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클로 - Cyclo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새벽에 읽은 '끝없는 벌판'에서 보여주고 있는 비참한 빈민들의 삶을 영화로 옮겼다고 보면 좋을 영화 씨클로. 

씨클로는 자전거처럼 생긴 이동수단이다. 손님을 태우고 페달을 밟아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 다음에 돈을 받는다. 

주인공은 18세의 소년으로 아버지 역시 씨클로 운전자였지만 사고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어려서 잃었다.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일을 하는 누나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물지게를 지는 누나, 그리고 구두를 닦는 어린 여동생. 그리고 날마다 씨클로를 몰고서 힘겹게 돈을 버는 주인공. 심지어 할아버지도 바퀴에 땜질을 하면서 적은 벌이일 망정 생활을 돕느라 애를 쓰신다.  

그런데 어느 날, 씨클로를 몰다가 잠시 담벼락에서 볼일을 보는 사이 양아치들에게 씨클로를 빼앗겨버린 주인공. 이 씨클로는 지역에서 힘 좀 쓰는 마님께 대여료를 물며 빌려 쓰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는 어쩔 수 없이 씨클로 대신 갱조직의 일원이 되어 어둠의 세계를 배회하게 된다. (씨클로 빼앗아간 놈 역시 마님 수하의 녀석이었는데 혹 마님이 파놓은 함정??)

그리고 이 작품에서 제일 이국적으로 생긴 출연진 양조위. 

1995년 영화라고 하니 당연한 얘기지만, 어찌나 젋고 팽팽한 양조위던지 적벽대전의 그 양조위와 너무 차이가 나서 당황스러웠다. 

이 영화에선 시작부터 끝까지(죽을 때까지!) 담배만 물고 나왔는데 촬영하면서 건강을 상하지 않았을까 염려된다.  

양조위는 여기서 시인이다. 시를 읊조리는 영혼이지만 몸은 마님에게 묵인 역시나 갱 조직의 일원.  

양조위가 사랑하는 여자는 씨클로를 모는 주인공의 누나다.(감독의 부인 되시겠다.) 주인공이 씨클로를 빼앗긴 뒤 갱조직에 빠져서 점차 범죄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빠져드는 것처럼, 누나는 물지게를 지던 삶에서 사랑하는 남자 양조위의 주선으로 매춘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녀가 접대하는 손님들은 다분히 변태 기질이 있는 사람들인데, 첫번째 양반은 물을 잔뜩 먹여서 서서 오줌을 누도록 시켰고, 두번째 남자는 스타킹을 애써 신긴 다음 구멍을 낸 뒤 발가락을 만졌고, 그 발가락에 매니큐어를 발라 주는 등 발가락에 엄청 집착했다. 그리고 세 번째 남자는 수갑 채워놓고 학대를 했는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여자의 순결까지 가져가버렸다. 여기서 충격받는 양조위. 

문득, 영화 '나쁜 남자'가 떠오른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애달파 하던 그 남자. 양조위도 말 한 마디 없고 간혹 시를 중얼거리기만 할 뿐, 시종 조용하게 나오는데, 그의 내면에선 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요동을 친다. 자신이 사랑한 여자를 학대한 남자를 찾아가 끝내 죽여버리는 이 남자. 그 모든 중첩된 괴로움에 끝내 불을 지르고 불구덩이로 뛰어든 남자. 매춘을 알선한 대가로 받아오던 돈은 하나도 쓰지 못한 채 그와 함께 재가 되어버린다. 그는 애초 돈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인 양 묘사되었지만, 그가 진짜 돈 따위는 필요 없는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남자 손 치고는 몹시 고운 선을 지녔다. 담배를 계속 물고 있었기 때문에 손이 자주 잡혔는데 얼굴보다 손에 더 눈길이 가더라.  대체 어떤 인연으로 양조위가 이 영화에 출연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한 편, 주인공은 쉽게 버는 돈에 마성을 느끼다가 방화를 저지르고, 살인 사건에 동원되는 등 자꾸만 망가져 간다. 그러다가 약물에 빠져들어 주최하지 못할 만큼 망가지는데...... 

영화는 거의 대사가 없다. 대사 없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상 속의 베트남 사람들의 삶을 무심히 보여주는데, 방향 없는 그 장면들이 오히려 일상의 잔인함을 더 잘 표현하는 듯했다. 서로가 어려운 처지에서 구역 싸움을 하고,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신년 인사 자리에서 돈을 훔치고,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학교에서 노래하며 책을 읽으며 내일을 준비한다.  

영화는 국제적인 큰 상을 받으며 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당국에서는 자국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켰다고 상영 금지 처분까지 받았다고 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소설 '끝없는 벌판'이 받았던 대접과 비슷한 수순이다.  

십 수년 전에 그랬던 베트남은,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빠르게 개혁 개방의 길로 내달리면서 경제의 규모는 훨씬 커졌을 테지만, 저렇게 가난한 사람들, 그래서 저렇게 망가지는 사람들, 그렇게 외롭고 서러운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어디 베트남 뿐이겠는가.

뱀꼬리. 이건 정말 사족이지만, 하얀 아오자이, 정말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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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2009-02-24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조위는 선이 이뿐 남정네지요. 눈빛도 아스라하고- 제가 증말 조아라 하는 배우여요. (내용도 좋은데 유독 양조위에 집착하는, ㅋ)

마노아 2009-02-24 22:20   좋아요 0 | URL
아스라한 눈빛! 딱이에요. 양조위는 악역을 맡아도 미워할 수 없는 연기를 할 거예요. 모성을 엄청 자극시킨다니까요.

다락방 2009-02-24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때문에 래디오 헤드의 크립이 갑자기 인기를 끌었을거에요. 저 혼자 좋아하던 노랜데 갑자기 인기가 많아졌단 말이죠. 흑 ㅜㅡ

마노아 2009-02-25 00:43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 연속 재생으로 계속 듣고 오던 중이에요. 가사를 전혀 모르고 들었는데 어딘가 나른하고 좀 쓸쓸한 분위기에요. 다락방님은 영화, 음악, 소설까지 두루두루 팔방미인이에요. ^^

다락방 2009-02-25 08:55   좋아요 0 | URL
그...그....그럴리가요 ^^;

마노아 2009-02-25 10:33   좋아요 0 | URL
엄훠, 겸손하시기는.. ^^

하늘바람 2009-02-25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때는 무지 인상깊었는데요. 하도 오래되어서 그런지 잘 기억이 안나네요

마노아 2009-02-25 10:34   좋아요 0 | URL
이렇게 대사 없이 너무 조용한 영화는 더 그럴 것 같아요.
저도 아주 인상깊게 읽었던 '모데라토 칸타빌레'가 생각이 거의 안 나서 몹시 슬프답니다.ㅠ.ㅠ

Mephistopheles 2009-03-20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얀색 아오자이가 아무리 이뻐도...영화는 지독하게 비참해요..^^

마노아 2009-03-20 11:4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아오자이만 예뻤다는...;;;
그린파파야의 향기도 이런 분위기일까요? 영화 보고나니 우울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