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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작가의 인터뷰를, 다른 독자들의 리뷰를 미리 읽어볼 수가 없었다. '엄마'라는 단어 때문에 지레 짐작으로 '신파'일 거란 수근거림도 많이 들렸지만 어떤 사전 정보나 편견 없이 만나고 싶었다. 그래야 제대로 이 책을 들여다볼 것만 같았다. 그렇게 기다린 끝에 작가가 표현한 '엄마'를 만났다. 간절하고 간곡하게, 그리고 서럽게.
<연초도매상>을 번역한 나의 지인은, 첫 문장을 번역하느라 엄청 오랜 시간을 썼다고 했다. 문장이 워낙 길기도 했고 난해하기도 했지만, 첫 포인트이기 때문에 강렬한 인상을 매끄럽게 전달할 필요가 있었기에 더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이 작품을 쓴 신경숙 작가도 첫 문장을 쓰고 나서 본 궤도에 올라 작품을 주르륵 이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몹시 매혹적이었고, 긴장감을 제대로 전달하는, 또 앞으로 있을 이 사단을 어떻게 두고 볼까 잔뜩 궁금하게 만들 명문장,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아, 엄마를 잃어버렸단다. 아이도 아니고, 개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엄마를...... 엄마를 잃었다고 한다. 그것도 일주일 전에. 아니, 어떻게 그런!!!
독자는 궁금한 마음에 다음 문장도 연달아 읽는다. 화자의 설정이 독특하다. '너는'이라고 지시하며 말을 한다. 엄마의 첫째 딸인 소설가 '너'의 입장에서, 그녀를 주인공 삼아 전달하는데 화자는 철저히 뒤로 빠지고 주관적인, 전지적인 시점을 배제한다. 그 덕분에 독자는 한 발자국 뒤에서 듣는 것 같은 객관화가 가능하고 작품의 말투는 좀 더 가벼워졌으며 이 무거울 법한 이야기를 부담 없이 듣게 된다. 작가의 영리한 선택이었다.
아버지의 생일을 쇠러 서울로 올라오는 길.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듯이 뒤따라오는 아내를 챙기지 않은 채 먼저 지하철에 올랐고, 한 정거장을 지나서야 아내가 지하철에 오르지 못했음을, 아내를 잃어버렸음을 깨달았다. 하필이면 그때, 다섯 명이나 되는 자식들은 모두 바쁜 일정에, 업무에 치여 누구도 마중을 나오지 못했고, 하필이면 아버지는 지하철을 탔고, 하필이면 사람 많은 그 서울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 오, 맙소사.
도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정표 보고 찾아오던가, 한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누군가 찾으러 올 것이고, 그도 아니면 전화를 한다든지 안내 센터에 문의를 하든지, 뭔가 수단이 있을 것 같은데 어째서 엄마를 잃어야 했을까. 잔인하게도, 엄마를 잃을 수밖에 없는 모든 악조건이 다 겹친다. 시골 생활에만 익숙한 엄마는 모든 게 똑같기만 한 도시의 건물들 사이에서 길을 찾기 어려웠고, 게다가 글을 읽을 줄 몰랐으며, 결정적으로 엄마는...... 치매를 갖고 계셨다. 기막히게도, 자식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엄마는 자주 머리가 아팠고, 그 때문에 혼절도 하고, 해야 할 일을 잊거나 길을 잊거나 자주 멍한 상태가 되어왔었는데, 곧 죽어도 병원은 안 가겠다는 그 거부만 받아들인 채 엄마의 상태를 자식들은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혹은 알았어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늘 가까이 있던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엄마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잊은' 거였고, 그렇게 엄마는 실종되어버렸다.
자식들은 그때부터 엄마의 빈자리를, 엄마가 해내었던 무수한 역할들을, 엄마가 보여준 그 끝없던 사랑을 다시금 새겨본다. 그렇게 이들 한 가족의 살아온 시간이, 역사가 소설 속에서 재구성된다. 처음에는 큰 딸의 입장에서, 두 번째는 장남의 입장에서, 그리고 세 번째는 남편의 입을 빌어서.
열일곱 어린 나이에 시집 와서 가난을 평생 짊어지고 살았던 엄마. 다섯 아이를 키우며 쌀독에 쌀 비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던 엄마. 공부하는 아이들 모습이 그렇게나 자랑스럽고 대견했던 엄마. 걸핏하면 바깥으로 돌고 심지어 외도까지 하고 집안에서 하나 책임지는 것 없는 아버지 대신 농사 일 하고 누에 치고 집을 지으며 살았던 엄마. 어리던 아이들에게 온 세상이었으며, 전 우주였던 그 엄마를, 그 놀랍던 사랑과 희생을 깨닫지도 채 갚지도 못한 채 상실해버렸으니, 남은 가족들의 황망함과 슬픔, 애끓는 참회의 마음을 어떻게 달랠까.
