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꼭 봄이어서는 아니지만, 요즘 저를 사로잡은 드라마가 있어요.
4 씨즌을 보고 있는 '위기의 주부들'이랍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보려고 결심할 때는 극심한 우울함이 몰려올 때인데, 이 지나칠 만큼 웃기고 동시에 진지한 명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우울함이 싹 가시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희석되곤 하거든요.
한 편당 대략 40분 분량인 이 드라마를 2월에 한 편 보고, 3월에 3편을 보았는데, 4월엔 벌써 8편을 보았지요.
그만큼 화나고 속상한 일이 있기도 했지만, 드라마가 워낙 재밌어서 중간에 못 끊는 것도 한 이유랍니다.
워낙 인기작이라서 많은 분들이 보셨을 것도 같지만, 또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미국의 페어뷰라고 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의 가족들이지요.
1씨즌 첫 회에서 한 여자가 자살을 합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이 작품의 화자가 되어서 시작할 때와 마무리 할 때 나래이션을 맡지요.
시작할 때는 거의 대부분 아주 웃긴 장면에서 시작을 해요. 그렇지만 그 웃긴 장면장면 와중에 뭔가 메시지를 하나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내용이 전개되지요. 그리고 40분 지나 마무리할 때 다시 한 번 앞서 제시했던 명제들을 한 번 더 언급하면서 강조합니다.
네 명의 주부가 주인공이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주 촘촘하고 세삼하게 연결되어 있지요.
3씨즌까지는 거대한 추리 소설 같았는데, 4씨즌 들어서는 좀 더 인간 내면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듯 보입니다.
그럼에도 역시 '유머와 코믹'은 포기하지 못하는 위기의 주부들이지만요.
우울한 나를 깔깔깔 웃게 만든 장면은 이런 것들이었어요.
수잔은 생리 주기가 들쑥날쑥인 것이 걱정되어 병원을 찾았는데, 담당 의사가 수술 중입니다. 그래서 오래 기다린 끝에 지금 시간이 빈 의사를 찾았는데, 하필 얼마 전 10여 년 만에 다시 이사온 옛 친구의 새 남편인 겁니다. 그 사람이 하필 산부인과 의사인 거죠. 다리 올리고 누우라는 말에 일그러지는 수잔의 표정이 압권입니다. 최근 산부인과를 다녀왔던 저로서는 저 장면을 웃었던 게 좀 미안해지긴 했습니다...;;;;;
르넷은 암에 걸렸어요. 항암 치료를 받다보니 구토가 치밀기도 했지요. 아들 아이가 연극을 하는데 관람하러 왔다가 급한 나머지 제 어머니 가방에다가 실례를 해요. 하지만 그 가방은 앞자리에 앉은 르넷을 자꾸 닥달하는 어느 학부형의 가방이었다는 거....;;;;;
친구들에게 동정받고 싶지 않아서 가발 쓰고서 멀쩡한 척을 했지만, 끝내 한계에 다달은 르넷은 가발을 벗고서 자신에게 떨어진 어떤 부탁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하필 숨기고 있던 친구들과 눈이 마주치지요. 그때 약간의 한숨을 내뱉는 르넷의 슬픈 얼굴이에요.
저게 과연 가발인지, 정말로 삭발을 한 건지 알 수가 없군요. 르넷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가장 현명하고, 상식적이고, 도리를 알며 유머를 잃지 않죠. 친구들 중에서 생활 형편은 가장 어려운 편이지만 다섯 아이를 열심히 키우고 있어요. 다른 많은 성격적 결함이나 도덕성이 저하되거나 민폐끼치기 일쑤인 주부들에 비해서 가장 건강한 마음과 정신으로 살아가는 여성이지요. 그녀는 끝내 암도 이겨냅니다.(제가 본 부분까지는요.)
카를로스는 전직 모델 출신인 허영덩어리 가브리엘의 전 남편이지요. 가브리엘은 재혼을 했는데 전남편과 바람을 피웁니다.(바람은 그녀의 특기지요.)
그리고 카를로스는 동거 중이었던 이디의 눈을 피하느라 그녀의 스포츠카에 매달려 도망치는 장면이었는데 말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엄청나게 웃었던 부분이었지요.
아무튼, 너무너무 재밌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주는 '위기의 주부들',
오늘 저로 하여금 문장을 옮기게 한 내용을 보았으니 바로 이 대목입니다.
수잔의 새남편 마이클이 어깨 통증을 완화시키려고 진통제를 먹다가 그만 마약에 중독되었는데 재활원에 가지요. 그곳 병원 벽에 붙어 있는 글이에요.
"A man is only as sick as his secrets."
사람은 자신이 감추는 만큼 아프다.
아, 명 문장입니다.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비밀을 갖고 있고, 그 비밀을 어떻게든 감추려고 하다가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지곤 하지요. 완벽 주부를 자처하는 브리의 새 남편( '새' 남편이 많지요? 사별, 이혼이 많아요. 그게 현실이구요.) 올슨이 그런 케이스였지요.
그런데 그런 물음들은 드라마의 주인공들 뿐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던질 수 있지요.
내가 나 스스로에게 속이는 질문들, 혹은 회피하는 질문들. 그것들이 나를 아프게 한다는 걸 아니까요.
이러니, 재미와 감동과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안겨주는 이 드라마를 제가 어찌 안 좋아하겠어요.
이 봄, 날마다 우울함을 외치고 있는 중인지라 달리 나를 사로잡는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지만, 나를 기쁘게 하는 한 가지는 이 드라마를 고를 수 있겠네요.
저도 조만간 이벤트를 해볼까 구상 중인 와중에, 하이드님 이벤트에 출석(...;;;)합니다.
참가에 의의를 둔다고 말하면서 좀 미안하네요.^^;;;
무튼! 두통 몸살과 꼭 싸워 이기고 씩씩하게 돌아오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