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검색해서 알려준 아시아나 항공기는 엄마와 나, 두 사람 왕복 티켓 비용이 77만원이었다.
아무래도 가격이 세다고 오빠가 주춤하는 눈치이기에 저가 항공을 알아보니 중국 남방 항공기는 두 사람 왕복 비용이 319,500원. 이야, 절반 값이 안 되는 거다.
그래서 그걸로 예약했다. 비행기가 떨어지면, 그건 운명이지 뭐... 이러면서!

비행기는 꽤 좁고 별로 깨끗하지 않았고, 좀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건 뭐 참을만 했다. 사실 비교 대상이 없으니 다른 비행기보다 얼마나 못한지는 모르겠다. 다만, 기내식은 인간이 먹을 맛이 아니었단 것만은 확신한다.
평소, 비위가 강하다고 자부했던 나는, 그 약품 냄새가 나는 밥을 무려 세번이나 떠먹고는 그대로 멀미했다ㅠ.ㅠ
어무이께서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설사 작렬! 대단하다, 남방항공의 기내식! 쿠헤엑..!
입국확인서를 제출하는데, 친지 방문이라 체크해 뒀는데 주소는 내가 알 길이 없어서 공란으로 했더니, 공항에서 직원이 솰라솰라, 막 뭐라뭐라 하는데, 알 길이 있나.(ㅡㅡ;;)
Can you repeat that? 했는데, 이럴 때 쓰는 표현이 아닌감? 직원이 한숨과 함께 웃더니 그냥 가랜다. 칫, 똑같이 써낸 엄마는 안 붙잡혔는데 왜 나만 갖고 그러는감? 왜 중국에 왔냐고 해서 친척 집에 온 거고, 공부하러 왔냐고 하길래 아니라고 했는데 그 다음 질문은 통 모르겠다. 아무튼 패스!
중국에 도착할 때는 공항이 한산했다. 저녁 시간이어서 그랬을까? 오빠와 새언니가 조카를 안고서 우리를 반겨준다. 호호홋, 드디어 내가 해외에 도착했구나! 푸동공항에서 오빠 집까지는 대략 40분 거리. 기사님이 짐을 받아주신다. 중국에서는 외국인이 차를 직접 운전할 수가 없기 때문에 회사에서 전속 운전 기사를 붙여줬다고 한다. 차는 BUICK. 색깔은 별로 안 이쁘다. 회사에서 준 거라 고를 수 없었단다.
기내식으로 하도 혼이 나서 다시 저녁을 먹을 엄두가 안 나고, 오빠네는 이미 먹었다고 해서 바로 집으로 직행.
황푸 강을 중심으로 동쪽이 푸동, 서쪽이 푸시. 오빠 집은 푸시에 있었다. 아파트에 들어서는데 집이 겁나 좋더라.
정원이 호텔 정원처럼 이쁘게 꾸며져 있었고 로비는 실내 거실보다 안락했고, 인사하는 안내 언니들은 또 어찌나 이쁘던지.
오빠 집은 21층이었는데, 중국에선 4라는 숫자를 싫어해서 4층과 14층은 없다. 그러니까 사실은 19층.
보안 키가 없이는 엘리베이터도 탈 수 없고 아파트 안으로도 들어갈 수가 없는데, 그 키를 가진 사람도 자기 집이 있는 층의 엘리베이터만 누를 수 있다고 한다. 흐음... 경비가 철저하구나!
도곡동 사는 내 친구 집도 참 좋았었는데, 오빠 집을 보니 비할 바가 아니다. 면적은 대략 80평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우리랑 세는 단위가 다르기 때문에 물어보진 못했지만 눈 짐작에.
천정 높이가 3.4미터 정도 되는 것 같았는데 천정이 높은 게 난 참 맘에 들었다. 우리 집은 화장실 갈 때 파카를 입고 가야 하건만, 여긴 화장실 바닥에도 온돌이 깔려서 맨발로 들어가는구나. 거 참 비교되게시리.
아파트도 역시 회사에서 제공하는 거였다. 날마다 4시간씩 주방 도우미가 방문을 하고 그 도우미가 이틀에 한 번 침대 시트를 갈아준다. 그리고 청소 도우미가 또 일주일에 세 차례 방문을 해서 온통 반딱반딱하게 닦아준다. 헉, 뭐가 이렇게 편한 거야?