이 작품이 무수한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고 감동을 주고 또 눈물까지 함께 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자식이고 또 누군가의 엄마이기도 한 그 관계대입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도 당연히, 엄마가 있다.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엄마가 갓 시집을 왔을 때, 사흘 만에 시아버지가 큰 며느리랑 못 살겠다고 신혼집에 들어오셨다. 일주일 만에 시동생 둘이 올라왔고, 한 달 뒤에는 시누이도 올라왔다. 그리고 딸 셋이 태어났다. 그렇게 아홉 식구를 건사하고 사셨으니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고 아빠는 작품 속 아버지처럼 한량 비스무리하거나 외도를 하거나 뻔뻔스럽지는 않았어도 경제적 책임은 거의 못 지고 사신 분이었다. 돌아가실 때까지.
어리던 내 눈에는 많은 식구 챙기며 아등바등 사는 엄마보다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없던, 과묵하기도 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아빠가 더 가여웠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고 물으면 거침없이 “아빠가 좋아!” 라고 대답하던 나는, 그럼에도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한참 뒤, 엄마 없는 삶보단 아빠 없는 삶이 좀 더 견디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없는 세상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깨달음 뒤에 지극 정성으로 효성을 다해 엄마를 모셨냐 하면, 그건 절대로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엄마의 존재가 갖는 그 상징성과 사랑의 시혜를 모르지 않았다. 비록 엄청 딱딱한 말투에 감정 표현은 너무도 인색한 우리 엄마지만.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평생을 모르고 살던 오빠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오빠. 그러니까 우리 엄마의 아들. 그러나 내 아빠의 아들은 아닌. 오빠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내가 받은 첫 번째 인상은 '놀랍다!'였다. 일단 없던 오빠가 생겨서 기뻤고, 내 엄마의 젊은 날에 그런 로맨스가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그걸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도덕적, 윤리적으로 다소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걸 정죄할 자격은 내게 없었다. 아무튼, 늘 나의- 우리들의 엄마였고 울 아빠의 아내였기만 했던 엄마가, 젊었던 시절 그저 한 사람의 여인이었던 어느 시간을 처음으로 상상해 보았다. 뜨거운 피가 격정적으로 흘렀을 것이고 미혼모였던 엄마를 3년 간 구애했던 아빠의 순정을 상상해 보았고, 그럼에도 가난한 살림에 책임지지 못한 자식에 대한 죄업을 떠올려 보았다. 참으로, 모진 시간을 보냈겠구나 싶었다.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는 그 시간은 얼마나 지옥이었을까.
엄마의 '인생'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엄마는 나만할 때 꿈이 뭐였어? 뭘 좋아해? 어떨 때 행복해?”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화초를 키우는 것을 사랑하고 원예사가 되고 싶기도 했지만 스스로는 여사장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사셨다 했다. 제일 가보고 싶은 나라는 스위스. 좋아하는 음식은 동태찌개. 자식들 유학 공부시키는 걸 보았으면 하는 소망 등등등.
