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달에 다녀오리라고 결심한 곳들이 몇 군데 있었다.  

먼저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몽유도원도와 강산무진도를 보는 것. 두 그림은 전시 기간이 달라서 두 번 걸음해야 했다.  

너무 많은 인파와, 같이 간 일행들로 인해 몽유도원도는 2미터 뒤에서 넌지시 보아야 했지만, 강산무진도는 혼자 가서 하뭇하게 감상하고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또 가고 싶었던 곳은 숀탠 展과 간송 미술관 

숀탠 전은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홍대 거리 어느 카페에서 일러스트를 전시하고 있다고는 알고 있지만, 주어진 지도만 보고는 당최 찾아갈 자신이 없는 거다. 내가 날 알지만, 갔다 하면 나는 생고생 하다가 울며 돌아올지도...;;;; 



그런데, 월요일, 동호회 모임이 있는 날이라고 3시 반에 퇴근이 가능한 게 아닌가. 그럼 좀 헤매더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을 하는데 같은 교무실의 어느 샘이 같이 가자고 하신다. 만세! 그 샘에 의지해서 다녀온 카페 드 고릴라.  

둘이서도 사실 좀 헤매긴 했지만, 그래도 평소의 실적을 생각할 때 비교적 빨리 찾은 셈이었다.  할렐루야~ 

숀탠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다. 글 없이도 무수한 이야기를,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 글밥이 있는 책도 있지만 내가 아직 읽지 못했으니 패쓰~ 

그의 작품 속에 나오는 그림들이 액자에 걸려서 카페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일러스트를 담은 엽서는 거저 가져갈 수 있게 비치해 두었는데, 사진 찍는 걸 깜박했구나! 



 





 







2층엔 신발 벗고 들어갈 수 있는 좌식 테이블도 있었지만 치마 입은 터라 1층에서 간단히 식사를~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햄버거로 보이는 녀석이 등장. 빵이 베이글인데다가 높이가 높아서 먹는데 애로사항이 있었다. 결국 다 해체해서 포크로 찍어 먹...;;;;  

옆의 라씨(였던가? 이름이?)가 은근 맛났고...  

어쩌다 보니 학교에서 출발하면서부터 시작한 조선왕조사가 밥 다 먹을 때까지 이어졌고...

(사진 펑!)

카페에서 가져온 엽서가 조그맣게 보인다. ㅎㅎㅎ



무슨무슨 전시회에서 거창하게 그림을 보고 온 건 아니지만, 나름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그림도 보고, 비치된 숀탠의 그림책도 들여다 보고, 애매한 저녁을 먹으며(사실 나중에 저녁 다시 먹음..;;;) 실컷 수다 떨었던 즐거운 시간.  

그랬던 우리, 오늘은 함께 간송 미술관에 다녀왔다.  

학교 앞에서 마을 버스 타면 딱 7정거장 걸린다. 이렇게 가까운데 자주 오면 좋겠건만, 전시 기간이 너무 짧다.  달랑 보름. 

그래도 고수하고 있는 원칙들이 맘에 든다. 홈페이지도 없고, 주차장도 없고, 입장료도 없고, 딱 보름 동안 일년에 두 번 하는 전시회. 게다가 간송 미술관이라는 걸출한 이름과 달리 어찌나 소박한 풍경이던지... 

 

마당에 세워져 있던 어느 불상. 손보지 않은 거친 마당과 흩어져 있는 유물들이 조금 당황스럽고 신선했다.  

게다가 코를 찌르는 이 자극적인 냄새라니....



어째 찍고 보니 머리가 보이질 않는다. 하얀 깃털을 가진 저 녀석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도시 촌뜨기라 도통 모르겠더라. 아무튼 냄새는 지독했을 뿐이고...  

 

그래도 이어서 국화꽃이 반겨주어서 방금 놀란 코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름하여 국화꽃 향기~ 

 

전시관은 생각보다 작았다. 먼저 2층을 둘러보고, 이어서 1층을 관람했다. 사진은 찍을 수 없었고, 조명은 비교적 밝은 편이었다. 사람은 아주 많지 않았고, 소음도 크지 않고, 뭐든지 적당히 좋았던 시간들. 