오빠의 미국 집은 3층 집이라는데 상하이 집보다 크다고 한다. 허걱! 그 집 임대해 놓고 나왔는데 살림살이는 모두 창고에 장기 보관. 창고 사용료는 역시 회사에서 지급. 운전기사가 휴가를 받아서 운전을 못해줄 때는 택시를 이용, 영수증 첨부하면 역시 회사에서 지급. 두돌 조금 넘은 조카는 (미국인)학교에 다니는데 학비가 일년에 만달러 지불된다고 한다. 무슨 회사가 봉인가! 대접이 놀랍도록 훌륭하다. 우리나라 삼성, 현대, 엘지도 해외 파견 근무 나가면 이렇게 대접 받을까?
(사진 펑!)
조카 녀석은 공항에선 낯설어서 안으려고 하면 막 도망갔는데, 집에 도착할 즈음엔 벌써 친해져서 이후론 내 옆에서 절대 안 떨어지려고 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고 대답하고,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들고 온 선물 증정식(?)을 마친 후, 가볍게 과일을 먹고 나니 어느새 잠잘 시간. 오빠가 묻는다. 한국 영화 보겠냐고. 거기선 짝퉁 dvd를 한 장에 1달러에 구입할 수 있다고, 자기가 사 모은 한국 dvd를 보여준다. 헐리웃 영화는 한글 자막이 없기에 영어 자막에 한글 대사가 나오는 한국 영화를 권한 것.
솔직히 난 좀 피곤했고, 오빠가 사둔 영화는 거의 내가 보았거나 아니면 볼 마음이 없는 것들이었는데, 아 오랜만에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구나! 싶어서 같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 이때 고른 영화가 '괴물' .
이 영화를 한국 사람 무려 천만 명이 넘게 보았다고 했는데, 말하면서 좀 챙피하긴 했다. 그렇다고 한국 사람들의 몰개성과 획일화를 내가 영어로 설명할 수는...;;;; 뭐, 나도 그 네 명 중 한 명이 본 영화를 꼬박꼬박 보기도 했었고. ^^
근데 이게 짝퉁 영화라서인지, 아님 워낙에 한국말 옮기기가 힘든 건지 오빠는 좀처럼 재미를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중요 대목에서 막 졸아서 내가 흔들어 깨우기도. 골뱅이 모양이 괴물 모양이랑 비슷한 것, 그리고 미국에서 수입한 그 가스...이름 뭐더라? 옐로우 어쩌구가 달려 있는 모양도 괴물 모양하고 비슷하다고 설명하니 비몽사몽 간에 고개를 끄덕끄덕.
그리고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영화는 끝. 감상이 어땠냐고 하니 영 아닌 눈치다. 굿나잇~ 인사를 하고 나는 조카 방으로 고우~!
어무이께선 이미 잠드신 지 오래. 상하이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끝나갔다.
어디어디 가보고 싶냐고 물었을 때 난 미리 책 보고 찾아본 곳을 줄줄줄 읊었다. 그 중에 몇 군데는 가겠지 싶어서.
난 서커스도 보고 싶었고, 동물원에서 자이언트 팬다도 보고 싶었고, 88층 전망대까진 아니더라도 54층 하야트 호텔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며 상하이의 놀라운 야경을 보고 싶었다. 뿐인가? 황푸강을 건너는 유람선에서 야경을 즐겨도 훌륭할 것 같았고, 피곤이 다 풀리게 맛사지도 받고 싶었다.
그리고 명색이 중국인데, 맛난 것은 또 얼마나 많을까 잔뜩 기대했다. 내가 아는 정도는 가볍게 딤섬이지만 말고도 환상의 요리가 곳곳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원래 관광이란 게 그런 것 아닌가? 볼거리, 먹거리로 신나는 것. 5박 6일의 일정인데 서울에서의 고민이나 근심은 잠시 접어두고, 여기선 그저 신나게 즐겁게, 멋진 추억을 잔뜩 쌓는 거라고! 나는 부푼 기대를 안고 있었단 말이다. 정말로, 그날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