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nksy Wall and Piece 뱅크시 월 앤 피스 - 거리로 뛰쳐나간 예술가, 벽을 통해 세상에 말을 건네다
뱅크시 지음, 리경 옮김, 이태호 해제, 임진평 기획 / 위즈덤피플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만화 이키가미 5권에서는 국가번영유지법에 의해서 사망 예고장을 받은 한 청년이 마지막 남은 하루를 국가번영법을 조롱하는 그래피티를 그리는데 소비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국에 의해서 빠르게 지워지긴 했지만 그 작품을 마주친 많은 사람들이 받았을 충격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었다.  

여기, 세상을 조롱하며 세상의 부조리함과 부덕함을 맘껏 풍자하는 거리의 예술가가 있다. 얼굴없는 작가 뱅크시가 바로 그다. 영국 출신의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그의 이름은 낯설 수 있다. 그렇지만 다음과 같은 그의 작품들과 마주친다면 어디선가 언뜻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지 모르겠다. 인터넷의 경계 없는 바다는 그와 같은 작가에게는 더 없이 좋은 만남의 장을 제공해 주니 말이다. 



로켓 발사하는 모나리자. 2001년도 작품으로 작업시간은 단 15분. 누군가에 의해 오사마 빈 라덴으로 바뀐 이 그림은 이틀 후에 지워져 버리고 만다. 그래피티의 속성 상 불법, 범법 행위로 찍혀 쓰레기로 구분되기도 하고 작품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뱅크시는 멈추지 않는다. 그의 궁극적 관심은 '개인의 드러냄'이 아닌 공동체의 변화라고, 해제를 맡은 이태호 교수는 설명한다. 알듯 모를듯 신비로운 미소(를 지녔다고 화자되는)의 모나리자가 로켓포를 들고 씨익 웃는 모습이라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 세계의 이면에 그런 폭력의 얼굴이 스며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뱅크시는 그런 추악한 얼굴들을 까발림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의 이름이 회자될수록, 그의 작품이 관심을 가질수록 사람들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것이고, 미술관은 그의 작품을 영구 보관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유명세는 양날의 검. 그의 작품이 고가로 매매되는 실정에 이르른 지금 그의 초심이 흔들리지는 않을지 때이른 염려가 들기도 한다. 그의 예술혼이 의심되기보다 자본주의의 무서운 힘이 공포스러워서 말이다.    

   
 

도시를 경영하며 관리하는 사람들은 그래피티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윤을 내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존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진정으로 우리 이웃들의 외관을 더럽히고 손상시키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거대한 슬로건들을 버스와 건물들 사이에 되는 대로 마구 휘갈려 쓰고는 마치 우리가 자기 회사의 물건을 사지 않으면 뭔가 부족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회사들이다. -28쪽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범죄들은 법을 어기는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법을 따르는 정치가들에 의해 행해진다. 그들은 바로 폭탄을 떨어뜨리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 마을을 학살하라고 명령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악한 행동을 예방하는 방법은 우리가 듣고 배운 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이며 이것이 우리의 막중한 임무이다. 이것만이 우리가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73쪽

 
   

그의 조롱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은 대개 공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정치가, 경찰, 자본가 등등등... 경찰과 경호원들이 눈 아래까지 내려오는 뾰족한 모양의 모자를 쓰는데, 이는 눈썹을 가림으로써 감정을 감추고 그로 인해 권위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경찰들은 6피트 이상 높이에 있는 것들은 보기 어렵고, 그 점을 노려서 일정 높이 이상의 건물 위쪽이나 다리 위에 그래피티를 그리는데, 이건 놀라운 장점으로 작용한다. 권위의 전복을 이용한 통쾌한 조롱!

그런데 그의 조롱의 대상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동물과 곤충이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이렇게 천사가 주인공일 수도 있다.  



 한껏 불량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는 천사의 고뇌는 무엇일까? 천사 계급에게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나눠져 있고 학벌에 따른 차별이 난무하는 것일까? 

   
 

사랑의 시 

서로의 눈을 마주 보는 것을 넘어
달콤하고 부드러운 키스와 함께
우리의 영혼은 숨을 죽이며
경이로움으로 서로에게 도달한다. 

드넓게 미소 짓는 평화로부터 깨어났을때,
나는 아침 햇살 속에 목욕하고 있는 당신을 본다.
내 전화기 안에 있는 모든 메시지를
조용히 살피고 있는 당신을 

-89쪽

 
   

 (본문에서는 '햇살'이 '했살'로 표기되어 있다. ;;;;;)

그의 관심은 인간을 넘어 지구 자체로 확장된다. 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도 그의 단골 메뉴다. 

   
 

 마지막 나무가 잘려 나가고
마지막 남은 강물마저도 말라서 졸졸 흐르게 되어서야
사람들은 겨우 돈은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 우리를 얼간이 취급하던 충고를 새겨들을 것인가... -125쪽

 
   

박물관에 들어가서 자신의 작품을 걸어놓고 나오는 그의 대담성은 짜릿한 즐거움을 주기까지 한다. 어떤 때는 단 몇 시간만에 들켜서 철수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며칠이고 제자리에 놓여 있기도 하며 때로는 박물관에서 그 가치를 인정하고 영구 보관을 결정하기도 한다.  

