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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옷을 입은 집 - 단청 이야기 ㅣ 우리 문화 그림책 2
조은수 지음, 유문조 그림 / 사계절 / 2002년 1월
평점 :
최근에 머그컵을 노리고서 샀던 책이다. 신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발간일이 좀 지났다.
작년인가 '그림 그리는 새'라는 책을 인상 깊게 보았는데 마찬가지로 '단청'에 관한 동화다.
엄마를 찾던 한 아이가 낡은 집에서 잠이 들었는데 웬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나게 된다. 이 분 왈, 내 집이 죽어가고 있으니 살려다오. 그러면 네 엄마를 만날 게다!
할아버지 표정이 간절하기보다 귀엽다! 부러 아이스럽게, 조금은 희화한 느낌이다. 옆에 연꽃 들고 있는 아이와 피리 부는 아낙이 타고 있는 닭머리 새를 보시라!
일어난 아이는 확실히 집이 많이 상한 것을 깨닫고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그림을 그리기로 결정한다. 허전한 집에 새무늬를 만들어주는 것!
저 할아부지는 아이가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다는 걸 어찌 알았을까! 아니라면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겠지. ^^
그림 그리다가 다시 잠이 든 아이! 그려놓은 소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는 거다. 이 푸르른 소나무 곁으로 새 두마리가 날아들었는데 닭처럼도 생기고 뱀처럼도 생긴 신기한 새. 할아버지 곁에서 피리 불던 처자가 타고 있던 바로 그 새다!
새의 아름다운 노래 가락 소리에 구름이 와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그 눈물이 땅에 고여 연못을 이루었다.
연못에서 피어난 연꽃은 수천 송이. 그 연꽃의 향내를 맡고 나비가 수없이 날아든다. 갖가지 모양의 나비의 날개짓이 다채롭고 오묘하다. 연꽃의 모양은 단순화 시켰는데도 나비는 굉장히 정성스레 그린 느낌이다. 작가분의 내공이 느껴진다.
용도 출몰하는데 무섭게 눈을 희번득 거리지만 해학적이고 우습게 생긴 얼굴이다. 물결치는 바다에 파도의 무늬는 또 지극히 단순화시킨 모습. 그림 작가분이 진지한 그림과 재밌는 그림을 병행해서 그리셨나보다.
이렇게 한바탕 시끄럽고 또 고요한 꿈을 꾼 아이. 잠에서 깨어서 꿈 내용을 그대로 그리겠다고 결심했다.
아이가 처음 그린 것은 아름답게 울어대던 새.
그리고 마치 꽃비 내리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연꽃들.
이어지는 나비 그림. 굵은 기둥머리에는 용 그림. 어휴, 솜씨도 좋아라!
그림 속의 용은 살아 움직이더니 이내 승천한다. 아이를 태우고!
용이 해줄 선물은 무엇일까? 아이가 원했던 엄마 찾기! 소원 들어주는 드래곤볼을 찾은 느낌일 게다.
'그림 그리는 새'의 정교한 그림이 눈을 압도하는 느낌은 더 강렬했는데, 이 책의 단청 그림도 참 웅장하다. 일반적으로 '보색'은 잘못 사용하면 무척 촌스러운 색깔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소재에서 보색이 등장하면 몹시 우아하고 고아한 느낌을 자아낸다. 대표적인 게 한복이고 또 단청이다. 저 단순한 무늬가 정말 연꽃으로 보이는 착각이 들지 않는가?
아이가 떠난 뒤 산속의 죽어가던 집은 새롭게 살아서 오래오래 남아있게 되었다. 그림 옷을 입은 채 말이다.
맨 뒷장에 '단청'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사진으로 보는 단청이 오히려 낯설어진다. 절이나 궁궐의 오래된 단청보다 최근에 입혀놓은 단청의 너무 밝고 들뜬 색이 주는 부조화가 먼저 떠올라 버렸다. 그렇지만 잦은 화재로 오래된 단청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기술이 전래되지 않은 탓이기도 하고.
이런 책을 보고 나서 사찰이나 궁궐 등을 방문하여 단청과 지붕, 기둥 등을 보고 온다면 좀 더 멋진 여정이 되지 않을까.
어제 나의 지인이 그랬다. 아는 만큼 보인다기 보다 느낀 만큼 보인다고. 책이 먼저든, 첫 발자국이 먼저든, 중요한 것은 일단 움직인다는 거다. 외국에 있는 조카에게 줄 책인데, 녀석이 좋아라 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