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쇼팽 콩쿠르에서 카이의 연주 차례. 카이가 청중과 심사위원을 감동의 늪으로 빠뜨릴 줄이야 충분히 짐작 가능한 전개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해내는 가가 관건이었다. 배경은 성장과정이었다. 아지노가 어린 카이를 지금껏 이끌어오면서 부딪혔던 카이의 환경들. 그 굴곡지고 사연 많은 시간들을 드라마틱하게 훑어준다. 빗방울 전주곡을 이해해내는 카이의 모습은 눈물겹기까지 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나무에 묶인 채 하룻비를 맞은 카이가 쇼팽을 향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무척 감동이었다. 그 어린 카이가 쇼팽의 마음으로 곡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던 순간이었다. 카이의 모습을 보면 진정 피아노를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싶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운명'같은 조우 말이다. 주먹으로 건반을 누를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러니까 연주 중에 말이다. fff란 표현은 처음 보았는데 얼마나 세게 눌러야 했으면 주먹을 다 동원했을까. 수학적 개념의 아주 세게가 아닌, 상대적 의미의 강약을 책의 맨 뒤에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1차 심사의 결과가 드디어 발표되었고, 이제 2차 심사는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진행이 몹시 느린 피아노의 숲이다 보니 경기 한 게임 끝날 때까지 몇 권이 지나치던 슬램덩크를 생각하며 느긋이 기다려야겠다. 이 작품은 그림도 그렇지만 연출도 상당히 거친 구석이 있는데, 그 편이 오히려 독자의 마음을 저미게 만들어 더 진한 감동을 이끌어낼 때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애니메이션이 원작을 강렬한 힘을 잘 표현해내지 못한 듯 보인다. 드라마처럼 시리즈라면 모를까 극장판으로는 말이다. 진한 감동을 받았으니, 쇼팽의 곡들을 들어보며 잠드는 것도 멋진 일일 것이다. 빗방울 전주곡도 얼마든지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