오래도록, 나는 내 가족들을 힘들어 했다. 정확하게는 내 자매들을 힘들어 했다. 그 자매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엄마도 많이 원망했더랬다. 그래서 '만약'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지금의 가족 구성원으로는 결코 다시 만나고픈 마음이 없었다. 미안하게도,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 그냥, 다시 태어나고픈 마음이 절대 없었다. 상상으로도 그건 좀 끔찍했다. 한 번의 삶도 힘들고 이리 고단한데,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전혀 알 수 없고 그것이 무지갯빛일 가능성도 물론 있다지만, 난 그래도 싫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마음이 다른 사람은 모르되 엄마에게는 미안했다. 엄마가 내게 준 사랑은 우리의 남은 평생 동안 분명히 다 갚을 수 없을 터인데,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고 입 씻는다는 그 상상이 미안했다. 아직 엄마가 되어보지 못한 나는, 내가 내줄 수 있는 '엄마'의 사랑이란 게 당연히 실감도 안 나고 잘 상상도 안 된다. 그래서 다음 생이란 걸 굳이 가장해서 또 다시 엄마의 딸로, 혹은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줄 마음은 감히 못 먹겠는데, 울 엄마의 자매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있다. 나이 들어갈수록 더 의지하고 더 힘이 되어주는, 같이 늙어가는 그런 자매. 그 정도라면, 울 엄마에게 내가 갚을 수 있는, 감당할 수 있는 사랑의 크기가 될 텐데...... 어차피 상상이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다시, 작품 얘기를 해보자. 큰 딸과 장남의 이야기 뒤에 나오는 아버지의 고백과 깨달음을 들으며 얼마나 먹먹했는지 모른다. 그 아빠가, 큰 딸의 전화를 받으며 "엄마를 부탁해"라는 말이 절절하게 튀어나올 때, 도떼기시장 같던 점심시간 교무실에서 난 엎드려 울고 말았다. 창피하다거나 누가 말을 시킨다거나 그 외의 모든 상황들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이런 진행을 예상했음에도 쏟아지는 눈물은 중력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다. 크게 숨을 몰아쉬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눈물을 얼른 닦아내고, 그리고 '엄마'의 입을 빌려 진행하는 네 번째 장을 읽어내려 갔다. 작은 딸의 집을 새가 되어 바라보는 엄마, 그리고 긴 시간 동안 위로가 되어준 한 남자와의 기억을 더듬는 엄마, 그리고 자신이 태어났던, 떠나왔던, 그리고 엄마의 엄마가 계셨던 그 산골 마을에서 엄마의 무릎 위에서 지친 몸을 쉬이는 엄마. 그리고 내뱉은 고백 한 마디,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아, 나는 그 순간 작가 신경숙의 문장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독자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극한까지 슬픔을 참고 참았다가 팡 터트리는 그 절묘한 순간. 그 완벽한 타이밍에 등장한 '일평생'과 '엄마'라는 단어. 그 한 문장이 이 책의 모든 것을 설명했다. 그 한 문장이 우리의 인간사를 다 표현하는 듯했다. 작디작고, 약하고 약한 한 인간이었던 그녀가, '엄마'라는 이름을 달고 무적의 존재로 살아온 그 시간의 더께. 그 이름의 숭고함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게 우리들의 ‘엄마’였다.
작품은 마지막에 '에필로그'를 달아 큰 딸이 이탈리아의 시에타 성당에서 피에타 상과의 조우를 가지며 맞이하는 극적인 해방감과 절절한 부탁 한 마디를 다시 싣는다. 마치 순회하는 듯한 작품의 구조. 끝없이 반복되는 듯하지만 의미 있는 종결을 맞이한 여운 있는 아름다운 마무리. 신경숙 작가의 책은 '풍금이 있던 자리'와 '리진'에 이어 세 번째 만남이지만 이 작가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걷어내는 순간이었다. 지나칠 만큼 우울하고 갑갑한 느낌이라는 내 편견 말이다. 이미지로 말하자면 '승무'를 추고 있는 비구니의 정갈한 모습으로 재포장 되는 순간이었다.
긴 여운, 긴 감동. 모든 게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벗겨낼 수 없는 띠지로 구성된 표지는 마음에 안 들지만 디자인은 훌륭했다. 그러나 해설은 어찌나 현학적으로 쓰셨는지 어려운 단어의 긴 나열들이 불편했다. '해설'이니까 쉽게 써야 마땅한 것 아닌가? 꼭 이렇게 써야 ‘있어 보인다’는 느낌이 너무 가득 담겨 있어서 불만이었다. 다행히 짧았지만.
급작스레 효녀 심청으로 변신은 못하겠지만, 엄마를 떠올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본다. 이번 겨울에는 엄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법을 알려드려야겠다. 눈이 어둡다고, 휴대폰 키패드가 너무 작다고 투덜대셔도 잘 설득해서 꼭 익히게 해야지. 배우고 나면 이 쉬운 것을~하면서 한결 가볍게 여기시지 않을까. 당장 스위스 여행은 못 시켜드려도, 함께 제주도 여행은 꼭 가야겠다. 두 사람 모두 아직 못 가본 바다 '건너 땅'이 아니던가.
마음이 심란하고 외롭고 고단한 하루였다. 그러나 돌아올 집이 있었고, 나를 기다려주는 엄마가 계셨고, 나와 함께 있는 그 엄마를 느낄 수 있으니 오늘 밤도 나의 잠은 평안할 것이다. 내 이름처럼.
덧 글) 210쪽 첫줄 ‘걸음마을’ 은 ‘걸음마를’의 오타인 듯.