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는 알라딘에서 당첨된 연극 완득이를 보기로 한 날이다. 날짜를 바꿀 수 없었고, 결국 다녀왔다.
연극은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고, 나로서는 사실 원작보다 더 재밌었다. 배우들의 호흡이 착착 맞으면서 시너지 효과가 컸다.
다만 완득이 아버지와 윤하 역을 맡은 배우들은 말은 빠르고 발음은 부정확해서 대사 전달이 잘 안 되는 게 유일한 흠이었다.
2. 같이 연극을 본 언니는 김해 출신이다. 봉하 마을에서 20분 거리가 집이다. 지금은 혼자서 의왕시에 살고 있지만 가족은 모두 거기 있다.
종종 얘기를 나눠보면 영남 특유의 보수적인 기질들이 잘 튀어나온다. 아니, 보수적인 기질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호남 지역을 향한 설득되지 않는 일방적인 증오라고 하면 될까. 전라도 놈들은 원래 안 돼. 갸들은 원래 싹수가 노래. 믿을 놈이 없어... 이런 식의 말버릇.
그래서 별로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물었다. 언니네 집에서는 혹 연민을 조금이라도 느끼냐고.
전~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한다. 예상했던 대답이다. 물가 잔뜩 올랐다고 엄마 짜증내신다고 전한다.
그래, 대강 그런 반응일 것 같았다. 그건 설득할 수 없는 평행선 같은 거고, 또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건만, 그래도 나는 좀 아프더라. 장로님, 권사님, 전도사님인데, 그런 직분도 어쩔 수 없구나.
3. 오늘은, 가장 바빴던 날이었다. 수업도 꽉꽉 채워져 있었고, 수행평가 덕분에 쉬는 시간도 짬이 안 났다. 영결식 생중계 화면을 소리 죽여 틀어놓았지만, 볼 수 없었다. 노란 풍선만 봐도 시큰거리는데, 몇 번 코를 팽 풀다가 그만두었다.
꼭 맞춘 것처럼 수업 진도에서 광주 이야기가 나왔다. '디딤돌' 교과서는 처음인데, 교과서의 기술 방향이 맘에 들었다.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구절들이 눈에 띄는데, 그래서 내친 김에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를 쫙 훑었다. 중1 아이들은 어렸지만, 그래도 그네들도 차분히 설명하면 이해할 것은 이해한다. 나로서는 뜨거운, 그런 느낌의 시간이었는데, 칠판 한 가득 채운 사건사건들을, 내가 지우고 나왔다. 자주 교실을 둘러보았다. 도청 당하는 것은 아닐까 별별 의심도 들고, 그냥, 무서웠다. 80년대도 아닌데, 그런데도 그랬다. 그래서 더 비루하고, 더 서글펐다.
4. 4월에 수업했던 학교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방과 후 수업 6월 달 맡아줄 수 있냐고. 나로서는 당연히 오케이다. 지금 있는 학교에서 얼마만큼 연장이 될 지 알수가 없다. 쉬고 계신 선생님이 기간제 교사인데, 때문에 유급 휴가가 1주일 밖에 되지 않고, 현재 2주차 쉬고 계시다. 서로, 난감해 하고 있다.
만약 이 학교랑 그 학교가 겹치면 주당 수업을 27시간을 소화해야 하는데, 각오 단디 해야겠다.
교직 첫 해에 고등학교에서 50분 수업 주당 26시간 한달 뛰고는 보약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엔 학교도 이동을 해야 하니까 좀 더 벅찰 수 있다. 그렇지만 뭐 거부할 형편은, 당연히 안 된다.
5. 피아노 학원에서 연주회가 있었다. 개인 레슨 받는 7명의 성인과, 3명의 학생이 참석했다. 날짜를 변경할 수 있겠냐고 건의했지만, 역시 역부족.
연주회는 좋은 경험이었다. 좀 더 피아노치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만들었으니까.
그렇지만, 다음 달에는 한 달 쉴 생각이다. 5월에 나를 강타한 사건의 후유증은 꽤 오래 갈 것이고, 십만원짜리 레슨은 금전적으로도, 현재로서는 시간적으로도 무리다. 7월엔 꼭 돌아가고 싶다. 7개월 간 열심히 다녔는데 다시 손이 굳으면 정말 억울하잖아.
6. 12년 전에, 아빠는 화장을 했었다. 친척들 중에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때도, 형편이 그러했다. 딱히 고인의 뜻이어서가 아니라. 아빠를 갉아 먹은 암 세포가 타버리는 것은 어찌 보면 시원할 일이지만, 그 뜨거운 불덩이 속에서 그 육신이 다시 탄다고 생각했을 때, 유족들은 오열을 터트렸다. 그 장면이, 그랬다. 그리고 다시 문이 열렸을 땐 뼛조각만 남아서 돌아왔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런 장면이었다.
7. 아침부터 이 노래가 맴돌았다. 더 원의 '비나이다'
장길산의 테마곡이란다. 장길산을 보지 못해서, 드라마 속에서 어떤 분위기일지는 알 수 없지만, 가사는, 지금 꼭 느껴지는, 그 마음이다.
지독히도 외롭구나 지쳐 쉴 수 없는 내 맘이
슬프도록 가엾구나 언제 눈을 감을까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 나라 거한 사람들의 평안을 다 위하여
헤메이다 헤메이다 지친 내 영혼 고이 쉬게 하여 줄 그 날 까지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외쳐라 조금씩 나에게 힘을 더해라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슬픈 운명이지만 그대를 위해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 모진 세상 살아가는 내 사랑 그댈 위해
헤메이다 헤메이다 지친 내 영혼 고이 쉬게 하여 줄 그 날 까지
지독히도 외롭구나 그대 보고픈 내 이맘이
슬프도록 가엽구나 나의 거친 인생이
외로웠을 그 분, 이제는 부디 편히 쉬셨으면......
8. 리뷰 쓸 책들이 줄줄이 밀렸다. 동시에 여러 권 읽던 것들이 끝나기도 했고, 서평 도서로 받은 것도 있고, 포토 리뷰 때 읽었는데 못 쓴 책도 있고 등등등...
의도한 게 아닌데 책 크기가 뒤로 갈수록 길어진다...;;;;;
9. 식객은, 내가 아끼던 시리즈인데, 결국 중고샵에 팔기로 결정했고, 벌써 13권까지는 팔렸다. 14권부터는 내가 읽으면서 리뷰 써야 하므로 잠시 유보 중. 모아두었지만, 다시 볼 것 같지 않았다.(원래 내가 그렇다. 두 번 잘 안 읽는다.) 그래도 소장하고 싶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읽어주면 좋겠다고 여겼다. 지금은 그런 바람이 좀 무의미해지거나 혹은 무모해졌기 때문에 과감히 내놓고 있다. 속상하긴 하다.
10. 내일은 머리를 자를 거다. 숱이 너무 많아져서 머리가 무겁다. 감고 말리기도 버겁지만, 머리 묶다가 자꾸 고무줄이 끊어져서 도저히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