어릴 때 누나가 뱅크시의 드로잉들을 많이 버렸는데, 그때 누나가 하던 소리는 이거였다. "그 그림들이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될 것들은 아니잖아."라고. 그러나 그의 작품은 2004년 루브르 박물관에 설치되었다. 모나리자의 얼굴을 미키마우스 얼굴로 덮어버린 채. 아마도 금세 치워졌을 테지만 충격적인 반전이 아니던가. 



폭약을 안고 있는 아기 예수와 엠피쓰리를 듣고 착용한 마리아라니, 아찔한 통쾌함이 지나간다. 종교인이라면 불쾌해하거나 심히 불편해할 수 있는 불경이겠지만, 신성을 모독하려는 게 아니라, 신성에 기대어 파렴치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인간 자체를 비웃는 작품일 것이다.  

 

200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2시간 동안 전시되었다고 한다. 느낌 탓인지 첫번째 그림이 우수에 젖어 보인다고 한다면 두번째 그림은 슬픔에 빠져 있는 듯 보인다. 이곳에선 숨을 쉴수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항공 무기가 장착된 얼룩무늬 딱정벌레.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서 무려 12일 동안 전시되었다고 한다. 12일동안 누구도 이 그림을 눈여겨보며 이 자리에 있을 게 못된다고 여기지 못했던 거다. 누군가 보았다 하더라도 이 자리에 어울릴 그림이라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왼쪽의 사진을 보면 작업 중인 뱅크시의 모습이 보인다. 후다닥 움직이고 있다. 사진을 찍어준 이는 그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친구가 아닐까 싶다. 설마 CCTV의 화면을 얻어낸 건 아니겠지... ^^ 



돌에 유성펜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대영박물관에 8일 씩이나 전시되었고 현재 대영박물관에서 영구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나 나올 법한 구성인데, 정면을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쇼핑 카트다. 마치 쇼핑이 태곳적 인간의 기억에 각인된 본능인 것인양 선전하고 길들여지는 이 거대한 자본의 세계에 대한 뱅크시 식의 통렬한 풍자로 보인다.  

미적 가치는 물론 메시지까지도 알아들은 거라면 대영박물관은 센스쟁이. 그걸 수용할 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조롱을 한껏 담은 작품이건만, 웃을 수가 없다. 폭발하는 네이팜 속에서 울며 뛰쳐나온 저 베트남 소녀의 양손을 잡고 해맑게 인사하는 미키마우스와 맥도널드의 마스코트들. 전쟁의 참상이든, 폭력의 비극이든, 무엇이든 돈으로 환전해낼 수 있는 놀라운 신의 손. 그 마이다스의 손을 꿈꾸며 가장 소중한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죽은 생명의 황금과 바꾸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언제쯤 알아차릴까.  

그의 작업은 '예술'이라고 불리지만 동시에 '문화 파괴자'란 이름도 같이 얻었다. 양 극단을 오가는 그 이름 속에서 그가 벽을 통해 세상에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 메시지를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는 그대라면 뱅크시가 꿈꾸는 정의로운 세상을 같이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맨 뒤에는 국내에서 그래피티 작가로 활동 중인 두 명의 아티스트와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록'의 정신과 '힙합'의 정신에 대해서 얘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압구정 굴다리, 신도림역 주변, 영등호 파자 센터, 홍대 주변이나 강촌 등등에서 그래피티작품을 마주치게 된다면 전보다 더 반가울 듯하다.

이 책은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의 청소년 권장 도서다. 이 책에서 배울 점은 반항이 아니라 저항, 방탕이 아니라 자유라는 걸, 소수를 위한 세상이 아닌 다수가 함께 누리는 건강한 삶이라는 걸, 우리의 청소년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덧글) 228쪽에 '빨간 입술들. 잠옷을 입지도 못한 채 어깨까지 담요를 덥고'라고 적혀 있다. '덮고'로 고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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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12-01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너무 멋집니다.

마노아 2009-12-01 00:27   좋아요 0 | URL
현장에서 직접 보면 짜릿할 것 같아요.^^

희망찬샘 2009-12-01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서재에 들어오면 항상 느끼는 것. 알라딘에 글 잘 쓰시는 분 무지 많지만 우찌 이리 잘 쓰시는지... 리뷰에 항상 감동하면서 물러갑니다.

마노아 2009-12-01 09:12   좋아요 0 | URL
희망찬샘님, 그 무슨 과찬의 말씀이세요.^^;;;; 무튼, 고맙습니다.^^

후애(厚愛) 2009-12-0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멋진 리뷰에 감동받았어요!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그림들도 너무 멋져요.

마노아 2009-12-01 23:41   좋아요 0 | URL
후애님 감사해요.^^ 웹사이트에는 더 많은 사진이 있을 거예요. 시원하고도 씁슬한 그림들이 어마어마해요.^^

같은하늘 2009-12-02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방면의 책을 섭렵하시는 마노아님...
글을 보니 작품들을 직접 보고싶어지는데요~~

마노아 2009-12-02 06:57   좋아요 0 | URL
현장에서 보면 더 통렬함을 느낄 것 같아요. 메시지도 강렬하고 감각도 빼어난 것 같아요.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