에 끌렸던 페이지에게 되도 않는 희롱을 던져서 얼굴을 익히고(왕자님, 그건 명백한 성희롱이었어요, 떽!) 화학 실험실에서는 파트너가 되고, 구내 식당 알바자리에선 동료가 되어버린 그.
처음엔 민폐대마왕이었던 이 왕자님이 때로 쓸모 있어질 때가 있으니 바로 문학 시간. 유독 셰익스피어에 약했던 페이지는 급기야 C등급을 받으면서 의대 진학에 적신호가 들어오자 바로 sos를 쳤다. 그러고 보니 햄릿의 왕자님은 덴마크의 왕자님이 아니었던가. 이런 기막힌 설정을 쓰고자 굳이 유럽의 여러 왕자님들 중 덴마크 왕자님을 가져온 것일까? 덴마크의 현 국왕은 여왕님이라고 하던데...^^
고전 문학 속에 깃들어 있는 은유의 표현들을 감미롭게 풀어주는 왕자님, 그야말로 그림이 되는 순간이었다. 철부지 왕자님이 정신만 차리면 제대로 완소 훈남이었기 때문에 뭇 여성들이 노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페이지는 순발력도 있는 여자였다. 추수감사제 방학을 이용해서 낙농업을 하는 자신의 시골 집으로 초대를 한 것. 덴마크는 낙농업으로 유명한 나라인데 그녀의 집안 일이 왕자님께는 또 하나의 힌트가 되어주는 건 당연한 수순!
대학생이긴 했지만 남자친구를 집으로 초대해서 며칠 동안 그 집 식구들과 함께 지낸다는 설정이 얼마나 부럽던지. 무척 자유분방하고 자연스럽고 낭만적이지 않던가. 여기서 또 평소 속도광이었던 왕자님이 한 건 해주신다. 털털거리는 경운기...는 아니지만 그 비슷하게 생긴 그 차 이름이 뭔지 모르겠다. 트랙터라고 해야 하나???
추수감사제를 지나면서 급속도로 뜨거워진 두 사람. 도서관에서 공부를 해보지만 책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같은 문장을 15차례를 반복해서 읽다가 마침내 책을 덮은 페이지! 그리하여 남친 손 이끌고 어둡고 깊숙한 서가로 들어가는데......
이 엄청난 서적의 숲에서 남녀상열지사를 찍을 셈이냐고, 책에 대한 모독이라고 거품을 물고 싶었지만 사실은 무척 부러웠노라고, 조금 더 진행하라고 열렬히 응원을 하고 싶었는데 아뿔싸, 왕자님 쫓아다니는 파파라치가 때.마.침 등장하는 게 아닌가! (버럭!)
그저 왕자병 끼가 있는 엄친아 정도로만 알았는데 정말 한 나라의 황태자라는 동화같은 설정에 여주인공 페이지 양 식겁하는 건 당연했다. 학업과 꿈을 위해서는 연예도 거절하고 살았던 현실주의자 그녀였지만, 그래도 사랑의 감정은 뜨겁기만 해서 비행기 타고 바다를 건너가게 만드는 열정도 거뜬히 심어주었다. 친구의 사랑을 위해서 카드를 탈탈 털어 (심지어 아빠 카드에 손까지 대어) 비행기 삯을 마련해준 페이지의 열혈 친구들. 위험하지만 멋지더라. ㅎㅎㅎ
아, 그리고 덴마크에서 맞닥뜨린 황태자님!
직접 캡쳐를 한 게 아니어서 이 사진으로 대체했지만, 군중 속에서 페이지를 발견하고 손 내밀어 말에 태운 이 장면이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멋있었다. 정말로 반갑고 기쁘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표정이 에디에게 있었다.
페이지 역을 맡은 줄리아 스타일즈는 빼어난 미인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무척 지적인 매력이 있다. 본 시리즈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는데 처음엔 주근깨 투성이의 그녀가 너무 못나 보였는데 시리즈 3탄 쯤에 이르니 제이슨 본과의 어떤 과거를 상상하면서 말하지 못하는 그녀의 입장을 되새기며 무척 눈길을 끌었었다. 영화의 제작 년도를 살피니 줄리아가 24세 때 쯤에 (남주인공은 29세) 찍은 영화인데 딱 그 나이 또래의 젊음과 생기가 반짝였다. 비록 저 사진으로 보면 뒤에 앉았음에도 얼굴이 더 커보인다는 애로사항이 있기는 하지만...
21세기에도 유지되고 있는 왕족 일가라니, 그 로열 패밀리에 진입하기 위해서 외국인인, 그것도 미국인인 그녀가 치러야 할 관문은 무척 많을 것이다. 국왕 일가와 국민들의 승인(?)도 고난이고, 그녀가 지금껏 성실하게 가꾸어온 소중한 꿈과의 결별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외교관 황태자비처럼 신분과 직업이 잘 조화를 이루었다면 좋았겠지만, 국경없는 의사회 같은 활동을 꿈꾸어온 페이지에게 한 나라의 사랑받는 왕비 역할은 아무래도 힘들어 보였다. (비록 삽질(!)에서 호감을 보여주긴 했지만.)
지금이야 죽고 못 살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 모든 고난과 시련을 다 이겨낼 것 같지만, 결국엔 포기했던 꿈과 열망들이 다시금 발목을 잡을 때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참 조마조마했다. 그녀가 단숨에 프로포즈를 걷어찰까 초조했고, 또 너무 쉽게 왕비 자리에 주저앉을까 염려되었다.
지혜롭고 현명한 페이지는 좀 더 현실적이고 좀 더 멋진 선택을 할 테지만.
황태자의 여동생이다. 아직 12살이 채 되지 않은 어여쁜 소녀. 기다리고 기다리는 그녀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황태자는 어린 동생이 좀 더 자라면 왕위를 양보하는 것은 어떨까? 드라마 판 '궁'의 결말이 그랬는데 개인적으로는 원작보다 훨씬 더 맘에 드는 설정이었다.
이름도 멋지구리 왕족다운 '에드워드'가 과거엔 여자 문제로 스캔들 꽤나 물고 다니던 인물이긴 했지만, 그건 그저 유명세로 인한 통과의례였다고 봐주자. 신혼여행으로 스페인으로 가자고 하면서 스페인 국왕이 섬을 빌려줄 거라고 말을 할 수 있는 남친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쯤은 애교로 봐줘야 한다.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서 청소 시간에 틀어놓은 음악이 참 좋았는데 제목을 모르겠다. 그 노래가 혹시 나중에 무도회 때 특별히 요청한 그 노래였을까?
저예산 로맨틱 영화인 이 작품은 처음부터 얼마나 말랑말랑 살랑살랑 왈랑왈랑 마음을 움직여주는 가가 관건이었는데 나로서는 그 지점을 제법 잘 채워주었다. 봄처녀의 가슴은 뛰는구나.
내 남자친구는 왕자님2도 있는데 남주인공만 같고 줄거리조차 소개되질 않는 걸 보니 아주 별로인 영화였나보다. 궁금했는데 1편으로만 만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