이번 가을 전시는 '도석화(道釋畵)특별전'이다. 도석화란 도교와 불교의 그림을 뜻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신선과 승려들이 주인공으로 많이 나왔다. 게 중에는 김홍도의 그림도 제법 있었고, 김득신, 김명국, 이인문, 정선, 장승업의 그림들이 눈길을 잡았고, 신윤복의 그림도 있었다. 신윤복의 그림은 도석화의 범주에 들어가는 게 맞는지 좀 의아하긴 했다. 아마도 스님이 나오기 때문에 같이 포함시킨 듯. 그래도 도석화에 으레 기대되는 분위기의 그림은 아니다. 

바다를 건너는 신선 그림이 많았는데 하나같이 파도 모양이 구름 모양이었다. 좀 다양한 표현이었음 했는데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그리는 걸 선호했을까?

익히 잘 알려진 간송미술관 소장의 김홍도, 신윤복 그림은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없었다. 내년 봄 전시회 주제가 잡혀 있지 않으니 그때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작년에 한바탕 몸살을 앓을 정도로 전시를 가졌을 테니 비켜갈 지도 모르겠고... 뭐 암튼, 집에서 멀지 않으니 그건 내년에 재차 확인하고 다시 오면 될 일이다.  

입구에는 복제품 그림을 파는데 신윤복의 미인도가 실물 크기냐고 물으니 95% 크기라고 한다. 흐으음... 

 

나가는 길을 표시한 저 전통적인 방법이라니... 저 길 따라 나가면 들어올 때 그 입구가 나온다. 그냥 건물 한 바퀴 돌아가는 길. 



색깔이 예뻐서 찍어 봤다. 왜 플래시를 꺼야 더 환하게 나오는 걸까??? 

(사진 펑!)

한 달 사이에 숱쳐놨던 머리가 그새 자랐는지 머리가 덥수룩해 졌다. 임시 방편으로 머리띠를 착용함. 좀 웃겼음..ㅎㅎㅎ

개장 시간이 6시까지여서 더 있고 싶어도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건물이 아주 낡았는데, 소장하고 있는 보물들은 어디에서 따로 보관하고 있는 것일까? 뭔가 과학적인 건물 안 어디일 것만 같은데 물어보고 나올 걸 그랬다.

걸어나오는 길, 어느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순대와 김밥을 먹고, 후식으로 나폴레옹 제과점에서 커피맛 아이스크림을~ 

앉아서 먹다가 또 수다 한마당이 벌어져서 느즈막하게 헤어졌다.  

그런 우리는, 토요일에 다시 '시간 여행자의 아내'를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  

한 주에 세 번씩이나 같은 사람과 데이트를 하다니... 다 좋은데, 우리는 동성이라는... 그래서 스캔들은 안 생긴다능....! 

이 책 보고 싶다. 간송 선생님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김동성' 이름 석자! 

서점 가서 일단 실물부터 확인해봐야겠다. 

간송 전형필 선생님은 한참 활동하실 법한 50대 나이에 돌아가셨다.  

사인이 뭔지 모르겠다. 책을 좀 찾아보면 나오겠지... 

암튼, 그리고 내일은 뮤지컬 '영웅'을 보러 간다. 믿을 수 없는 가격 1만 원에....;;;; 

내 나이에 돌아가신 안중근 의사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기대가 된다. 류정한 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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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9-10-30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과 글 잘 봤어요.^^
청순한 느낌의 마노아님 사진, 가을과 참 잘 어울립니다. ^^
한국가면 간송미술관에 꼭 가보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죠, 종종 들릴께요~ ^^)



마노아 2009-10-30 08:04   좋아요 0 | URL
제가 졸지에 가을 여인이 되었네요.^^
차우차우님 반가워요. 님 서재에 저도 종종 놀러가곤 했답니다.^^
한국 오시면 해야 할 리스트가 또 추가되는 거죠?
즐거운 리스트가 될 거예요.^^

소나무집 2009-10-30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완도 살면서 가장 부러운 건 바로 이런 거랍니다.
모든 분야의 문화 혜택 제로인 곳에 살다 보니,
특히 이런 미술 관련 전시회 다녀오신 분들 정말 부러워요.
오랜만에 보는 간송미술관 전경이 그립네요.
귀한 그림과 자료들이 넘 많은 곳이라 국가에서 신경 좀 써주었으면 좋겠더라구요.
간송은 국가도 못한 일을 한 사람이니 미술관 하나쯤 지어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지금 정부에서는 어림없는 일이겠죠?


마노아 2009-10-30 08:06   좋아요 0 | URL
서울의 유일한 장점인 것 같기도 해요.
서울 살 때, 아직 미스일 때, 이런 건 좀 더 많이 누려야겠다고 생각해요.
전국적으로, 전 연령층으로 이런 게 가능해야 할 텐데 말이지요...
간송 미술관은 너무 유명해서 잘 지어놓았을 줄 알았는데 좀 충격이었어요.
오히려 진정성도 더 보이는 것 같고, 그래서 좀 시큰하기도 하고 그랬지요.
강바닥 팔 돈이 있으면 이런 쪽으로 지원해 주면 좀 좋을까요...ㅜ.ㅜ

순오기 2009-10-30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가을 추억을 많이 만들어서 나이 들면 곶감 빼먹듯 하나씩 빼 먹어야 해요.^^
좋아요~ 특별시민이 부러운 이유도 바로 이런 문화적 혜택이에요.
예전에 kbs스페셜이던가 한국사전이든가... 간송 전형필 방송해줬어요.

마노아 2009-10-30 14:06   좋아요 0 | URL
곶감 빼먹듯 하나씩! 너무 좋아요. 그런 면에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놓았네요.
한국사전이었던 것 같아요.
1학기 마칠 때 고3 학생들하고 방송을 보았는데 전형필 편이 가장 인기가 좋았어요.
연기를 하신 배우분이 간송 선생님과 풍채가 좀 비슷하더라구요.^^

무스탕 2009-10-30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러다니기;; 구경다니기 좋은 10월을 이렇게 덜 보람차게 보낸 저는 슬퍼요.. ㅠ.ㅠ
다른것보다 간송미술관이 보고싶은데 왜 이렇게 인연이 안 닿는지 모르겠어요.
노력 부족이 대부분이지만 끝끝내 다른 핑계를 대고 싶다죠..;;;
좋은 시간 보내신것 부럽사와요~~ ^^

마노아 2009-10-31 07:04   좋아요 0 | URL
바쁘고 심장 떨리는 10월을 보내신 무스탕님...ㅜ.ㅜ
11월은 건강한 심신으로 뭐라도 할 수 있을 거야요!
간송 미술관은 내년을 기약해야지요. 주말 즐겁게 보내셔요~

꿈꾸는섬 2009-11-01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산무진도 보러 가려고 했었는데 결국 못 갔어요.ㅠ.ㅠ
간송미술관 전시회도 가보면 좋은데 정말 생각처럼 나서지질 않네요.
결혼전에 많이 놀러다니는건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마노아 2009-11-01 10:49   좋아요 0 | URL
간송은 전시 기간이 너무 짧아서 여차하면 바로 잊게 되더라구요.
생각나서 알아보면 이미 끝났고, 다음 계절을 기다려야 하고 막 그래요.6^^

같은하늘 2009-11-03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색 코트의 마노아님은 완전 가을여인인걸요~~^^
맞아요... 솔로일때 맘껏 즐기세요~~~
그게 자유롭지 못할땐 정말 슬퍼집니다. ㅜㅜ

마노아 2009-11-03 20:26   좋아요 0 | URL
오늘은 겨울 여인이었답니다. 어제보단 덜 추웠지만요.^^
일부러 솔로는 아니지만, 기왕지사 솔로일 때 좀 즐겨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